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윤행원 | 날짜 : 11-05-18 14:10 조회 : 1864 |
| | | 작가의 고향을 찾아서 얼마 전부터 가보기로 한 『솔수펑이 사람들』 김선화 작가의 고향을 찾기로 했다. 언제나 자잘한 스케줄로 꽉 짜인 일정이었는데 마침 며칠간의 한가한 여유가 생겨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이 구경, 저 구경 여행 삼아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계룡산 신도안의 가파른 고개를 넘게 된다.
신도안으로 들어서니 우선 눈에 띄는 기념탑이 보인다. 일본의 잔혹한 압제에 준열하게 항거를 하다 희생된 사람들의 애국혼(愛國魂)이 깃든 광복단결사대 기념탑이다. 충청애국선열들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일제치하 광복단결사대 발원지인 이곳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고 큰나무그늘 의자에 앉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솔수펑이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대충 읽으면서 내가 돌아보고 싶은 지명을 메모했다.
중봉산 뒤에 있는 충렬사, 솔수펑이, 훌령골 산제당, 호남선 철도가 보이는 산의 계단식 밭, 주인공 미선이는 김선화 작가일 테고, 재민, 재호, 등의 일곱 남동생들, 듬직한 언니,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와 도인(道人) 공부를 하는 아버지 그리고 동네사람들….
신도안과 연산의 갈림길인 양정고개, 두계역, 대적골, 놋적골, 장자터, 시루봉 줄기, 신도안의 동문에 속하는 동문다리, 아들바위, 훌령골 쌍여우 언덕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한 곳은 세 남동생들과 오줌줄기 시합을 하는 밭 언덕배기다. 남자애들은 서서 오줌줄기를 뻗치는데 여자인 자기는 언덕위에서 오줌줄기를 뻗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이 언덕이 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런 호기심의 발로다.
작가의 글은 섬세하고 촘촘하다. 그리고 자기답게 살겠다는 결기가 굳다. 자전적인 소설이지만 문학적인 향기가 가득하고 스토리가 재미있다. 저자의 치열한 삶과 문재(文才)가 번뜩이는 작품이다.
저자가 태어난 솔수펑이는 이미 계룡산 삼군본부에 징발당하고 군사체육시설 잔디밭이 되어 가 볼 수가 없는 곳이었다. 우선 신도안을 한 바퀴 돌다시피 하고는 계룡시청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지도와 정보를 얻을까 해서다. 민원담당 직원에게 부탁을 하니 사무실 이곳저곳을 뒤지더니 지도 두 장을 가지고 온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니 휴게실에는 민원인의 피로를 풀어주는 고급 안마의자가 세대나 기다리고 있다. 의자에 앉아 온몸 마사지를 즐기면서 잠간동안 쌓인 피로를 풀었다.
나는 군인아파트가 즐비하게 늘어선 신도안 면사무소로 갔다. 담당 직원한테 자세한 면 지도를 부탁하였더니 이번에 새로 나온 도로명과 주소가 상세하게 박힌 큰 지도책 하나를 준다. 가져도 되느냐고 물으니 가져가도 된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용남초등학교, 용남 중, 고등학교를 돌아봤다. 학교가 파했는지 학생들로 거리가 가득하다. 작가가 다닌 초등학교도 이 언저리라 했는데 지지리도 어려웠던 그때와는 달리 하나같이 허여멀건 잘 생긴 얼굴에다 몸차림이 모두가 넉넉해 보인다. 학생들은 재잘재잘 생기가 넘치고 세상은 많이도 변해서 모두가 풍족하고 즐겁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을 하나하나 살펴 볼 참인데 아직은 막막하다. 서울에 있는 저자에게 전화를 하니 어떤 백일장 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중이라고 하면서 깜짝 놀란다. 전화로 여기저기를 가르쳐 주지만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내 차엔 아직도 내비게이션 장치를 하지 않아 길이 더욱 어둡다. 작가의 동창친구가 유성구 세동1통의 통장을 맡고 있는데 그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세동엔 김선화 작가의 시비(詩碑)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터다. 그곳은 솔수펑이라 지칭되는 그녀의 고향마을 안터에서 뒷산 너머 마을인데, 그곳 사람들의 정서를 노래한 시 ‘내 고향 상시동’이 나와 마을사람들에 의해 시비가 세워졌다는 것이다. 시비 세우는 날은 온 마을의 큰잔치가 대단했음은 물론이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이미 저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는지 말이 고분고분하다. 지금은 대전에 나가 볼 일을 보고 있어 마을에는 없다면서 우선 자기 동네를 찾는 길을 가르쳐 준다. 그래도 가는 길이 알쏭달쏭하다.
우선 괴목정을 가보라는 저자의 말이 있어 그 곳을 먼저 찾느라 고개를 넘나들며 왔다 갔다 하는데 쉼터에 앉아있는 어느 아주머니에게 물어 겨우 찾았다. 알고 보니 길가 버스정류장 이름에 괴목정이라고 붙어있다. 괴목정이란 이름은 나에게는 친숙한 지명(地名)이다. 내 고향 합천에도 괴목정이란 지명이 있다. 1597년(丁酉)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의 몸으로 초계에 있는 권율장군을 찾아오면서 잠깐 쉬고 있었던 곳이다.
어느새 해도 뉘엿해서 저자의 고향마을은 다음날 찾아보기로 하고 계룡산 동학사 입구로 갔다. 여기서 일박을 할 참이다. 숲 속 경치 좋은 곳 아담한 모텔에 여장을 풀고는 샤워를 하니 산뜻한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계룡산자락의 마을을 한 바퀴 걸었다. 계룡산의 밤은 별다른 맛이다. 밤의 숲 속은 어둡고 그윽한데 환하게 비추는 둥근달은 여행운치를 더욱 돋운다. 단체 여행객들의 왁자지껄 노래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곤대는 정다움, 펜션에 머무는 가족들의 즐거운 얼굴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에 계룡산의 밤은 희열로 가득 익어간다.
숲에 가면 사람들은 느긋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숲의 선물이다. 모기장이 쳐진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 자다가도 일어나면 무성하게 우거진 나무에서 나오는 피톤치드가 은은하다. 계룡산의 충만한 에너지가 온 몸을 가득 채운다. 울창한 숲 속 쾌적한 하룻밤은 아름답고 상쾌한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영혼이 깃든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 젖은 하루가 새삼 고마운 날이었다.
2011년5월18일 석계 |
| 임병식 | 11-05-18 17:00 | | 석계선생님께서 그예 대전을 다녀오셨군요. 김선화선생과는 잘 아시는것 같습니다. 저도 그분이 글을 근성있게 잘 쓰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노래비가 새워져 있다니 기념물을 남긴 셈이군요. 선생님의 기행수필로는 이글이 일급인가 합니다. | |
| | 윤행원 | 11-05-18 22:03 | | 임병식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침 며칠간의 여유가 있어 여행삼아 계룡산에 다녀왔습니다. 여행이 하고싶을땐 청개구리처럼 어디로 뛸지 본인도 모르는체 일단 집을 나옵니다만 어떤 목적이 있으면 그것 또한 괜찮은 여행이 됩니다. 추켜주시는 임 선생님의 고운 심성이 고맙습니다. | |
| | 임병문 | 11-05-18 18:56 | | 윤행원 선생님, 글을 쓰시는 분으로서 글의 고향을 찾는 여유와 즐거움, 풍류가 느껴지는 호방함. 그 아름다운 客情에 어찌 한 잔 술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정말 좋습니다. 선생님에게서 느껴지는 선비의 자취가 마냥 부럽습니다. | |
| | 윤행원 | 11-05-18 22:08 | | 그날 계룡산의 밤에 몇몇 친구와 같이 술을 마셨드라면 풍류와 운치가 더욱 두드려졌을 것입니다..ㅎㅎ.. 미리 부르지 않아서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임병문 선생님, 감사합니다. | |
| | 이방주 | 11-05-18 19:37 | | 윤행원 선생님
부러운 여행을 하셨습니다. 작가의 고향을 찾아 작품을 음미하는 일은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바로 제게 숙제를 주신 기분입니다. 그리고 넉넉한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11-05-18 22:12 | | 이방주 선생님, 감사합니다. 어떤 목적을 세우고 여행을 한다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어떤 작가의 작품을 테마로 삼고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도 그것 또한 보람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아서 한 번 다녀왔습니다. | |
| | 김용순 | 11-05-18 19:38 | | 윤행원 선생님, 작품의 현장을 혼자서 찾아가시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혹시 댁에서는 혼자 가시게 내버려 둡니까? 신입회원 환영하여 주시고 격려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윤행원 | 11-05-18 22:19 | | 김용순 선생님, 반갑습니다. 여행은 혼자해도 좋고 여럿이서 해도 또한 좋습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리기도 합니다. 차가 뜨음한 이른 새벽의 고속도로 주행..그것 또한 해 볼만 합니다. 이러다 보니 아무도 못 말립니다...ㅉㅉㅉ... 집사람은 내 하는대로 그냥 둡니다...하하하..... | |
| | 강승택 | 11-05-18 23:34 | | 윤선생님, 유감천만입니다. 어찌 턱 밑까지 오셨다 그냥 가셨단 말입니까? '솔수펑이 사람들'이 어떠한 내용이기에 윤선생님의 방랑벽을 을 부추겼는지 도 궁금하고요. 그나저나 계룡산 자락의 하룻밤이 근사했을 것같아 배가 아픕니다. | |
| | 윤행원 | 11-05-19 08:40 | | 강승택 선생님, 반갑습니다. 안 그래도 그날밤 좋은 술이 있겠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더욱 화려한 밤이 될 것 같아서 술배짱이 맡는 조성원 선생님과 강승택 선생님을 부르고싶었습니다. 미리 연락을 못했던게 아쉬웠습니다..하하... | |
| | 이진화 | 11-05-19 01:48 | | 윤행원 선생님, 작가의 고향을 찾아 홀로 여행을 하셨군요. 혼자 여행을 하면 다소 외로워도 색다른 맛이 있어서 좋습니다. 하룻길 출장이긴 하지만 열차를 타고 다니다 보니 계절 바뀌는 것이 느껴지고 산, 들, 강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선생님 글을 따라서 계룡산에 잘 다녀왔습니다. ㅎㅎ..^^ | |
| | 윤행원 | 11-05-19 08:54 | | 친애하는 이진화 선생님, 언제나 반갑습니다. 저자한테 이 글을 보냈더니 유쾌한 답장이 왔습니다
_수고하셨습니다. 제 글을, 제 책을, 제 고향을 다뤄서가 아니라 이 정도면 훌륭한 문학답사기가 되었습니다. 힘있는 글 하나 낳으셨습니다. 충만한 선생님의 기운이 넘실거립니다. 풍류의 끼가 넘치시는 선생님이 아니라면 누가 이리 즉흥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요. (후략)_
이진화 선생님, 살다보면 주위 모든 사람들이 고마워집니다. 감사합니다. | |
| | 최복희 | 11-05-19 09:08 | | 윤행원 선생님 글을 읽으며 선생님은 삶을 멋스럽게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솔수펑이 사람들'이 당장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네요. 홀로 유유자적 뜻 있는 여행을 즐기시는 선생님 부럽습니다. ㅎ 기행문이 일품이네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 |
| | 윤행원 | 11-05-19 23:06 | | 최복희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언제나 이렇게 따뜻한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선생님의 열성으로 한국수필작가회가 더욱 활성화 되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 |
| | 이희순 | 11-05-19 09:52 | | 희수에도 젊은이 못지 않은 호연지기를 마음껏 발산하시며 주유천하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후학은 선생님의 호탕하신 성품과 자유분방하심을 언제쯤 물려받을 수 있을는지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 |
| | 윤행원 | 11-05-19 23:11 | | 이희순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번 광주문학기행 할 때 바로 옆좌석에 계시는 것도 모르고 이희순 선생님을 찾았으니 임병식 선생님이 얼마나 속으로 웃었겠습니까...ㅎㅎ..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옵니다. 언제나 좋은 우정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 |
| | 박원명화 | 11-05-20 10:03 | | 홀로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멋스러움! 부럽습니다. '솔수펑' 이라는 마을에 왠지 모를 정감이 갑니다. 동학사를 가셨다니~마치 김삿갓을 연상케 하는 윤선생님의 기행수필 잘 읽었습니다. 대전에 살때 그곳에 하이킹을 다니곤 했었지요. 작년, 형제들과 어울려 동학사근처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 찬이슬을 맞으며 동학사 길을 걸어올라가던 기억이 새삼 떠올려집니다. | |
| | 김자인 | 11-05-20 12:35 | | 유유자적 작가의 고향을 찾아다니시는 윤행원 선생님, 선생님 모습에서 작가의 정신이 물씬 풍겨옵니다. 마음 속에 풍성한 추억을 만들고 사시니 부럽습니다. 선생님, | |
| | 정진철 | 11-06-01 11:37 | |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정열을 느끼며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좋은글 많이 써주시길 | |
| | 일만성철용 | 11-06-18 13:18 | | 글에 댓글이 하두 많아 가이 작가회의 석계 선생의 위치를 알만합니다. 작가가 작가의 고향을 찾았으니 그 작가도 영광일 것입니다. 윤 작가도 문인비 하나 세우는 꿈을 꾸어 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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