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집
‘교권’은 진보적 교육운동의 의제가 될 수 있는가
지난 5월 27일, 《오늘의 교육》은 “‘교권’은 진보적 교육운동의 의제가 될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포럼을 열었다. 포럼을 기획한 건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권이 실추되었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교원 노조나 단체들이 ‘교권’을 주제로 다양한 포럼과 토론회 등을 열던 시기였다. 행사 주최는 다르지만 ‘교권이 추락하고 있고 교권을 보호(혹은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교권’은 도대체 무엇이고 ‘교권’이 침해되었다는 인식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무엇보다 ‘교권 강화를 주장할 때, 그 내용과 방향은 진보적 교육운동에 부합하는가’라는 질문을 해 보고 싶었다. 이번 특집은 이날 포럼 내용을 토대로 수정, 보완하여 구성하였다.
《오늘의 교육》은 교권의 의미를 정의하거나 현재 흐름을 비판하는 데서 더 나아가 교권이라는 개념이 어떤 시대적 상황에서 등장했고 어떤 효과를 발휘해 왔는지 그 역사와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럼으로써 교권 강화를 주장할 때 빠질 수 있는 함정과 교권 담론이 누락하거나 지우고 있는 지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진냥은 교권 담론들이 많은 경우 인권/권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초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최근 부상하는 교권 주장이 어떤 점에서 문제인지를 짚는다. 또한 ‘전문적인 교사의 정당한 교육 활동’을 전제하는 교권 개념은 교사의 취약성을 보지 않기 때문에, 정작 교사가 지원과 보호를 필요로 하는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꼬집는다.
하영의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는 교권과 관련한 기사 데이터를 분석하며 교권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고 어떤 사회적 맥락에서 교권 강화 목소리가 커져 왔는지를 살핀다. 특히 체벌 금지, 학생인권, 스쿨미투, 아동학대처벌법 등을 통해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짚어 보며 그러한 프레임이 간과하는 지점은 무엇인지 성찰한다.
이윤승은 한국 사회 교육운동에서 중요한 위상을 가진 전교조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전교조 조합원인 그는 학생인권 문제에 무관심하거나 배타적이기까지 한 전교조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현재 전교조가 가고 있는 길이 학부모와 학생들로부터 멀어지는 길은 아닌지 질문한다.
김찬의 〈잠자는 교실은 왜 만들어지는가〉는 학생인권 신장을 가로막고 있는 교권 담론의 문제점을 말하며, 나아가 수업의 어려움과 교육 불가능성이 교권 강화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근본적인 학교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교사에게 ‘권위’를 줌으로써 문제를 회피하려는 국가의 전략이 있지는 않나 묻는다.
학교에, 교육에 문제가 있고, 그 속에서 교사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교사들의 권한을 강화하거나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모두에게 민주적이고 평등한 학교, 누구에게나 인권이 보장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어떤 논의가 필요할지를 성찰해야 한다. 그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진보적 교육운동의 역할일 것이다.
- 편집부
▶ 《오늘의 교육》 75호는 특집에서 교권 개념과 담론을 주제로 삼았다. 교권을 법적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사회적·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권의 의미와 효과를 살펴보고 그 극복을 위한 대안적 접근을 제안한다.
기획에선 곧 시행을 앞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계기로, 국가 교육과정 결정 과정에서 변화해야 할 점을 짚어 본다. 또한 대학 정책이 어떻게 임기응변과 번복을 반복해 왔나 파헤침으로써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을 다르게 볼 것을 요청한다. 《별별 교사들》 출간 기념으로 가진 성소수자 교사들의 이야기 자리를 소개하고, 새 연재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은 노들장애인야학의 교육을 신선한 문체와 관점으로 전한다.
차례
10 이윤엽의 오늘 후쿠시마 | 이윤엽
11 읽은 이야기 | 안준철
특집 ‘교권’은 진보적 교육운동의 의제가 될 수 있는가
17 교권, 근대적 교사론과 폭력적 교권 담론을 넘어 | 진냥(희진)
32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 하영
- 교실 붕괴부터 ‘아동학대 처벌법’까지, 교권 담론의 역사를 짚다
46 ‘참교육 전교조’의 운동성은 어디를 향하는가 | 이윤승
- 체벌, 학생인권, 그리고 교권
57 잠자는 교실은 왜 만들어지는가 | 김찬
- 교권 담론이 담지 못하는 것들
후속│기초학력은 교육을 어디로 데려가나
66 교육의 목표는 학력 보장이 아니어야 한다 | 공현
- 학력·기초학력 개념의 나이주의·능력주의 문제
74 줄 위의 교육과 기초학력 | 송민수
- 시험만 아는, 줄 세우는 교육의 답습
기획│국가 교육과정은 변화할 수 있는가
85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필요한 질문들 | 정용주
- 2022 개정 교육과정 개발 고시 과정을 돌아보며
105 기획에서 지역적 지식,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로 | 김용
- 국가 교육과정 개정 원칙을 다시 생각한다
기획│대학 구조 조정, 반복과 번복
114 ‘학교 법인’ 문제 해결 없는 대학 구조 개혁의 한계 | 김일환
125 담대한 혁신의 오래된 번복 | 강석남
- 학과·학부제 원칙 폐지는 왜 대학 구조 조정 정책인가
연속 기획│변방에서 온 편지
147 양양에서 태어나 양양에서 사는 게 뭐 어때서 | 이준수
- 양양의 태양은 밝고, 하조대의 피자는 맛있다
지상 중계│《별별 교사들》 출간 기념 작은 이야기 자리
160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교무실에도 | 함께걷는바람, 선영, 유랑
연재
동맹의 교실, 해방의 교육학 ①
172 복수의 교육학 | 서한영교
- 학교 없는 곳에서 세워진 학교, 노들장애인야학이 던진 질문들
나의 프로젝트 수업 ④
191 생명 감수성과 자연물의 권리 프로젝트 | 정용주
기고
205 킬러 문항에 대한 논란, 이제 그만하자 | 이윤승
- ‘얌체공’으로는 바꿀 수 없는 교육과 입시의 문제
215 교육 분야 웹 접근성 준수,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 | 김헌용
- 4세대 나이스(NEIS) 웹 접근성 문제
수업
225 생태 동시 수업, ‘생그래’ | 정미숙
- 아이들의 말 속에, 글속에 시 꽃이 피다
에세이
242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으로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다 | 노랭(박혜진)
- 성미산학교 포스트중등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며
리뷰
251 그럼에도 학교로 돌아온 별난 사람들 | 최현진
- 《별별 교사들》
262 우리가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삶을 알아야 하는 이유 | 신필규
- 《당신의 성별은 무엇입니까?》
272 혁신학교에서 사라져선 안 되는 질문 | 윤상혁
- 《굿바이 혁신학교》
280 오늘 읽기 | 공현
282 세 줄 세 책
284 어제와 오늘의 어린이 책 | 조현민
286 내가 밀고 있는 단체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 온 | 피아
책 속에서
무엇보다 근대적 교사론은 교사의 취약성을 포함하지 않는다. 여성인 신규 교사가 교육적 실천에서 취약한 것은 부족한 경험 때문만이 아니다. 성별 권력과 나이 위계에서 가지는 취약성 역시 그 이유다. 시각장애를 가진 10년 경력 교사가 계속 담임 업무에서 배제되는 이유는 해당 교사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맥락과 다양한 제도 사이의 복합 작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주장되고 있는 교권 담론은 ‘전문적인 교사의 교육적 실천을 방해받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에만 집중되어 있다. 이는 교사와 학생이라는 단일 축을 기반으로, 또 다른 능력주의 또는 개인들의 자기 개발 서사에 보다 강력하게 연동되어 결과적으로 교사를 더 억압하는 배경이 된다.
- 본문 23-24쪽, 진냥(희진), 〈교권, 근대적 교사론과 폭력적 교권 담론을 넘어〉
‘교권’이 체벌할 권리, 두발 규제나 복장 규제를 할 권리와 동일시되는 맥락에서 교육 체제의 억압성은 유지되어야 할 것으로 주장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도는 역설적으로 ‘교실 붕괴’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전가했다. 학생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때 제공할 수 있는 지원 시스템이나 교사의 수업권이 보장될 여건을 조성하는 것보다는 개인 교사가 통제할 권한을 우선했기 때문이다. 또한, 성폭력이나 성희롱 피해 또한 교사의 생활 지도권이 보장되지 않아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며, 그 책임이 여교사 개인에게 지워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 본문 39쪽, 하영, 〈교권을 둘러싼 프레임은 어떻게 변화해 왔나〉
학교를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과 그들을 가르치는 정규직 교사들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욕망, 이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학생을 문제 학생으로 낙인찍고 교사의 권한으로 억압하려는 쉬운 선택. 지금의 전교조가 서 있는 위치가 그런 욕망과 선택의 결과이다. 한때는 연대의 끈으로 묶여 있던 학부모단체와 인권단체의 구성에서 전교조는 스리슬쩍 발을 빼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를 악성 민원인으로 상정하고 아동학대처벌법에서의 면책권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그런 전교조에 학생과 학부모는 연대할 수 있을까. 지금 전교조가 가는 길은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길일 수밖에 없다.
- 본문 55쪽, 이윤승, 〈‘참교육 전교조’의 운동성은 어디를 향하는가〉
실제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교실을 둘러보면 절반 이상이 잠을 자고 있다. 또 일부는 제공된 태블릿PC로 수업을 듣지 않고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얼마나 학생을 엄격하게 지도하느냐와 무관하게 잠을 자는 학생들은 계속 잠을 자고 ‘딴짓’을 하는 학생은 ‘딴짓’을 계속한다. 왜 그런 걸까? 어째서 학교라는 공간은 교육 활동이 어려운 공간이 되었을까?
나는 무관심과 패배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지금, 학교의 모든 관심이 입시에 몰려 있음이 느껴진다. 학교에서 입시 외의 모든 것은 안중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잠을 자는 학생들은 교사들의 관심 밖에 있다.
- 본문 60쪽, 김찬, 〈잠자는 교실은 왜 만들어지는가〉
지금 정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기초학력 프레임은 똑같은 시험 문제로 전국의 학생들을 점수에 따라 한 줄로 세우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들이 세워 놓은 줄 위에서는 그들의 주장이 옳게 느껴진다. 사람 을 한 줄로 세우면 그 줄의 끝에 있는 부족한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그것을 국가가 정책적으로 시행한다고 하니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본문 77-78쪽, 송민수, 〈줄 위의 교육과 기초학력〉
교사들은,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는 조건 아래 자율권을 행사할 수도 없고, 교육과정 운영에 제한 없이 자율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그런데 한편에선 교육과정 재구성, 교사 교육과정 같은 논의가 활성화된다. 사실은 교과서 단원의 순서를 바꾸거나 같은 주제를 통합하여 운영하는 것에 불과한데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주체가 교사인 듯한 착시 현상, 아니 희망 고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취 기준의 표준 성격을 강화하면서 교육의 공통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구현케 하려는 이런 모습을 나는 ‘감동적인 어리석음’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지난 10여 년에 걸쳐 혁신학교운동이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진전된 것이 없는 이유, 교과서 자유 발행제가 교과서 발행사의 자유를 보장한 것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본문 96쪽, 정용주,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필요한 질문들〉
5.31 교육 개혁은 대학의 설립에 대한 규제를 크게 완화했으나, 그 폐쇄 및 학교 법인의 해산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이미 당시 시점에서도 2003년 이후 대입 정원이 학령 인구보다 많아질 것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대학 시장’으로의 진입은 자율화했으나 퇴장의 경로를 제도화하지는 못한 것이다. 법인 해산 시 잔여 재산에 대한 ‘설립자’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발상 역시 등장하지 않았다. 시장주의적 원리는 절반만 적용된 셈이다.
이렇게 보면 5.31 교육 개혁을 전후한 시장주의적 교육 정책은 투명성의 관점에서 법인 지배 구조를 개혁하지도, 사적 소유권의 원리를 밀어붙이며 퇴장의 경로를 만들어 내지도 못했다. 학교 법인 문제에 대한 침묵과 비결정(non-decision)이 그 특징이었다.
- 본문 120쪽, 김일환, 〈‘학교 법인’ 문제 해결 없는 대학 구조 개혁의 한계〉
학생들에게도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학교에서 여러 차례 커밍아웃을 했어요. 그런데도 어떤 분들은 제가 연애를 할 때마다 ‘그래서 남자친구냐’라고 묻는 거예요. 그게 너무 답답했었거든요.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학교에 있었어요. 그냥 어른 되면, 졸업하면 달라질 거라고 계속 부정당하다 보니 오히려 관련한 고민이 생겼을 때 상의하지 못하고 끙끙거리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아요.
- 본문 169쪽, 함께걷는바람·선영·유랑,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 교무실에도〉
최정환 열사의 유언을 직접 들은 김흥현 씨는 “복수해 달라, 이게 누구 때려 죽여 달라는 얘기겠어? 다신 나 같은 사람 안 나오도록 해 달라, 이런 얘기겠지”라며 그의 유언을 받는다. 그리고 유언을 받아든 장애인들과 노점상들이 서초구청에 모여 최정환 열사와 함께 그의 사회적 신체들인 삼륜 오토바이, 카세트, 좌판에도 불을 붙였다. 구청 마당에서 타오른 복수의 불씨가 아직도 노들야학 곳곳에 불붙이며 살아 있다.
- 본문 182쪽, 서한영교, 〈복수의 교육학〉
그는 학생들의 부유한 가정 환경이 서로 비슷해서 아이들이 독특하지 않고 안정적이라고 했다. 학교가 안전해서 좋다고 했다. 그동안 나는 반골 기질을 숨기고 점잖은 체하며 지냈는데, 그 말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표백한 이 학교의 무엇이 좋냐고 되물었다. 사회적 약자는 시야에서 사라지고 소수성은 숨겨야 하는 이 박제된 공간이 왜 좋냐고 따졌다.
오늘의 학교는 학생이 지닌 고유한 성질을 하나의 색깔로 뒤덮어 아이들을 체로 거르면서, 한 가지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도록 강요한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에게 옆 사람이 넘어지고 다치는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 넘어지고 다친 사람이 내 곁의 사람일 리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을, 그들이 넘어지고 다치게 된 상황과 환경을 공감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 본문 259쪽, 최현진, 〈그럼에도 학교로 돌아온 별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