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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99
드디어 뿔이 날대로 난 영국은 돈이고 뭐고 식민지를 흔들어야 했으니, 그깢 성금 따위가 왜 필요했겠습니까?
1774년, 영국은 대규모의 함대를 파견했고 재빠르게 보스턴 항구를 전면 봉쇄했으며 메사추세스 자치정부를 무력으
로 해산시켜 버렸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의 자치 통치에서 직접 통치로 바꾼다는 영국의 의지였습니다.
지금까지 손해 본 차 값의 전액 배상을 요구하고 본격적인 식민지 탄압에 돌입 했습니다. 차값 배상이고 뭐고 갑자기 탄압을 받게 된 보스톤 시민들은 독립의 의지가 불 붙기 시작했고 드디어 독립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1775년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으니,한낱 밀수업자에 불과했던 존 핸콕은 하루 아침에 미국 독립의 아버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당시의 식민 지인들은 영국의 연합 정부로서의 자치 권을 인정받고, 독자적인 의회를 구성한 정부로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차 한 잔이 가지는 이익이 결국은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존 핸콕은 미국 독립의 아버지가 되어 독립 선언서에 사인했는데, 얼마나 크게 썼는지 다른 사람들은 구석지에 서명했 을 정도라고 합니다. 밀수업자라는 오명은 싹 씻겨지고 독립의기수가 된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만 합니다. 우리들이 배운 것과 많 다른 보스턴 차 사건의 진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오랜 시간 전쟁 이야기만 했더니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 차로 인 해 생겨난 이야기들을 어지간히 했는데 이제 무슨 이야기를 할까요? 그만두 려고 했지만 한 가지 더 꼭 해야할 전쟁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바로 우리나라 의 임진왜란 말입니다. 다른 말로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리우는 이 이야기를 해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막사발의 이야기를요.
임진왜란과 차 이야기가 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 니다. 전쟁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그 사이에 차 한 잔이 끼어들 일이 도무지 없으니까요. 그러나 임진왜란이 일어 나기 이전부터 전쟁의 와중에 일어난 많은 일들이 차와 연관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 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으니까요.
세상엔 수많은 찻잔이 존재하지만 일본인들이 마시는 말차를 담는 사발 찻잔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들이, 막 쓴다고 해서 막사발이라고 부르는 그 막사발이 일본인들이 영혼을 바쳐 사랑 하는 찻잔입니다. 채로 휘저어 거품을 내어서 큰 사발에 차를 따라서 마시는 그들의 다도에 나는 조금의 관심도 없습 니다. 그러나 그 사발을 가지기 위해, 많은 일본인들은 별 짓을 다합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원흉인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히데요시는 센코쿠 시대의 가장 성공한 인물이라고 모든 역사가들은 꼽고 있습 니다. 피비린내로 가득하던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관백 시대를 연 인물 이지만 그리 간단하게 표현되지 않습니 다. 일본의 최하층 출신에서 금태합이 란 이름을 얻기까지 히데요시가 걸물인 것만 틀림없습니다. 이 곳에서 그가 일으킨 임진왜란의 전모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고, 각개전투하듯 에피소드 위주로 이야기를 이어나갈 예정입니다. 히데요시의 이름과 별명 과 직함은 무척 많습니다.
간파쿠, 타이코,키노시타 도치치로, 키노시타 히데요시, 하시바 히데요시, 풍신수길, 이마타이코, 대머리쥐,원숭이 그외 또 있는지 모르지만, 지위가 달라짐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것은 예전 시대에 당연했습니다. 일본이 생긴 이후 히데요시는 하층민이 가장 크게 성공한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유는 두 가지 입니다. 그와 같이 영악하기 이를데 없 는 리더가 명나라를 차지하기 위해,조선 을 지름길로 삼는다는 명분은 그야말로 가면 속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는 첫 째, 전쟁이 사라져서 놀고 있는 칼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야 했습니다. 노는 칼은 너무나 위험하며 일본의 사무 라이들은 언제나 피를 요구한다는 것을 히데요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 니다. 누군가가 흘린 피로 지탱되는 땅 이라는 것을 히데요시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요. 자신의 통치로 일본 을 안전하게 만들고 싶은 허영에 보태 서,칼들을 나라 밖으로 몰아내야만 자신 의 위치가 공고하게 되기에 조선 침공은 필연적 이었습니다. 피를 원하는 맹수 들을 풀어놓을 곳으로 조선을 택한 것이 지요. 그리고 또 하나,그가 너무나 사랑하는 다도를 빛내줄 도자기가 필요했 고 그가 원하는 찻잔은 명나라가 아닌, 조선에 있었습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부터 만들어진 그릇까지 모두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전쟁외엔 없었습니다. 히데요시로서는 조선을 침공하는 일은,자신의 가장 중요 한 소망 두 가지를 모두 이루는 완벽한 플랜이었지요. 히데요시가 다도를 만난 것은 언제였을까요? 일본의 다도의 시조는 무라타 슈코라고 알려져 있습니 다. 원래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을 완성 시킨 사람이 센노리큐 입니다. 중구난 방으로 일어난 많은 다도들 가운데 와비차의 예법을 완성시킨 인물입니다. 정치적 야심을 가졌던 센노리큐를 가까 이 한 사람은 오다 노부나가였는데, 그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히데요시는 자연스럽게 가까이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센노리큐의 와비차에 히데요시가 빠졌다고 할수 있습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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