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심수봉 작사/작곡)는 1984년 4월
지구 레코드 사에서 발매된 「심수봉」의 정규 음반인 「심수봉」
신곡 1집 타이틀 곡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심수봉」은 제5공화국 시절 방송 금지와 출국
금지 제재(制裁)를 받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러던 1984년에 방송 금지가 풀리면서 새 앨범 〈심수봉 신곡
1집〉을 내놓으며 재기(再起)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대표 곡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는 엄청난
인기를 끌며 「심수봉」의 재기(再起)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남성을 '배'에, 여성을 '항구'에 비유하며 이별 후 남성과 여성의
처지를 묘사한 이 노래는 당시로서는 색다른 가사로 주목
받았는데, 「심수봉」 특유의 감성적인 가창력과 현악기 편곡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습니다.
「심수봉」(沈守峰, 본명: 심민경(沈玟卿), 1955년생)은 호적이
잘못되어 본래 1950년 생이라고 하는데, 음악가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피아노와 재즈 음악을 연습하여 로큰롤을
주로 연주했던 보컬 그룹 〈Non Stop〉의 드럼 주자로 미 8군 쇼
무대 전용 클럽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1976년 서울 남산 근처 '도큐호텔 2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피아노를 치며 아르바이트를 하던 「심수봉」은 당대 최고의 가수
이던 '나훈아'가 우연찮게 손님으로 들르자 서비스 겸 그의 노래
"물레방아 도는데"를 즉석에서 라이브로 선물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즉석에서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심수봉」을 본
'나훈아'는 바로 어딘 가로 나가더니 곧바로 유명 음반사 사장
둘을 데려와서 "이 사람이 가수가 안 되면 누가 되나" 라며 데뷔를
권유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주선으로 1976년 신세기 레코드와 50만원에 음반
취입 계약을 맺고 녹음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음반사와의 분쟁
으로 음반 발매가 취소되었고 「심수봉」 은 같은 해 명지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 '나훈아' 선배가 신세기 레코드 사장에게 노래를 만들어왔고,
한 달 안에 절 설득해서 노래를 부르게 했죠.
당시 '나훈아' 선배가 만든 『여자이니까』를 취입 했는데 결국
흐지부지돼 발표하지 않았어요.”
그 후 1978년, 대학생의 자격으로 제2회 MBC 대학 가요제에
명지대생으로 참가한 「심수봉」은 자신이 직접 만든 곡인
"그때 그 사람"으로 당시 '배철수', '노사연', '임백천' 등 쟁쟁한
참가자들과 경쟁하였습니다.
「심수봉」 은 비록 입상을 하지는 못했지만, 대학 가요제에서
최초로 트로트 장르로 출전한 이색적인 경력으로 대중들에게
주목 받았고 자신이 공부했던 재즈 음악이 아닌 트로트로 처음
가요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경연 다음날 연락이 온 음반사 '지구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가요제에서 불렀던 자작곡 "그때 그 사람"과 동일한 제목으로
1979년에 첫 번째 정식 앨범을 발표합니다.
(중략)
<인천 아이러브색소폰클럽 대표 윤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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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눈 앞에 바다를 핑계로 헤어지나
남자는 배 , 여자는 항구
보내주는 사람은 말이 없는데
떠나가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해
뱃고동 소리도 울리지 마세요
하루하루 바다만 바라보다
눈물 지으며 힘없이 돌아오네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이별의 눈물 보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
매달리고 싶은 이별의 시간도
짧은 입맞춤으로 끝나면
잘 가요 쓰린 마음 아무도 몰라주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아주 가는 사람이 약속은 왜 해
눈 멀도록 바다만 지키게 하고
사랑했었단 말은 하지도 마세요
못 견디게 니가 좋다고 달콤하던 말
그대로 믿었나
남자는 남자는 다 모두가 그렇게 다
쓸쓸한 표정 짓고 돌아서선
웃어버리는 남자는 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