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전도전략/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종
족한국 선교 100주년이 넘어서면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현상은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999년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를 토대로 문화관광부가 만든 ‘도표로 본 한국의 종교 현황’에 따르면, 기독교인의
감소 현상이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1995년 19.6%였던 기독교인이 18.6%로 1.0%포인트 감소했다. 반면
불교 인구는1995년 23.2%에서 26.3%로 상승했고, 천주교도 1995년 6.6%에서 7.0%로 소폭 상승했다. 기독교인의
이탈률이가장 심한 편이다. 따라서 교회는 불신자들을 전도하기에 앞서 교회를 떠난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회복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봉착해 있다. 교회마다 출석을 중단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잃은 양 찾기 운동’을 타이틀로 내걸고 여러 가지
이벤트를가져 보지만 역부족인 것 같다. 학교나 사회 단체에서 실시하는 홈커밍데이 같은 성격의 피상적인 행사로는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발걸음을 돌이키게 할 수 없다. 그들은 교회로부터 심각한 상처를 입고 떠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를 씻겨 줘라 최
근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전도 집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난 40대 남성은 7세 때까지 교회에 다니다가 그때 경험한 사건을
계기로교회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사건의 내용은 교회 학교 교사가 헌금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세 차례나 집으로
돌려보냈던것이다.
당시 그의 가정은 너무 어려워 하루에 한 끼 먹기가 힘든 형편이었다. 그는 교회와 집 사이를
방황하다가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성인이 돼 전도 집회를 통해 다시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후, 예배당에
들어갈때마다 마음에 원하는 사람만 헌금을 내는 방식을 보고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었구나’하고 깨닫고 마음의 상처를 씻을
수있었다고 한다. 교회에서 이런 실수나 죄악 그리고 본의 아니게 빚어진 사건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
사실이들 중에는 복음의 진리를 분명히 알고 믿음으로 응답했던 사람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는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것보다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돕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단계가필요하다.
교회가 먼저 사과하라 첫째, 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정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에 앞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한 모습으로 상처를 주었던 것을 인정하고 부족함을 고백하며 사과해야 한다. 교
회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영적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우는 방법이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은 교회가
겸손하고정직하게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기 원할지도 모른다. 교회가 그런 태도를 사전에 보여주었더라면 그들은 떠나지
않았을지도모른다.
둘째, 그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지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
그들에게도 이점을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님을 자신들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진정한의미에서 구도자(seeker)다. 복음의 권위를 보여주는 목회자와 교회가 있다면 그들은 믿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갈망이 되살아나도록 도와줘야 한다.
셋째, 교회는 모든 인간적인
권위를 벗어버려야한다. 하나님과 복음 외에 어떤 인간적인 권위도 주장해선 안 된다. 교회는 복음 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버릴
각오를 해야한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 크리스천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그의 태도,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율법의요구를 전달하지 않는 그의 전도 방식에 유대인들이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바울의 전도 철학은 ‘율법 있는 자에게는 율법
있는 자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는 것’(고전 9:20∼21)이었다. 바울은 율법조차 복음 전도의
장벽이된다면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 복음을 그들의 필요에 맞게 새롭게 해석해 줘야 한다. 그들은 이미
소위복음 공식(gospel-formula)에 대해 익숙한 사람들이다. 어느 정도 교리적인 지식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교리가 아니라,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살아있는 지식이다. 복음이 모든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줄 수 있다면, 사람들의
필요는복음과 연결될 수 있다. 전도의 열쇠는 대상자의 영적 필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사전 단계를
충실히했다면, 복음과 그들의 필요를 어떻게 연결시켜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겸허한 자세로 다시 초청하라 마
지막으로 감동적인 화해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방황하는 그대들이여! 어서 돌아오라!’는 슬로건으로는 더 이상 돌아오게 할
수없다. 그들이 보기에 교회가 더 방황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떠났다. 교회는 그들의 일상적인 삶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전환해야 한다. 먼저 교회는 그들이 가정과 사회를 위해 수고한 땀의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에하고 싶은 부정적인 말들을 전부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문제를 긍정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할 수
있는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교회가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태도가 아니라, 서로 대화하려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교회를떠났다고 해서 당장 저주가 내린다는 식의 메시지는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
교회는 떠난 사람들의
소리에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는다면, 그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떠날지도 모른다. 지금 그들은 외로운 상태에
있다.오랫동안 사랑을 나눴던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그들은 결코
쉽지않은 영적 여정을 걷고 있다. 교회는 겸허한 태도로 그들을 다시 초청하는 일을 꾸준히 해야 하며, 진실이 담긴 사랑만이
그들을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다.
빛과 소금/ 글· 이재훈 편집장 / 일러스트· 이우정
----------------------------- 존 스토트 칼럼
누
가복음 14장 25절에서 35절까지 말씀에 두 가지 짧은 비유가 나온다. 현대어로 변형시켜 이야기하면 이렇다. “만약 어떤사람이
빌딩을 지으려면, 먼저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은행에 가서 상의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자본이 달려작업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면 그의 친구들은 일을 시작했으나 끝내지 못했다며 비웃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한 나라가 다른나라를
공격하려면 먼저 그 나라의 군대와 병기를 파악하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승산 가능성이 없는 전쟁을 하게 된다. 너무늦기 전에
승산을 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비유의 공통분모는 ‘먼저 앉아서 생각하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에 어떤 비용이 드는가 계산하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는 것에 대해 세 가지 조건을 말씀하신다.
어떤 것보다 예수님이 최우선 첫
째,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라고
말씀하신다.‘자기 부모를 미워하라’는 말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매우 가혹하게 들린다. 성, 결혼 그리고 가족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그런데과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창조물을 부인하도록 우리를 부르셨을까? 게다가 십계명 제5계명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신다.심지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가족을 미워하라고 하신다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자주 사용하셨던 매우 극적이고 자극적인 교수 방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이 말씀은
유대인 격언의 특징을 가지고있는데, 비교와 대조를 사용해 표현한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37절에 같은 방법으로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다. “아비나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물론기독교인들은 분열을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다. 즉 본문이 가르치고 있는 바 ‘우리는 어떠한 인간 관계보다
예수님을최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27절 말씀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로마 제국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사형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형장으로 가야 했다. 본
회퍼는「그리스도의 제자직」(The cost of the discipleship)(대한기독교서회 근간)이라는 책에서 “예수님께서
남자,여자를 제자로 부르실 때 그들이 죽을 것을 명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도 예수님께서 문자 그대로 ‘죽어라’고 명하신
것이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제자의 운명은 모두 십자가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다’는 것은
‘자기를부인하다’는 의미다. 예수님을 위해 자기 중심적 자아를 부인하고 야망까지도 포기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우리가조심해야 할 것은 야망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야망은 단순히 성공하고 싶은 욕구를 말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공하길원하신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능한 최고의 자리에 올라 예수님을 증거하고 사람들을 섬기길 바라신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중심적야망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 셋째, 33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청빈의 삶을
살도록부르심을 받기도 했다. 테레사 수녀와 함께 한 수녀들의 경우가 전적으로 자발적인 청빈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예이다.그러나 청빈의 부르심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사유 재산의 금지는 사회주의이지, 기독교의
교리가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물질에 대해 내적 애착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물질의 덫에 걸리지 않고,
물질의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본을 따라 탐욕스런 물질주의자도, 엄격한 금욕주의자도 아닌 단순하지만
관대하게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것이다. 인간 관계, 야망 그리고 우리가 가진
모든것보다 예수님을 최우선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왜 우리가 이런 명령을
받아들여야하는가?”라고 물을 수 있다. 본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요구뿐 아니라 세 가지 이유에 대해서도 나와 있다.
예수님의 제자가 돼야 하는 이유 첫
째로 예수님의 제자는 만찬에 초대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본문 말씀 바로 앞에 누가복음 14장 16절부터 보면 큰 잔치에
대한비유가 나온다. 기독교인이 되는 것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큰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예수님께서 “내게로 오는
자는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나와 함께 하는 자는 결코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에는 예수님만이 채울 수
있는굶주림이 있다. 그분만이 만족시킬 수 있는 목마름이 있다. 그분만이 해결할 수 있는 공허함이 있다.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결코 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예수님을 찾으면 자신을 찾게 된다.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면
진정한 자유를얻게 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비용이 든다고 했다. 이것은 다른 말로 기독교인이 되지 않는 것도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의미이다. 왜냐하면 비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이 누리는 엄청난 은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천국으로 가지 못함을 뜻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의 소금이기 때문이다.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시고 다시 34절과 35절에서 “소금이
좋은 것이나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고 말씀하신다.
냉장고가없었던 옛날에 음식물을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로 소금을 사용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마치 소금과 같이 사회에서 부패를
막게 하는사명을 주셨다. 이것은 참으로 멋진 사명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사회로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보시기에기쁘시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제자됨은 가장 명예로운 특권 마지막으로 제자는 십자가를
지닌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은유법을 쓰셨을까? 우리는 천국의 큰 잔치에 가는 것에 관심을 안 가질 수도
있고,혹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에 흥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몸소 십자가를 지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자신의
십자가를지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가? 그분은 돌아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셨다. 배신당하고 체포당했으며 모욕당하고 매질 당하신
후에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죄 없는 그분께서 모든 죄의식과 정죄함을 받으셨다. 그분의 삶은 희생이었는데, 우리는 자기 중심적이다.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닮아야 한다. 예
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우리의 눈을 십자가에 계속 고정시킨다면,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과다른
사람들을 섬기라는 우리의 십자가는 그분의 빛 앞에서 사소한 것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것이
전혀 대가를 치르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위대하고 명예로운 특권이기 때문이다. 빛과 소금/ 글·존 스토트 / 일러스트·지정남
---------------------------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감
각적인 디자인에 탁월한 편집으로 출간되는 많은 성경책들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성경 읽기란 쉽지만 않다. 새해 아침에 올해엔꼭
성경을 일독하리라 마음 잡았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흔하다.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성경 읽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위해「빛과소금」에서
기획을 마련했다. 두 명의 성경 교사들의 간증과 나눔을 통해 성경 읽기의 맥을 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999년
3월부터 2년 6개월 동안 뉴질랜드 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그 후 주미 대사관 정무 공사를 지냈다. 뉴질랜드 대사로 부임하기전,
외교통상부 아시아 태평양 국장으로 근무하면서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 정상 회담’, ‘한중 정상 회담’ 등 외교활동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성경 연구가이기도 한 문봉주(54세) 집사는 ‘체험하는 성경의 맥’강의를 통해, 성경의 전체흐름을
짚어주고 있다.
Q:본격적으로 성경을 읽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저는 모태 신앙인입니다.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42년 동안 교회에 다녔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 전날 밤에 늦도록 술을 마신상태에서 예배를
드렸어요. 찬송을 부르는데 술 냄새가 나는 거예요. 옆에 있던 아내가 저의 입을 틀어막더군요. 그러면서 하는말이 ‘집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핀잔을 주더군요. 사실 아내는 저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거든요. 아마 그게
하나님의 첫 부르심이었다고 봅니다. 아내로부터 핀잔을 듣고 막연히 결심하면서 술과 담배를 끊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제네바 참사관
생활을 하면서부터 성경 공부 모임을 가지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전까지 저는 제대로 된 성경 공부를 해본 적이없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성경 말씀에 대한 갈망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Q:어떻게 성경을 공부하셨는지요? 유
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음식을 먹었던 것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출
12:11)말씀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의 성경 공부 모임이란 모임에는 모두 다녔고, 다른 교회에서 하는 성경 공부
강의에도참석했습니다. 당시 저의 수첩에 모든 저녁 스케줄은 성경 공부 모임으로 도배돼 있었어요. 1년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열심히 배웠습니다. 저는 배움의 과정에서 성경의 뼈대를 알았습니다.
Q:조금 전에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인도하셨나요? 성
경 말씀을 배운 뒤 중국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유학 온 청년들의 필요로 그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놀랍게도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하더라고요. 저에겐 크나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아파 병원에갔더니 위암
말기라고 했습니다. 저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과 항암 치료 과정은 생지옥이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저는성경 말씀밖에
붙잡을 게 없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성경을 공부하기 시작했지요. 이상하게도 그동안 외워지지 않던 성경 구절들이속속 외워지기
시작하고, 성경의 맥이 더욱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저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할렐루야!
Q:고난을 통해 성경 말씀과 더욱 가깝게 되신 셈이네요. 사
실 우리에게 도전이 있으면 재미있어 집니다.그러나 도전이란 꼭 저의 경우와 같지 않을 겁니다. 계기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책이나 주변 사람들을 보세요.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도 우리는 끝없는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 다음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선 열정이 있어야합니다. 열정 없이는 성경 말씀을 깊이 있게 볼 수 없습니다. 중단 없이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열심을 가졌다는 것과 제대로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Q:성경 읽는 방법을 소개해 주십시오. 아
무래도 구약이 어려운데요, 역사서를 통해 성경의 뼈대를 잡아나가야 합니다. 역사서를 시대별로 구분한 후 그에 따라
읽어나가면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됩니다. 그러면 구약이 재미있어 지면서 성경 전체 줄거리가 한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것을
알고 성경을읽어야 합니다.
구약을 읽다 보면, 지루한 부분들이 더러 나옵니다. 예, 그렇습니다. 역사의
주류에서빠지는 부분입니다. 이를테면 레위기, 신명기, 룻기, 역대상·하서 등입니다. 일단 역사적 흐름에 따라 주류를 읽어나가다가
나중에이런 부분을 보완하는 책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성경 전체의 흐름에 따라 읽는 게 중요합니다.
Q:예언서와 시가서는 어떻게 읽어야 합니까? 읽
기 어려운 게 또 예언서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도 역사서의 이해와 틀을 잡아놓으면 어렵지 않습니다. 틀을 잡고 읽는다면
기가막히게 재미있는 게 예언서입니다. 우선 역사서에서 포로 시대까지 읽고 역사의 틀과 관점을 잡아 두십시오. 그런 다음에
예언서를읽으십시오. 그러면 구약에 대해 전체적인 이해를 가지게 됩니다.
Q:성경의 난제들을 해결하는 특별한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성
경에는 난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선 목사님이나 교사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 다음에 책들을 통해 도움을
받아도좋습니다. 아마 성경에서 중요 난제 가운데 하나가 여호수아를 통한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일 것입니다.
창세기15장 16절에 “네 자손은 사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라는가나안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 성경에 나옵니다. 이 말씀은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진멸할 만큼 아직 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결국나중에 죄악이 찼을 때 멸절을 명령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성경의 맥을 알아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Q:성경 읽기의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하
나님께서는 사랑의 영으로 계십니다. 문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그분을 믿을 수
있느냐는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말씀을 배우는 유익은 보이지 않는 영으로 계시는 하나님의
사랑을아는 것이고, 깨닫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 절대로 하나님을 알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지않는다면, 하나님 알기를 원치 않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배운 말씀을 삶에 적용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우
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세상을 하나님의 관점과 의식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혹의구습을 따라가는 옛사람을 버리는 방법으로 말씀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우리의 생각에 집어넣음으로써 세상 의식을 버리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QT도 하고 각종 성경 공부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버리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사랑을 나타내셨고, 성도들은 그 사랑을 만져보고 체험하지만 그걸로는 삶이 변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12제자가
말해주는 교훈입니다.
Q:어떻게 해야 삶에 변화가 올 수 있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생방송’으로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실 때 모두 도망갔습니다.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셨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임하셨습니다. 성령 체험이란,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의
사랑이예수님을 통해 나타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습니다. 전달되고 느껴질 때
비로소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말씀 공부와 더불어 깊은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는
다른것이 아닙니다. 나의 생각을 이끄는 것이 말씀이고, 나의 마음을 이끄는 것이 기도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저절로
자라나지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결단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글·신상목 기자 / 사진·이남수 부장
--------------------------- 어떻게 성경을 읽을 것인가
미
국 볼티모어 벧엘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순근 목사의 아내인 이애실(48세) 사모는 남편의 성경일독학교를 돕던 중에 함께
사역하게되면서 국내·외에서 성경 읽기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꿀맛 같이 맛있는 성경 읽기를 위해서는 성경이 바로 우리와 관련된
내용임을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근에 그동안 강의한 내용들을 모아 「어? 성경이 읽어지네!」(두란노)를 출간하기도 했다.
왜 크리스천들은 반드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성
경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꼭 알아야 할 정보들을 역사 속에 기록해 놓으셨고 그분의 뜻을 계시한 책이기에 반드시
읽어야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정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분명히 말해
주고있습니다. 인간 존재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필히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마치 컴퓨터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읽어야 하는 사용 설명서와 같은 ‘인생 설명서’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성경 읽기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사
실성경이 아닌 보통 서적들은 처음부터 잘 읽힙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코드가 맞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사는
상황과멀게 느껴집니다. 예를 들어, 미국에 사는 한인 2세가 한국의 유교 철학을 담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요.
우리는크리스천이라는 이유로 의무적으로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시작하고 있기 때문에
읽기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문화 차이일 수도 있을 텐데요. 구약은 이스라엘이라는 한 국가를 단위로
해서풀어갑니다. 개인이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 창세기 11장을 보면 이 국가는 하나님의 국가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대항하는세상의 국가가 등장합니다. 세상 국가의 전형인 바벨입니다. 이게 바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되는 인류의 문화입니다.
그리고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종교 현상은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한 인류의 역사는 서쪽으로 이집트, 북쪽으로
유럽,동쪽으로 인더스 황하로 향하면서 문명의 전이가 이뤄집니다. 지금 인도 문화에서 남신과 여신을 종교화한 에로
사원이존재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종교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싯다르타 같은 사람이 등장하고 인간의 본질적 문제들을 던지며
불교사상이 시작됩니다. 동양은 음양 사상으로 천일합일, 주객합일 등 신인합일의 개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불교와 유교를
배경으로하는 한국인이지만 뿌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출발한 문명의 색깔을 말해 주는 곳이
바로창세기 11장입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는 그 색깔과 싸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배경은
창세기와연결됩니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잘 읽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성경을 창세기부터 읽으면서
1장부터11장까지 말씀을 신화로 치부해 버립니다. 거기엔 아담, 하와, 선악과, 노아 홍수, 바벨탑, 몇 백 년 동안 사는
인간의모습들이 나옵니다. 이를 신화로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나 역사의 사건이며 인간의 비밀을 말해 주는 보화의 창구로 알아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창세기 1∼11장은 역사이며, 이 부분이야말로 인류 역사가 종합돼 있는
DNA임을알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주신다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신 사실에 대해서
글로는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신체의 구조와 오묘한 조직 그리고 비밀들이 창조 때에 이뤄졌음을 단일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성경은 성경대로 읽고, 자연 과학은 자연 과학대로 알고 있으면 안됩니다. 하나가 돼야 합니다. 창조 기사는 신화이고,
‘나는나’로만 인식한다면 성경 말씀은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즉 이원화된 개념을 하나로 붙여보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성경이어떻게 흘러가는지 만들어 봅니다. 그리고 스스로 성경 속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성경이 처음부터 말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나와연결돼 있으며, 자연 과학이나 이성을 통해 나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는 겁니다.
그러면 수많은 근원적 질문들이 생겨날 수 있을 텐데요. 우
리는 좀더 정직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저절로 믿어지는 줄로 알고 있거든요. 대부분의 성도들은 개인의 문제나
필요에따라 교회에 갑니다. 그래서 이른바 교회 문화에 익숙해지고, 설교를 들어도 개인적 세계관의 뿌리가 말씀에 일치하지
않습니다.그러나 그냥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집사, 장로, 권사의 직분을 받게 됩니다. 그때서야 근본적으로 떠오르는
신앙에 대한의문을 간직한 채 섣불리 질문도 못하고 지내게 됩니다. 장로나 권사라 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 삼위일체가 되시는지,
어떻게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마음 속의 의문에 대해 체면 때문에 숨길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구원이란 개념도 그냥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구원의 개념은 단순히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로 해결되느냐
하는것입니다. 너무 얄팍합니다. 이런 한 문장의 복음에 대한 개념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을 너무 가볍고 얇게 만들어 놨다고 봅니다.
과정이 생략된 것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이라는 게 말이 쉽지, 굉장히 많은 설명의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과정이 생략된채 명제만 있다면, 자칫 잘못하면 비성경적인 개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 하나가 귀하고 값진 복음을 깨닫는
데에 정의가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약점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읽기 외에 따로 공부해야 되나요? 모
든 성도들에게 이런 식으로 공부하라고 말은 못합니다. 평신도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공부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너무어렵거든요.
그래서 성도들은 구도자적인 자세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만 해결하려고 교회에 다닌다면, 어떻게보면 이것은
매우 이교도적인 신앙이 됩니다. 하나님을 전능한 종으로 만들어 놓고 그로부터 뭔가 좋은 것을 공급받고 싶어하는 것이됩니다.
전능한 종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말이거든요. 맘대로 자신을 만족케 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전능한 종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나는누구이고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구도자의 정신으로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거기서 출발해야 성경 읽기의 코드가맞습니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받은 스승이나 서적이 있다면? 합
동신학교 교수님들의 성경 신학 과목을배웠고, 트리니티신대원에서도 배웠습니다. 얼마 전에 소천하신 김홍전 목사님의 책에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밖에 객관적인자료로 역사, 교회사에서 적잖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철학, 종교, 인류학 그리고 세계관에
대한 도서들을 많이 보는 편입니다.
성경일독학교에서 강의하시면서 느낀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학교를
준비하면서 놀랐던 것은 성도들이 성경을 읽을 때 맥을 따라 읽고 계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의외로
너무모르시더라고요. 일독하려면 성경은 ‘역사’라는 옷을 입고 있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명쾌한 주제가 전반에 걸쳐 도도히 흐르고 있음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길 바랍니다. 빛과 소금/ 글·신상목 기자 / 사진·안유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