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운동장 부근은 제 4년의 시간이 녹아있는 곳입니다. 역 이름도 바뀌었듯, 그 시간동안엔 변한 것도 많았습니다. 동대문운동장이 폐쇄된 뒤 황학동 벼룩시장이 잠시 자리했었고 이마저도 헐리고는 현재의 디자인 플라자를 만들기 위한 터닦기까지 보았습니다. 말많던 굿모닝시티도 한창을 싸우다가는 어느날 착공식을 하더니 제가 말년차가 되던 해엔 오픈하여 안그래도 사람들로 복잡하던 동네를 더욱 북적북적하게 만들었습니다. 화려하고 큼직하고, 빠른 변화는 눈에 쉽게 뜨이지만 사실 사람들이 먹는 문제를 해결할 곳은 그런 눈에 띄는 것들 사이의 작은 골목들에 숨어있습니다. 특히 시간을 두고 꾸준한 사랑을 받는 집일수록 조금은 지저분하고 오래된 골목들 속에 있지요. 블로그는 커녕 맛집에도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지만, 4년의 시간을 한자리에서 있다보니 이 동네의 나름 맛집이라는 곳은 자연스레 알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중 한 곳을 마침 서울나들이 차에 들르게 되었네요. 다시 동대문운동장역을 찾게 될 줄도 몰랐지만 요즘 재미붙인 검도운동때문에 들르게 되었고, 그 차에 제가 기억하는 맛집을 찾아 들러보았습니다. 동대문운동장 역 패션시티 뒤쪽 말 그대로 코너에,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게 하는 집이 있습니다. 코너집이라는, 참 오래된 집이죠. 변한거라고는 주변의 경관과 간판밖에 없습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안으로 이어집니다. 이 집은 식사만이 아니라 안주류도 많이 있습니다. 지하엔 넓은 공간도 있지요. 한번이었던가.. 이 집에서 회식을 했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안주메뉴는 닭도리탕이네요. 닭발에 제육볶음에.. 점심시간만 아니고 이후의 일정만 아니라면 혼자라도 소주한 잔에 닭도리탕 안주를 시키고 싶어집니다. 오늘의 메뉴는 닭곰탕입니다. 쇠고기국밥도 정말 맛있지만, 기억에 남았던 건 닭곰탕이었어요. 찌개류는 일단 수준이상의 깊은 맛을 내는 집이니 무얼 시켜도 좋지만, 쇠고기국밥과 닭곰탕은 정말 추천하지 않을 수 없는 식사메뉴입니다. 반찬이 아주 정갈하지는 않지만 반찬에서도 손맛이 느껴지는 집이죠. 계란찜에 호박반찬, 오이김치.. 평범해보인다 해서 쉽게 볼 맛은 아닙니다. 이 다대기는 닭곰탕에 있어 필수죠. 칼큼한 맛을 필요로 하는 메뉴들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뚝배기에 닭곰탕이 펄펄 끓어 나옵니다. 맑은 닭국물에 고기와 부추, 후추와 청량고추 다진 것이 올려져있습니다. 닭육수는 닭고기 나름의 맛을 내는 여러요리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국물이지만, 가벼운 느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조미료나 다른 식재료를 함께 넣어 만들기도 하는데, 이 집에서는 다대기가 그 역할을 하죠. 간도 적당하고 닭육수 특유의 감칠맛을 잘 살린 뚝배기에 다대기를 넣습니다. 다대기를 넣음으로 칼큼함이 살아나고 가벼움도 한결 나아졌습니다. 인위적이지 않은, 손맛만이 낼 수 있는 닭육수의 깊이와 감칠맛이 한결 더 강조되는 순간이랄까요. 국물맛을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는 밥공기를 말아 열심히 먹습니다. 쉴 새가 없이 열심히 숟가락을 뜨게 됩니다. 땀흘리며 즐겁게 먹다보니 옆에서는 미리 준비해둔 여러모양의 탕들이 주인을 기다리며 끓고 있네요. 저도 그 자리에 앉아 함께 맛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이 집은 팔방미인이라는 말도 어울릴 듯 하고, 두텁고 주름진 할머니의 손이라는 말도 어울릴 듯 합니다. 이 집의 많은 메뉴들은 한결같이 수준이상의 맛을 보여주고 있고, 그 맛은 단순한 감칠맛이라거나 그냥 맛있다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입맛에는 조금 덜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도 깊이나 손맛만큼은 오랜시간을 간직한 내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맛집의 기준이기도 하죠. 조금은 허름하고 깔끔하지 않은 분위기지만, 숟가락을 뜨면서 '참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집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집은 정말 추천하고 싶은 집입니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