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굳건해진 식민통치...
희망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던가 하면
희망을 찾아 간도로 떠나는 사람도 있었고
새로운 희망을 쫓아 제국의 편에 선 사람도 있었다.
제국의 신도시가 된 한양, 경성은
어느새
새로운 희망을 쫓아 제국의 편에 선 사람들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랭이들 하며
깊은곳에서 남몰래 희망을 속삭이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홀로 남겨진 남대문이 되어버린 숭례문 옆을 지나 큰 길로 나아가면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날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따금 경성역에 나가면
새로 칠해진 페인트와 새로 제작된 1등 대기실의 샹드리에
반질반질하게 새것 티가 나는 의자
머리를 잠시만 올려보면 하얀 투명 유리에 제국의 영원무궁을 기리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긴 여행을 앞두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그리고 이 경성역에는 큰 자랑이 있었다.
경성역 커피숍....
외지 최고의 커피숍이다...
언제나 끊이지 않는 부드러운 커피냄새가... 그들만의 태평천하를 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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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신도시.. 경성의 Sky Line
북악산에서 광화문으로 시작되는 한양의 skyline이었다면
북악산에서 총독부로 끝나는 것이 경성의 skyline이었다.
조선땅에 동양에서 가장 큰 석조건물을 세운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식민통치에 대한 당위성 확보와
제 2세대들에 대한 쇠뇌!
그것이 조선 총독부 스카이 라인의 숨겨진 뜻이었다.
경성엔 어느덧 외세의 어두운 손길이라고 관심밖에 있었던 전차가
없으면 안되는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변해있었고
어느새 경성시민에게는 한글보다 내지어가 훨씬 익숙해져 있었다.
경성과 조선땅의 새로운 지배자는 일본의 천황이 아니었다.
새로 군림한 왕은 조선총독이었다.
조선총독은 천황이 직접 임명하는 자리로 일제가 얼마나 조선통치에 열의를 바쳤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통치는 내지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오직 독자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자리! 그곳이 조선총독이었다.
조선총독은 사실 내지 총리보다 위의 자리에 있었다.
오직 그 위에는 천황만이 존재했으니까.....
그의 관저는 경복궁 뒤 옛 경복궁 후원자리에 있었다.
후에 경무대로 바뀌어 불려지게 될 그 곳.... 그곳이 조선 총독 관저였다.
아마... 마사오군이 그곳에 청와대를 세운것도 큰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조선 총독이라는 말이 더 익숙했으니까...
어느새 경성의 거리에는 식민풍건축물들이 곳곳에 들어섰다.
마치 내지의 수도를 보는것 같다.
단지 패망한 왕조의 유물인 궁궐들만이 바쁜 경성 제국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주고 있었다.
경성 시민들은
내지인을 보는게 더이상 거북하지 않았다.
경성에는 무지랭이 아니면 새 희망으로 들뜬 사람들만이 존재했으니까...
이제 자주국권의 희망을 논하는 사람들을 보려면
종로경찰서에 가봐야 했다.
천하는 태평했다. 길거리엔 덴샤가 다니고... 구루마가 다니고... 내지인도 보이고...
가끔 자전거를 가지고 종로를 활보해 보는것도 좋았다.
종로는 말 그대로 제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높이 솟은 건물들과 조선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인 화신백화점도 경성의 자랑이었다.
화신백화점 꼭대기의 전광판은 이곳 백화점의 자랑이다.
동양 최초로 세워진 전광판이란다. 어느새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은 모두 화신백화점을 보고싶어했다.
하얀 건물 안에는 없는게 없더란다.. 그래서 백화점이란다...
얼마전 계속되던 과거 체제의 부활을 노리는 제국 반역자들의 테러로
몇 내지인들이 죽어나가고 새 희망에 들떠 제국을 칭송한 조선인이 죽어나갔다.
다행히 헌병들과 종로경찰서 고등계 주임이 와서 체포했다는데
요즘 경성시민들은 이런 소규모 테러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다.
경성에 지하집단이 존재한다는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도 이젠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화신백화점을 지나 파고다 공원에 들어섰다.
경성의 유명한 공원이다.
가끔 이곳에 들러 시원한 바람을 쇠는것도 나른한 일상의 오후를 보내는 좋은 방법이다.
이 공원 옆 골목길에는 맛있는 설렁탕 집이 있다.
내일 점심에는 거기서 설렁탕을 먹는게 좋겠다.
얼마전 발이 되어주는 자전거가 고장난 적이 있었다.
난 으레 가는곳이 있다.
그곳 주인이 독립운동가라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는 친구가.. 그사람은 자전거 파이프 빈 공간에 돈을 넣어 간도로 보낸단다.
그냥 못들은걸로 하기로 한다. 이땅의 주인이 누가되던 경성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신경쓰지 않았다.
다시 이씨가 통치권을 거머쥔다 해도 바뀌는건 없으니까....
그러나 제국물좀 먹었다는 사람들은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그들에게 내지란 희망의 장소였고 내지인이란 따라가지만 따라갈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런 그들에게 이들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리라....
조선의 신여성들이 도로를 활보한다.
그들을 보며 혀를 차는 노인들은 마음 깊은곳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있을것이다.
나라가 바로섰었을땐 어림도 없었지 하는 생각을 하고있음에 틀림없다.
오늘은 여기서 더 멀리 가보기로 한다.
동대문, 청량리, 의정부, 저 멀리 신의주, 간도까지 가보고 싶지만
이 자전거로는 택도 없다.
그 젊은이의 기름뭍은 돈처럼 파이프 안에 넣어져 간도로 간다?
종로 경찰서에 들락날락 거려야 될 생각이라는 생각에 그만두기로 한다.
그냥 쓰윽 종묘를 지나친다.
망국의 한이 어린 이런 기분나쁜곳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저 북쪽으로는 아직도 이 왕가의 사람들이 살고있는 창덕궁이 있다.
요즘은 그들의 차도, 얼굴도 본적이 없다.
그들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거대한 제국의 수도인 경성의 바람이 차갑게 볼을 때릴때마다
그는 지금이 천하 태평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동대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더 나아갈 순 없다.
이정도의 일탈이면 충분하다.
더이상의 일탈은 뭔지 모를 망설임에 주저하게 된다.
저 멀리 검은 옷의 순사가 어떤 사람을 붙들고 있다.
경성 시민들은 어느새 이것도 제국의 치안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라는 생각에 이르러 있었다.
자전거 헤드라이트는 다시 종로통을 향해있었다.
모든것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고
그 또한 그 구성원의 하나였다.
찰리 채플린처럼 그 구성원에서 빠져나오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천하는 태평했기 때문에....
제국 소시민의 생활이다.
어느새 비판할 능력마저 빼았겨 버린 사람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정신마저 사라져버린 사람들....
그들이 경성의 시민들이었다.
비록 깊은곳에서 작은 희망의 속삭임이 들려오고 있었지만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청각을 가진 사람도 없었고
그 희망이 실현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난데없는 이른아침의 방송으로
경성이 극도의 혼란에 빠진 가운데
천천히 빨간 미트볼 기는 내려졌다.
그러나 미트볼 깃발 대신 미국의 깃발이 올라가게 된것은
희망을 실현시킨 당사자가 되어버린 히로히토만이 알고있다.
히로히토의 급작스런 전쟁 조기 종결 선언은
수많은 내지인이 목숨을 조국을 위해 내던지도록 했지만
조선땅을 영원 분단의 상태로 이어지게 했다.
그가 50년, 60년 후의 모습을 예지하고 있었을까?
전쟁 조기종결로 빚어진 이 커다란 미스테리는 언제쯤 풀릴 수 있을까?
뾰족뾰족한 벽돌 건물들의 지붕이 주를 이룬 경성의 스카이 라인을 아래로 하고
위에서 지그시 경성을 내려다 보면
경성엔
大
日
本
글씨가 쓰여 있었다.
북악산의 산세가 大자 형이었고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日자 형이었고
경성시청의 모습이 本자 형이라는데.......
기가막힌 사상 하나 심어놓고 가긴 했다.....
첫댓글 잘읽었습니당....~^^
ㅠㅠ
관동군 사령부도 "대"자로 지어졌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