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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포의 새벽 편지-224
동봉
제7장. 무득무설분1
하루는 도반이 찾아왔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습니다
흑백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는데
물질 속 방사능 반감기 때문에
빛이 바랬다기보다
시간의 때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요
1976.음.9.5 찍은 것인데
법주사에서 석암 큰스님을 모시고
비구계를 받은 기념 사진입니다
요즘은 컬러 사진을 찍다 보니
작품사진을 만들려는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
흑백 사진을 찾기 어렵지요
베낄사寫자에 참진眞자
사진이란 그대로 베끼는 것입니다
베낀다는 말은 서예를 배울 때
체본을 밑에 깔고
그 위에 화선지 한 장을 덮고
그려내다시피 천천히 써내려갑니다
불화를 그릴 때도
밑그림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화선지를 덮은 뒤
연필로 윤곽을 그리고 색을 입히지요
이처럼 사진이란 말의 출처는
사경寫經●사불寫佛에서 기인합니다
그런데 카메라가 나오고 나서
카메라 내에 필름을 장착하고
셔터를 눌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1970년대 그 이전에도
천연색 사진이 없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컬러 사진이 아니고
천연색 사진이었습니다
같은 말이라고요
같은데 부르기는 그리 불렀습니다
다만 흑백에 비해 인화비가 비쌌지요
그러다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컬러 사진이 등장합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컬러 필름이 나온 셈입니다
컬러 사진을 찍으려면 컬러 필름을
흑백 사진을 원하면 흑백 필름을
카메라에 재면 되는 것이었지요
지금은 디피DP점점이 사라졌지만
한 때 꽤 잘나가던 사업이었습니다
디피점은 디벨로핑 프린트 에이전트
Developing Print Agent 약어로
D와 P는 약어로 가져오고
에이전트는 점포의 점을 붙여
디피점이라 했습니다
마치 영양소 중 필수 아미노산이
에센셜 아미노 액씨즈
Essential Amino acids에서
가운데 아미노는 그대로 가져오고
앞 뒤의 에센셜과 액씨즈는
한자 발음으로 가져왔듯이오
사진이란
검은색은 까맣게
하얀색은 하얗게 베끼고
빨간색은 빨갛게
노란색은 노랗게
파란색은 파랗게 베끼는 것입니다
어즈버! 39년 전 사진이니
낡을 만도 했겠지만
흑백 사진이라 빛바램이 적습니다
사진 속 나는 24살인데
지금은 하마 63살이 되었으니
모습이 달라진 것은 당연하지요
이 사진이 앞으로
다시 39년 시간이 흐르면
지금보다는 한참 더 낡을 것이고
나도 39년이 지나면 글쎄요
지구를 떠나는 일이야 없겠지만
지금 이 인간의 모습으로서
움직이는 생명체는 아닐 것입니다
사진은 생겨나서 머물다가
낡고 흩어져 공空으로 가고
나는 사람으로 태어나 이 공간에서
정진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못이룸을 괴로워하다가
때로 행복해 하기도 하고
아프면 아픈대로 앓아 가면서
그러다가 마침내 죽는 것입니다
사진이 사라져서는
봉숭아 떡갈나무 세포가 되고
버섯이 되고 고사리가 되고
민들레 미나리 세포가 되고
잣나무 소나무로 자라나
흰개미의 먹이가 되고
집이 되기도 합니다
나는 죽어 육신이 흩어진 뒤
굼벵이 지네 비둘기의 세포가 되고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굶주린 하이에나의 세포가 되어
끊임없이 세상을 돌고 돕니다
이것이 자연현상이고
이것이 다름 아닌 무위법입니다
모든 현자 성자들은
다들 무위법無爲法으로써
갖가지 차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엄청난 진리입니까
제행무상이란 가르침을 접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펑펑 쏟았는데
이 가르침을 접하고는
그 감격에서 쏟은 눈물을
제곱에서 제곱으로
그리고 다시 제곱으로 흘렸습니다
무위법이 무엇입니까
봄이 오면 소쩍새가 울고
여름에는 천둥이 울고
가을이면 고추잠자리가 날고
겨울이면 하얀 눈이 내리는 것입니다
꽃향기에 취한 벌들이
분주히 꿀을 따고
삼복 더위에 등목을 하고
한가위 밝은 달을 칡잎에 싸서
사랑하는 어머니에게 드리고픈 마음
이게 곧 무위법입니다
나는 무위법이라 하면
떠오르는 시조가 한 수 있습니다
황진이(1520~1560?)의 시조지요
그게 무슨 무위법이냐고요
감상부터 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허 내어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시인의 마음이 무위입니다
시인 황진이 마음에
어떠한 인위적인 것은 없습니다
참고로 '어른님'이란
'어르다'라는 움직씨에서 왔지요
예로부터 혼인을 하여
남녀의 정을 알아야 어른이라 했는데
이 말이 지금은 어른, 어르신이 되었지요
어른의 본 뜻은 교합交合Sex이며
따라서 옛말 '어른님'은
애칭 영어 '허니Honey'에 해당합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본능이 있을 따름이지요
어떤 조작도 없이 자연이 이끄는대로
움직이는 본능이 있을 뿐입니다
본능이 무위법이라고요?
본능이 무위가 될 수 있습니까
그거 아십니까
맑고 맑은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이
본능의 상징이라는 사실을요
그거 아십니까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으로부터
원만한 보신이 출현하고
천백억 화신이 출현하심을요
보신은 차별의 부처님이십니다
화신도 차별의 부처님이십니다
보신은 무위신이 아니십니다
화신도 무위신이 아니십니다
무위신은 오직 하나 법신 뿐이십니다
오직 비로자나불이 계실 뿐입니다
보신과 화신은
차별의 부처님이시기에
천차만별의 중생들에게 응하시고
보신과 화신은
차별의 부처님이시기에
천차만별 중생 몸을 나타내십니다
따라서 일체 현자와 성자들은
무위법을 바탕으로 하여
가지 가지 차별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시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들의 원형질은 무위법이었습니다
무위법이란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생각없이 하는 것이지
함爲이 없는無 것이 아닙니다
햇빛이 1AU의 먼 거리를 달려와
지구 생명에게 에너지를 공급하지만
햇빛에게는 꼭 그렇게 하겠다는
어떤 그런 생각이 없는 것이지
에너지 공급을 하지 않는 게 아닙니다
다른 행성들에게도 마찬가지지만
햇빛이 지구에 올 때는
빛에 에너지만 담고 오지 않습니다
그 빛 속에는 컬러가 담겨 있지요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쪽빛 보라
이들 일곱 가지 색깔 외에도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빨강 바깥 쪽의 긴 파장의 빛이 있고
보라 바깥 쪽의 짧은 파장 빛이 있지요
빨강赤 바깥쪽外 광선線이라 하고
보라紫 바깥쪽外 광선線이라 함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햇빛은 무위법으로서
우리가 사는 지구에 다가왔고
다가올 때 컬러를 갖고 오겠다고
미리 광고하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런데 이 빛을 받아
사과는 빨갛게
오렌지는 노랗게
포도는 까맣게 영글고
백합은 하얗게 피어납니다
자연은 천연天然 무위법인데
유위법은 생각이 빌붙은 것입니다
무슨 생각이 빌붙었을까요
인간의 생각입니다
후배 문수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 무위법은 좋은 것이고
유위법은 나쁜 것입니까?
무루법無漏法은 멋진 법이고
유루법有漏法은 후진 법입니까?"
그래서 내가 대답했지요
"자네는 자네가 후지다고 보는가?"
그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제가 후지다니요. 큰 스님?"
"자네 스마트폰은 어떤 걸 써?"
"네, 스님 갤럭시-6 엣지인데요."
"최근 출시폰인가 봐?"
"네. 여름에 나온 신상입니다."
"신상?"
"네 신상품을 줄여 그리 부릅니다."
내가 차를 다시 따라 주며
"자네는 앞서 무슨 폰을 썼어?"
"네, 선배 스님, 갤럭시-s4였습니다.
바꾼지 1년 뒤 다시 바꿨습니다"
내가 한 마디 툭 던졌지요
"자네도 유위법을 즐겨 써 주는군!
나도 유위법을 좋아한다네."
"아이고 큰스님,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내 스마트 폰도 아직 쓸 만한데
며칠 전에 노트-4로 바꾸었다네"
이 몸 자체가 무위법입니다
꿈과 갈고
신기루와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아침 이슬과 같고
번갯불과 같은 게 이 몸입니다
이《금강경》끝에서는
온갖 유위법은 이와 같다 하십니다
무위법은 흐름이고
유위법은 흐름의 조정입니다
빛이 바래고 낡아가는 사진이
무위법이라고 한다면
이 흑백 사진에 생각의 옷을 입히고
과학과 장인의 힘을 빌어
리메이크Remake하는 것이 유위법입니다
모든 현자 성자들은
자연의 흐름 무위법으로
인위적 세계 유위법을 창출합니다
따라서 유위는 문명이고
무위는 자연입니다
자연은 아름다운 것이고
문명은 찬란한 것입니다
가야산 홍류동 계곡의
가을 단풍이 아름답다면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과학의 총아 스마트 폰은
인류가 만든 문명의 찬란함입니다
어제는 횡설수설
오늘은 수설횡설
08/12/2015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