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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과 내 안의 빛
-춘향전과 구운몽의 등장인물을 통해-
서론
들어가는 말
춘향전과 구운몽을 읽으면서 나는 몇가지 의문점들이 떠 올랐다. 그것들은 주로 진정한 행복에 대한 의문점들이다. 나는 이 글이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이 글이 나를 한 층 더 눈을 밝게 해주고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안 좋은지 알려주어 내가 참된 길을 따라 진정한 행복을 얻는 즐거움을 나에게 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글은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 줄 수 있어서 그런 이유로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차례로는 먼저 이 두 이야기의 줄거리를 쓰고 소감을 쓴 다음에 서로 어느것이 더 진정한 행복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하고 마지막으로 나와 비교해 글을 마치겠다.
본론
1-1. 춘향전
춘향이는 기생 월매의 하나뿐인 딸이다. 월매는 아무리 원해도 아이를 갖지 못해 신령께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고 빈 끝에 드디어 옥 같은 딸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이 바로 춘향이다. 춘향이는 어려서부터 사랑을 많이 받고 또 총명했다. 춘향의 나이 열여섯 살이 되자 춘향이는 어느새 아름다운 처녀가 되어 있었다. 단오날 춘향이가 그네를 타고 노는 걸 본 양반집안의 아들 이도령은 춘향이에게 반하고 만다. 이후 이도령(이몽룡)은 춘향이의 집으로 찾아가 춘향이와 연분을 맺는다. 하지만 이도령은 과거시험을 보러 멀리 떠나 춘향이와 헤어지게 된다. 이도령이 떠난 후 새로 부임한 사또는 사람들은 돌보지 않고 다짜고짜 이름난 기생들은 죄다 불러모은 뒤 놀기만 한다. 춘향이의 아름다운 외모 또한 그 고을에 소문이 자자해서 사또의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오게 되었다. 사또는 춘향이가 기생의 딸이니 춘향이 또한 기생일 것이라 생각하고 춘향이를 불러서 기생처럼 대하려고 했지만 춘향이는 이도령과의 정과 연분을 잊지 않고 끝까지 사또의 뜻을 거절하고 정조를 지킨다. 결국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사또는 춘향이를 옥에 가둔다. 많은 고문을 당한 춘향이는 옥에서 힘들고 슬픈 나날을 보내며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 한편 이도령은 뛰어난 머리 덕분에 장원급제를 하고 암행어사가 된다. 어사가 된 이도령은 거지차림을 하고 포졸들을 모아 춘향이가 있는 고을로 간다. 도착하고 난 후 포졸들을 곳곳에 배치한 후 혼자 월매를 찾아간다. 월매를 만난 이도령은 춘향이에 대한 사정을 알게 되고 또 춘향이가 사또의 생신인 다음날에 처형당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밤 이도령은 월매와 함께 춘향이를 만났다. 서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이 만남을 기뻐했다. 다음 날 잔치가 열리었고 이도령은 손님으로 잔치에 참석했다. 그리곤 춘향이가 나오자 암행어사 출두요~!!! 하면서 다른 포졸들과 함께 나쁜 사또를 잡고 춘향이를 구해주었다. 이후 이도령은 어사에서 벗어나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춘향이를 아내로 맞이한다. -끝-
1-2. 소감
나는 이와 같은 해피엔딩이 참 좋다. 춘향이와 이도령 둘 중 누가 더 서로에 대한 정이 깊을까? 이도령은 춘향이를 사랑했지만 춘향이보다는 못한 것 . 과거시험 때문에 서로 헤어질 때 춘향이는 이도령이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므로 이도령이 떠날 때 울고불고 제발 떨어지지 말자고 가더라도 같이 가자고 하소연하면서 이도령과 함께 하려고 했다. 그러는 반면 이도령은 춘향이의 뜻을 거절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춘향이를 타일렀다. 나라면 춘향이와 함께할 방법을 궁리하거나 방법이 없다면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하게 춘향이를 위로해주고 슬픈 마음을 낫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도령이 장원급제를 못해서 암행어사가 될 수 없었으면 죽을 위기에 처한 춘향이를 구하려고 했을까? 사람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아마 이도령은 사또의 권력과 힘이 두려워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춘향이가 옥에 갇혔을 때 춘향이의 운세를 점친 눈먼 장님은 과연 정말로 점을 칠줄 알았을까? 운세가 맞기는 했지만 만약 그것이 우연이라면? 거지가 어떻게 점술을 배웠을까? 아니면 거지가 되기전에 점술을 미리 배워두었을까? 혹은 여러 이야기에 나오는 신령같은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장님의 이름도 궁금하다. 월매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또 이도령과 춘향이도 둘이 오순도순 별 탈 없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 춘향전은 판소리와 함께 듣는 노래이야기라고 하는데 나도 한번 판소리와 함께 들어보고 싶다.
2-1. 구운몽
선계에서 육관대사(도인) 밑에서 불도를 수행하던 제자 성진이 용왕에게 심부름을 갔다가 심하게 취해 돌아오는 길에 여덟 선녀를 만나 잠시 노닥거리게 된다. 돌아와서 세속의 욕망 때문에 아까 보았던 팔선녀가 눈에 아른거려 고민하다가 스승에게 걸려 여덟 선녀와 함께 지옥을 거쳐 다시 양소유라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다. 소유는 과거를 보러가던 중 한 노인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눈다. 노인은 소유에게 너는 많은 첩과 부인을 만날 연줄이 많으니, 한 여자에게만 매달리지 말라고 한다. 그후 소유는 정말 노인의 말대로 6첩과 2부인을 얻는다. 또 왕에게 신뢰를 얻어 승상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 부와 명예를 얻고 아이도 많이 낳고 그렇게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다. 그런데 모든 것이 풍요로운 삶에 점점 싫증이 나고 죽으면 어차피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생각이 겹쳐 양소유는 영생을 위해 신선이나 그에 버금가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관음보살을 찾아 문수보살께 예를 드려 도를 얻고, 영생을 얻기 위해 6첩과 2아내와 자신의 모든 부와 명예 등 세속의 것을 놔두고 떠날 것을 결심을 한다. 그러던 와중 자신에 대해 예언을 해 주었던 노인이 소유를 찾아온다.
그 노인은 신비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는데, 양소유와 이야기를 나누며 양소유에게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양소유가 이를 묻자, 환술을 부려 승상 양소유의 눈앞을 흐리게 하는가 하더니, 소유는 성진의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 났다. 여태까지의 일이 전부 꿈. 성진은 막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고 자신의 몸을 만져보지만, 만져지는 건 까칠까칠한 까까머리와 팔에 걸려있는 백팔염주 뿐, 자신의 모습은 대승상이 아닌 어린 승려의 모습이었다. 주변 역시 성진 자신이 불도를 닦던 절이었고 여덟 부인도, 피붙이들도, 모두 보이지 않았다.
성진은 이들이 모두 꿈이라는 것을 알고 육관대사에게 속세에서의 남녀간의 욕정, 부귀가 모두 허사인 줄을 알게 해준 것에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한다. 그러자 육관대사는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다가 다시 인간이 되었었다는 꿈을 꾸었다는 일화를 말하며 성진과 소유가 누가 꿈이며 누가 꿈이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말을 꺼낸다. 성진이 누가 꿈인지 깨닫게 해달라는 말을 하자 육관대사는 깨닫게 해주겠다하며 곧 새로 올 제자가 있을 거라 말한다. 그러자 곧 성진이 용왕에게 가는 길에 만났던 8선녀, 즉 성진과 함께 환생했던 8첩과 부인이 들어오며 머리를 조아리고 대사께서 자비를 배풀어 큰 은혜를 입었다고 말을 꺼내며 아름다운 얼굴의 연지분을 씻고, 소매의 가위를 꺼내 머리를 잘라 여자승이 되어서 같이 도를 닦기로 결심해 육관대사는 그들의 행동에 감동한다. 그렇게 대사는 8선녀와 성진이를 다시 제자로 받아드린다. -끝-
2-2. 소감
소유는 왜 자신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에 싫증이 났을까?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만약 소유가 속세에 싫증이 나지 않았더라면 육관대사는 끝까지 소유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지 않았을까? 나는 소유가 그리 좋은 환경에서 산속에서 도를 닦는 중의 삶을 택한 것이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라면 나만의 행복하고 보람된 삶을 즐기며 살았을 텐데… 그리고 소유는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그래서 세속에 빠지지 않고 욕심을 버리고 영생을 얻겠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것은 맞는 말인 것 . 내가 생각하는 영생은 이러하다. 사람은 죽고 또 환생을 해 새로운 삶을 산다. 세속에 빠진 사람들은 죽기를 두려워 한다. 왜냐하면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사라지니까. 세속에 붙들린 사람들은 말 그대로 세속에 붙들려 산다.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에 발목 잡혀 원하는 것이 없으면 불행해지고 또 세속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반면에 세속으로부터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이다. 모든 것을 시작하려면 비우고 없앨 줄도 알아야 한다. 비워야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사람의 삶에서 그 비우는 과정이 바로 죽음인 것이다. 아마 세속에 빠지지 않은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이번 생은 참 보람있게 잘 보냈다. 다음생은 더 잘 살아봐야지. 하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속에 빠진 사람들은 죽을 때가 되면, 아이고야~ 나 죽네~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재산을 가로챌 까~ 더 살고 싶다. 더 많은 부를 누리고 싶다. 하면서 끝까지 세속을 포기하지 못하고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생이란 바로 세속에 붙들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삶이 아닐까 한다. 영생은 죽음과 환생이라는 과정을 걸쳐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유는 왜 그렇게 많은 부인과 첩을 거느렸을까?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암튼 그 점에서는 소유의 행동이 잘못된 것 .
3. 두 소설 비교- 둘 중 어느 이야기가 더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있을까?
3-1.춘향전에서의 진정한 행복
춘향전은 슬픈 내용은 많지만 마지막 부분에서 춘향이와 이도령은 서로 다시 만나 부부가 된다. 구운몽에서 소유는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나중에는 자신이 누렸던 부가 모두 헛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성진이의 모습으로 잠에서 깨어나 다시 육관대사의 제자가 돼 도를 닦고 불교를 공부하며 다시 수행의 길로 들어선다. 과연 둘 중 어느 이야기가 더 행복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가. 춘향전에서 춘향이는 온갖 고생을 다 견디다가 막판에 다시 이도령과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후에 춘향이는 과연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책 마지막 부분에는 춘향이의 자손들에 관해는 아주 짤막하게 쓰여 있었지만 춘향이에 관해서는 자세히 쓰여있지 않다. 뒷 이야기는 아마 상상에 달려 있는것 . 작가는 누군지 모르지만 나는 작가가 그 뒷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써 주었으면 한다. 책 내용으로 보아서는 춘향이와 이도령의 사랑이야기 . 사랑도 행복인가? 음… 좀 더 열정적인 행복이 사랑인 것 . 결론은 춘향전은 뒷 이야기는 책에 쓰여있는 내용으로 판단하자면 춘향전은 마지막에 큰 행복과 사랑이 오는 그런 해피엔딩 이야기이다 .
3-2. 구운몽에서의 진정한 행복
구운몽은 춘향전 같은 느낌이 살짝 깃들어진 것 같으면서도 또 어찌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인 것 . 왜 춘향전과 비슷한 분류인가 했냐면 춘향전과 비슷하게 사랑이야기가 드문드문 나오기 때문이다. 소유는 6첩과 2부인을 두고 사랑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행복한 사랑의 만남이 아닌 정욕과 부가 얼마나 허무한지 깨우쳐 주는 내용이다. 그리고 주인공 소유는 육관대사가 소유에게 꿈을 통해 진정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도와줌으로써 소유는 행복이 아닌 마음의 평화와 깨달음을 찾는다.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도 일종에 행복일까? 아직은 확신이 가지 않는다. 깨달음과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고 기분이 좋아지는데 어떻게 그것을 행복이 아니라고 할수 있지? 사랑의 행복과 평화의 행복 우정의 행복 등등 행복은 정말 여러가지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궁금한 건 많은 행복 중 어떤 행복이 가장 가치있고 영원히 가는 것일까? 그것이 살면서에 가장 큰 고민거리다. 누구든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알아야 그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여러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가장 흔한 경우가 바로 돈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는 행복이다. 사실 그것은 행복에 해당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이 행복하다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쾌락이다. 쾌락은 한 순간 기분이 들뜨지만 쾌락은 그리 오래가지않고 또 쾌락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어렵다. 자기가 원하고 갈망하는 것이 없어지거나 더 이상 얻을 수 없게 되면 자기가 원하는 것에 굶주려 나날이 불행한 삶을 산다. 설령 아무것도 잃지 않고 있더라도 그 쾌락은 금방 쉽게 질리고 만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한 것, 더욱 더 짜릿한 것만 원하게 되고 또 그 방법이 싫증이 나면 그것보다 더한 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는 하면 안될 짓을 저질러 후회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런 것은 행복이 아닌 욕망을 쫓는 불행한 삶이라고 볼수 있다. 반대로 평화는 쾌락과 같은 작극적인 기쁨은 없지만 마음에 균형된 편안함과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어지는 행복을 말한다.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고 또 모든 것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고 전혀 질리지도 않고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진다.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행복을 얻는 것이다. 마음에 평화를 되찾은 사람은 베푸는 걸 좋아하게 된다. 다른 사람도 자신처럼 행복을 찾기를 바라면서… 그런 사람들은 마음에 안정과 행복을 얻지 못해 불행해 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한다. 누구를 질투하지도 않게 된다. 왜냐하면 자신으로부터 얻은 것에 대해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이다. 욕심도 어느새 사라져 버린다. 지금으로 충분하고 만족하니까. 그리고 떳떳한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집에서도 밖에서도 그러면 자기 자신에게 인정을 받아 마냥 웃고 진심으로 행복해 한다. 이런 것이 바로 진정으로 가치있고 보람있고 뿌듯해하는 행복이다. 아! 그러고보니 평화도 행복이었구나 ! ^^ 그냥 단순한 행복이 아니라 가장 진정한 그 많은 행복들의 근원인 것이 바로 평화의 행복이었다.^^ 그러면…. 결론은 …춘향전의 사랑의 행복과 구운몽의 평화의 행복중 더욱 가치있고 중요한 것은 평화의 행복이다. 그 말은 즉 구운몽이 더 진정한 행복을 가지고 있다는 말씀!!! 아~ 결론 다 지었다. ^^ 나도 평화의 행복을 가지고 싶다.^^
4-1.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이도령과 나를 비교해 보기-
우선 등장인물 중 이도령과 나를 비교해 볼것이다. 이도령이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도령은 춘향이를 만나 잠시 서로 사랑하며 지냈지만 과거 시험을 보러 어쩔 수 없이 춘향이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는 부분에서 이도령은 눈물을 흘리며 함께 가자고 애원하는 춘향이를 아주 냉정한 태도를 보이며 춘향이를 끝내 두고 간다. 이도령은 춘향이가 마음속 깊이 자신을 사랑하고 또 자기와 죽기보다 헤어지는 걸 더 싫어하는 춘향이의 마음을 그렇게 굴었을까? 나라면 조금이라도 춘향이를 위로하고 좀 더 속 깊이 생각했을 것이다. 반대로 내가 춘향이었다면 그렇게 설득력 없이 울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면 먼저 흥분하지 않고 안정을 한 다음에 왜 함께 갈 수 없고 이도령의 잘못된 점을 기분 나쁘지는 않게 그러면서도 또박또박 진실되고 설득력 있는 말투로 지적하면서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이도령에게 밝혔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할 상황이었다면 이도령에게 꼭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그리고 이도령이 장원급제를 하길 바란다면서 이도령의 과거 시험을 응원해 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둘 다 그나마 덜 슬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도령은 학식이 뛰어난 인재이지만 성숙한 면에서는 춘향이보다 뒤 떨어지는 것 . 생각에서나 행동에서나. 옥 속에서 춘향의 성숙함은 더욱 더 눈에 돋보였다. 이도령과의 정을 잊지 않고 수많은 힘든 시련을 다 견뎌내는 그 굳센 마음과 정신력은 정말이지 칭찬할 만하다.
4-2 .육관대사와 나 비교하기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와 8선녀는 죄를 짓자 화가 난 육관대사는 하나에 꿈을 통해 성진이와 8선녀가 그들의 죄를 깨우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자 성진이와 8선녀는 머리를 깎고 육관대사의 제자가 되어 절에서 생활하며 영생의 길을 찾으려 한다.
나라면 산속 깊은 곳에 있는 절이 아니라 다른 어떤 곳에든지 평화와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 . 그리고 절에서만 살아도 지루해서 못 견딜 것만 .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즐거움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 육관대사는 성진에게 너무한 것 .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름다운 것인데 성진이 그저 선녀생각을 조금한 걸 가지고 그렇게 엄히 꾸짖는 것을 보고 육관대사의 정신이 조금 비뚤어 진 것 는 생각이 나는 들었다. 아니면 믿고있던 제자가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에 대해 화가 나 감정에 휩쓸린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육관대사라면 성진이를 그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절이란 영적 수행을 통해서 마음에 진리와 평화를 찾는 신성한 장소이지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막으려고 지어진 장소가 아니다. 나라면 먼저 성진에게 아버지처럼 그런 마음을 갇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나는 너가 마음이 그렇게 아무 곳에서나 휩쓸리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사랑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너의 모습을 잃지 않고 늘 올바른 정신과 마음을 가져 올바르고 떳떳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하며 성진의 마음에 참된 마음가짐을 넣어줄 것이다. 강철 기둥처럼 성진의 마음에 중심이 되는 정신의 기둥 말이다. 그러면 성진은 늘 올바른 삶을 살 수 있고 또 나중에는 마음 속 기둥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사가 성진에게 했던 것처럼 자신의 기둥을 나누어 주면 그 사람들도 나중에 다른 이에게 그 기둥을 나누어 주어 이런 대물림이 영원히 보존될 것이다. 그 정신의 기둥이란 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별하는데 많이 쓰인다. 그리고 아무리 나누어 주어도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좋은가. 나는 성진이 선녀들 중 한 명과 결혼해 오래오래 자식낳고 행복하게 오순도순 잘 살았으면 한다. 육관대사가 잘못한 여러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선녀가 머리를 밀다니… 그들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존재였을 텐데… 도대체 왜 중들은 머리를 깎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절을 짓는다면 머리 안 깎는 절을 지을 것이다. 들어본 바로는 머리를 기르면 외모를 가꾸게 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외모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고 하여 중들은 머리를 밀어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게 한다고 한다. 뭐 일리가 없지는 않다. 나는 머리를 꾸미는데 너무 빠지는건 그리 좋은 행동이 아니지만 머리를 길러 스스로 꾸미고 머리를 단정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것 . 아무래도 머리를 깎는 것은 절의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인 것 . 암튼 이것으로 나와 비교하기는 끝을 내겠다. ^^
결론
이 비교글을 통해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은 바로 평화의 행복이다. 그 이유는 위에 자세히 쓰여 있지만 여기서도 말하겠다. 그 이유는 행복은 모두 평화로운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 행복이 격해지든 부드러워지든 시작은 바로 평화로운 마음에서 부터이다. 누군가 노래방에서 막 흥분되서 팔짝팔짝 뛰고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때 그 기분을 행복이란 단어보단 흥분이란 단어가 더 적절한 것 고 나는 생각 한다. 이처럼 행복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여러 감정들이 사람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중 사람을 중독시키거나 나쁜 일에 빠지게 하는 감정들도 있다. 행복이 너무 격해지면 이런 안 좋은 감정들로 변할 위험성이 있지만 평화의 행복은 너무 격하지도 않고 너무 약하지도 않고 그저 단순하면서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는 그런 참되고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화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한다.
평화의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선한 일을 하면 스스로 떳떳한 모습을 보일수 있다. 내가 한 선한 행동이 누군가 도움을 받았다면 그럼 나는 떳떳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방에게 선을 베풀었으니 나도 존중과 대우를 받을 사람이 된다. 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이 선을 베풀었다고 해도 늘 그 상대방 또한 선을 베풀어 주는 것은 아니다. 꼭 그 사람을 통해서만이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한 일은 반드시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기간은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다. 바로 돌아올 수도 있고, 다음년에 돌아올 수도 있고, 다음 생에 돌아올 수 있다. 어쨌든 자신이 한 행동은 반드시 돌아온다. 평화의 행복을 얻으려면 올바롭고 나와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멋진 삶을 살며 선의 일을 해 스스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화의 행복이다. 그렇다고 너무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도 마냥 좋은 건 아니다. 다시말해 평화의 행복을 얻으려면 수평을 이루고 선한 일을 해라 이것이 핵심이다. 나도 세상에 떳떳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내 안에 빛을 만들려면 말했듯이 선한 일을 하고 스스로 만족하고 떳떳해져야 한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불빛은 그 만족감에 조금씩 조금씩 커질 것이다. 그 마음속의 빛이 크든지 작든지 말이다. 아~ 이번에도 좋은 일을 했다.내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선한 일을 했으니 나는 떳떳해야할 자격이 있어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한 선한 일들이 나에게로 돌아와 나에게 큰 도움을 줄 거야 하고 만족하면서 또 다른 선한 일을 할 것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남에게도 좋지만 나 자신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올바르게 살고 선한 일을 하여 내 마음속에 빛을 조금씩 길러네 떳떳한 사람이 되려 노력할 것이다. /( ^^ )/
내안의 빛 여기서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