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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씨는 책 말미에 ‘스승은 홀로 스승이 아니다’고 적었다. 법정 스님과 인터뷰이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불이(不二).
변 씨는는 법정 스님이 전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소유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법정 스님의 핵심 메시지는 스님이 풀이 한 ‘오관게’에 담겨있다고 말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로 시작하는 오관게 풀이는 ‘나는 나이지만 내가 아리라는 것으로, 나를 살아 있게 하기까지 생명을 달리한 수많은 목숨들, 뭇 생명들의 살신공양으로 이어온 삶을 헛되게 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중이 밥값이나 하고 가야겠다”던 법정 스님의 속뜻이 담긴 것이라고 변 씨는 읽었다.
변 씨는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는 데 수많은 손들이 땀을 흘리고, 그들의 목숨을 내놓아야 가능하기에, 낱 목숨이 아닌 온 목숨으로 살라는 것이 스님의 뜻”이라고 했다.
변 씨가 만난 19명의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법정 스님은 어떤 사람일까? 변 씨는 인터뷰이들이 공동되게 말하는 법정 스님은 ‘말씀과 행동이 똑같은 분’이라고 했다. 방송인 이계진 씨는 “법정 스님은 언행일치라고 평하기 보다는 언행근치, 필행근치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변 씨는 법정 스님을 ‘생강 같은 분’이라고 묘사했다. 법정 스님은 음식에 들어가는 생강이 고유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재료의 맛을 잃지 않도록 하는 생강처럼 법정 스님은 대중 속에서 버물어져 살면서도 수행자로서의 풍모를 그대로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변 씨는 길상사 지장전 건립하는 등 ‘돈’을 쫓는 행위로 법정 스님의 뜻을 받들지 못했던 지난날에 대해 참회했다.
그는 “길상사 지장전은 원래 관음전으로 시작했다. 작은 건물을 국내 최고의 장인들이 법당을 지어야 한다는 게 법정 스님의 뜻이었지만, 나를 포함한 재가자들이 사찰과 맑고 향기롭게 운영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을 펼쳐 결국 49평의 지장전을 세운 것”이라면서 “영가를 내세워야 돈이 들어올 수 있었지만 결국 스님의 뜻을 어긴 것으로 말할 수 없이 민망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신도가 스님을 망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배웠다고 변 씨는 참회했다.
변 씨는 <법정, 나를 물들이다>에 실은 19명의 이야기 외에도 법정 스님과 인연을 맺은 이들을 찾아 스님의 뜻을 물어갈 것 이라고 했다. 이미 20여명 가까이를 인터뷰했고, 일부 인사들은 인터뷰를 거절해 다시 인터뷰를 부탁하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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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법정, 나를
물들이다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352쪽|신국판|무선
2012년 1월 5일 출간|15,000원
ISBN 978-89-7479-205-3 03810
불광출판사∥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46-21 3층∥Tel 02-420-3300
담당 이기선∥C.P. 010-5586-9089∥E-mail highspirits@empas.com
한 어머니가 절에 다니면서 자식을 위해 딱 한 가지 기도만 했다. 좋은 인연 만나게 해 달라고. 이만 한 기도 또 있을까. 사람살이가 사람과의 만남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좋은 인연 만나면 세상일이야 자연스럽게 풀리기 마련이니까. 여기 법정 스님과 함께 가서(同行) 법정 스님과 함께 행복했던(同幸) 열아홉 사람의 인연 이야기가 있다.
독보적인 자기 예술 세계를 구축한 조각가 최종태, 법정 찻잔으로 스님과 인연을 이어 간 도예가 김기철, 그림으로 시를 쓰는 화가 박항률, 농사꾼으로 변신한 방송인 이계진처럼 잘 알려진 분들도 거기 있고, 성철 스님 시봉일기로 유명한 원택 스님, 종교 벽을 허물고 우정을 나눈 장익 주교, 온 누리 어머니로 사는 원불교 박청수 교무와 같이 우리 시대에 큰 길을 가는 종교인도 있는가 하면, 20여 년간 스님 어머니를 모신 사촌동생 박성직, 괭이 한 자루 들고 등산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파 내려오던 백지현, 스님이 왜 길상사에서 딱 하루만 묵으셨는지 사연을 들려 준 홍기은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법정 스님은 어떤 분일까? 또 법정 스님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법정 스님의 숨겨진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이 책은 독자들에게 법정 스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선사해 준다. 그 속에서 법정 스님이 우리에게 진정 전하려던 메시지가 종이에 물 스미듯 물들어 올 것이다.
반쪽짜리 제목
‘법정, 나를 물들이다’라는 제목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동기를 충분히 담지 못한다. 책을 마무리하는 글에서 저자는 “스승은 홀로 스승이 아니다”(351쪽)라고 밝힌다. 법정과 내(인터뷰이)가 하나도 아니지만 둘도 아니라는 말이다. 불이(不二)고 연기(緣起)다.
김기철 편을 보면, “스님한테 책이나 음악들을 소개받기도 하고, 저희 또한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스님께 알려 드렸어요.”(105쪽)라는 구절이 나온다. 법정 스님이 법문과 글에서 인용한 구절들은 이런 인연으로 마련된 게 많다.
진명 스님은 법정 스님에게 퇴박을 놓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불일암을 찾는 바람에 법정 스님이 참기 힘들다고 하니 진명 스님은 대뜸 “스님! 그게 싫으시면 글 쓰지 마세요. 글을 쓴다는 건 사람을 부르는 일입니다. 그 사람들도 많은 고민 끝에 어렵사리 찾아오는 건데 그렇게 예의 없는 사람 취급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144쪽)라고 윽박지른다. 법정 스님은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드셨을 거다.
이렇듯 법정과 나는 서로 주고받았는데, 책 제목은 법정에서 나온 것이 나에게 한 방향으로 흘렀음을 의미하므로, 반쪽짜리 제목이다.
법정 스님 메시지는 무소유가 아니다
저자가 출판사 사무실을 맨 처음 찾았을 때 들고 온 제목은 ‘무소유가 아니다’였다. 처음 만난 어려운 자리였지만 편집자는 말했다. “제목으로 쓰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습니까?”
저자는 설명했다. “물론 스님께서 무소유를 말씀하셨지만, 그게 스님이 전하려던 핵심 메시지는 아닙니다. 저도 이 제목이 거칠고 도전적이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법정 스님 메시지를 무소유 하나로 한정하는 게 못내 아쉬워서 소리 한번 지르고 싶었습니다.”
저자가 본 법정 스님 핵심 메시지는 이 책 4장 머리글(264~267쪽)에 나와 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로 시작하는 스님의 오관게 풀이에 담겨 있는 그 뜻이다. 바로 나는 나지만 내가 아니라는 것, 나를 살아 있게 하기까지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목숨들, 뭇목숨의 살신공양으로 이어온 삶을 헛되게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중이 밥값이나 하고 가야겠다”던 스님 말씀의 속뜻이다. “제 몸을 기꺼이 내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어머니 은혜와, 심고 가꾸고 거두어들인 수많은 손들이 흘린 땀을 헤아려, 낱목숨이 아닌 온목숨으로 살라”는 가르침이다.
12년 동안 단 1분도 없다
저자는 12년 동안 법정 스님 법회 사회를 본, ‘맑고 향기롭게’ 전 이사다. 그런데 사석에서는 스님과 단 1분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 한다. 왜 그랬을까?
책에는 ‘맑고 향기롭게’ 법장궁 강정옥 이사가 들려준 일화가 나온다. 어느 날 류시화 시인이 와서 『산에는 꽃이 피네』 가제본을 보여주면서 편집이 어떠냐고 물었다. 말씀 끝에 류시화 시인이 “스님이 법장궁 보살님 말이라면 다 들어주시잖아요.” 했다. 이 말에 자기가 다른 이 눈에는 스님을 쥐락펴락하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겠다 싶어, 스님께 폐 끼치지 않으려고 이후에는 스님과 따로 만나지 않았다는 강정옥 이사. 저자도 같은 마음 아니었을까?
법회 사회를 보는 자리는 스님과 1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아 있다. 스님 숨소리 하나, 동작 하나도 그대로 전해 오는 거리다. 그래서 추억도 특별하다. 2003년 초 어느 법석에서 스님은 청법가가 끝났는데도 법상에 오르지 않으셨다. 다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그 얼마 전 스님이 “절을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해 절을 받기 민망하다.”고 하셨던 기억이 스쳤다. 그래서 “모두 자리에 앉으십시오.” 하니 스님께서 법상에 오르셨다. 이 자리에서 ‘합장 반배’로 삼배를 했고, 스님도 맞절을 하셨다. 그 뒤로 스님 법회는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연 이야기들
“참 그랬다” ― 장익 주교
법정 스님 다비식 장면을 혼자서 TV로 보고 나서 여러 날 동안 “참 그랬다.”는 장익 주교는, 법정 스님이 “종교 목적이 종단 구성일 수는 없다.”(21쪽)고 신념을 가지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스님과 만나서 거창한 얘기를 나눈 건 아니고 그냥 차나 한잔 마시면서 편한 얘기 나눴다고, 아주 편했다고 돌아본다.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따라 생전에 ‘천불교 교주’라고 불렸을 정도로 법정 스님은 종교 간에 벽을 두지 않았다.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 ― 사촌동생 박성직
법정 스님 사촌동생 박성직은 스님 출가 후 20여 년 동안 스님 어머니를 모셨다. 법정 스님 어머니가 “마루턱에 걸터앉아 육자배기를 한가락 구성지게 뽑아 넘기시면, 동네 어른들이 넋을 놓고 앉아서”(271쪽) 듣곤 했다고 그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에 소개한 두 통의 편지에서 스님은 “지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무표정한 직업인이 되는 것이다. … 사회인에겐 살아가는 데 직업이 필요할 수밖에. 하지만 인간 본래 양심이라든가 의지를 잃어버리고까지 거기에 얽매일 건 없을 줄 안다. 어쩌면 이 말은 빵의 존엄성을 모르는 철부지 말일지도 모른다만.”(273~274쪽)이라든가,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오늘 오후에야 받아 보았다. … 할머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오늘은 법당에 들어가서 많이 울었다.”(274쪽)라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스님 입적하시기 전 아내 공덕림과 함께 병원에 찾아뵈었을 때, 아내 분이 “공덕림도 같이 왔습니다.” 하고 스님 손을 잡으니까, 스님이 손에 힘을 꼬옥 주시고는 흔드셨다. 아내 분은 그때 스님 손을 처음 잡은 거라는데. 스님이 어머니 모신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닐까.
적(는) 자는 생존한다 ― 원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은 법정 스님과 함께 성철 스님 책 『본지풍광』과 『선문정로』를 만들었다. 며칠 동안 집중해서 원고를 손본 후 눈도 쉴 겸 바깥나들이를 했는데, 법정 스님이 몇 걸음 걷다가 수첩에 뭘 적기를 계속했다는데. “삼보일배하듯 오보일기(五步一記)를 하셨죠. 밖에 나다니면 어김없이 메모를 하시더라고요.”(113쪽) 원택 스님 회상이다.
이때 법정 스님이 성철 스님 책을 시중에 팔자는 제안을 했다.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께 이런 뜻을 밝히자 스님은 버럭 화를 내며 퍼부었다. “책을 돈 받고 팔아? 책은 법공양이야, 이놈아! … 이 나쁜 놈!” 꾸지람을 듣고 법정 스님께 전화를 드리니 이유를 설명하며 성철 스님께 잘 말씀드려 보라 했다. 다시 성철 스님께 “법정 스님 말씀이 법공양을 하면 그때 반짝하고 사라질 뿐이지만, 가격 붙인 책이 잘 나가면 영원히 물이 솟는 샘물처럼 된답니다.”(116쪽)라고 전했더니, 해거름에 “법정이 진짜 그라더나?” 하고 물으셨단다.
세 번 여쭤 허락을 얻다 ― 이계진
방송인이자 농부인 이계진은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15대 때 두 번째로 정치 입문 권유를 받고 고민을 하던 이계진은 법정 스님을 찾아가 출마를 해도 되겠느냐고 묻는다. “거기 가면 차 맛을 잊어버릴 거요.” 스님의 단호한 말씀에 출마하지 않기로 하고 마음이 편해졌다. 16대 때 다시 고민에 빠져 스님께 여쭸더니, 스님은 “기도해 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하세요.” 했다. 출마하지 말라는 말씀이었는데, 또 마음이 편안해졌다. 17대 때 출마 결정 내리고 스님을 찾아뵈었더니 “나이가 들면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할 수 있다.”며 인가해 주셨다. 이계진은 법정 스님 가르침이 “중이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어?”에서 시작한다고 회고한다.
길상사에 하루 묵으신 이유 ― 홍기은
홍기은 거사가 떠올리는 법정 스님은 지독하신 분이다. 길상사 법회가 아무리 밤늦은 시각에 끝나도 어김없이 차를 몰고 암자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스님 연세에 늦은 밤 운전하시는 게 걱정도 되고, 또 왜 그러시나 싶기도 해서 여쭈었다. “한 절에 주지가 둘이 있으면 안 돼요. 아니 할 말로 나 보러 오지, 주지 보러 오겠어요?” 법정 스님 말씀이다.
결국 스님은 길상사에서 딱 하루 묵으셨다.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어쩔 수 없이.
지은이 변택주
오랫동안 법정 스님 글을 읽고 문뜩문뜩 뵙고 싶다는 마음이 일었지만, 번거로움을 끼쳐 드리고 싶지 않아 찾아뵙지 못하다가 길상사가 문을 열고 난 이듬해 봄 곁님 손을 잡고 간 길상사 법석에서 처음 뵈었다. 그리고 열두 해 남짓 법정 스님 길상사 법회 진행을 맡아보게 되어 스님 턱 밑에서 법문을 듣는 영예를 안았다. 법정 스님께서 아둔하고 미욱한 탓에 슬기로워지라고 지광智光이란 법명을 지어 주셨건만, 워낙 어리석은지라 스승이 열반에 드신 뒤에도 뜻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러다가 ‘부처님 모습을 새기면 불상이요, 부처님 말씀을 모아 담으니 불경이고, 부처님 목소리를 옮기면 종소리’라는 에밀레종에 쓰여 있다는 말씀을 떠올리고는, 스승 자취를 더듬어 보겠다며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 흉내를 내며 스승을 뵈었던 선지식을 찾아다닌다.
틈틈이 인지학人智學 강의도 하고
‘疏通이면 笑統’이라며 기업커뮤니케이션코칭을 하며
지금市 트區 들으面 열리里 웃길 79에 산다.
추천사
숲 속의 정갈한 기운을 생각나게 하는 법정 스님의 마당에 싱그럽게 함께해 온 사람의 숲 향기가 참 좋습니다. 문든 법정 스님의 진면목인 “텅 빈 충만”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 기억납니다.
“꽃은 향기로 비우고 나비는 춤으로 비우며
나비는 춤으로 충만하고 꽃은 향기로 충만하다.”
그렇게 비우고 충만하면 그대로 평화요 행복이겠지요.
- 인드라망 상임대표 도법 손모음
‘법정 스님 물이 들었나?’ 나 살아 있는 사람 가운데 이렇게 깨끗한 말 쓰는 이 좀처럼 만나 보지 못했다. 먼저 쓴 책 『법정 스님 숨결』을 읽으면서 깨우친 게 한두 가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일깨움이 일깨움을 불러왔다.
‘어허, 법정 스님 둘레에 이런 어른들이 계셨구나. 이 어른들께도 두 손 모아 큰절 한 번씩 올려야겠구나.’ 먼저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방혜자, 진명, 박청수, 강정옥, 이창숙, 피상순 님들께 절을 올린다. ‘아이고, 그릇 크고 곰살궂은 우리 보살님네들, 정말 살림 잘하시네요. 큰 살림꾼이네요.’ 살림은 살리는 일이다. 큰 살림꾼은 다만 내 집 살림만 하는 게 아니다. 뭇목숨 살리고 바람도, 물도, 흙도, 햇살도 살린다. 이 분들이 있어서 해도 달도 별들도 살아난다.
법정 스님이 들려주셨다는 ‘모기 이야기’, 정신이 번쩍 든다.
“시어머니 모기가 집을 나서면서 저녁밥을 지어 놓을까 보냐고 묻는 며느리한테 ‘모진 놈 만나면 맞아 죽을 거고, 좋은 사람 만나면 얻어먹을 거니까’ 이래도 저래도 저녁밥 차리지 말라는 얘기인데….”
‘법 보시’는 바로 이런 거로구나. (이 얘기가 이 책 어디에 숨어 있게?) 살아 있을 때 마음 ‘쓰고’, 숨 놓으면서 마음 ‘놓은’ 이, 법정 스님의 숨결이 글 갈피갈피 어려 있다. 글로나마 스님 다시 뵙는 기쁨에, 오늘도 좋은 날씨, 뱀 다리 하나.
“아픔을 덜어 주려면 먼저 아파야 한다. 그게 ‘구고(救苦)’의 뜻이다. ‘중생의 아픔을 덜어 주려고 스스로 앓는 이’, 법정의 ‘구고’는 그런 뜻이다.”
- 보리출판사 대표 윤구병
첫댓글 정말 맑고 향기로운 스님이셨습니다..
조만간 책을 구입해서 읽어 봐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