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w frontier...........
대동아 공영권의 막이 올랐다..........
한국 황제폐하와 일본국 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수하고 치밀한 관계를 회고하여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코자 하는 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만 같지 못한 것을 확신하여 이에 양국간에 병합조약을 체결하기로 결하고 일본국 황제폐하는 통감 자작 사내정의(寺內正毅)를, 한국 황제폐하는 내각총리대신 이완용을 각각 전권위원으로 임명함. 이 전권위원은 회동협의한 후 아채의 제조를 협정함.
제1조
한국 황제폐하는 한국정부에 관한 일체의 통치권을 완전하고도 영구히 일본국 황제폐하에게 양여함.
제2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에 게재한 양여를 수락하고 또 전연 한국을 일본국에 병합함을 승낙함
제3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한국 황제폐하,태황제폐하,황태자폐하 그리고 후비 및 후예로 하여금 각기 지위에 응하여 상당한 존칭, 위엄 그리고 명예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보지(保持)하기에 충분한 세비를 공급할 것을 약속함.
제4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전조 이외의 한국황족과 그 유예에 대하여 각기 상당한 명예와 대우를 향유케 하며 또 이를 유지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공여할 것을 약속함.
제5조
일본국 황제폐하는 훈공있는 한인으로서 특히 표창을 행함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자에 대하여 영작을 수여하고 또 은금을 여할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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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조선은 일제에 강제병합된다......
새롭게 탄생한 new FRONTIER......

=> 일로전쟁 승리 5년후의 한일병합.........
한일합방 기념 조선호.......
1910년 (메이지 43년) 8월 30일 중외상업신보 특집기사
*내선일체론 (內鮮一體論)*
오직 그 귀착점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여 내선이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중략)
우리나라와 같이 정의에 입각한 통치는 세계 각국에 유례가 없는 숭고한 도의적 통치인 까닭입니다. 우리나라가 옳은 까닭으로 만주국이 형제국이 되고 중국이 장차 제류하게 됩니다............(중략)
외형이나, 마음, 피나, 살이 모두 일체가 되지 아니하면 안된다.............(중략)
내선은 융합이 아니라 악수가 아니라 심신 모두 참으로 일체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1939년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
이 내선일체론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일제는 조선의 영구 지배를 노리고 있었다.
결국, 조선인 스스로 일제에 반기를 들 생각을 하지 않게 함으로서
조선통치를 원활히 하려는것이 일제의 생각이었다.
그럼.. 일제의 조선통치 최고 방침은 무엇이었을까?......
조선통치의 근본방침은 내선일체화이고, 궁극적인 목표는 조선의 시코쿠화, 큐슈화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통치자의 구상은 일시동인이며, 채택해야 할 통치 정책 - 반도 민중에게 시행할 물심양면에 걸친 전반적 시책 - 의 기초는 이들을 일본 본국의 국민과 같은 형태로 만드는것, 즉 반도 민중의 일본 동화에 두어졌다.....
따라서 조선 통치에 대한 일본의 근본방침인 소위 동화정책은 반드시 비난할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니, 식민정책학상의 용어에서 쓰이는 '동화정책'이라는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할 수 없을 만큼 그것은 특수한 것이었다.
< 대장성, 일본인의 해외 활동에 관한 역사적 조사 - 조선편 >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이난 이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글은...
일본사람들이 한일합병과 새로운 제국의 건설, 일제의 내선일체론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일제는 내선일체론을 주장하면서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추구했는데
그러면서 등장한것이 바로 창씨개명이다.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꿈으로서 조선인의 사고를 일본적 사고로 바꾸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지인인 일본사람들은 매우 불쾌해 했다고 한다.
뭣하러 그런 하등한 민족에게 자신들의 고귀한 이름을 쓰게 하냐고 반발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과거 감히 조선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등 민족이었던 일본사람들 입에서
이런말이 나온것 부터가 아이러니 한면도 있지만
일본사람들은 이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총독부가 조선인을 너무 잘 대해주는것 아니냐고
불평을 늘어놓았다는것이 더 중요하다.
즉, 이런 일본의 동화정책에 대해 매우 효과적인 정책이었다고 칭찬까지;; 퍼부은 것이다.
그럼.. 일제는 왜 갑자기 식민통치의 노선을 강경노선에서 동화노선으로 갈아탔을까?
그것은...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통해서 전선으로 내보내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사고를 일본식으로 바꿈으로서 3.1운동과 같은 그들에게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식민통치를 억지로라도 정당화 시키려는 움직임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내선일체를 주장하고 나서 내놓은 주장을 보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금회 조선의 징병제 실시에 대하여 조선청년에게도 국가방위의 숭고한 병역의무가 부여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무상의 광영이며 명예다. 자기 나라를 자기 손으로 수호함은 국민의 지고한 의무인 동시에 또한 국민의 당연한 권리라 생각한다. 조선 청년들도 이 국방 의무의 분담수행에 의하여 비로소 한 사람의 남자가 되어 가슴을 펴고 대도를 도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리고 이와 동시에 촌각이라도 잊어서는 안될 것은 명예가 있는 곳에 그 책무를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명예를 완수하는 길인 것이다.
( 이응준의 고야마 다케토시와의 [매일신보] 기자회견..... 1943년 8월 3일 )
당시 매일신보는 총독부의 일간지였다.
그래서 이 매일신보에 들어가는 기자들은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몸을 판 사람이라고 욕을 먹었다.
아무튼
일제는 이렇게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화를 통해서 막바지로 치달은 전쟁에 총알받이로
내보낼 병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이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화는 일제에게 매우 각별한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1941년 발표된 동아의 맹세를 보면 일제의 황국신민화에 대한 쇠뇌정책을 엿볼 수 있다.
조선의 정치는 역대 총독이 오로지 일시동인의 뜻을 넓히는 데 힘을 썼던 것으로 겨우 30년 정도 사이에 대단히 진전되었다. 그래서 세상은 평온해지고 산업은 개발되었다. 그중에도 농업과 광업의 진보가 뚜렷하고, 근래에는 공업의 발달도 눈부시며, 해륙의 교통기관이 갖춰지고 상업이 흥성하며 무역은 해마다 발전하고 있다. 또 교육이 널리 퍼지고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풍속과 관습 등도 점차 일본과 차이가 없게 되고, 제도도 차례로 고쳐져 내선일체의 형태가 갖추어졌다. 지방의 정치에는 자치가 확대되었고 교육도 일본과 똑같은 결정에 따르게 되었다. 특히 육군에는 특별지원병 제도가 생겨 조선인도 국방의 의무를 지게 되었는데 이미 전쟁에 나가 용감하게 전사해 호국의 신이 되어 정국신사에 제사지내지는 자도 있다. 또 씨를 칭하는 것이 허용되어 일본과 똑같이 가(家)의 이름을 붙이게끔 되었다. 지금 조선 지방 2,300만 주민은 국민총력조선연맹을 조직하고, 일제히 황국신민서사를 제창하여 신애협력하고, 내선일체의 성심을 나타내며 충군에 국의 열기에 불타서 모두 한결같이 황국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 동아의 맹세, 초등국사 제 6학년 제 25과 >
이 동아의 맹세에서 엿볼 수 있는것이
1. 일제의 황국신민화 정책
2. 내선일체 정책
3. 조선인 징병정책
4. 국민 총동원
5. 창씨개명 등이다.
앞의 내용을은 모두 지금 일제의 조선지배가 조선에 득이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된 주장 내용이다.
그럼.. 그렇게 조선인들에게 쇠뇌시키기 위해 날마다 외우게 하고 외우지 않으면 때리기까지 했다는 황국신민서사는 무었일까?
과거, 일제시대에 남산에는 조선신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황국신민 서사탑이 있었다....
이 황국신민의 서사는 어느 한 친일파가 지었는데....
'이각종'이라는 조선총독부 학무국 촉탁 겸 친일단체인 대동민우회 고문을 지낸 친일파였다.
아무튼... 1937년 제정된 황국신민의 서사는 이렇다....
우리는 황국 신민이다. 충성으로써 군국에 보답한다.
우리 황국신민은 서로 친애 협력하고 단결을 굳게한다.
우리 황국신민은 인고단련, 힘을 길러 황도를 선양한다.
이런 어이없고 무시무시한 글이 조선사람의 머리에서 나왔다는데서 경악하게 된다....
이렇게 계속된 내선일체화.....
그러나.. 창씨개명은.. 일반 서민들은 솔직히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으면 배급도 주지 않았고 심지어는 기차표도 팔지 않았기 때문인데......
어쩔 수 없이 창씨개명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일본식 이름에서 은연 중 저항하기도 했다.
예를들어...
견자웅손(犬子熊孫) 즉, 개자식이 된 단군의 자손... 이런 식이었다.
물론.... '2600년전 일본 진무천황께옵서 즉위하신 향구산을 씨로 삼았다'라고 떠벌리면서
자랑스럽게 창씨개명을 한 향산광랑(香山光郞) 이광수는.. 역시 뭔가가 다르긴 달랐지만.......
조선민중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해서 시작된 황국신민화 정책과 내선일체론은....
결국 수많은 조선사람들을 쇠뇌시키게 된다.
최고의 광고는 지속적인 반복이라고 했던가?
소기(小磯) 조선총독의 취임 유고(諭告)를 보면.. 부임된 조선 총독들이 어떤 생각으로
통치에 임했는지 엿볼 수 있다.
... (전략) ... 그러나 반도의 흉융과 성전의 목적을 완수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건인 국체본의를 투철히 함에는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반도 대중의 현상에 있어서 그러하다. 간곡히 바라는 바는 천황의 칙령에 따라 국체의 본의에 철저하고, 황국신민이라는 자각을 철저히 향상시키며, 내선일체의 결과가 결코 헛된 형식적 동조로 추락하는 것을 한탄하며, 이로써 오직 하나 천양무궁의 황운을 보좌하여 받드는 결심을 보이고자 할 뿐이다. 이것은 단순히 반도 동포만의 영광된 장래를 개척, 향상시키는것이 아니라, 찬란한 대동아경륜의 실현에 참가하는 길이다.
또한 그 시정은 현실에서 유리된 것이 아니다. 정치, 경제, 산업, 문교 등 제반 시책을 시세와 민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수행하여 조선 통치에 있어서 부동의 철칙인 완전한 일시동인의 피안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 諭告訓示演述總■ 제2집, 3쪽 >
새로운 지배노선....
일제의 내선일체론....
그들이.. 일방적인 강경노선으로 안된다는것을 깨달았던 사건이....
3.1운동이라고 하는데.....
결국 일제의 이런 동화정책으로....
어쩌면 우리 사회에 친일파가 더 많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때 혜택을 받았거나 큰 인상을 받았던 사람들이 지금, 자생적 친일파로
우리사회에 등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안개가 점점 겉혀갔으면 하지만....
점점 더 짙어져만 가는 지금..........
이런 역사 고찰이.........................
안개를 걷어내는데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새벽안개가 짙을수록 날씨는 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