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ge〃──────────────────────
† 신기루 : Æ-mail (lovestay20@hanmail.net)
† 출 처 : 기루나라 (http://cafe.daum.net/lovestay20)
──────────────────────〃mirage〃─
☆19
“아악-!!”
한나의 입을 통해 짧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쓰러져 뒤죽박죽이 된 책상위로 몸을 던진 한나의 입가에 붉은 피가 맺혔다.
“내 경고가 그렇게 우스워?”
조금 더 냉하게 퍼지는 살기.
그나마 교실에 남아 있던 아이들과 복도 창문을 통해
여전히 눈치를 보던 몇몇 아이들이 ‘흠칫-’ 놀라며 혹시라도 모를 일에 몸을 사렸다.
단단히 화가 나 있는 여진.
하루 이틀 여진의 얼굴을 봐 온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하루 이틀 보고 말 것도 아니기에
지금 정황상 몸을 사리는 일이 제일 시급했다.
“장한나.”
여진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쓰러져 있는 한나에게로.
“씨- 한여진!”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너, 너!”
“시건 방 떨지 말라고.”
차가운 여진의 입술이 같은 말을 반복했고, 동시에 오른다리가 가볍게 들려졌다.
그리고는 아차- 하는 순간에 퍽-하는 마찰음을 냈고,
한나의 얼굴이 돌아갔고 이내 머리는 바닥과 다시 한번 마찰을 일으킨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어?”
한나가 일어날 틈새도 하나 없이 여진의 다리가 다시 한번 올라간다.
보통 여학생들의- 머리를 잡고 싸우는,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나도 나름대로 잔뜩 겁을 먹음은 얼굴이었고,
그 광경을 바라보는 아이들도 다를 게 없었다.
이미 아수라장이 되 버린 교실에선 그 어느 숨소리 하나 조차 들리지 않았다.
교실 안에도- 그 어딜 봐도 제 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들이 없었다.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비 한 것인지 모두가 앞문과 뒷문에 다다닥- 붙어 있었다.
여진은 화를 잘 내지 않고 남의 일에 무관심해서 그렇지
사실 한번 화를 낸다면 비오나 어지간히 이름 날리는 녀석들 보다 더
걷잡을 수 없이 무서워지곤 한다는 사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숙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코뿔소가 있을 때만해도 벙진 얼굴로 제자리는 지켰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으윽-”
한나는 연신 힘겨운 신음을 내 뱉었다.
이미 얼굴위에는 붉은 멍 자국이 자리 잡았고, 코피가 터져 나왔는지 얼굴이 말이 아니다.
허나 여진은 그런 한나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이렇듯 심각한 상황에서도
비오의 이름을 거론하는 교실 아이들의 음성이 더 선명하게 들어왔고-
점점 더 기분이 상했다.
자존심이 밟히고 말고를 떠나서 무어라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이 괴로웠다.
“장한나.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똑똑히 새겨들어.”
“하- 윽-”
“멋모르고 까불어도 적당히 눈감아 줄때- 알아서 몸 사려.
남의 심기- 아니, 내 성질 돋우는 짓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면서도,
내 눈 앞에서 깐죽거리는 짓. 두 번 다시 하지마라.”
한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만, 여전히 흐르는 피가 교복을 적시를 것을 보면서도-
차가운 여진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분에 못 이겨 이를 악 물고 있었다.
단 한번의 방어조차 하지 못했던 자신의 한심스런 모습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꼭- 이기고 싶었는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라도-
단 한번이어도 좋았다.
단 한번이라도 한여진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고 싶었다.
허나- 한나에게 그 것은 턱없는 무리였다.
“성질 같아서야 이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다만, 다행이라고 생각해라.”
탁- 퍽- 여진의 발이 가까이 있는 책상을 퍽퍽 찼고,
흠칫- 놀라는 아이들은 숨죽여 여진의 행동을 직시했다.
“내가 말이다, 네놈들한테 할 말이 있는데,”
작고 불그스름한 여진의 입이 열렸다. 한나가 아닌 반 아이들을 향해.
“나- 두 번 말 하는 거 싫어하는 거- 알지?
내 입에서 같은 말 반복되면 어떻게 된다는 거-
지금 니들 눈에 보이는 장한나는 시작도 아니라는 거- 다 알지?”
아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장한나한테 들은 이야기. 입 밖에 꺼내라?!”
“…….”
“이 순간 이후로 현비오가 어떻다. 코뿔소가 어떻다- 내 귀에 들어와라? 어?!”
낮고 저조한 만큼 상당한 위엄이 느껴지는 여진의 음성은 계속 되었다.
“지금 두 눈으로 직시해. 꼴 같지 않게 까불다가
황천길 구경 간 장한나 직시하라고.
내 말 고깝게 듣게 되면 이렇게 된다고 머릿속에 새겨라. 알았지?”
차갑게 쏘아 붙이며 마지막까지 발에 닿는 책상을 툭툭- 차내던 여진이 몸을 틀었다.
여전히 아이들은 숨죽여 여진의 눈치를 살폈고,
여진이 몸을 돌린 순간 여진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듯한 세 녀석이 보였다.
“이야- 존나 살벌하네.”
떡 벌어진 입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차마 눈 뜨곤 못 봐주겠다는 형우가 있었고,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코뿔소가 그 일을 어떻게 알아?”
걱정 어린 말투와 표정으로 여진에게서 어떤 대답을 원하는 윤민이 있었다. 그리고
“잘 참았다.”
제일 차분하고 이성적인 모습의 선재가 있었다.
“다 봤다. 한여진.”
“어디서부터?”
“장한나.”
“그게 어떻게 다 봤다고 말 할 수 있냐?”
여진은 익숙하게 뒷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그 뒤를 선재가 따른다.
형우와 윤민은 아직까지 이 반의 아이들처럼 얼이 빠진 모습으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일체 미동도 없다.
“장한나. 존나- 간이 배 밖으로 나왔어. 감히 한여진을 건들다니-”
그들은 그 누구도 여진에게 구타를 당한 한나를 측은히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한나를 비난하고 못마땅하게 바라봤다면 또 모를까.
“네 표정. 네 행동 하나만 봐도 뻔하지 뭐.”
“그거. 무슨 뜻이냐?”
“장한나가 저렇게 된 데는, 그리고 두 사람 대화 들어보니 안 봐도 비디오다.”
“씨바- 너-”
조금 더 화를 돋우는 듯한 선재의 말에 여진의 얇은 입술에서 한마디 욕설이 튀어 나왔다.
습관적인지 홧김 엔지 주먹을 움켜쥐고는 선재의 등짝을 퍽- 하니 한대 내리 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어디선가 아주 다급하고 급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야!! 어떻게? 상담실에서 현비오 쓰러졌대!”
앞문 쪽에서 들려오는 한 아이의 그 말은 벌써-
오늘 아침만 해도 여진을 두 번 놀라게 만들었다.
.
.
수업이고 뭐고, 학교고 뭐고- 보이는 게 없다.
여진과 아이들은 재빨리 상담실로 달려갔고, 옆에 그 누가 있던, 말던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다.
무작정 비오를 엎고 달렸다.
“가벼운 쇼크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다른 곳은요?”
어렵게 잡은 택시를 타고 도착한 병원.
다짜고짜 응급실에 쳐 들어와 의사 한명을 잡았다. 그리곤 다급하게 보채는 그들.
때문에 의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식으로 딱딱하게 굴었지만
그래도 비오는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전체적으로 타박상을 조금 입었을 뿐- 괜찮아 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고 어떻게-!”
“이 정도 멍 가지고는 쉽게 손상 가지 않습니다. 뼈나 장기나-”
의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딱딱했다.
여진은 그런 의사의 태도가 내심 못 마땅했으나
그렇다고 의사를 상대로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못마땅함과 더불어 답답한 마음에 여진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갔고-
“후- 일단 환자의 의식이 돌아 온 후에 다시 이야기 합시다.”
여진의 표정을 본 의사는 못마땅함과 동시에
더 이상 비오를 살피는 일이 귀찮다는 듯- 서둘러 다른 환자를 살피러 자리를 이동한다.
“말이 아니군.”
“어떻게 사람을 이 지경으로 패냐고?”
“하여간 그놈의 코뿔소도 보통이 아니라니까?”
그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진아! 한여진!! 아니, 아니. 현비오!”
“아씨 시끄러. 누구 목소린지 더럽게 시끄럽- 여튼, 조용한 날이 없다니까?”
“누가 지더러 촉새- 아니랄까봐 아주 시끄러운 티를 내요.”
기분도 그렇고 아침부터 때 아닌 난관에 정신이 없는 그 사이를
더 정신없게 만드는 음성이 들렸다.
오늘 여진이나 그 외의 교실에서 풍겨졌던 두려움과 함께 밀려든 다급하고 초조한-
그런 음성과는 전혀 동떨어진 무척이나 산만하고 시끄러운-
그나마 있는 정신마저 쏙- 빼놓기에 충분한 음성이었다.
“아씨, 여기들 있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자다 일어났는지 약간 부스스한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고는 모자로 얼굴을 살짝 가렸다.
차림새는 집에서 입는 트레이닝복이었고, 지나의 모습은,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마치 집에서부터 뛰어 오기라도 한 양 얼굴 전체에 땀방울이 자욱했다.
“병원에서 왜 이렇게 소란이냐?”
“씨-”
“공중도덕이란 걸 몰라요. 쯧.”
“내 사전에 그딴 게 어딨어? 안 그래도 내 코가 석잔데.”
지나는 헐떡이는 숨을 잠시 고르고 침대위에 누워있는 비오를 본다.
“이야- 현비오도 이런 꼴을 당하는 구나.”
이제는 그렇게 선명하진 않지만 아직까지 붉은 혈색이 감돌아있는 얼굴로
자신보다 더 한 비오를 훑어본다. 정말 신기해하는 얼굴 이었다.
“자게 놔둬.”
“어떻게 된 거야?”
“보는 대로.”
“진짜 코뿔소야?”
“응.”
“이야- 아주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군.”
“존나- 장난 없었어.”
“그래보여. 근데- 뻥가 말은 뭐야?”
여진의 손동작을 저지시키는 여진.
지나는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투성인지-
비오의 얼굴을 보고는 그들이 그랬던 거처럼 잠시 인상을 짓지만
하나하나 자초지정을 물어간다.
“뭐가?”
“왜 일이 이렇게 됐는데?”
“뻥가가 말 안 해줘?”
“자다가 너무 놀라서 결과만 기억 나.”
“들은 대로야.”
“코뿔소가 그 일을 어떻게 알았대?”
“글쎄. 근데- 한 가지 짐작 가는 게 있긴 해.”
“그게 뭔데?”
“있어.”
“씨- 한여진. 우리사이에 이럴래? 치사하게?”
“거의 확실하지만, 확인이 필요해서 그래.”
여진의 얼굴이 다시 한번 차게 식어간다.
“일년 넘게 아무렇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냐?”
“그러게.”
“씨- 어떤 인간인지 몰라도, 잡아다가 확-”
“훗.”
“참- 장한나 얘기는 뭐야?”
“그것도 들은 대로.”
“존나 깐죽거렸다며?”
지나는 코뿔소와 관련 된 이야기를 더 묻고 싶은 눈치였으나,
차게 식은 여진의 얼굴을 보고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물론 선재를 시작하여 옆에 있는 녀석들을 한번 쑥- 훑어보았지만
딱히- 여진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에선 어떤 대답도 얻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한동안 풀어줬더니 멋모르고 깐죽거리다 큰 코 다친 거지.”
심각한 상황에서도 눈가에 잠이 가득 든 윤민이 말 했다.
“내가 한동안 자리 비웠더니 이것들이-”
“훗.”
“그러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잖아. 적당히 봐줘.
아무리 무시도 좋다지만, 냉정함이 필요할 땐 가차 없이 냉정하게 굴란 말야.
걔들이 너한테 하는 짓- 행동- 적당히 봐 주란 말야.
니가 너무 우유부단하게 구니까 그것들이 그 지랄을 떠는 거잖아.”
지나는 평소 여진의 행동거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자신과는 너무 다른 여진. 지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 체육 시간만 해도 그렇다.
한나와같은 녀석들이 다른 녀석들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여진을 찾아와서 그런 부탁을 했던 것은,
처음부터 냉정하게 자를 만도 한데 그렇지 않은,
이들 중 제일 우유부단한 성격을 지닌 여진이 쉬웠던 이유였다.
“그 말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래. 촉새가 오랜만에 말 같은 말 하는 것 같네.”
“미투-”
지나의 말에 모두가 동감했고,
“놔둬. 이것도 내 나름대로의 방식이라고.”
“방식은 무슨.”
“그래도- 잠잠해 질 거야. 적당히 손 봐줬다고.”
여진은 약간은 억지 성향이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적당히는 무슨-”
“그 정도면 됐지 뭘.”
“하긴- 한여진 아까, 존나 살벌했던 건 사실이야.”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했던 형우의 입이 드디어 열렸다.
그의 말에 여태껏 아무 말 없던 선재도,
이 상항에서도 졸린 눈을 하고 있는 윤민도 동의하는지 어떤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행동 하나로 자신의 뜻을 대신 전한다.
“왜? 어땠는데?”
“보고 있는 내 등줄기에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더라.”
“존나- 엄한 얼굴 하고 있었구나?”
“어디 엄한 얼굴 뿐 이겠냐?”
“뭐야? 그럼 장한나- 넉 다운이라도 시킨 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어떻게?”
형우는 약 한 시간 전 교실에서 있던 이야기를 지나에게 전한다.
리얼한 제스처와 표정까지 더해가며.
이야기는 대략 10분간 지속 되었고 한창 흥미진진한 지나의 얼굴 위로 쾌감에 가득 찬-
미소가 어린다.
“이야, 역시 한여진이야.”
“장한나가 바닥에서 뒹구는데,
탁-탁- 옆에 있는 책상을 발로 차가며 말하는데- 아무리 우리가 친구라지만,
보는 내가 다 솔깃하더라. 등골이-”
“장한나. 그 높은 코가 단박에 내리 앉았겠네.”
“정말 볼만했지.”
“가만- 그러고 보니 이건 넉 다운이라기보다는 완전 K.O승이네?
미치지 않고서야- 어디 또 겁대가리 없이 덤벼들겠어?”
“그건그래.”
“참- 그러고 보니, 혹시라도 말야 이일, 장한나 짓은 아니겠지?”
시니컬한 웃음을 흘리며 형우로부터 상황을 전해들은 지나가
갑자기 두 눈을 부담스럽게 번뜩이며 물었다.
형우를 통해-
한나의 입에서 비오의 이중생활이 들어난데다,
그 이야기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냐. 장한나가 아닌 다른 사람이 또 있어.”
허나, 한나는 전혀 생각지 않는- 그럴 수밖에 없는 여진은 단호하게 부정을 했고,
다시금 머릿속에 어제- 예나와의 만남과 예나가 전해놓은 말을 되새김질 한다.
첫댓글 예나와 한나가 무슨 사이는 아닐련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비오 이제 어떻게 한데요. 여진이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참 무섭단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또 이성적이기도 한 여진이의 모습.... 앞으로 이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