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문예 24겨울호
신인상 수필 심사평
삶의 의지와 열정에 피어나는 잔잔한 미소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재석의 <소중한 왼손에게>를 당선작으로 선한다. 이 수필이 갖고 있는 특징은 주변부 타자의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에는 체온이 살아 있고, 그 체온의 뿌리는 언제나 인간애라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그의 글은 일차적으로 ‘나’에 대한 애정과, 이를 근원으로 한 끈끈한 자기애에서 비롯되고 있다. 모든 것이 흐트러져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다. 그는 올곧은 정신으로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장애인이다. 어찌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겠는가. 애틋한 자기애는 생활 속에서도 보여진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자기애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일상 속의 사실들이다. <소중한 왼손에게>라는 작품은 왼손밖에 쓸 수 없는 상태에서 이에 굴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고 동행이 되어주려는 작가의 애틋한 자기애가 감동을 주는 글이다. 수필은 자기를 찾아 나서는 여행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고 산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한 소도구로 알고 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에 수필은 나름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터전으로서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불안한 항해를 밝게 하는 불빛이 되기도 한다. 자기의 존재 해명 없이 글을 쓸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관심 때문에 글을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린다. 어떤 형태로든 표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수필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작품은 가장 전달력이 강한 서간체로 쓰여졌다. 서간수필은 서간문과는 다른 것으로 수필을 서간이란 용기에 담은 글이다. 서간체 수필은 일반 수필과 달리 구어적인 표현을 거리낌 없이 쓴다. 일반적으로 서간체로 수필 쓰기는 자아표현을 강조하면서 자아가 성숙해 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데에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편지의 언어는 수신자나 독자에게 현장감을 제공하면서 그 현장감으로 인해 인물의 심리와 감정에 더 많이 공감하게 한다. 자아의 발견이나 직접적인 접촉에의 욕망을 이런 편지의 언어를 통해 표출한다. 즉 사건에 대한 직접성과 밀접성, 자기확증으로 인해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행동의 고백이나 정신적 경험의 강조에 유익한 것이 편지의 언어인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편지의 언어는 주로 내면적인 감정이나 정서 등의 내용을 담은 언어가 된다. 사실을 토대로 한다는 수필 형식의 진실성에 서간 형식이라는 특성의 사실성을 보태기 때문에 서간체 스타일의 언술은 전달성이나 소통성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
작가는 편지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남에게 이해시키려는 욕망을 보인다. 편지 쓰기 자체가 인식이나 경험의 중개자 구실을 함과 동시에 자기 표출성을 많이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수신자가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라는 점이다. 왼손의 유대를 의미화한 주제화 전략이 좋았다. 이 작품은 오른손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왼손에 대한 고마움을 통해 한 손의 가치를 강조한 글이지만, 문학으로서의 맛을 주는 것은 결말에 놓인 주제의식의 의미화 부분이다. 왼손에 대한 애틋한 정과 그리움을 담은 수필은 손을 제재로 해서 절대적 존재에 대한 애정을 가시화하고 있는 점에서 기억될 만한 가치를 지닌다. 이 글이 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특징은 무엇보다도 삶의 의지와 열정에 피어나는 잔잔한 미소다. 어느 한 부분 유별나게 뛰어오르고, 내리쏟는 부분도 없이 물 흘러가듯 잔잔하게 진행되는 매끄러운 문체가, 그만의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시대가 지닌 특성은 그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주관한다. 이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어서 인간의 가슴에 밝은 빛을 드리우기도 하고, 전혀 반대의 경우로 그늘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가는 삶의 한 손밖에 쓸 수 없는 장애를 배경으로 하여, 그 위에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따스한 애정의 체온이 그 위에 서려 번지고 있는 것이다. 삶의 발원처가 왼손이라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삶의 의지를 놓을 수 없다는 강인한 도전정신을 관통한다고 하겠다.
소중한 왼손에게
김재석
소중한 왼손아 안녕! 너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무척 쑥스럽구나. 내가 오른손잡이라서 19년 동안 오른손을 도와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해 왔었지. 어느 날 청천벽력과 같은 뇌수술을 받으면서 바른 손이 마비되어, 대신 네가 오른손이 하던 일을 도맡게 되었어. 처음엔 무척 낯설어서 실수도 하고 모든 게 삐툴빼툴 했지. 오른손이 하던 일을 앞장서서 하려니까 처음부터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던 거야.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거야. 그런데도 지금까지 마비 상태인 오른손 대신 너한테 모든 생활의 짐을 실어 놓고 있단다. 묵묵히 50년을 버티고 잘 살아준 것을 보면 눈물 나게 고맙고 장하다고 말하고 싶다.
당장 급했던 것이 글씨 쓰는 거였어. 글을 처음 써보는 왼손은 그림 그리듯 글씨를 썼었지만 굽히지 않고 꾸준히 글씨 연습을 했지. 이젠 편지를 쓸 만큼 실력이 늘었단다. 왼손으로 글씨를 잘 쓴다고 칭찬해 주는 때가 있어 자랑스러워 했지.그럴 때마다 내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거 봤지? 대부분 잘 썼다는 칭찬이지만 왼손으로 쓰는 것이 대단하다는 의아한 표정 말이야.
복지관 초창기에 뇌병변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볼링 치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이해가 되어 좋았어. 나도 왼손으로 치니까 점수는 안 나와도 재미가 있었어. 한 손으로 운동할 것이 없었는데 볼링만은 한 손으로 해도 되었거든. 언제 그 시간이 오나 기다려지기까지 했어. 6개월 정도 했는데 프로그램이 없어진 거야. 그래서 많이 섭섭했던 거 기억나지? 그런데 법원리에 볼링동아리가 생겼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법원리 장자위원들이 지원해 주는 동아리에 가입했고 열심히 볼링을 치러 다니곤 했어. 그런데 7, 8년 동안 왼손만 쓰다 보니 팔이 아파서 못 치겠더구나. 왼팔 네가 아파해서 더 는 버틸 수가 없었어. 볼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었는데 못 하게 되니까 무척 섭섭하고 아쉬웠단다.
수술을 받고 난 후로 엄마가 돼지를 사 오셨어. 우리는 네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단다. 너를 믿고 돼지를 키웠지. 사료 주는 것, 똥 치우는 것, 힘들었지만 너는 거뜬히 해냈지. 젊은 나이에 뇌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젊은 패기로 조금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돼지를 키우는데도 사료만으로 키울 수가 없었어. 타산이 안 맞았거든. 동네에 국수 공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파지를 갔다 돼지에게 먹이곤 했지. 우리 집에서 그곳까지는 500m 되는데 파지를 손수레로 실어 날라 돼지에게 주었어. 이삼일에 한 번씩 가져와야 했으니까 한 손으로 모든 걸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던 것 같아. 그래도 너는 묵묵히 해주었어. 적금도 들 수 있었고 남에게 돈을 빌리러 가지 않고 살게 해주었으니까.
너는 모든 걸 잘해 왔고 행복한 날을 만들어 주었지. 몇 년이 지나면서 차차 내가 한 손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잊을 만큼 말이야. 정말 두 손을 다 쓰는 사람처럼 열심히 최선을 다해준 왼손, 네 덕분이란다. 젊었을 때는 한 손을 사용하는 게 불편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어. 근데 나이가 들면서 한 손으로 하려니까 힘이 드는 거야. 너는 다른 사람보다 서너 배는 더 노력하고 열심히 해야만 했지. 한 손으로 무엇이든지 다 해내야 하니까 말이야. 나는 너만은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예전과 다름없이 일했던 것 같아. 왼팔이 아프면서 너를 함부로 했던 것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어. 종일 돼지 똥을 밭에다 여기저기 뿌려주고 할 때마다 왼손 네가 무척 힘들어한다는 걸 알게 되었어. 많이 아파했었거든.
젊었을 때는 자고 나면 괜찮아지곤 했지. 한 손으로 무거운 것을 들면 젊었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힘들어지더구나. 그런데 어느 날 국수 공장에서 파지를 옮기는데 도저히 어깨가 아파서 못 옮기겠는 거야. 한 손으로 오래 하다 보니 무리가 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할 수 없이 돼지를 팔 수밖에 없었어. 돼지를 떠나 보낼 때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단다. 35년 애지중지 키우던 돼지를 보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암담하기도 했어. 자식 같은 돼지들이었는데 왼손 너를 더 힘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저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지. 그리고 나는 무얼 해 먹고 살아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했어. 돼지를 키우면서 큰돈은 못 모았지만 풍족하지는 못해도 먹고 살기에는 부족한 것이 없었거든.
돼지를 다 팔고 복지관에서 복지 일자리를 했어. 너 같은 장애인을 만나면서 행복했고 살맛이 났어. 일하는 것도 좋지만 장애인을 만나면 내 형제 같고 동생 같고 조카 같았어. 우리는 똑같은 장애인이라는 생각에서였을 거야. 복지 일자리는 힘은 들었지만, 행복감을 선물로 주었지.
복지관에서 컴퓨터를 배운 것이 제일 잘했다고 봐. 컴퓨터를 배우면서 내가 달라졌다고 생각해. 난 한 손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인 줄만 알았어. 선생님께서 배울 수 있다는 말에 어찌나 기뻤는지 몰라. 컴퓨터를 배우면서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 컴퓨터로 인터넷에서 책도 사고, 메일로 편지를 써서 보내기도 했어. 한 손으로 더구나 왼손이니 늦기는 해도 남이 하는 것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어. 왼손으로 워드와 파워포인트, 엑셀, 자격증도 땄어. 뛸 듯이 기뻤어. 그것도 1년에 다 딴 거야. 왼손으로도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거든.
두 번째 내가 바뀐 것은 스마트 폰으로 하는 인스타그램이야. 2년 전부터 인스타 친구들하고 대화하고 있어. 한 손으로 사진을 찍어서 올리면 보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이야. 팔로워가 2천 명이 넘었으니까 나도 으쓱할 만도 하지. 처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지. 한 손 그것도 왼손으로 찍은 사진이 신기하게 잘 찍힌 게 많아서 이걸 누가 찍었지? 하면서 놀랄 때가 있어. 왼손이 보배야. 내가 인스타 때문에 어깨를 으쓱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럴 때는 공중에 몸이 둥둥 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해. 그런데 인스타를 모르는 사람도 많아. 그것이 안타까워.
너 없으면 나도 없었을 거야. 너는 내가 행복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주었지. 곰곰이 생각에 몰입하다 보면 눈물이 나곤 해. 너 아니었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되었을 거야. 그런 너를 너무 부려 먹었구나. 네게 너무 무리하게 일을 시키고 함부로 대한 일은 셀 수 없을 만큼 많구나. 너를 너무 무리하게 혹사해서 돼지도 키울 수 없게 되고 볼링도 할 수 없게 된 것 같아.
이제부터라도 너를 소중하게 아끼면서 살아야겠다. 50년 동안 수고 많이 했어. 왼손과 왼팔에 안마를 받아야겠어. 내가 너를 쉬게 하는 방법은 천천히 운동하면서 아껴주는 일인 것 같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얼마 되진 않지만, 꼭 지킬게. 한번 믿어 봐. 그리고 앞으로도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자. 지금처럼….
2023년 10월 12일
너를 아끼는 주인 재석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