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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21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떠남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이 땅의 사고에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십니다. 누구든지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님을 믿을 때, 생명을 얻습니다. 공주야! 무지와 완고함은 스스로 구원받을 기회를 막는다. 유대인들은 의로움을 자처하고 구원을 확신했으나, 실상은 죄 가운데 죽을 운명이었다. 자신들의 영적 상태를 알지 못하는 무지 속에 헛된 기대와 욕심으로 가득했다.
Jews do not understand the meaning of Jesus' departure, because he was still tied to the thought of the earth. But Jesus returns to his father through the cross, opening his way for salvation. When anyone believes in Jesus from heaven, they get life. Princess! Ignorance and obstinacy prevent the opportunity to be saved for themselves. The Jews claimed righteousness and were certain of salvation, but in reality, they were destined to die in sin. They were filled with false expectations and greed in ignorance of their spiritual s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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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벋고 구원에 이를 길은 어디에 있는가?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어 가는 곳에 회개 하지 않는 유대인 죄인들은 올 수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그들이 이 말 뜻을 이해할 리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예수가 자결할 것을 예고하셨다고 오해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예수는 자신이 죽을 줄 아셨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도 아셨기에 그 죽음을 피하지 않았고 죽음이 기다리는 길로 가실 것이니 자결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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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죽음은 이기적인 자결이 아니라 이타적인 희생적 죽음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소속이 다르기 때문이다. 땅에 속하였고 땅에서 난 유대인들이 위에 속하였고 위에서 난 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예수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말씀대로 살아오신 분이기에 유대인들을 얼마든지 판단할 권한이 있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보고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사셨다.
However, it was not a selfish self determination, but an altruistic, sacrificial death. Jews did not understand what Jesus said because they belonged to a different group. It is natural that the Jews who belonged to the earth and came from the earth did not understand what Jesus said. Jesus had the authority to judge the Jews because he had conveyed the word of God from the beginning and lived according to the word, but he lived with what he saw and heard about God as his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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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속한 자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하지도 않으셨고, 땅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살지도 않으셨다. ‘처음부터’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해왔다. 아직까지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마저 예수를 잘 모른다. 예수가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뒤에서라야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대리인(내가 그다), 즉 메시아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He did not convey what those who belonged to the earth wanted to hear, nor did he live to strengthen his position on the earth. From the beginning, he has created the world by the word of God. Not only Jews but also disciples do not know Jesus well. Only after Jesus died on the cross, resurrected, and ascended to heaven will you know that Jesus is the agent of God (I am him), the messi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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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너히가 만일 내가 그인 줄(에고 에이미)믿지 아니하면"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첫 출애굽의 하나님이신 "나는 스스로 있는지" 여호와와의 관계를 드러내신다. 이제 예수님 자신을 통해 새 출애굽이 일어나고 새로운 나라가 시작될 것임을 알리신 것이다. 에수님은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십자가와 부활을 예언하신다. "또한 자신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한다"고 하심으로 이 모든 일이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한 결과임을 밝히신다.
Jesus reveals his relationship with Jehovah, the God of the first Exodus, "Am I on my own" by saying, "If you don't believe that I'm him (Ego Amy)." Now Jesus has announced through himself that a new Exodus will arise and a new country will begin. Essu foretells the cross and resurrection, saying, "After you have raised your son, you will know that I'm him." He also reveals that all this is the result of complete obedience to his father's will, saying, "Also, he does nothing on his own and says what his father taught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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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였고, 예수를 보낸 하나님께서 예수를 혼자 두지 않고 늘 동행 하셨고, 당신이 기뻐하시는 일을 예수가 하시도록 도우셨다. 예수의 권위 있는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다. 언어는 단지 정보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그 안에 세계관을 담고 있고 또 인격이 담겨 있다. 땅의 관심과 세계관만 갖고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마씀과 그분이 계시하시는 놀라운 계획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는 어디에 속해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의 뜻을 온전하게 따르고 있는가?
He only conveyed God's words, and God who sent Jesus always accompanied him without leaving him alone, and helped him do what you were pleased with. Jesus's authoritative words lead many to believe. Language is not just a means of communicating information, but also contains a worldview and character in it. With only the interest and worldview of the earth, Jews could not understand Jesus's words and the amazing plans he had. Where do I belong? Do we today fully follow the will of our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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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예수님(21-24)
a.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 갈 수 없다:21-22
b.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는다.:23-24
아버지의 말씀대로 증언하시는 예수님(25-27)
a.처음부터 말씀하시는 예수님:25
b.아버지께 보고 들은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26-27
죽음을 더 분명하게 게시하시는 예수님(28-30)
a.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말씀하시는 예수님:28
b.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예수님: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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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르시되(21a)
내가 가리니(21b)
너희가 나를 찾다가(21c)
너희 죄 가운데서(21d)
죽겠고(21e)
나의 가는 곳에는(21f)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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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가로되(22a)
저가(22b)
나의 가는 곳에는 (22c)
너희가(22d)
오지 못하리라 하니(22e)
저가(22f)
자결 하려는가(2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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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23a)
너희는 아래서 났고(23b)
나는 위에서 났으며(23c)
너희는(23d)
이 세상에 속하였고(23e)
나는 이 세상에(23f)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2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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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내가(24a)
너희에게 말하기를(24b)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24c)
죽으리라 하였노라(24d)
너희가 만일(24e)
내가 그 인줄(24f)
믿지 아니하면(24g)
너희 죄 가운데서924h)
죽으리라(24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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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말하되(25a)
네가 누구냐(25b)
예수께서 가라사대(25c)
나는 처음부터(25d)
너희에게 말하여 온(25e)
자니라(2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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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희를 대하여(26a)
말하고(26b)
판단할 것이 많으나(26c)
나를 보내신 이가(26d)
참되시매(26e)
내가 그에게 들은(26f)
그것을(26g)
세상에게 말하노라(26h)
하시되(26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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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27a)
아버지를 가리켜(27b)
말씀하신 줄을(27c)
깨닫지 못하더라(2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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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28a)
예수께서 가라사대(28b)
너희는(28c)
인자를 든 후에(28d)
내가 그인 줄을 알고(28e)
또 내가(28f)
스스로 아무 것도(28g)
하지 아니하고(28h)
오직 아버지께서(28i)
가르치신 대로(28j)
이런 것을(28k)
말하는 줄도 알리라(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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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신 이가(29a)
나와 함께 하시도다(29b)
내가 항상(29c)
그의 기뻐하시는(29d)
일을 행하므로(29e)
나를 혼자 두지(29f)
아니하셨느니라(2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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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하시매(30a)
많은 사람이 믿더라(3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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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예수님_Jesus on his way back to his father._
자신을 계시하시는 예수님_Jesus who is self-confident._
아버지께 순종하시는 예수님_Jesus, obedient to his father.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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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정체성을 바로 알 때 죄로부터 구원받고 아버지를 알고 참 생명에 이르게 되는 줄 아나이다. 상황이 어려워도 계속해서 아버지를 계시하시며 일관된 길을 가셨던 주님처럼 위에속한 부활의 삶을 살기를 다짐합니다. 제가 말씀 묵상을 하면서 계속 말씀하셔도 제 마음의 완악과 우둔 때문에 못 알아듣는 일이 없게 도와주시고 저도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만 하게 하소서.
I know that when I know Jesus' identity right away, I will be saved from sin, know my father, and reach true life. I pledge to live a life of resurrection above the Lord, who continued to have my father and went on a consistent path even if the situation was difficult. Even if I keep talking while meditating on my words, please help me not to understand because of the complete evil and stupidity of my heart, and let me imitate the Lord and only do what makes God happy.
2026.2.26.thu. Clay
신학 비평//
1) 본문 핵심 요약: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 이해될 수 없는 말씀
요 8:21에서 예수는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고 선언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를 자결 암시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본문이 드러내는 진짜 비극은 ‘오해’가 아니라 **존재의 차이에서 오는 인식의 단절입니다. 이 장면의 긴장은 단순한 종교적 무지라기보다 존재 방식의 차이 → 인식 능력의 차이라는 철학적 구조를 갖습니다. 너희는 아래서 났다-나는 위에서 났다-너희는 이 세상에 속했다-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이 문장은 신학 이전에 존재론적 분류입니다.
2) 존재론: “속함(belonging)”이 인식 능력을 결정한다
이 본문은 죄를 도덕적 범죄보다 먼저 존재 상태로 규정합니다. 보통 우리는 죄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잘못된 행동 → 죄 올바른 행동 → 의그러나 요한복음의 논리는 반대입니다. > 잘못된 존재 상태 → 잘못된 인식 → 잘못된 행동 즉 죄 = 도덕 문제 이전에 존재 문제 유대인들이 예수를 이해 못한 이유는 지식 부족이 아니라 존재의 위치 때문입니다. a. 아래서 남 | 세계 내 존재 (immanence) b. 위에서 남 | 초월적 존재 (transcendence) 인간은 세계 안에서 생각합니다. 예수는 세계 바깥에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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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간은 예수의 죽음을 들으면 이렇게 해석합니다. 자결인가? 정치적 실패인가? 비극인가? 그러나 예수의 죽음은 인간 범주에 속하지 않는 사건입니다. 인간은 십자가를 이해할 언어 자체가 없음 이것이 요한복음의 급진성입니다.
3) 인식론: 믿음은 ‘정보 동의’가 아니라 ‘존재 이동’이다
예수는 말합니다.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죽으리라” 여기서 믿음은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헬라어 “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는 단순한 자기소개가 아니라 출애굽기 하나님의 이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의 반복입니다. 즉 믿음의 내용은 이것입니다. 예수 = 하나님 자신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왜 믿지 못하는가? 요한복음dms 존재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믿음은 epistemology(인식론)가 아니라 ontology(존재론)사건입니다. 믿음은 새로운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의 이동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는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처벌이 아니라 상태 설명입니다.(물고기는 물을 떠나면 죽는다-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다) 죽음은 형벌이 아니라 존재적 결과입니다.
4) 십자가: 자결인가, 희생인가 — 자유의 역설
유대인들의 오해는 흥미롭게도 절반의 진실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결하려는가?” 철학적으로 보면 놀라운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실제로 자발적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차이는 동기입니다. a. 자결은 자기 중심적 삶의 포기 이며 절망이지만 b. 십자가는 타자 중심적 생명의 제공이며 순종입니다. 이 장면은 자유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진짜 자유란 무엇인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아버지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자유는 자율이 아니라 완전한 일치입니다.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현대인은 이 문장을 듣고 자유 상실을 느끼지만 요한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이것이 가장 자유로운 존재 상태다 > 왜냐하면 존재 목적과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5) 언어 철학: 왜 예수의 말은 이해되지 않는가?
당신의 묵상에서 매우 중요한 통찰이 등장합니다. “언어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세계관 전달이다.” 맞습니다. 요한복음은 언어철학적 복음서입니다. 예수의 말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온 언어입니다. 예컨데 죽음이 끝이지만 출발입니다. 들림은 처형이나 영광입니다. 떠남은 실패로 보이지만 귀환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예수는 같은 언어로 대화하지만 다른 세계에서 말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비극입니다.
6) 십자가 이후에야 이해된다 — 시간의 신학
예수는 결정적인 말을 합니다. “인자를 든 후에야 알리라” 이 말은 매우 철학적입니다. 진리는 <사건 이후에만 이해된다> 이는 해석학적 구조입니다(사건 → 경험 → 이해) 제자들도 십자가 전에는 이해 못합니다. 부활 후에야 이해합니다. 즉 믿음은 선행 인식이 아니라 사건 이후의 해석입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가?” 우리는 여전히 성공 언어-현실 언어-세상 언어로 예수를 해석하려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면 여전히 묻습니다. 왜 고난인가? 왜 실패인가? 왜 고통인가? 그러나 “위에서 난 존재”의 언어는 다릅니다. 구원은 ‘위로 올라감’이 아니라 ‘위가 내려옴’입니다 인간 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 하나님에게 올라감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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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고난 → 순종
b.실패 → 구원
c.죽음 → 생명
7) 구원은 ‘위로 올라감’이 아니라 ‘위가 내려옴’이다
인간 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 → 하나님에게 올라감 그러나 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 → 인간에게 내려옴 그래서 질문이 바뀝니다. “어떻게 올라갈까?” 가 아니라 “누가 내려왔는가?” 요 8:21은 선언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상승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강 사건이다. 죄란 도덕 실패 이전에 존재의 위치이며 믿음이란 지식 이전에 존재의 이동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묻습니다. 나는 여전히 아래의 언어로 예수를 해석하고 있는가, 아니면 위에서 온 언어를 배우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