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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孟 : 맏 맹(子/5)
母 : 어미 모(毋/1)
三 : 석 삼(一/2)
遷 : 옮길 천(辶/12)
(유의어)
단기지교(斷機之敎)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삼천지교(三遷之敎)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올바로 교육시키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 즉, 자식을 위하는 숭고한 모정을 뜻한다.
동양 사상의 정점을 차지하는 공자의 수제자요, 왕도정치(王道政治)와 성선설(性善說)의 주창자로 이름 높은 맹자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아들 교육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아버지가 죽고 나서 맹자가 어머니를 따라 처음으로 이사한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그러자, 맹자는 묘지 구덩이를 파고 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여기는 결코 내 아들을 키울 곳이 못 되는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고 당장 이사를 서둘렀다.
그리하여 이사를 간 곳은 시장 근처였다. 그런데, 맹자가 이번에는 물건을 쌓아 놓고 손님을 꾀어 들여 흥정을 하며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의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여기도 안 되겠다. 이렇게 판단한 맹자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이사를 간 곳은 서당 옆이었다. 그러자, 맹자가 이번에는 글 읽는 시늉을 하거나 제기(祭器)를 늘어놓고 제사를 지내는 흉내를 내며 놀았다.
옳지! 이곳이야말로 내 아들을 키울 수 있는 곳이구나. 맹자의 어머니는 그제서야 기뻐하며 마음을 놓았다. 서당은 글뿐 아니라 유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예절도 가르치므로 아들을 선비로 키울 수 있는 조건이 된다고 생각했다.
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교육에 있어 환경이 중요함을 일컫는 말이다. 맹자는 유가의 중심 인물이다. 그는 유학에서 성인 공자 다음가는 아성(亞聖)으로 학문이 깊고, 뜻이 크고 강했다. 그가 주창한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자신의 기상이기도 하다.
맹자는 어렸을 적에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처음엔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상여 메고 곡하는 흉내를 내고 놀았다. 맹자 어머니는 자식 기를 곳이 못 된다 여겨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한데 이번엔 장사꾼 흉내만 내고 다녔다. 이곳 또한 아니다 여겨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맹자가 글 읽는 흉내를 내므로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합당한 곳이라 여기고 이곳에 정착했다.
나이가 들어 고향을 떠나 공부하던 맹자가 불쑥 집으로 돌아왔다. 베틀에 앉아 길쌈을 하던 맹자 어머니가 기쁜 마음을 억누르고 물었다. "공부는 마쳤느냐?"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맹자의 대답에 어머니는 베틀의 날실을 끊어버리고 아들을 꾸짖었다. "네가 공부를 중도에 그만두고 돌아온 것은 지금 내가 짜고 있던 베의 날실을 끊어버린 것과 같다. 그런 마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겠느냐." 맹자는 어머니 말에 크게 깨달아 다시 스승에게로 돌아가 배움에 매진했다.
첫 번째 글은 맹자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에 관한 얘기고, 두 번째는 날실을 끊어 맹자에게 깨달음을 줬다는 단기지교(斷機之敎)에 관한 얘기다. 공통어는 스승(어머니)과 환경과 교육이다. 출처는 '열녀전'이다.
타고난 유전자는 어쩔 수 없다. 비관적 유전자는 좀처럼 낙관적 유전자로 바뀌지 않는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가 타고난 그대로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은 선택 가능한 최고의 유전자다. 설령 타고난 유전자가 100% 일치한다 해도 환경이란 유전자가 다르면 둘은 몰라볼 만큼 달라진다. 지금 주로 읽고 있는 책, 지금 주로 만나는 사람, 지금 주로 하는 생각은 우리의 삶을 바꿀 강력한 환경 유전자다.
맹모삼천(孟母三遷)
유가(儒家)의 가장 큰 특징은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배울수록 깨우치며 많이 배워야 군자가 되고 나아가서 성인(聖人)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이 중시했던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도 사실은 교육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점은 교육에 비판적이었던 노장(老莊)의 도가(道家)나 극력 반대했던 한비자(韓非子), 이사(李斯) 무리의 법가(法家)와는 크게 다르다.
유가(儒家)의 조종(祖宗)이라 할 수 있는 공자(孔子)는 교육분야의 선구자였다. 만년(晩年)에 오면 교육과 저술에 전념해 3000명의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동양 최초의 스승이 된다. 그래서인지 논어(論語)를 펴 보면 첫 머리부터 ‘공부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그의 가르침을 이은 맹자(孟子) 역시 교육을 중시했다. 사실 교육이란 말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군자가 지니는 세 가지 즐거움을 들었는데 그 중 마지막이 ‘천하의 영재(英才)를 얻어 교육하는 즐거움’이라고 했다(得天下之英才而敎育之).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교육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교육과 함께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도 맹자였는데 어머니의 영향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 혼자 되어 오직 아들 맹자의 교육을위해 헌신했던 분이다. 자식을 유학보냈지만 미처 학업을 이루지 못하고돌아오자 짜던 베를 싹둑 잘랐다는 ‘단기(斷機)의 고사는 유명하다.
또 그가 어릴 적에 처음 공동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이 때문에 맹자는 심심하면 곡(哭)소리를 흉내내곤 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구나 싶어 시장으로 이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장사치들의 물건파는 흉내만 냈다.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서당 근처로 옮겼더니 이번에는 글 읽는 흉내만 냈다고 한다. 맹자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孟母三遷)의 고사다.
그렇다면 맹모(孟母)는 동양 최초의 치맛바람을 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유향(劉向)이 편한 열녀전(列女傳)에 보인다. 지금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가곤 한다. 거주 이전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다. 문제는 특정 학군(學群)을 노리고 위장전입하는 경우다. 제 2의 맹모(孟母)인 것 같지만 사실 맹자 때는 학군(學群)이라는 것이 없었다.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맹자(孟子)
이미자씨의 대중가요 '아씨' 첫 구절이다. "옛날에 이 길은 꽃가마 타고, 말 탄 님 따라서 시집 가던 길~" 프랑스에는 사실주의 대표작가 기 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une vie)'이라는 장편소설이 있다. 최근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은 위화(余華)의 '형제(兄弟)'에도 주인공 모친의 애잔한 일대기가 잘 그려져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여성으로서의 삶은 무척 고된 것이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 우선, '맹모(孟母)'는 '맹자의 모친'이다. '삼천(三遷)'은 '세 번 이사하다'이다. 둘을 결합하면 '맹자의 모친이 세 번 이사했다'라는 뜻이 된다. 그녀가 세 번씩이나 이사한 이유는 뭘까. 이유는 오직 하나, 맹자의 교육이었다. 한나라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에 기록이 나온다.
쇠는 담금질로 강해진다. 인간도 역경을 겪고 나면 더 강해진다. 공자의 어린 시절도 유복하지 못했지만, 유교에서 '공자 다음'이라는 의미의 아성(亞聖)으로 칭해지는 맹자의 어린 시절도 매우 불우했다. 맹자는 아동기에 부친을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랐다. 편견, 궁핍 등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결단력을 갖춘 맹자 모친은 눈 앞의 생존 문제 이상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그것은 바로 맹자의 교육과 미래였다.
중국 고대 사회는 여성에게 길쌈이라는 노동을 권장했다. 각 가정에서도 적극 호응했다. 베틀이라는 아주 간단한 생산 수단만 갖추면 비단 등 완성품 직물을 생산할 수 있었다. 특히 비단은 환금성이 좋았다. 맹자 모친도 중노동이지만 잠을 줄여 시간을 투입해 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열녀전'에 소개된 일화를 보면 그녀가 처음 거주했던 곳은 성 밖의 공동 묘지 부근이었다. 철부지 맹자는 나팔을 불어대는 장례 행렬의 소란스러움을 따라다녔다. 맹자의 모친은 자식을 키우며 살 곳이 아니라고 느꼈다. 두 번째 거주한 곳은 성 안이었지만 시장 근처였고 그것도 돼지를 도축하는 가게들 부근이었다. 가난했기에 선택지가 많진 않았으리라. 돼지 도축을 거들며 노는 맹자를 보고 그녀는 또 다시 이주를 결심한다.
'삼 세번'이란 말이 있다. 이번에는 학교 옆으로 이사를 해 본다. 일관되게 총명한 아동 맹자는 학습중인 형들의 낭랑한 책 읽는 소리를 학교 담장 밖에서 따라하기 시작했다. 교육 환경으론 최고였다. 심지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가르치는 학교 부근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흉내내기에 집중력을 발휘하는 놀라운 '싹'이었던 맹자는 그녀와 스승 자사의 배려 속에서 학문의 큰 줄기를 제대로 깨쳤고, 살아 생전에 이미 중국 대륙의 동쪽 하늘을 가리는 우람한 한 그루 '나무'로 성장할 수 있었다.
참고로, '단기지교(斷機之敎)'라는 사자성어의 유래도 맹모 일화다. "네가 학업을 중단하고 귀가한 것과 이 절단된 천은 대체 뭐가 다르냐?"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맹모의 사례를 분석적인 눈으로 살펴보자. 다음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첫 숟가락'에 만족하지 않았다. 만약 세 번째 거주지에서도 맹자가 일탈 행동을 했다면, 몇 번이고 더 나은 거주지로의 이사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시행착오를 딱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즉, 향상심(向上心)이 있는 한, 눈 앞에 벌어진 이사 오류를 군대의 '병가지상사' 처럼 여겼다. 다만 우리는 그녀가 돼지 도축장 부근 다음으로 어시장이나 채소 판매상 인근 등 비슷비슷한 범위에서 이사하진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멈추는 법'을 알았다. 맹모의 이 '환경 바꾸기' 일화에서 과욕을 부린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녀에겐 과단성과 과욕을 식별하는 눈이 있었다.
최근 몇 나라의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이 매우 낮아졌다. 우리도 너무 늦기 전에 '밑 빠진 독'이 된 공교육과 사교육을 함께 수술대에 놓고 치유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멀게는 프랑스와 독일의 공교육 학비 무료부터 가깝게는 현대판 맹모의 교육 최우선 각자도생의 폐해까지, 모든 이슈를 수술대 위에 ‘딱’ 올려놔야 한다. 그저 '면피'나 '주마간산'이 아닌, '용맹정진' 식으로 말이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어머니 급씨(伋氏)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곳을 이사했다는 것에서 유래한 이야기. 전한 때 학자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등장한다. 맹자를 길러낸 맹모의 교육열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현대에 와서는 자식에게 극단적인 교육열을 내보이는 극성 부모들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데도 주로 쓰이고 흉악범들의 열악한 성장배경과도 결부되어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의 고사가 되었다.
鄒孟軻之母也, 號孟母. 其舍近墓.
추현(鄒縣)의 맹가(孟軻)의 어머니는 맹모(孟母)라 불린다. 그의 집은 묘지 근처에 있었다.
孟子之少也, 嬉遊為墓間之事, 踴躍築埋.
맹자가 어렸을 때, 묘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놀았는데, 그것은 춤추며 뛰며 다지며 묻는 일이었다.
孟母曰: 此非吾所以居處子也.
맹모가 말했다. "이곳은 내가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다."
乃去舍市傍. 其嬉戲為賈人衒賣之事.
이에 떠나 집을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장사꾼이 파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놀았다.
孟母又曰: 此非吾所以居處子也.
맹모가 또 말했다. "이곳은 내가 자식을 살게 할 곳이 아니다."
復徙舍學宮之傍.
다시 집을 학교 근처로 이사했다.
其嬉遊乃設俎豆揖讓進退.
그러자 맹자는 조두(俎豆)를 늘어놓고 읍양(揖讓) 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을 하며 즐겁게 놀았다.
孟母曰: 真可以居吾子矣. 遂居及.
맹모가 말했다. "참으로 나의 아들을 살게 할만한 곳이다." 마침내 살 곳에 도달했다.
孟子長, 學六藝 卒成大儒之名.
맹자가 성장하여 육예(六藝)를 배우니 마침내 학식이 높은 선비로서의 명성을 이루었다.
君子謂孟母善以漸化.
군자(君子)가 이르기를, "맹모는 좋은 것으로 점차 교화시켰다"고 했다.
詩云; 彼姝者子, 何以予之. 此之謂也.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저 순박한 아이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 열녀전(列女傳) 모의전(母儀傳)
열녀전에 따르면 맹자의 집은 원래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어린 맹자는 자라 오면서 평소 보았던 대로 상여 옮기는 흉내와 곡하는 시늉을 하거나 상여꾼이 부르는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는데 맹자의 어머니 맹모가 이를 보고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다고 걱정하여 시장으로 이사를 가니 이번에는 맹자가 친구들과 상인 흉내만 실컷 내며 놀았다.
맹모는 역시 아이의 교육에 올바르지 않은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여 마지막으로 공자를 모시는 문묘 근처로 이사를 갔다. 그러자 마침내 맹자가 관원들의 예절을 따라하고 제례를 지내는 시늉을 하며 놀았으며 글월을 외는 공부에도 관심을 가졌다. 맹모는 그제서야 만족하여 그 곳에 계속 거주하였으며 이후 맹자는 맹모의 맹모단기지교의 가르침을 거쳐 대학자가 된다.
이 이야기는 사실은 역사적 근거가 별로 없다. 원래 열녀전이 쓰여진 시기는 맹자의 시대보다 몇백년이나 뒤이며 그 사이의 기록에는 딱히 비슷한 일화가 나오지 않는다. 춘추전국시대의 문헌에는 이런 이야기가 거의 보이지 않으며 그저 세간에 떠도는 전설이거나 유향의 창작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맹자는 자신의 학문 경력에 대해서 '사숙(私淑, 사적으로 혼자 배웠다)했다'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게다가 이 일화에 나오는 문화는 춘추전국시대보다는 전한 시대의 생활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유가에서 장례식을 흉내내는 것은 딱히 이상하거나 해괴할 것이 없다. 원래 춘추전국시대 유가의 사회적 업무는 "관혼상제의 전문가"였다. 오히려 공자는 이런 관혼상제 의식을 어릴 때부터 흉내내서 놀이로 삼았으니 그야말로 '예'를 아는 성인다운 일이었다는 식의 일화가 전해진다. 심지어 공자는 자신이 여러 재주를 가진 이유가 유년 시절에는 천한 신분이라 갖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발언도 했다.
무엇보다도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면서 배우지 않아도 인간의 본래 마음을 잘 살핀다면 충분히 군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는데 해당 고사에서는 공부 환경 때문에 이사를 가는 것이 매우 이상해 보인다. 즉, 이 이야기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이처럼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환경이 중요하다는 주장은 다름 아닌 고자의 주장으로, 이는 맹자가 심하게 비판했던 것이었다.
물론 맹모와 맹자는 다르지 않냐고 말할 수 있는데 어찌 되었든 맹자의 주장이 맹모의 행동을 공격한 셈이 되어서 효(孝)를 중시했던 맹자 본인의 입으로 전승되기에는 힘든 얘기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유향이 창작할 때 맹자의 서사에 섣불리 공자와 닮은 점을 부여하려고 하다가 유향이 공자와 맹자의 차이를 간과해 버린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보이기도 한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적용하자면 이리저리 이사 다니다가 결국 강남 8학군, 과천시, 목동, 중계동, 분당구, 평촌신도시, 수성구, 유성구, 둔산신도시 등등 학군이 좋은 지역에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이사간 후에 서울대 의대/법대에 입학, 졸업해서 의사/변호사가 되었더라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더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자녀 교육을 위해서 해외 이민을 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의미에서 바라보자면 학부모가 교육을 위해 더 나은 학군으로 이사를 가서 자녀를 진학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일은 자녀가 초등학생 때 이뤄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거주 지역의 제한을 받는 학교 배정제를 우회하여 유명 학군, 자사고,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시도하기도 한다. 정치인, 특히 장관 후보자의 자녀 진학을 목적으로 한 위장 전입 전력이 발각되기도 한다.
멕시코, 브라질과 같이 나라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치안이 매우 불안한 곳도 맹모삼천지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들은 불량 학생 외에는 학생의 인격 형성에 위협을 줄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나쁠 경우 그대로 자녀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 된다.
멕시코와 브라질 같은 곳은 나라 자체는 어느 정도 건실하지만 불량 학생들이 강도 같은 행동을 하고 다니고 그 불량 학생들의 가정을 보면 문제가 많기 때문에 고려 사항이 되기도 한다. 다만 서양의 국가들은 치안 같은 요소도 중요하게 고려되지만 한국이나 중화권은 유독 맹모의 일화처럼 학군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하지만, 동서고금 막론하고 좋은 학군으로 전학, 이사가는 데는 돈이 상당히 많이 든다. 뭐가 되었든 이 이야기의 결론을 오늘날 한국에 비유하자면 돈을 많이 벌어서 자녀 교육을 위하여 강남 8학군 동네로 이사를 가라거나 그렇게 부러우면 돈 많이 벌고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의미다. 이게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다. 다른 계층의 문화나 직업이 아닌 상류층이 택하는 진로(선비)나 문화적 자본(육예 등)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포장하는 모습이 있다.
이는 자식의 능력이 아니라 좋은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부모의 능력에 따라 자녀의 성공 가능성이 달라지는 풍조를 조장한다. 선비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성공으로 인정해주지 않고, 선비 같은 성공은 다른 진로보다 부모가 마련해주는 환경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능력주의 사회의 이상과도 거리가 멀어 결국은 능력이 없는 사람까지도 혈통으로 지위를 유지하는 계층 대물림을 심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전한 시대의 상류층이 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한 면이 어느 정도 있다. 한무제(漢武帝) 시기에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으면서, 유교 경전에 대한 이해와 학식이 관료 등용 및 사회적 성공의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상류층은 자신들이 이러한 유교적 교양과 덕목을 갖춘 '군자(君子)' 또는 '사(士)' 계층임을 내세우며,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이러한 소양을 습득하고 후대에 전수함으로써 지배 계층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했다. 중요한 것은 학식과 교양을 강조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능력주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교육 기회 자체가 상류층에게 훨씬 유리했다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와 시간, 인맥 등이 뒷받침되어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인들은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때로는 토지를 매입하여 대지주가 되거나 관료와 결탁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지배 질서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었다.한나라에서는 상인들의 활동을 제한하고 통제하기 위한 정책들을 시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한무제 시기의 염철전매(鹽鐵專賣) 정책이다. 소금과 철 등 주요 산업을 국가가 독점하여 상업 자본의 성장을 억제하고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 했다.
또한, 상인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하거나 관직 진출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특히 상류층 문인들의 기록에는 상인들을 사치스럽고 탐욕스러우며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상인 계층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을 강화하고 지배층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현대적인 유학자는 이런 사상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다. 유교는 '유교무류(有敎無類)' 즉, 가르침에는 차별이 없어야 함을 강조한다. 비록 현실적으로는 교육 기회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상적으로는 누구나 교육을 통해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모든 백성을 아끼고 교화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민본(民本) 사상을 중요하게 여겼다.
특히 공자나 맹자가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지식이나 지위가 아니라, 인(仁), 의(義), 예(禮), 지(智)와 같은 내면적 덕성의 함양과 실천이다. 특히 '예'는 단순히 형식적인 절차가 아니라 마음의 진실성(誠)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이야기에서는 자신들만이 '교화'되고 '문명화'된 존재이며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선민의식은 유교의 본질이라기보다는 기득권층의 자기 합리화 같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기원전인 중국 전한 시대의 이런 이야기를 오늘날에 이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상업이든 서비스업이든 사회에 꼭 필요한 분야이고, 아이가 이런 분야에 재능이 있을 수 있음에도 적성을 무시하고 학문만을 과하게 강요한다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아동도 스스로 감정을 느끼는 독립된 인격체라는 관점에서도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아도 후술하듯 여불위와 같은 이야기는 이미 옛날에도 이런 주장에 들어맞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막대한 이사 비용과 양도소득세를 어떻게 감당하려고 저렇게 하느냐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실제로 '맹모삼천지교' 고사에 나오는 것처럼 세 번 이사를 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 여부는 확인하기 매우 어렵고, 학술적으로는 그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기원전 4세기경)이고, 《열녀전》은 전한 시대(기원전 1세기경)에 편찬되었다. 약 200~300년의 시간 차이가 존재한다.
이 기간 동안 맹자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후대에 만들어지거나 윤색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맹자 자신이나 그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 또는 동시대의 다른 역사 기록에서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중요한 일화라면 다른 기록에서도 언급될 법하지만, 주로 《열녀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맹자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회에서 가장의 부재는 가정 경제에 큰 어려움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는 점은 이사를 그렇게 자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말로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
맹모삼천(孟母三遷)이라는 이 사자성어는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주며, 자식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이 고사에서 유래된 이 사자성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육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자성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맹모삼천(孟母三遷)라는 사자성어의 의미를 풀어보겠습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은 직역하면 '맹자의 어머니가 세 번 이사했다'는 뜻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중국 고대의 철학자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자식을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시장 근처에 살았으나, 맹자가 시장에서 장사꾼들의 흉내를 내며 놀자 이를 보고 장례식장이 있는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그러나 맹자가 장례식의 모습들을 보고 놀면서 장례식장의 의식 절차를 흉내 내는 것을 보고 또다시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맹자의 어머니는 학교 근처로 이사했으며, 맹자는 그곳에서 학문에 매진하여 훗날 훌륭한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맹모삼천(孟母三遷)은 자식의 교육을 위해 좋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모의 헌신을 나타냅니다.
이 사자성어에서 중요한 점은 교육과 환경의 결정적인 역할입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이 어떤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좋은 환경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는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식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는 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맹모삼천(孟母三遷)에서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바로 교육과 환경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고 학문에 매진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학교의 선택 뿐만 아니라, 자식이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어떤 가치를 배우는 지가 자식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녀에게 적합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그 환경에서 자녀가 건강하고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맹모삼천(孟母三遷) 의 교훈을 어떻게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번째로 자식의 교육 환경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녀가 어떤 학교에 다니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가 자녀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녀에게 적합한 학교와 교육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자녀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번째로 자식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부모의 자세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맹자의 어머니처럼 자녀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자녀의 교육뿐만 아니라,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 부모의 헌신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모로서 자녀의 미래를 위해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고민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올바른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맹모삼천은 단순히 교육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녀에게 올바른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줍니다. 자녀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할 수 있도록 부모로서 모범을 보이고, 자녀와 함께 대화하며 가르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는 자녀가 훗날 사회에서 올바르게 행동하고, 책임감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눈 맹모삼천은 단순히 자식의 교육을 위해 이사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의 교육과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그를 위해 부모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여러분도 자녀의 교육에 대해 고민할 때 이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자녀에게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고, 그들이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 孟(맏 맹)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아들 자(子; 어린 아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皿(명, 맹)으로 이루어졌다. 장자(長子)의 뜻이었으나 전(轉)하여 '처음', '우두머리'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孟자는 '처음'이나 '맏이',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孟자는 子(아들 자)자와 皿(그릇 명)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皿자는 그릇을 그린 것이다. 孟자의 금문을 보면 마치 대야에 담긴 물로 아이를 씻기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孟자는 본래 '맏이'를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하지만 '맏이'라는 뜻은 주로 兄(맏 형)자가 쓰이고 孟자는 쓰임이 거의 없다. 다만 오래전부터 맹자(孟子)의 약칭으로는 쓰이고 있다. 그래서 孟(맹)은 ①맏, 첫, 처음 ②맏이, 여러 형제나 자매 중에서 제일 손위 ③맹자(孟子)의 약칭(略稱) ④우두머리 ⑤동(사물의 조리(條理))이 닿지 않는 엉터리 ⑥그물 ⑦성(姓)의 하나 ⑧힘쓰다, 애쓰다 ⑨사납다 ⑩과격(過激)하다 ⑪동(사물의 조리(條理))이 닿지 않다 ⑫맹랑(孟浪)하다 ⑬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맏 백(伯), 맏 윤(允),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인으로 사상가요 유학자를 맹자(孟子), 맹자의 성명을 맹가(孟軻),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하였으며 베틀의 베를 끊어 보여 아들을 경계한 어진 맹자의 어머니를 맹모(孟母), 생각하던 바와는 달리 아주 허망함 또는 처리하기가 매우 어렵고 딱함을 맹랑(孟浪), 음력 정월을 달리 일컫는 말을 맹춘(孟春), 음력 사월을 달리 일컫는 말을 맹하(孟夏), 음력 칠월을 달리 일컫는 말을 맹추(孟秋), 음력 시월을 달리 일컫는 말을 맹동(孟冬), 맹자와 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맹순(孟荀), 공자와 맹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공맹(孔孟), 유교의 경서인 논어와 맹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논맹(論孟), 유교의 경서인 논어와 맹자를 아울러 일컫는 말을 어맹(語孟),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맹모삼천(孟母三遷), 맹자의 어머니가 베를 끊었다는 뜻으로 학업을 중도에서 그만둠을 훈계하여 일컫는 말을 맹모단기(孟母斷機), 말하기 어려울 만큼 비고 거짓되어 실상이 없음 또는 터무니없이 허황되고 실상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허무맹랑(虛無孟浪), 우맹이 의관을 입었다라는 뜻으로 사람의 겉모양만 같고 그 실지는 다름을 비유하는 말 곧 사이비한 것을 이르는 말을 우맹의관(優孟衣冠), 계씨와 맹씨 사이에 해당하는 대우를 하라는 뜻으로 상대편을 보아서 적절하게 접대하라는 말을 계맹지간(季孟之間) 등에 쓰인다.
▶️ 母(어미 모)는 ❶상형문자로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모양을 본뜬 글자로 어머니를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母자는 ‘어미’나 ‘어머니’를 뜻하는 글자이다. 갑골문에서는 母자와 女(계집 여)자가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다만 女字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자를 그린 것이었다면 母자는 여성의 가슴 부위에 점을 찍어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하는 어머니를 표현하고 있었다. 비록 초기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어미의 가슴을 강조하여 그린 것이기 때문에 母자는 ‘어머니’라는 뜻 외에도 ‘기르다’나 ‘양육하다’ 또는 나이가 많은 여성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母(모)는 (1)어머니 (2)신라의 소전(䟽典), 홍전(紅典), 표전(漂典), 염궁(染宮) 등 여러 곳에 두었던 여관(女官)의 이름 등의 뜻으로 ①어머니 ②어머니뻘의 여자 ③할머니, 나이 많은 여자 ④모체(母體) ⑤암컷 ⑥유모(乳母) ⑦근본(根本), 근원(根源) ⑧본전(本錢), 원금(元金) ⑨표준(標準) ⑩엄지손가락 ⑪기르다, 양육하다 ⑫모방하다, 본뜨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자 녀/여(女), 아들 자(子), 아버지 부(父)이다. 용례로는 약주를 뜨고 남은 찌꺼기나 술을 모주(母酒), 자기가 졸업한 학교를 모교(母校), 외국에 가 있을 때 자기의 나라를 가리키는 말을 모국(母國), 어머니의 태 안을 모태(母胎), 어머니와 그 아들을 모자(母子), 어머니와 그 딸을 모녀(母女), 어머니로서의 여자가 지니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을 모성(母性), 제 어미의 젖을 모유(母乳), 원금 또는 본전을 모재(母財), 푼수셈에서 원금을 일컬음을 모수(母數), 소리글을 적는 모든 맞춤의 근본이 되는 낱낱의 글자를 모자(母字), 모성을 인격화한 여러 종류의 신을 모신(母神), 어떤 물건을 만들 때 그 바탕이 되는 재료를 모재(母材), 새 숲이 생기기 전에 있었던 살림을 모림(母林), 어떤 법의 근거가 되는 법률을 모법(母法), 뿌리를 가지고 있는 주되는 그루를 모본(母本), 남의 어머니의 높임말을 모당(母堂), 어머니를 모친(母親),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을 모형(母兄), 어머니의 자매를 이모(姨母), 다른 사람의 장모를 이르는 말을 빙모(聘母), 아내의 친정 어머니를 장모(丈母), 아내의 친어머니를 악모(岳母), 아버지의 첩을 서모(庶母), 작은 아버지의 아내나 작은 어머니를 숙모(叔母), 큰 어머니나 아버지 맏형의 아내를 이르는 말을 백모(伯母), 사랑이 많은 어머니를 일컫는 말을 자모(慈母), 자식이 어머니의 이름을 직접 부른다는 뜻으로 배운 것을 잘못 적용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명모(名母),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끊어졌다는 뜻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은 슬픔과 애통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모원단장(母猿斷腸), 아버지는 낳게 하고 어머니는 낳아 기른다는 뜻으로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길러 주심이라는 말을 부생모육(父生母育), 지아비에게는 좋은 아내이면서 자녀에게는 현명한 어머니를 두고 이르는 말을 양처현모(良妻賢母), 아버지의 정기와 어머니의 피라는 뜻으로 자식은 부모로부터 그 정신과 육체를 물려 받았음을 이르는 말을 부정모혈(父精母血), 부모가 끼친 몸이란 뜻으로 자식된 몸을 일컫는 말을 부모유체(父母遺體), 집에 들어서는 어머니를 받들어 종사해야 한다는 말을 입봉모의(入奉母儀), 엄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뜻으로 아버지는 자식을 엄하게 다루고 어머니는 자식을 깊은 사랑으로 보살펴야 함을 이르는 말을 엄부자모(嚴父慈母) 등에 쓰인다.
▶️ 三(석 삼)은 ❶지사문자로 弎(삼)은 고자(古字)이다. 세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 젓가락 셋을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셋을 뜻한다. 옛 모양은 같은 길이의 선을 셋 썼지만 나중에 모양을 갖추어서 각각의 길이나 뻗은 모양으로 바꾸었다. ❷상형문자로 三자는 '셋'이나 '세 번', '거듭'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三자는 나무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대나무나 나무막대기를 늘어놓은 방식으로 숫자를 표기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三자는 막대기 3개를 늘어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숫자 3을 뜻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덥석 받는 것은 중국식 예법에 맞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최소한 3번은 거절한 후에 상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문화가 있다. 三자가 '자주'나 '거듭'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도 이러한 문화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三(삼)은 셋의 뜻으로 ①석, 셋 ②자주 ③거듭 ④세 번 ⑤재삼, 여러 번, 몇 번이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석 삼(叁)이다. 용례로는 세 해의 가을 즉 삼년의 세월을 일컫는 삼추(三秋), 세 개의 바퀴를 삼륜(三輪),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의 세 대를 삼대(三代), 한 해 가운데 셋째 되는 달을 삼월(三月), 스물한 살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삼칠(三七), 세 째 아들을 삼남(三男), 삼사인이나 오륙인이 떼를 지은 모양 또는 여기저기 몇몇씩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삼삼오오(三三五五), 삼순 곧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는다는 뜻으로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다는 말을 삼순구식(三旬九食), 오직 한가지 일에만 마음을 집중시키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삼매경(三昧境), 유교 도덕의 바탕이 되는 세 가지 강령과 다섯 가지의 인륜을 일컫는 말을 삼강오륜(三綱五倫), 날마다 세 번씩 내 몸을 살핀다는 뜻으로 하루에 세 번씩 자신의 행동을 반성함을 일컫는 말을 삼성오신(三省吾身), 서른 살이 되어 자립한다는 뜻으로 학문이나 견식이 일가를 이루어 도덕 상으로 흔들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삼십이립(三十而立), 사흘 간의 천하라는 뜻으로 권세의 허무를 일컫는 말을 삼일천하(三日天下),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남이 참말로 믿기 쉽다는 말을 삼인성호(三人成虎), 형편이 불리할 때 달아나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삼십육계(三十六計), 하루가 삼 년 같은 생각이라는 뜻으로 몹시 사모하여 기다리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삼추지사(三秋之思), 이러하든 저러하든 모두 옳다고 함을 이르는 말을 삼가재상(三可宰相), 삼 년 간이나 한 번도 날지 않는다는 뜻으로 뒷날에 웅비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삼년불비(三年不蜚), 세 칸짜리 초가라는 뜻으로 아주 보잘것 없는 초가를 이르는 말을 삼간초가(三間草家), 봉건시대에 여자가 따라야 했던 세 가지 도리로 어려서는 어버이를 시집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아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삼종의탁(三從依托), 키가 석 자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라는 뜻으로 철모르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을 삼척동자(三尺童子), 세 사람이 마치 솥의 발처럼 마주 늘어선 형상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을 삼자정립(三者鼎立), 세 칸에 한 말들이 밖에 안 되는 집이라는 뜻으로 몇 칸 안 되는 오막살이집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간두옥(三間斗屋), 가난한 사람은 농사 짓느라고 여가가 없어 다만 삼동에 학문을 닦는다는 뜻으로 자기를 겸손히 이르는 말을 삼동문사(三冬文史), 삼생을 두고 끊어지지 않을 아름다운 언약 곧 약혼을 이르는 말을 삼생가약(三生佳約), 세 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이라는 뜻으로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즉 청백리를 이르는 말을 삼마태수(三馬太守), 세 치의 혀라는 뜻으로 뛰어난 말재주를 이르는 말을 삼촌지설(三寸之舌), 얼굴이 셋 팔이 여섯이라는 뜻으로 혼자서 여러 사람 몫의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면육비(三面六臂), 사귀어 이로운 세 부류의 벗으로서 정직한 사람과 성실한 사람과 견문이 넓은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익지우(三益之友), 세 가지 아래의 예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삼지지례(三枝之禮), 머리가 셋이요 팔이 여섯이라 함이니 괴상할 정도로 힘이 엄청나게 센 사람을 이르는 말을 삼두육비(三頭六臂), 세 번 신중히 생각하고 한 번 조심히 말하는 것을 뜻하는 말을 삼사일언(三思一言) 등에 쓰인다.
▶️ 遷(옮길 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늘에 오르다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 䙴(선, 천)으로 이루어졌다. '오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옮기다'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遷자는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遷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䙴(옮길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䙴자는 본래 '옮기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遷자 이전에 쓰였던 글자였다. 䙴자의 금문을 보면 邑(고을 읍)자 옆에 새집을 옮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터전을 옮긴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䙴자가 '옮기다'나 '떠나가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소전에서는 여기에 辶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떠나 '옮긴다'는 뜻을 더하게 되었다. 그래서 遷(천)은 (1)벼루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옮기다 ②옮겨가다 ③떠나가다 ④내쫓다, 추방하다 ⑤벼슬이 바뀌다 ⑥달라지다 ⑦바꾸다, 변경하다 ⑧오르다, 올라가다 ⑨붙좇다, 따르다 ⑩천도(遷都) ⑪벼랑, 낭떠러지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옮길 사(徙)이다. 용례로는 도읍을 옮김을 천도(遷都), 귀양살이하는 사람을 천객(遷客), 움직여서 옮김을 천동(遷動), 바뀜이나 변함을 천개(遷改), 죽은 혼령을 극락세계로 가게 함을 천도(遷度), 무덤을 다른 데로 옮김을 천묘(遷墓), 대가 바뀜을 천대(遷代), 나쁜 짓을 고쳐 착하게 됨을 천선(遷善), 변하여 바뀜을 천화(遷化), 살던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겨 삶을 천거(遷居), 어떤 일로 말미암아 난 성이 엉뚱하게 애매한 다른 사람에게 옮아감을 천노(遷怒), 미적미적 미루어 감을 천추(遷推), 관리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떨어짐을 좌천(左遷), 변하여 바뀜을 변천(變遷), 동쪽으로 옮김을 동천(東遷), 세 번 옮김을 삼천(三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딴 곳으로 피난함을 파천(播遷), 무너져서 밀려남을 탑천(塌遷), 여기저기로 여러 번 옮김을 누천(累遷), 등급을 뛰어넘어 올라 감을 초천(超遷), 지난날의 잘못을 고치어 착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개과천선(改過遷善), 맹모가 맹자를 제대로 교육하기 위하여 집을 세 번이나 옮겼다는 뜻으로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맹모삼천(孟母三遷), 맹모가 아들의 교육을 위하여 3번 거처를 옮겼다는 고사로 생활 환경이 교육에 있어 큰 구실을 함을 이르는 말을 삼천지교(三遷之敎), 봄이면 새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 위에 올라앉는다는 뜻으로 사람의 출세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출곡천교(出谷遷喬), 인간 세상의 변천이 쉬지 않고 흐름을 일컫는 말을 무상천류(無常遷流), 어떤 자리에 오래 붙어 앉아서 다른 데로 옮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좌지불천(坐之不遷), 고향을 떠나기를 좋아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안토중천(安土重遷)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