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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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과일과 달리 수박은 여럿이 어울려 먹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함께 먹었던 가족이나 이웃에 대한 추억도 떠올리게 마련이지요.
예전에는 오늘날과 달리 과일들이 그리 달지도 않았고, 이를 저장해 둘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사들고 온 얼음위에 바늘을 세워놓고 조심 스레 망치질해 잘게 깨고, 수박 속을 숟가락 으로 긁고 설탕(명절선물로 으뜸!!)을 보태 화채를 만들어 먹었지요.
주인집, 또는 문간방 세입자에게도 한 그릇씩 나누어 주었고, 반복되는 피난길 고생담이나 귀신 이야기들도 곁들였고 말입니다.
어느 집을 막론하고 더러는 밥 대신 죽을 쑤거나, 칼로 썬 조각 수박 대신 화채를 만들어 나눠 먹었습니다.
이는 한정된 재료로 보다 많은 식구를 먹이려는 부모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은 건 그로 부터 몇십년이 흐른 후였습니다.
24.7.16.화.
수박/안도현
낡은 슬레이트 지붕 너머
해는 뒤뚱 기울고
일 나갔던 개똥이네 검은 아버지는
휘영청 수박 한 덩이를 사들고 돌아오시었다
막노동으로 뜨거워진 아버지 같은 수박을
개똥이가 자지 달랑거리며 목욕하던 고무 다라이에
둥둥 띄워놓고
찬물에 한술 뚝딱 식은 저녁밥 말아먹고
돌아서서 질탕스레 트림 한번 하고 나서
어머니는 내일 먹자 하시지만 개똥이는 수박을
입에 넣으면 시원하고 달콤한 것을
씨앗을 골라 뱉지 않아도 똥을 누면 그냥 쑥 빠져나오는 것을
자꾸 먹고 싶어 통통거리는 것이었다
먹고 없으면 또 사먹지 하시는 아버지는
선풍기 틀어둔 채 어느새 잠이 들고
귀가 찌그러진 쟁반 위에 부엌칼 옆에 식구들 사이에
그놈은 떡개구리같이 와서
개똥이네 둥글디 둥근 목숨들도 은근히 둘러앉아 기다리는데
마침내 수박은 쩍
벌겋게 부끄럼도 없이 갈라져 속살을 내보이는데
보름달을 반달로 반달을 그믐달로 그믐달을
까만 씨앗 같은 어둠으로
할머니는 우물우물 어머니는 가만가만 누나는 조금조금
개똥이는 와그작와그작 먹기 시작하였다
턱에 붉은 물이 흐르도록 배꼽이 없어지도록 먹고
마지막 머뭇거리는 한 조각까지 먹고
꿈같이 잠자리에 누운 개똥이는
어느 때인가 사타구니 휘감는 오줌발소리를 들으며
누군가 흔들어 깨우는데 두 눈을 꽉 감고 있었다
4:27 - https://m.youtube.com/watch?v=pdSTXL39S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