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황야의 산세바스챤목사”
등촌 이계선
“아빠가 흑인들과 껄껄거리면서 악수하고 포옹하면서 즐겁게 지내는걸 보면 아빠는 ‘황야의 산세바스챤 목사’가 된 것 같아요. 영화’황야의 산세바스챤‘에 나오는 찰스브론슨 신부보다도 아빠는 더 멋지게 연기하는 목사예요”
둘째딸 은범이의 말을 들으니 이사 오던 날이 생각난다. 2010년 2월 15일은 봄의 문턱인데도 바닷바람이 부는 파라커웨이는 눈보라치는 겨울날씨였다. 노인아파트 대용으로 입주하는 시영아파트는 전쟁이 지나간 황야처럼 지저분하고 살벌했다. 90%가 흑인과 히스페니였다. 그들은 이사짐을 나르는 우리를 째려보고 있었다. 짐을 나르는 은범이가 속삭였다.
“아빠 저들은 마약흡연자들이에요. 눈동자를 보면 알아요. 아빠가 사는 동(棟)에만 8-9명 정도는 될 거예요. 조심해야 돼요”
엘리베이터 안은 빵부스러기 음료수 종이가 뒤섞여 뒹굴고 있었다. 개똥과 오줌냄새로 가득하기도 했다. 복도는 폐차장 골목처럼 더러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파트 밖의 세상은 천하절경이다. 왼쪽은 낙시터, 오른쪽은 비치. 테니스코트가 있는 스포츠공원은 일급시설이다. 우리가 사는 원 베드룸 아파트는 호텔수준이다. 창문 옆에는 미니공원이 그림처럼 서있고 하루 종일 햇빛이 들어온다. 나는 햇빛이 가득한 거실이 너무 좋아 데커레이션을 빈 공간으로 꾸몄다. 벽에는 손바닥만한 오리지널 그림 두점이 걸려있을 뿐. 소파하나가 길게 누워있고 TV와 책장하나가 전부다. 테이불도 치웠다. 빈 걸 좋아하는 내 취향 때문이다. 버려야 비울 수 있으니까. 그 대신 텅 빈 거실은 하루 종일 햇빛으로 가득하다. 세상에 햇빛보다 더 아름다운 게 어디 있을까?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내방에 들어오면 호텔이요 아파트를 나가면 관광천국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더러운 우범지대인 것이다. 이사 다음날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애꾸눈 젊은 흑인이 손을 내밀었다. 없다니까 그럼 2달러만 달란다. 2달러도 없어서 겁이 덜컥 났다. 앞 동(棟)에 사는 박씨가 찾아와 일러준다.
“주머니에 항상 20달러를 넣고 다니다 강도만나면 얼른 줘야 해요. 큰일 나요. 우리부부는 10년 째 사는데 여러 번 당 했어요”
얼마 후 박씨는 젊은 흑인에게 당하여 병원진단을 받기도 했다. 한번은 엘리베이터 안에 피 묻은 솜뭉치가 뒹굴고 있었다. 생리중인 처녀가 버린 생리대였다. 남자를 흥분시키려고 한 짓이었다. 끔찍했다. 지낼수록 불안하고 더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3개월 만에 보따리를 싸들고 후러싱으로 가버렸다는 한인들도 꽤있었다. 그래서 여기는 한인들이 별로 없다. 자녀들은 더 걱정이다. 며칠 밤을 고민했다. 결론은 “황야의 산세바스챤”이 되자! 60년대 말 내가 서울에서 본 영화였다.
‘경찰에 쫒기는 살인범 리온 알라스트라이(찰스브론슨)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성당안으로 뛰어들어 요셉신부(안소니퀸)의 보호로 살아남는다. 요셉신부가 멕시코의 사막도시 산세바스챤으로 임지를 옮기자 리온은 수도사로 변장하고 따라간다. 소란통에 요셉신부가 죽자 주민들은 리오를 신부님으로 받든다. 살인범이 엉터리로 신부흉내를 내는 게 얼마나 우습고 재미있는 연기일까? 야퀴족 인디언들이 세바스챤 마을을 습격한다. 엉터리신부 찰스 브론슨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본래의 솜씨를 발휘하여 천하무적 싸움실력으로 침략자들을 물리친다. 그리고 유유히 사막으로 사라져간다.’
“진명 은범 해범아! 걱정마라. 아빠는 ‘황야의 산세바스챤’처럼 멋지게 살 것이다”
나는 찰스브론슨 연기를 시작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비니루 봉지를 들고 다니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주어 담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나누고 손을 잡아줬다. 어떤 젊은이는 왜 손을 잡느냐고 게이취급을 한다. 그러면 웃으면서 무하마드 알리가 복싱할 때 주먹을 서로 부디 치는 격투기인사로 접근했다. 애꾸눈 젊은이가 또 돈을 요구했다.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구나. 찰스브론슨 처럼 주먹을 사용하자’
평생 싸움한번 해 본적이 없는 나는 싸움닭연기를 연습했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손아귀와 팔 힘 기르는 운동을 했다. 한달 후 애꾸눈을 만났다.
“내가 너에게 20달라 를 주겠다. 그 대신 공원으로 가서 격투기를 하자. 네가 이기면 내가 너에게 20달라 를 주고 내가 이기면 네가 나에게 20달라 를 줘야한다. 난 70 노인이니 네가 질 염려는 안 해도 될 것이다”
결혼까지 한 애꾸눈 청년은 내가 70이라는 말에 의기양양 따라나섰다. 공원 테이불에 마주 앉았다. 먼저 기죽이기 작전.
“난 한국에서 합기도를 했다. 요즘 TV에 자주 나오는 UFC(종합격투기)이다. 다칠 염려가 있으니 UFC대신 Arm wrestling(팔씨름)으로 하는게 어떠냐?”
나보다 키가 큰 녀석은 팔을 걷어 부쳤다. 한번 두 번 세 번 그는 맥없이 무너졌다. 난 사실 팔씨름만은 지금도 이팔청춘이다. 절망하는 그에게 20불을 쥐어줬다.
“네가 졌지만 내가 20불을 준다. 그 대신 앞으로는 레슬링대신 악수하면서 지내자”
흑인젊은이들 7,8명이 아파트입구에 걸터앉아 잡담을 즐긴다. 난 한사람 한사람에게 악수를 한다.
“아휴 아파! 찌릿찌릿 손에 전기가 오네요. 왜 그리 손아귀 힘이 셉니까?”
“종합격투기 좀 가르쳐 주세요”
난 아파트옆에 있는 흑인교회를 나간다. 지역주민들과 어울리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친절을 위선이라고 항의하는 흑인도 있다.
“왜 당신은 우리흑인들에게 친절 합니까? 정말 당신은 흑인들을 사랑합니까?”
“우리한국 속담에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웃도 친절하게 지내면 사촌처럼 가깝게 된다는 말입니다. 당신들은 나의 사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쩌다가 비닐봉지를 들고 나간다. 많이 깨끗해 졌기 때문이다. 흑인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 그래도 나의 “황야의 산 세바스챤” 연기는 아직 서툴기만 하다.
첫댓글 오늘 미사 복음 말씀입니다, 위자리를 내놓고 낮은곳으로 자기를 낮추면 높임을 받는다는 것을 우리는 때론 잊고 살지요, 나를 버리면 세상이 변하지요.고로 내가 변해야 남이 변합니다, 주님, 제마음에 욕심 시기 질투 미움 자랑 이기심을 버리게 하소서,,,
오늘모두 은혜밭으셧나봅니다 ^&
뉴요커님이 주신 빠알간 명함,
여러 명함 무리들 속에서 빨갛게 익은 고추처럼 유독 눈에 띄면서, 타는 정열을 내뿜으니,
뉴요커님의 힘(기운)을 느껴 봅니다. 그 날 더 못다한 것들이 못내 아쉽네요.
슬럼가 같은 곳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친구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