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요9:24
귀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맹인이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진리와 대면하기 보다 현상 유지를 원했던 종교지도자들의 위압을 받으면서 그는 자신의 눈 뜸이 기적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알고,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공주야! 진짜 영적 맹인들은 진리이신 예수 앞에서 말이 많다. 숱한 증거들을 애써 무시한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한다.
Precious things are not easily obtained. A blind person did not become a disciple of Jesus overnight. He realized that his moxibustion meant more than a miracle and saw a new Jesus who opened his eyes, while being daunted by religious leaders who wanted to maintain the status quo rather than face-to face with the truth. Princess! Real spiritual blind people talk a lot in front of Jesus, the truth. They try to ignore a lot of evidence. And they justify their thoughts with absurd sophistry.
-
그 악순환은 점점 올바른 판단과 사유를 가로막고 착각과 자기 최면의 늪으로 빠져 들어간다. 바리새인과 맹인을 비교해보라. 맹인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시 소환되어 자신이 격은 일을 진술하도록 다시 요구받는다. 수백 번을 반복하여 말해도 바리새인들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생각대로 예수가 죄인인 것을 확인할 증거가 나올 때까지 이 맹인만 괴롭힐 것이다. 맹인은 급기야 바리새인 당신들도 예수의 제자가 되려고 이렇게 예수에 대해 알려고 하느냐면서 조롱 섞인 불평을 하기에 이른다.
The vicious cycle increasingly blocks correct judgment and thinking and plunges into a swamp of illusion and self-hypnosis. Compare the Pharisees and the blind. The blind are summoned back by the Pharisees and are asked to state their inferiority. The Pharisees will not change their minds even if they repeat themselves hundreds of times. Until there is evidence to confirm that Jesus is the sinner as they think, only this blind person will be tormented. The blind eventually make a mock complaint, asking if you, the Pharisees, are trying to learn about Jesus like this to become disciples of him.
-
자신은 이미 예수의 제자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자신에게 행하신 예수의 역사를 증언 하는 중에 더 확실히 예수의 제자로 거듭난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 모세의 제자를 자처한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 이 예수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확실한 모세의 제자가되는 것이 합당하다는 투로 말한다. 하지만 맹인은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이 눈을 뜬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며,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It implies that he has already become a disciple of Jesus. He was more clearly reborn as a disciple of Jesus while testifying to him the history of Jesus. Pharisees claim to be disciples of Moses, not disciples of Jesus. He says in a way that it is more appropriate to be a disciple of Moses than to be a disciple of Jesus, who is certain that God sent him, even though he does not know where he came from. However, the blind man's opening his eyes without being intimidated is unprecedented in history, something that only God can do.
-
하나님은 죄인이 아니라 경건한 자의 말만 듣는 분이니, 예수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 는 것이다. 그의 말에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진실에 입각한 그의 증언은 어떤 큰 목소리나 세상 권위자의 말보다 힘이 있고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 진실의 힘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두둔하는 눈뜬 맹인을 쫓아낸다. 예수는 그런 맹인을 몸소 찾아가 ‘인자를 믿느냐’고 물으신다. 맹인은 그가 누구인지 지식적으로는 모르지만, 예수가 말하는 분이면 믿겠다고 한다.
Since God is not a sinner, but a man who only listens to the pious, Jesus is also logically correct to have come from God. There is no brilliant rhetoric in his words, but his testimony based on truth is more powerful and persuasive than the words of any loud voice or world authority. This is the power of truth. The Pharisees drive out the blind man who protects Jesus. Jesus personally visits such a blind man and asks, 'Do you believe in men?' The blind man says he does not know who he is intellectually, but he would believe if he were who Jesus says.
-
예수는 자신이 바로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고(구원)스스로 본다고 자처하는 저들을 보지 못하게 하는(심판)"인자"라고 소개한다. 맹인은 즉시 이 인자 예수를 믿는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또다시 이 일을 문자적으로만 생각한다. 그들이 진정 자신들을 영적인 맹인으로 겸손히 인정했으면 역설적으로 이 예수가 누구인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 할 수 있는 용기가 내게도 있는가?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의 특징은 무엇인가? 왜 진리를 가장 확신하는 사람들이 진리를 가장 강하게 거부하는가?
Jesus is introduced as a "referee" who makes him see those he cannot see (save) and does not see those who claim to see (save) themselves. The blind immediately believe in Jesus, the Son of Man. But the Pharisees only think of it literally again. If they had truly humbled themselves as spiritual blinds, they would have seen who Jesus was ironically. Do I have the courage to tell the truth? What are the characteristics of a person with open spiritual eyes? Why do those who are most convinced of the truth reject the truth the most strongly?
-
예수님이 죄인인가에 대한 논쟁(24-25)
a.예수님이 죄인이라 하는 유대인들:24
b.맹인의 시력을 회복시킨 예수님:25
예수님의 제자와 모세의 제자(26-29)
a.예수님의 제자처럼 말하는 맹인이었던 사람:26-27
b.모세의 제자임을 자랑하는 유대인들:28-29
예수님에 대한 변호(30-34)
a.경건한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30-31
b.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님:32-34
인자를 믿는 맹인(35-36)
a.인자를 믿고자 하는 맹인:35-36
b.마침내 인자를 믿는 맹인:37-38
심판하러 오신 예수님(39)
a.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시는 예수님:39a
b.보는 자들을 맹인 되게 하시는 예수님:39b
진정한 맹인인 바리새인들(40-41)
a.바리새인들의 질문:40
b.예수님의 평가:41
-
이에 저희가(24a)
소경 되었던 사람을(24b)
두 번째 불러(24c)
이르되 너는(24d)
영광을(24e)
하나님께 돌리라(24f)
우리는 저 사람이(24g)
죄인인줄 아노라(24h)
-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25a)
내가 알지 못하나(25b)
한 가지 아는 것은(25c)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25d)
지금 보는 그것이나이다(25e)
-
저희가 가로되(26a)
그 사람이 네게(26b)
무엇을 하였느냐(26c)
어떻게 네 눈을(26d)
뜨게 하였느냐(26e)
-
대답하되 내가 이미(27a)
일렀어도(28b)
듣지 아니하고(27c)
어찌하여 다시(27d)
듣고자 하나이까?(27e)
당신들도 그 제자가(27f)
되려 하나이까?(27g)
-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28b)
너는 그의 제자나(28c)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28d)
-
하나님이(29a)
모세에게는(29b)
말씀하신 줄을(29c)
우리가 알거니와(29d)
이 사람은(29e)
어디서 왔는지(29f)
알지 못하노라(29g)
-
그 사람이(30a)
대답하여 가로되(30b)
이상하다 이 사람이(30c)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30d)
당신들이(30e)
그가 어디서 왔는지(30f)
알지 못 하는 도다(30g)
-
하나님이 죄인을(31a)
듣지 아니하시고(31b)
경건하여(31c)
그의 뜻대로(31d)
행하는 자는(31e)
들으시는 줄을(31f)
우리가 아나이다(31g)
-
창세 이후로(32a)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32b)
뜨게 하였다 함을(32c)
듣지 못하였으니(32d)
-
이 사람이(33a)
하나님께로부터(33b)
오지 아니하였으면(33c)
아무 일도(33d)
할 수 없으리다(33e)
-
저희가(34a)
대답하여 가로되(34b)
네가 온전히(34c)
죄 가운데서 나서(34d)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34e)
이에 쫓아내어(34f)
보내니라(34g)
-
예수께서(35a)
저희가 그 사람을(35b)
쫓아냈다 하는 말을(35c)
들으셨더니(35d)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35e)
네가 인자를 믿느냐(35f)
-
대답하여 가로되(36a)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36b)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36c)
-
예수께서 가라사대(37a)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37b)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37c)
그이니라(37d)
-
가로되 주여 (38a)
내가 믿나이다. 하고(38b)
절하는지라(38c)
-
예수께서 가라사대(39a)
내가 심판하러(39b)
이 세상에 왔으니(39c)
보지 못하는 자들은(39d)
보게 하고(39e)
보는 자들은(39f)
소경되게 하려(39g)
함이라 하시니(39h)
-
바리새인 중에(40a)
예수와(40b)
함께 있던 자들이(40c)
이 말씀을 듣고(40d)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40e)
-
예수께서 가라사대(41a)
너희가 소경 되었더라면(41b)
죄가 없으려니와(41c)
본다고 하니(41d)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41e)
-
담백한 고백_a plain confession_
명백한 모순_a clear contradiction_
선명한 이해_clear understanding_
-
저의 영적인 눈이 더욱 밝아져서 끝까지 울 주님과 편먹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소경처럼 사회에서 따를 당할지라도 내 삶속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외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진리를 경험하고 진리를 붙잡기 위해 더 가까이 믿음으로 나아갔던 소경처럼 타는 목마름으로 주님을 찾는 자 되게 하옵소서. 열심히 공부하고 검소 하게 살며 성실한 성도가 되도록 이 세상에 대하여 소경이 되게 하옵소서.
Let my spiritual eyes become brighter and eat with our Lord to the end. Thus, even if I am obeyed in society like a small police officer, let me be a life in which Jesus is Christ in my life. Let me find the Lord with a burning thirst like a small police officer who experienced the truth and went closer to faith to hold on to the truth. Let me study hard, live frugally, and be a small police officer to the world so that I can become a faithful saint.
2026.3.3.tue.Clay
신학 비평//
1) 두 번째 심문 — 진리를 향한 권력의 압박
요 9:24는 법정 장면처럼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그 사람이 죄인인 줄 안다.”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습니다. 조사는 사실 확인이 아니라 <자백 강요>입니다.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면입니다. 여기서 종교 권력은 진리를 찾지 않습니다. 진리를 관리하려 합니다. 즉, 이 심문은 “기적 조사”가 아니라 권위 유지 프로젝트입니다.
2) 믿음의 출발점 — “나는 모른다”
맹인의 대답은 신학적으로 놀랍습니다. “그가 죄인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은 한 가지, 내가 보게 되었다.” 이 문장은 요한복음의 핵심 신앙 고백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식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3) 신앙의 성장 — 증언 속에서 자라나는 믿음
이 본문의 가장 아름다운 신학은 이것입니다. 맹인은 아직 예수를 완전히 모릅니다. 그러나 증언하면서 믿음이 자랍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증언 → 확신 → 고백 → 예배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합니다. 확신 → 증언 하지만 요한복음은 반대로 말합니다. 증언이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믿음은 완성된 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과정 속에서 깊어집니다.
4) 모세의 제자 vs 예수의 제자
바리새인의 핵심 선언은 “우리는 모세의 제자다.” 이 말은 단순한 전통 고백이 아닙니다. 정체성 선언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체계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신학적 긴장이 발생합니다. 율법 중심 신앙 vs 계시 중심 신앙 바리새인: 과거 중심, 맹인: 현재 계시 중심입니다. 종교는 종종 이미 아는 하나님을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새롭게 만나는 하나님입니다.
5) 추방 — 믿음의 대가
맹인은 결국 쫓겨납니다.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에서 “출교”는 단순한 처벌이 아닙니다. 공동체 상실입니다. 그는 종교적 삶-사회적 삶-경제적 삶 모두를 잃습니다. 이 장면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진리를 위해 무엇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6) 예수의 움직임 — 버려진 자를 찾아가다
놀라운 장면은 “예수께서 그를 찾아가셨다.” 이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종교 공동체가 버린 사람을 예수가 직접 찾으십니다. 복음의 구조: 인간은 하나님을 찾는다 no 하나님이 인간을 찾는다 ✔ 출교는 끝이 아니라 만남의 시작입니다. 맹인의 마지막 고백 “주여 내가 믿나이다.” 그리고 그는 경배합니다. 요한복음의 믿음은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믿음의 완성 1. 경험 2. 증언 3. 고백 4. 예배 믿음은 결국 예배로 완성됩니다.
7) 가장 무서운 죄 — “나는 본다”
마지막 구절이 핵심입니다. “너희가 본다고 하니 죄가 그저 있느니라.” 여기서 요한복음의 가장 깊은 신학이 등장합니다. 무지 = 죄 no 확신 = 죄입니다. 왜일까요? “나는 안다”는 선언은 배움의 가능성을 닫기 때문입니다. 영적 맹인의 특징은 질문 없음-변화 없음-확신만 있습니다.
8) 역설적 심판
예수의 선언: 보지 못하는 자 → 보게 함 > 본다고 하는 자 → 보지 못하게 함 이것이 요한복음의 심판입니다. 심판은 미래 사건이 아니라<현재의 반응>입니다. 빛을 만나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 위치를 결정합니다. 이 본문은 “맹인 치유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적 인식의 이야기 입니다. 맹인은 육체의 눈을 뜨며 영적 눈도 열립니다. 바리새인은 육체의 눈을 가졌지만 영적 눈을 닫습니다. 나는 모른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