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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5월 (1594년 5월)
525
5월 초1일 (무인) 맑다. [양력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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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밥을 먹은 뒤에 활터 정자의 방에 올라가니 날씨가 무척 맑고 시원했다. 종일 땀이 비오듯이 흐르더니, 좀 나아진 것 같다.
527
아침에 아들 면과 집안 계집 종 넷, 관 계집 종 네 명이 병을 간호하러 들어왔다. 덕이(德)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내일 돌려 보내라고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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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2일 (기묘) 맑다. [양력 6월 19일]
529
새벽에 회는 계집 종 등과 더불어 어머니 생신에 상차려 드릴 일로 돌아갔다.
530
우수사(이억기) ∙ 흥양현감(배흥립) ∙ 사도첨사(김완) ∙ 소근첨사(박윤)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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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차츰 나아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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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3일 (경진) 맑다. [양력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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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양현감이 휴가를 얻어 돌아갔다.
534
저녁나절에 장흥부사와 발포 만호가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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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명세서와 공명고신(이름이 안 적힌 사령장) 삼백 여 장(丈)과 임금의 분부 두 통이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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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4일 (신사) 거센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많이 내리는데 종일 그치지 않았다. 밤새도록 더 심하게 내렸다. [양력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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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수사의 군관이 와서 고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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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적 세 명이 중선(中船)을 타고 추도(통영시 산양면)에 온 것을 만나 잡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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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했다. 이를 추문(推問)한 뒤에 압송할 일로 일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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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공대원(孔大元)에게 물으니, 왜적들이 바람을 따라 배를 몰고 본토(日本)로 향하다가, 바다 한가운데서 회오리 바람을 만나 배를 조 종할 수가 없어 떠 다니다가 이 섬에 닿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간사한 사람의 말이니 믿을 수 없다.
541
이설(李渫) ∙ 이상록(李尙祿)이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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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543
5월 초5일 (임오) 비바람이 세게 불어쳤다. [양력 6월 22일]
544
지붕이 세 겹이나 말리어 조각 조각 높이 날려가고, 빗발은 삼대 같이 내려 몸을 가누지 못했다. 우습다.
545
사도첨사가 와서 문안하고 돌아갔다. 큰 비바람이 오후 두 시쯤에야 조금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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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만호(황정록)가 떡을 만들어 보내 왔다.
547
탐후선이 들어 왔다. 어머니가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548
5월 초6일 (계미) 흐렸다가 저녁나절에 개이다. [양력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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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 보성 ∙ 낙안 ∙ 소근 등이 와서 봤다.
550
오후에 경상수사 원균(元均)이 왜놈 세 명을 잡아 왔기에 문초를 해 보니, 이랬다 저랬다 만번이나 속이므로 수사 원균(元均)으로 하여금 목을 베고 보고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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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도 왔다. 술을 세 순배 돌렸다가 상을 물리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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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7일 (갑신) 맑다. [양력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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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편안한 것 같다. 침 열여섯 군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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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을유) 맑다. [양력 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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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군관 변응각(邊應慤)이 원수의 공문과 장계 초본과 임금의 분부(有旨)를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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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을 거제로 진격시켜 적이 무서워 도망가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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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었다. 경상수사와 전라우수사를 불어 의논했다. 충청수사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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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큰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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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병술)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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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빈 정자에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에 치밀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정신이 아득하여 술취한 듯, 꿈속인 듯, 멍청한 것도 같고 미친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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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0일 (정해) 비가 내렸다. [양력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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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멀리 바라 보니, 우리의 많은 배들이 바다에 가득차 있다. 적이 비록 쳐들어 온다 해도 섬멸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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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나절에 우우후(李廷忠)과 충청수사(李純信)이 와서 두 사람이 장기를 두었다. 원수의 군관 변응각도 같이 점심을 먹었다.
564
보성군수(金得光)가 저물 무렵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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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종일 걷히지 않았다. 아들 회(薈)가 바다로 나간 것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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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포권관이 약품을 보내 왔다.
567
5월 11일 (무자) 비가 저녁 때까지 내렸다. [양력 6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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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밀려 쌓인 공문을 낱낱이 적어서 내려줬다.
569
저녁에 낙안군수(金俊繼)가 와서 이야기했다. 큰 비가 퍼붓듯이 내려 밤낮으로 그치지 않았다.
570
5월 12일 (기축) 큰 비가 종일 내리다가 저녁이 되서 야 조금 그쳤다. [양력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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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이억기)가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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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3일 (경인) 맑다. [양력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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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 검모포만호의 보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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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수사 소속의 보자기들이 격군을 싣고 도망가다가 현장에서 붙들렸는데, 많은 보자기들이 원 수사가 있는 곳에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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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한다. 그래서 사복들을 보내어 잡아 오게 하였더니, 원균(元均) 수사가 도리어 사복(司僕) 들을 묶어서 가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군관 노윤발을 보내어 이를 풀어 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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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시쯤에 비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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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신묘)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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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사(이순신) ∙ 낙안군수(김준계) ∙ 임치현감(홍견) ∙ 목포만호(田希光) 등이 와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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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營吏)에게 시켜 종정도(벼슬이름을 품계와 종별을 따라 그려 놓고 윷놀이 하듯이 말을 쓰는 놀이)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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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임진)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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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전에게 시켜 종정도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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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 (계사)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다. [양력 7월 3일]
583
저녁에는 큰 비가 밤새도록 내려 지붕이 새어서 마른 데가 없다. 각 배의 사람들이 거처가 매우 괴로울 것이 염려된다.
584
곤양군수(이광악)가 편지를 보내고 겸하여 사명당 유정이 진진 안으로 왕래하면서 문답한 초기(草記: 각 관청에서 업무상 그리 대수롭지 않은 일을 사실만 간단히 적어 올리던 글)를 보내 왔기로 보니, 분통함을 이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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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7일 (갑오)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양력 7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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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안개가 캄캄하여 눈앞을 분간할 수 없는데, 저녁내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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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을미) 종일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5일]
588
미조항첨사(金勝龍)가 와서 봤다. 저녁에 상주포권관이 와서 봤다.
589
저녁에 보성현감이 돌아갔다.
590
5월 19일 (병신) 맑다. 장마비가 잠깐 걷혔다. [양력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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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몹시 상쾌했다. 아들 회와 면과 계집 종 등이 돌아갔다. 그때때, 바람이 순탄치 않았다. 이날 송희립과 회가 같이 착량에 가서 노루를 잡을 적에 비바람이 몹시 일고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초저녁에 돌아왔는데도 활짝 걷히지 않았다.
592
5월 20일 (정유) 비가 오고 또 거센 바람이 조금 그 쳤다. [양력 7월 7일]
593
웅천현감(이운룡)과 소비포권관(이영남)이 와서 봤다.
594
온종일 홀로 앉았으니, 온갖 생각이 가슴을 치민다. 호남의 관찰사들이 나라를 저버리는 것에 더 많이 유감스럽다.
595
5월 21일 (무술)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8일]
596
웅천현감 ∙ 소비포권관이 와서 종정도를 했다.
597
거제 장문포에서 적에게 사로잡혔던 변사안(卞師顔)이 도망쳐 와서 하는 말이, 적의 형세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고 했다.
598
센 바람이 밤낮으로 불었다.
599
5월 22일 (기해) 비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7월 9일]
600
오는 29일이 장모의 제삿날이다. 아들 회와 면을 내보냈다. 계집 종들도 내 보냈다.
601
순찰사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또 순변사에게도 편지를 써 보냈다. 황득중(黃得中) ∙ 박주하(朴注河) ∙ 오수(吳水) 등은 격군을 잡아 올 일로 내 보냈다.
602
5월 23일 (경자) 비왔다. [양력 7월 10일]
603
웅천현감 ∙ 소비포권관이 왔다.
604
저녁나절에 해남현감(위대기)이 와서 술과 안주를 바치므로, 충청수사(李純信)를 청하여 왔다. 밤 열 시쯤에 헤어졌다.
605
5월 24일 (신축) 잠시 맑다가 저녁에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1일]
606
웅천 ∙ 소비포가 와서 종정도를 놀았다. 해남도 왔다.
607
오후에 우수사와 충청수사가 와서 종일 이야기했다.
608
구사직(具思稷)에 대한 장계를 가져 갔던 진무가 들어왔다.
609
조카 해가 들어왔다.
610
5월 25일 (임인) 비가 내렸다. [양력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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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사가 와서 이야기하고서 돌아갔다. 소비포도 왔다가 밤이 깊어서야 돌아갔다.
612
비가 조금도 그치지 않으니, 전쟁하는 군사들의 마음이야 오죽 답답하랴.
613
조카 해가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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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계묘) 걷히기도 하고 비오기도 하였다.. [양력 7월 13일]
615
마루에 앉았는데 서쪽 벽이 무너져 있었다. 바라지 창으로 들어 오는 바람을 다시 쐬니 기분을 맑게 하여 무척 좋았다. 과녁판을 정자 앞으로 옮겨 놓았다.
616
오늘 이인원(李仁元)과 토병 스무세 명을 본영으로 보내어 보리를 거두어 들이라고 일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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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7일 (갑진) 맑다가 비오기더 했다. [양력 7월 14일]
618
사도첨사가 충청수사 ∙ 발포만호 ∙ 여도만호 ∙ 녹도만호와 함께 활을 쏘았다. 이 날 소비포권관이 누워서 앓았다고 했다.
619
5월 28일 (을사) 잠깐 개이다. [양력 7월 15일]
620
사도첨사 ∙ 여도만호가 와서 활을 쏘겠다고 여쭈었다. 그래서 우수사 ∙ 충청수사를 청해 와서 활쏘고, 취하여 종일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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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4호선의 부정사실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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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9일 (병오) 아침에 비오다가 저녁나절에 개엿다. [양력 7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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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의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624
저녁에 진도군수(金萬壽)가 아뢰고 돌아갔다. 웅천현감(李雲龍) ∙ 거제현령(安衛) ∙ 적량첨사(高汝友)가 와서 보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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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녁에 정사립(鄭思立)이 보고하는데,
626
"남해 사람이 배를 가지고 와서 순천 격군을 싣고 간다"
627
고 했다. 그래서 잡아서 가두었다.
628
5월 30일 (정미) 흐리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7월 17일]
629
아침에 왜놈들과 도망가자고 꾄 광양 1호선 군사와 경상도 보 자기 세 명을 처벌했다.
630
경상우후가 와서 봤다. 충청수사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