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김사문의 <용호구곡 경승안내>를 토대로 답사를 하였습니다. 용호구곡의 명칭은 불신당(佛神堂)부근의 용호품제(龍湖品題) 석각에 표기된 기사봄(己巳春) 근거로 1929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김재홍 초대 원장이 서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에도 명승지로 알려져 있는 곳이지만 그때 이름을 가졌습니다.
용호구곡의 큰틀은 주자의 무이구곡을 따르지만 각각의 명칭에서 토속신앙과 유,불,선이 함께 어우러져 있습니다.
호경마을 조금지나 주차장에서 철교를 건너서 1곡이 시작되는데 도상거리 8km, 표고차 280m에 이르는 협곡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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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곡(曲) 송력동(松瀝洞)은 송림사의 지계곡인 석녀골에서 유래된 것이다.
■2곡의 옥룡추(玉龍湫)는 옥처럼 푸른 소를 일컫는다고 하는데 주자의 무이구곡의 2곡인 옥녀봉에서 왔다.
100명이 앉고도 남을 넓은 통 암반과 바위 사이로 절구질 하며 흐르는 폭포가 굉음을 낸다. 그 아래로 권삼득 명창이 득음을 할때 콩을 던졌다는 옥용추가 있다. 1960년대 큰 물난리로 집채만한 큰돌이 굴러와 소(沼)의 2/3가 막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물길을 돌려 수력발전을 했다고 한다.
건너편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바위에 빼곡하게 적힌 인명 석각을 보면 이곳이 9곡중 최고의 명승지임을 알수 있다.
옥룡추 석각의 위치가 소(沼) 측면으로 외진곳에 위치 한것으로 보아 다른 석각에 비해 늦게 작성된 것임을 알수있다.
덕음을 위해 북을 쳤다고 하여 고암대(鼓巖臺), 또는 풍호대(風呼臺)라고도 하고 육모정 아래에는 불이대(不二坮)란 석각도 숨겨져 있다.
용성지에서 말하는 불영추(佛影湫)도 이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너럭 바위에 앉아 이암(鯉巖)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도로를 따라 되돌아 내려가면 길 옆으로 용호석문 석각이 있는 큰바위가 있다.
이곳이 대문임을 보여주듯 많은 명사들의 글과 인명, 비석이 보인다.
그 주변으로 불신당,부처 형상의 바위, 서양사람 얼굴바위와 많은 석각들이 눈에 띈다. 그 중에 용호품제 석각이 있는데 용호구곡의 명칭을 언제 사용했는지를 밝혀줄 귀중한 자료이다
삼곡교 아래에 3곡 학서암((鶴捿岩)이 있는데 석각은 큰 물난리로 유실되어 없어졌다.
학은 영물이다. 절벽 높은곳 소나무 끝자락에 둥지를 틀고 산다. 그아래로는 먹이 활동하는 넓직한 소도 있어야 하니 바로 이곳이 그런 곳이다. 위치상으로 학서암을 조망하기엔 도로에서도 잘보이겠지만 나무가 웃자라 조망은 좋지않다.
이부근에 남근석이 있다고 하는데 찾아봐야겠다
4곡 서암(瑞岩)은 계곡 건너편에 무릎을 스님이 꿇고 앉아있는 듯한 바위가 예사롭지 않아 서암(瑞巖)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중국에 자문자답으로 득도를 한 서암(瑞巖) 스님이 있었다고 하는데 명칭과의 연관성은 모르겠다.
주변으로 구시소와 챙이소가 있으며 구시소 주변으로 소의 혀를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한다.
챙이소 윗쪽 바위 아래로 칠성암터가 있는데 친구 일곱명이 만든 별장이라 한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여름이면 별장에서 물소리 들으며 벗들과 막걸리나 한잔하면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석각은 구시소와 챙이소 사이에 있다
5곡 유선대(遊仙臺)는 신선이 노닐든 곳이다.
석각이 새겨진 건너편 병풍바위 뒷쪽에 신선들이 은거하는 곳이란 뜻으로 은선병(隱仙屛)이라고도 한다.
김사문의 용호구곡에서 올연(兀然)한 바위가 선대라고 했으니 안내판 하류쪽으로 집채만한 큰바위가 하나 있긴하다.
탐방로에는 신선이 약을 찢던 돌절구와 윷판이 새겨져 있다. 석각은 유선대 바위 건너편에 있다
6곡 지주대(砥柱臺)는 지주(砥柱)라는 중국의 지명에서 왔다.
중국 하남성(河南省) 섬주(陝州)에서 동쪽으로 40리 되는 황하(黃河)의 중류에 있는 기둥 모양의 돌. 위가 판판하여 숫돌 같으며, 격류(激流) 속에서 우뚝 솟아 꼼짝도 하지 않으므로, 난세(亂世)에 처하여 의연(毅然)히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비유로 쓰인다.
이곳을 지주대로 명명한건 격변의 일제 강점기에도 조선의 독립을 꿈꾸던 선비 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붙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석각은 다리 건너기전 두 물줄기가 만나는 합수지점에 있다
7곡 비폭동(飛瀑洞)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반월봉(半月峰)인데, 거기서 흘러내린 계곡물이 이곳 폭포에서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인다하여 비폭동이라불리고 있다. 평상시는 건폭이라 비폭하는걸 구경하기는 힘들다. 석각은 폭포 맞은편에 있다
8곡 경천벽(擎天壁)은비폭동을 지나면 바위 능선길로 사다리처럼 아슬아슬하게 걸린 계단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용호구곡중 제일 좁은 협곡에 경천벽이 있습니다. 내려갈수 없을듯한 계곡 건너편 벽에 석각을 했습니다.현재 탐방로와 옛길이 다릅니다만 당시 김사문 일행은 8곡에서 계곡으로 진행해 9곡 까지 간듯합니다. 석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한뼘정도 보일만큼 협소한 계곡입니다. 흡사 계곡 양쪽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듯이 보였기에 부쳐진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9곡 교룡담(交龍潭)은 용호구곡의 정점을 찍는 구룡폭포 위쪽에 있다. 구룡폭포 길이 약 30m이다. 원천천(元川川) 상류 구간인 구룡계곡의 가장 위쪽에 있는 폭포로, 원천폭포라고도 부른다. 용호구곡의 백미로 꼽힌다.
전망대에 오르면 만복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이곳에 이르러 두 갈래 폭포를이루고 폭포 밑에 각각 조그마한 못을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용 두 마리가 어울렸다가 양쪽 못 하나씩을 차지하고 물속에 잠겨 구름이 일면 다시 나타나 꿈틀거린듯하여 교룡담(交龍潭)이라 하고, 이곳에서 “아홉 마리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라는 전설이 담겨있는 길이가 약 30m의 와폭(臥瀑) 형태이다.
교룡담 상류 오른쪽엔 교룡담, 왼쪽에는구룡대 석각이 있다. 구룡대는 기우재를 지내던 곳인데 돼지를 잡아 던져 넣거나 쇠붙이로 돌을 문지르면 잠자던 용이 놀라 구름을 불러 하늘로 승천했다는 설이 있다.
인명 석각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으며 구룡정사와 구룡사가 자리하고 있다.
https://youtu.be/G5wjSn6i4Uc?si=VeE0-ObDGjz6ubs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