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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42
세상은 거짓과 어둠 속에 있으며, 신자도 그 영향을 받습니다. 참 믿음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신자는 예수님의 '내가 있느니라'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 살아 역사하시는 영원한 하나님임을 믿고 그분의 임재 안에서 사는 자입니다. 공주야! 소속은 중요하다. 소속이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소속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과 삶의 양식을 갖는다. 본문은 두 소속, 즉 하나님께 속한 자와 마귀에게 속한 자를 소개한다.
The world is in lies and darkness, and believers are affected by it. True faith lives as a wish to see God's salvation even in difficulties. A believer is a person who believes in the eternal God who lives and history and lives in his presence, as Jesus' words 'I am.' Belonging to a princess is important. This is because belonging forms an identity. As a Korean citizen belonging to the Republic of Korea, he has an identity and a style of life. The text introduces two members: those who belong to God and those who belong to the d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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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자라면 그가 보여야 할 표징은 무엇인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자녀였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였을 것이요 하나님이 보낸 예수도 인정하였을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이신 예수의 말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 않았고,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말하는 자인 마귀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진리를 향한 태도가 우리의 소속을 말해준다. 믿는 사람 행세를 하던 유대인들이 본색을 드러낸다.
What are the signs that a person who belongs to God should show? If the Jews were children of God, they would have loved God, and Jesus sent by God would have recognized them. The reason why they do not realize the words of Jesus, the truth from God, is that they did not come from God, but from the devil, the murderer and the liar from the beginning. The attitude toward truth tells us our affiliation. Jews who pretended to be believers reveal their true col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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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향하여 ‘사마리아’혹은 ‘귀신이 들렸다’는 세간의 평가를 거론하며 그것을 옳은 소리라고 두둔한다. 자신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 말한다. 역시 거짓말하는 자 마귀의 자식답다. 하지만 예수의 말씀과 행동은 오직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며, 따라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지 여부에 따라 삶과 죽음이 결정된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정체를 묻는다.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는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신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하신다.
They defend Jesus as the right sound, citing the popular assessment that 'Samaria' or 'I heard a ghost.' They say that they didn't think so from the beginning. They are also the children of the devil who lies. However, Jesus' words and actions come only from the heart of respecting God, and thus life and death are determined by whether he keeps his words. Jews ask who Jesus is. "Who do you call you?" Jesus emphasizes intimate relationships with God instead of bluntly revealing his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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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하는 존재이며, 아브라함 전부터 존재하여 아브라함이 기대하던 것을 미리 보고 기뻐한 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선재 하신 하나님, 예수를 알아볼 리 없고 그 말뜻을 깨달을 리 없다. 도리어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이 이제 예수를 향해 돌을 든다.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어떻게 그를 향해 돌을 드는 사람이 되는지를 잘 보라.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그분이라는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Jesus is God's glorious being, and he has been happy to see what Abraham had expected since before Abraham. However, the Jews cannot recognize Jesus, the God who was present, and they cannot realize what he meant. Rather, Jews who "believe" Jesus now raise a stone toward him. Look closely at how anyone who believes in Jesus becomes a person who raises a stone toward him. Do we live by trusting that Jesus is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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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범한 자는 누구의 종인가?
종이 자유하게 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예수님이 유대 인들을 마귀에게서 났다고 주장하신 근거가 무엇인가?
진정한 자유를 상정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 속한 자가 보여야 할 표징은 무엇인가?
Whose servant is the one who committed the crime?
What is the path for a species to become free?
Who is their father that Jews claim to be?
What is the basis for claiming that Jesus gave Jews away from the devil?
What is the presumption of true freedom?
What are the signs that those who belong to God should sh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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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 정체성에 대한 예수의 비판(42-47)
a.하나님께 속했다는 유대인들 주장을 반박:42-43
b.너희의 아비는 마귀다:44-47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유대인들과 예수의 논쟁(48-59)
a.유대인들의 공격:48
b.예수의 반박:49-51
c.유대인들의 재공격:52-53
d.자기 정체성에 대한 예수의 변호:54-56
e.유대인들의 질문:57
f.예수의 대답:58
g.유대인들의 반응: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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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42a)
하나님이(42b)
너희 아버지였으면(42c)
너희가 나를(42d)
사랑하였으리니(42e)
이는 내가(42f)
하나님께로 나서(42g)
왔음이라(42h)
나는(42i)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42j)
아버지께서 나를(42k)
보내신 것이니라(4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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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내 말을(43a)
깨닫지 못하느냐(43b)
이는 내 말을 들을 줄(43d)
알지 못함이로다(4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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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44a)
너희 아비(44b)
마귀에게서 났으니(4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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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아비의 욕심을(44d)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44e)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44f)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44g)
진리에 서지 못하고(44h)
거짓을 말할 때마다(44i)
제 것으로 말하나니(44j)
이는 저가(44k)
거짓말쟁이요(44l)
거짓의 아비가(44m)
되었음이니라(44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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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리를 말하므로(45a)
너희가 나를(45b)
믿지 아니하는 도다(4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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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중에(46a)
누가 나를(46b)
죄로 책잡겠느냐(46c)
내가 진리를 말하매(46d)
어찌하여 나를(46e)
믿지 아니하느냐(4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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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속한 자는(47a)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47b)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47c)
하나님께 속하지(47d)
아니 하였음이로다(4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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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48a)
대답하여 가로되(4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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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너를(48c)
사마리아 사람이라(48d)
또는 귀신이 들렸다(48e)
하는 말이(48f)
옳지 아니하냐(4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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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시되(49a)
나는(49b)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49c)
오직 내 아버지를(49d)
공경함이거늘(49e)
너희가 나를(49f)
무시하는 도다(4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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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영광을(50a)
구치 아니하나(50b)
구하고 판단하시는(50c)
이가 계시니라(50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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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진실로(51a)
너희에게 이르노니(51b)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51c)
죽음을 영원히(51d)
보지 아니하리라(51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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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가로되(52a)
지금 네가(52b)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52c)
아브라함과(52c)
선지자들도 죽었거늘(52d)
네 말은(52e)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5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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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52g)
영원히 맛보지(52h)
아니하리라 하니(5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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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죽은(53a)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53b)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53c)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5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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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대답하시되(54a)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54b)
내 영광이(54c)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54d)
내게 영광을(54e)
돌리시는 이는(54f)
내 아버지시니(54g)
곧 너희가(54h)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54i)
그이시라(5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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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를(55a)
알지 못하되(55b)
나는 아노니(55c)
만일 내가(55d)
알지 못한다 하면(55e)
나도 너희 같이(55f)
거짓말쟁이 가 되리라(55g)
나는 그를 알고(55h)
또 그의 말씀을(55i)
지키노라(55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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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조상 아브라함은(56a)
나의 때 볼 것을(56b)
즐거워하다가(56c)
보고 기뻐하였느니라(5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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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가로되(57a)
네가 아직(57b)
오십도 못되었는데(57c)
아브라함을 보았느냐(5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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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58a)
진실로진실로(58b)
너희에게 이르노니(58c)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58d)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5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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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돌을 들어(59a)
치려하거늘(59b)
예수께서 숨어(59c)
성전에서 나가시니라(5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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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증거_
Evidence that is not God's child.
본색이 드러나는 유대인들_
Jews who show their true colors.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예수_
Jesus reveals his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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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주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진리를 말하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며, 예수의 주되심을 인정하나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공경하시는 삶을 사신 것처럼 저희도 주의 말씀을 살아내게 하옵소서.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에 목숨을 걸게 하옵소서.
The Lord from God, Those who belong to God speak the truth, seek the glory of his father, and acknowledge Jesus' Lord. Therefore, just as Jesus lived a life of respect for God without seeking his glory, let us revive the word of the Lord. Let me risk my life on the words that say that if a man keeps my words, he will never die.
2026.2.28.sat.Clay
신학 비평//
1) 본문 핵심: 신앙이 아니라 ‘출처(origin)’의 문제
요8:42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충격적인 선언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 문장은 단순한 윤리적 비판이 아닙니다. 예수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출처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주장은 우리는 하나님 백성이다-아브라함 자손이다-율법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에 예수가 반박합니다. 아니다. <출처가 다르다> 여기서 신학의 중심축이 이동합니다. a.종교의 질문
→ “무엇을 믿는가?” b.예수의 질문→ 어디에서 나왔는가? 기독교는 결국 출처의 신학입니다.
2) 존재론적 충격: 인간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예수는 인간을 독립적 존재로 보지 않습니다. 본문의 인간 이해(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마귀에게서 난 사람) 그러나 현대인은 이 구분을 불편해합니다. 왜냐하면 현대 철학은 인간을 자율적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인간 이해(나는 나의 선택으로 나를 만든다/나는 나의 가치와 정체성을 만든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인간 이해는 정반대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반드시 어딘가에 속한 존재다. 그래서 예수는 묻습니다. “너희 아버지는 누구냐?” 이 질문은 신앙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입니다.
3) ‘사랑’이 소속의 증거라는 급진성
예수의 논리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내셨다. 고로 하나님께 속했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 = 예수 사랑 예수 거부 = 하나님 거부) 여기서 기독교는 종교에서 완전히 분리됩니다. a.종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함 b.복음: 예수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 사랑은 거짓이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독점성(exclusivity)입니다.
4) 마귀의 정의: 거짓과 살인
예수는 마귀를 두 단어로 정의합니다. 1. 살인자 2. 거짓의 아비 이 두 단어는 인간 역사 전체를 설명합니다. 왜 거짓이 살인으로 이어지는가? 철학적으로 보면: 거짓 → 현실 왜곡 → 인간 왜곡 → 폭력 인류 역사에서 모든 폭력은 “진리 왜곡”에서 시작됩니다.(전쟁/학살/증오/이념 /폭력) 모두 거짓에서 시작된 살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말합니다.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않는다” 이 문장은 역설입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진리를 말하면 사람들이 믿는다.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진리를 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한다. 왜인가? 진리는 <소속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5) 가장 무서운 장면: “믿는 유대인”이 돌을 든다
요8장의 청중은 처음부터 불신자가 아닙니다. 요8:31 “예수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 사실이 가장 충격적입니다. 믿는 사람 → 공격하는 사람 신앙의 가장 위험한 상태는 무신앙이 아니라 왜곡된 신앙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그들은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를 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에게 속하는 것은 다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의 가장 무서운 경고입니다.
6) “나는 있다” — 존재론적 절정
본문의 클라이맥스는 8:58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이 문장은 단순한 선재 선언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3장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의 이름 선언입니다. 즉 예수는 말합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스승이 아니다. 나는 메시아만도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돌을 듭니다. 그들은 이해했습니다. 너무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문제는 이해 부족이 아니라
수용 거부였습니다.
7) 현대 교회를 향한 신학적 비평
이 본문은 오늘 신앙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우리는 자주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 믿는다-나는 교회 다닌다-나는 신앙인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의 질문은 다릅니다. 나는 누구에게 속했는가? 그 증거는 세 가지입니다. 1. 예수를 사랑하는가? 2. 진리를 사랑하는가? 3.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가? 신앙은 소속의 선언이 아니라 소속의 열매입니다.
8) 소속은 선택이 아니라 드러남이다
이 본문은 잔인할 정도로 분명합니다. 진리는 중립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수는 타협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결국 두 소속 중 하나에 속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vs 거짓에 속한 자> 그리고 그 차이는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나는 예수를 **존경하는가? 아니면 예수를 사랑하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 속해 있는가? 나는 지금 예수를 향해 서 있는가? 아니면 돌을 들고 서 있는가?
9) 객관적 중심적 구원의 효력 범위(십자가는 시간 위에 서 있다 — 구원의 역시간적 효력)
예수는 역사 속에서 훨씬 뒤에 오셨는데, 어떻게 그 구원의 효력이 아브라함과 다윗에게까지 미치는가? 이 질문은 사실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구원사적 시간 문제입니다.
A. 문제의 핵심: 구원은 시간 속 사건인가, 시간 위 사건인가?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시간의 상식:과거 → 현재 → 미래 그래서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 십자가는 AD 30년경 사건/아브라함은 BC 2000년경 인물인데 어떻게 미래 사건이 과거 사람을 구원하는가? 이 질문은 결국 구원을 역사적 사건만으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영원 속 사건으로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의 답은 분명합니다. 십자가는 역사 속 사건이지만 그 효력은 <영원 속 사건>입니다.
B. 요한계시록의 결정적 표현
계 13:8 “창세로부터 죽임 당한 어린 양” 놀라운 표현입니다. 예수는 AD 30년에 죽었는데 성경은 말합니다. 창세부터 죽임 당했다. 이 말은 무엇인가? 십자가는 시간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영원 속에서 이미 완성된 사건입니다. 즉 십자가는 하나님 시간에서는 <영원한 현재 사건>입니다.
C.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신다
인간은 시간 안에서 삽니다. 하나님은 시간 위에 계십니다. (우리는 시간 속 존재 하나님은 영원 존재)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과거 구원/현재 구원/ 미래 구원 이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구원은 동시에 현재입니다. 이것이 객관적 중심적 구원의 시간관입니다.
D. 로마서가 직접 답하는 질문
롬 3:25–26은 이 질문에 대한 직접 답입니다. “왜 하나님은 구약 시대 죄를 그냥 지나가셨는가?” 바울의 답은 하나님은 장차 이루어질 십자가를 미리 적용하셨다. (핵심 개념: 하나님은 구약 시대 죄를 “참으셨다” 이유: 십자가를 미리 바라보셨기 때문) 즉 구약 성도들은 십자가 이전에 살았지만 십자가 없는 상태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미리 적용 받아 구원받았습니다.
E. 히브리서의 시간 초월적 제사
히브리서는 이 개념을 더 강하게 말합니다. 히 9:15 “그의 죽으심은 첫 언약 때의 죄에서 속하려 함이라” 이 문장은 충격적입니다. 예수의 죽음의 목적 중 하나가구약 시대 사람들의 죄 속죄입니다. 십자가의 효력은 앞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뒤로도 흐릅니다.
F. 아브라함은 어떻게 구원받았는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요 8:56 “아브라함이 내 때 볼 것을 기뻐하다가 보았다” 아브라함은 십자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 약속을 믿었습니다. 창 15: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의로 여기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무엇을 근거로 의롭다 하셨는가? 미래의 십자가입니다. 아브라함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십자가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이해하고 믿습니다. (구약 성도 → 약속을 믿음 신약 성도 → 성취를 믿음) 그러나 둘 다 같은 십자가로 구원받았습니다.
G. 다윗이 “내 주”라고 부른 이유
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윗이 메시아를 “내 주”라고 부릅니다. 왕이 자기 후손을 “주”라고 부른다? 시간 질서가 깨집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해한 것입니다. 메시아는 내 후손이지만 내 주다. 즉 시간 속에서는 후손 존재 속에서는 주, 다윗은 이미 시간 위에 계신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H. 구원사의 시간 방향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약 → 십자가 → 신약 그러나 성경의 실제 구조는 모든 시대 ← 십자가 → 모든 시대로 십자가는 시간의 한 지점이 아니라 시간의 중심점입니다. 모든 구원은 십자가에서 시작합니다.(과거 → 십자가를 향해 미래 → 십자가로부터)십자가는 시간의 중심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은 예수 이전에 살았지만 예수 없이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미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았고,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언제나 동일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약 성도는 앞을 보고 십자가로 구원받았고
신약 성도는 뒤를 보고 십자가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구원의 중심은 언제나 동일하다. 객관적 중심 — 그리스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