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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12일은 불기(佛紀) 2563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누구나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성인이다.
즈음하여 불교 조계종 종정이신 진제 스님과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법어를 읽었다.
진제 스님의 법어..
[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해 동체(同體)의 등(燈)을 켜고, 내 가족만이 아닌 어려운 이웃들과 자비(慈悲)의 등을 켜고, 국민 모두가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의 등을 켭시다. 우리 모두가 마음과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 어두운 사바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또 다른 나를 위해 광명이 되고, 이 사회의 등불이 됩시다.(하략) ]
원행 스님의 법어..
[ 최근 우리는 인도의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마음으로 등불을 밝힌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강원도 산불을 끄기 위해 남도의 소방차들이 단숨에 달려오고, 영동 땅을 향한 자비심으로 전국에서 정성이 답지하고 봉사의 긴 행렬이 이어진 것은 서로서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연기(緣起) 세계임을 보여줬습니다. 이제 우리는 소욕지족(小欲知足) 하면서 절제의 등(燈)을 켜야합니다. 그리고 나를 태워 남을 밝히는 보살 등의 심지를 더욱더 돋우어야 합니다.(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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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사회는 우리를 어지럽게 합니다. 풍요와 풍부로 치닫는 사회, 그러면서도 세계가 시시각각으로 변해 인간과 비인간,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정의와 불의의 구별조차 어렵고, 적과 친구의 개념조차 불분명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인간들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보편적인 진리를 안내해주고, 평범한 진리를 실천하면서 보통사람들 모두 더불어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안정과 바탕 위에 긍정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를 수 있을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자기를 위한 삶도 중요하지만, 남을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의 모두를 위해 베풀고자 하는 태도와 배워서 깨우치려는 자세를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도 생각해 봅니다.
아름다운5060 카페의 모든 분들이, 다소의 연령 차이도 있고 하는 일도 살아온 과정도 제각기 다르지만 이제 다들 자기의 삶의 길에선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다졌고, 국가와 지역 사회의 발전에 기둥 역할을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가정이나 학교, 또는 사회에서 아무리 배우고 익혀도 모자람은 있기 마련인 바,
우린 스스로에게 향하는 자기 성찰과 수양의 자세가 바탕이 되어서 사회를 향한 건전한 참여의 태도로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아름다운5060 카페 또한, 더욱더 아름다운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리라는 기대를 가져봅니다.
아주 오래 전에 적었던 수상 한 편을 옮겨봅니다.
// 사랑과 자비 //
온 누리가 온통 황금물결로 춤추고 있다. 그야말로 풍요로운 가을이다. 그래서 선인들은 가을을 유정(有情)의 계절이요, 사랑의 계절이라 노래했나 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누군가를 존경하고픈 계절이다. 공자의 위령공편을 보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고 자신에게 묻는 자가 아니면 나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는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얻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행복하고 싶거든 내가 먼저 사랑할 것을 권하고 싶다. 성경도 행복의 비결은 주는 것이라고 했고 불경에서도 보시(布施)와 자비(慈悲)를 강조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행복은 능동적인 과정으로 노력을 통해서만이 얻어지는 결과의 총체라고 했다. 인간을 라틴어로 호모사피엔스라고 한다. 사랑을 영어로 LOVE라고 한다. 이성을 가진 사람끼리 마음과 마음이 밀착되고 이상이 상통함을 뜻한다.
옛날 중국의 어떤 상인이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사서 배에 태우고 강을 따라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본 어미 원숭이가 구슬피 울며 새끼 원숭이를 쫓아 육지로 계속 따라왔다.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의 애간장을 녹였으나 저러다가 지치면 포기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어미 원숭이는 그 수백 리 길을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새끼 원숭이를 부르며 울면서 따라오다 어느 날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배를 타고 가던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배를 멈추고 어미 원숭이를 해부해 보니 새끼 원숭이에 대한 애끓는 사랑 때문인지 창자가 다 끊어져 있었다는 고사가 있다. 하잘것 없는 동물의 얘기지만 감동적인 사랑의 단장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 사랑이 메말라 가고 있다.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자가 스승을 능멸하는 사람이 있고 후배가 선배를 업신여기는 사람도 있다. 친구가 친구를 속이는가 하면 부하 직원이 상사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노벨상을 수상한 달라이 라마는 불행의 원인을 받기만 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이라 지적했는가 하면, 예수는 사랑이 없는 사회를 고통의 사회라고 했다.
인간은 희망과 이상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 인간은 사랑과 행복을 갈구하는 동물이다. 신은 만인에게 무한한 능력을 주었다. 인간은 신이 만든 놀라운 능력의 그릇이다. 인간은 천하의 신기(神器)요 하나님의 성전(聖殿)이다. 때문에 행복한 운명을 원한다면 행복한 운명은 당신을 찾아온다. 반대로 너는 인생의 바보요, 사회의 패배자요, 세상의 열등생이라고 한다면 그는 침울하고 옹졸하고 싸늘하여 폐쇄적이고 의욕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옛사람들은 춘풍접인 화기만면(春風接人 和氣滿面)이란 말을 자주 썼다.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태도로 사람을 접하고 얼굴은 언제나 화락한 기운이 넘쳐야 한다는 말이다.
명심(明心)도 마찬가지다. 밝은 마음은 광명(光明)이요, 광명은 인생의 귀한 가치다. 때문에 행복은 기다려서 채워지는 것이 아니고 힘이 세다고 잡히는 것도 아니다. 행복은 돈이 많다고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행복은 권력이 있다고 누려지는 것도 아니다. 얼굴이 예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고 순간이 즐겁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다. 행복은 행운과는 다르고 재미와도 다르다. 행복은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하고 감사하는 마음에서 싹튼다. 행복은 지혜와 정성과 노력으로 쌓아올린 공든 탑이요, 피와 땀의 기록이다.
물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지만 물 속에 있으면 물의 고마움을 모른다. 공기가 없으면 살아남을 인간이 없지만 인간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의 작은 소리가 청아하고 또렷하게 느껴질 때 우리는 가을의 맑고도 고요한 관조(觀照)의 순간을 느낀다. 달이 밝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의 아름다움과 운치를 느낀다.
이제 가을 하늘은 높고 푸르게 열려있다. 닫힌 문을 활짝 열고 잊었던 추억도 되살려 보자. 끊겼던 대화도 시도해 보고 못나눴던 대폿잔도 기울여보자. 지쳐있는 부인의 손도 어루만져 주고 불행한 이웃의 마음도 다독거려 주자. 그래서 가을을 유정의 계절로 만들어보자. 나태도 몰아내고 오욕이 없는 그야말로 용서하며 사랑하는 청풍청천(淸風晴天)의 가을을 만들어 보자.
행복의 도재이(道在邇) 로서 먼데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에 있고 내 직장에 있고 내 가정에 있고 내 생활 속에 있다.
우리 이 가을에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손에 손잡고 동방의 작은 아침의 나라, 살기 좋은 우리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믿음과 사랑 속에 살아 가도록 노력을 하자.
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차고 행복한 일일까.
이 가을에..........
첫댓글 댓글 달기가 송구할 정도로
깊고 심오한 글 잘보고
갑니다.
5월 두 번째 주말 오후
즐거움과 함께 하시길여~
인정과 사랑이 메말라가는 시대에
큰스님의말씀 잘 읽었습니다.
뜻이있는곳에 길이있다 하여도
참한뜻을 실천하여볼 세상의 이치가
무너진듯하여 염려는 되지만
자연의순환속에 정화되듯이
세상은 점점 맑아질 것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아침에 님 덕분에
두 스님의 법어를 잠시 읽어봅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부처님 오신날,
사랑과 자비는 부처님의
은근한 미소와 같습니다.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라 하시니
나의 맘 부터 잘 다스려야 하겠습니다.
멋진 수필 2편을 잘 읽었습니다. ㅡ특히, 우리 모두 마음과 마음에 지혜의 등불을 밝혀 이 사회의 등불이 되어 ㅡ이 귀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