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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0:1
7-9장이 진리 앞에서 '누가 맹인인지'를 논했다면 10장은 '누가 거짓 목자이고 거짓 양인지'가 드러납니다. 바울이 '사랑이 아닌 것'을 통해 '사랑'을 설명했듯이(고전13장) 거짓은 '참'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속지 않고 속이지 않기 위해 거짓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공주야! 이스라엘은 통치자를 목자로 비유하곤 했다. 이스라엘은 지금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 목자를 기다린다. 그들이 모델로 삼고 있는 목자는 세상의 통치자를 닮았다. 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목자는 그들의 기대와 상상을 초월한다.
While Chapters 7-9 discuss 'who is blind' before the truth, Chapter 10 reveals 'who is false shepherd and who is false sheep.' Just as Paul explained 'love' through 'something that is not love' (classics 13), lies make 'truth' clearer. To not be deceived and deceived, we must see lies clearly. Princess! Israel used to compare a ruler to a shepherd. Israel now waits for the Messiah shepherd to save them. The shepherd they are modeling looks like the ruler of the world. However, the shepherd God has prepared does not go beyond their expectations and imagin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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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은혜를 감당할 안목이 없다. 예수는 자신들을 양의 문이라고 소개한다. 자신을 유일한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알리신 것이다. 자신(J)을 통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강도요 절도다. 그는 양을 살리는 자가 아니라 죽이는 자다, 그는(J) 또한 양의 목자도 되신다. 목자로서 예수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그 목자의 양이라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르며, 목자이 양이 아닌자들은 그 음성을 듣고 도망할 것이다.
He has no eye for too much grace. Jesus introduces himself as the door of the sheep. He announced himself as the only passage of God's kingdom. He is a robber and a thief who claims to be able to enter God's kingdom without going through himself (J). He is not a shepherd, but a murderer, and he (J) also becomes a shepherd of the sheep. As a shepherd, Jesus knows the names of sheep, and if he is a shepherd, he understands and follows the shepherd's voice, and those who are not shepherd will run away after hearing the v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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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 예수의 음성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그 음성 따라 사는 맛을 알고 있는가? 예수는 자신을 '선한 목자'로 소개하시고 삯꾼 목자와 비교하신다. 삯꾼은 양들에게 위험이 닥쳤을 때 자신에게도 위험이 되는 상황이면 달아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불사한다. 현실에서는 이런 목자가 없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살리고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Is he a person who likes the voice of Jesus? Do you know the taste of living according to the voice? Jesus introduces himself as a 'good shepherd' and compares him to a wage shepherd. When a danger arises to the sheep, the wage earner runs away if it is a danger to him, but the good shepherd takes his life for the sheep. In reality, there is no such shepherd. But Jesus had told his people in advance that he would give his life to save them and enjoy a rich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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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속죄의 어린양이 되시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다른 우리에 있는 양들(이방인)도 이 목자의 희생을 통하여 살리실 것이다. 예수의 말을 듣고 그가 귀신 들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귀신 들린 자가 할 소리가 아니며 귀신 들린 자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으니 그럴 리가 없다고 주장 하는 자들로 의견이 갈린다. 예수를 반대하는 자들은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판단한 것이 아니라서 반대 한다. 그들은 외모로 예수를 판단한 것이다.
Because he becomes the lamb of God's atonement for the sin of the world. Even the sheep (foreigners) in other cages now will be saved through the sacrifice of this shepherd. The opinions are divided between those who think he was possessed by Jesus and those who think that he is possessed and those who argue that it is not possible because the haunted person cannot open the eyes of the blind. Those who oppose Jesus oppose it because they did not judge him by his words or actions. They judged Jesus by his appea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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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표적보다 자신의 기준과 판단이 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열린 마음과 겸손한 마음에서 나온다. 자기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가능성에 나를 던지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잘 따라가고 있는가? 착한 신부로 준비되어 가고 있는가? 영혼에 대한 애정과 책임도 없으면서 가르치고 있지는 않은가? 목자 예수님은 삯꾼 목자와 어떤 점에서 다른 목자인가?
I think my standards and judgments are more reliable than the words and targets given by God. Faith comes from an open mind and a humble mind. Because faith is faith that transcends one's limits and throws me at the possibility of God. Am I following the shepherd's voice well? Are you being prepared as a good priest? Are you not teaching without affection and responsibility for the soul? In what way is shepherds Jesus different from wage shephe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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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문과 목자(1-2)
a.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절도와 강도:1
b.문으로 들어가는 양의 목자:2
양을 불러서 인도하는 목자(3-6)
a.양의 이름을 부르는 목자:3
b.양을 인도하는 목자:4-6
양의 문이신 예수님(7-10)
a.양의 문과 절도와 강도:7-8
b.양의 문과 끝:9-10
양을 위해 죽으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11-15)
a.선한 목자 예수님:11
b.삯꾼:12-13
c.선한 목자 예수님:14-15
다른 양들을 위해 죽으시는 선한 녹자 예수님(16-18)
a.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16
b.양들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 예수님;17-18
둘로 나뉜 사람들(19-21)
a.유대인들의 부정적 반응:19-20
b.유대인들의 긍정적 반응: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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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진실로(1a)
너희에게 이르노니(1b)
양의 우리에(1c)
문으로(1d)
들어가지 아니하고(1e)
다른 데로(1f)
넘어가는 자는(1g)
절도며 강도요(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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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으로(2a)
들어가는 이가(2b)
양의 목자라(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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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기는(3a)
그를 위하여(3b)
문을 열고(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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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3d)
그의 음성을 듣나니(3e)
그가(3f)
자기 양의 이름을(3g)
각각 불러(3h)
인도하여 내느니라(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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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양을(4a)
다 내어 놓은 후에(4b)
앞서 가면(4c)
양들이(4d)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4e)
따라 오되(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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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음성은(5a)
알지 못하는 고로(5b)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5c)
도리어 도망하느니라(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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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비유로(6a)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6b)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6c)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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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예수께서(7a)
다시 이르시되(7b)
내가 진실로진실로(7c)
너희에게 말하노니(7d)
나는 양의 문이라(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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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먼저 온 자는(8a)
다 절도요 강도니(8b)
양들이 듣지(8c)
아니하였느니라(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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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문이니(9a)
누구든지(9b)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9c)
구원을 얻고(9d)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9e)
꼴을 얻으리라(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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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이 오는 것은(10a)
도적질하고(10b)
죽이고(10c)
멸망시키려는(10d)
것뿐이요(10e)
내가 온 것은(10f)
양으로(10g)
생명을 얻게 하고(10h)
더 풍성히 얻게(10i)
하려는 것이라(10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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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11a)
선한 목자는(11b)
양들을 위하여(11c)
목숨을 버리거니와(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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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군은(12a)
목자도 아니요(12b)
양도(12c)
제 양이 아니라(12d)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12e)
양을 버리고(12f)
달아나나니(12g)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12h)
또 해치느니라(1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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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나는 것은(13a)
저가 삯군인 까닭에(13b)
양을(13c)
돌아보지 아니함이나(1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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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14a)
내가 내 양을 알고(14b)
양도 나를 아는 것이(14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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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15a)
나를 아시고(15b)
내가 아버지를(15c)
아는 것 같으니(15d)
나는 양을 위하여(15e)
목숨을 버리노라(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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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 우리에(16a)
들지 아니한(16b)
다른 양들이(16c)
내게 있어(16d)
내가 인도하여야(16e)
할 터이니(16f)
저희도(16g)
내 음성을 듣고(16h)
한 무리가 되어(16i)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16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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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17a)
사랑하시는 것은(17b)
내가 다시(17c)
목숨을 얻기 위하여(17d)
목숨을 버림이라(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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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내게서(18a)
빼앗는 자가(18b)
있는 것이 아니라(18c)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18d)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18e)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18f)
이 계명은(18g)
내 아버지에게서(18h)
받았노라 하시니라(1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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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을 인하여(19a)
유대인 중에(19b)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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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20a)
많은 사람이 말하되(20b)
저가(20c)
귀신 들려 미쳤거늘(20d)
어찌하여 그 말을(20e)
듣느냐 하며(2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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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말하되(21a)
이 말은(21b)
귀신 들린 자의(21c)
말이 아니라(21d)
귀신이(21e)
소경의 눈을(21f)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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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목자가 있다_have a false shepherd_
거짓 양도 있다-have a false connection-
우리 밖 양도 있다_We've got more fish to fry.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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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모든 필요를 다 아시는 주님께서 생명의 꼴로 풍성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따르지 않고 행한 지난날들을 용서하옵소서. 이제부터 제 이름을 불러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의 음성을 잘 듣고 천천히 따라가겠습니다.
Thank the Lord, who knows all my needs, for enriching me like life. Forgive me for the past I did not follow while listening to the voice of the Lord, the good shepherd. From now on, I will call my name and listen carefully to the voice of the shepherd who leads me to the blue grass.
2026.3.4.wed. Clay
신학 비평//
1) 맹인 이야기 다음에 목자 비유가 오는 이유
요 9장은 “누가 맹인인가”를 묻습니다. 요 10장은 그 질문의 결과입니다. 눈이 열리면 반드시 다음 질문이 등장합니다. 이제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 a. 빛의 경험 → 선택의 문제 b. 치유 → 방향의 문제 그래서 요한은 맹인 사건 뒤에 바로 목자 비유를 배치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신학적 구조입니다.
2) “나는 문이다” — 구원을 통로로 설명하다
“나는 양의 문이다” 이 말은 매우 급진적입니다. 고대 유대교의 통로는 율법-성전-제사-종교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는 길은 <제도>가 아니라 <인격>이다. 철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존재론적 전환입니다. a. 종교: 하나님에게 가는 체계 b. 복음: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는 사건
3) 왜 ‘절도와 강도’라는 강한 표현인가
예수는 단순히 “다른 길도 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다른 길 = 절도와 강도)왜 이렇게 강할까요? 요한복음의 핵심은 "거짓 목자는 양을 이용하나 참 목자는 양을 살린다" 거짓 지도자의 특징은 권력 유지/두려움 조장/소속 강요이고, 참 목자의 특징은 생명 제공/자유 허용/관계 형성입니다.
4)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 믿음의 본질
여기서 믿음의 정의가 등장합니다. 믿음 = 교리 동의가 아니라 믿음 = 음성 인식입니다. 이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지식의 방식은 객관적 정보/논리/증명인제, 관계의 방식은 친밀함/신뢰/인식입니다. 예수는 믿음을 <인식론이 아니라 관계론>으로 설명합니다.
5) 삯꾼과 선한 목자 — 권력의 윤리
삯꾼의 핵심 특징은 위험이 오면 도망한다. 왜 도망할까요? 양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임 없음/희생 없음/관계 없음) 그러나 선한 목자는 “나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여기서 복음의 중심이 등장합니다. 권력의 본질은 a. 세상 권력 → 타인을 희생시킴 b. 하나님 나라 → 자신을 희생, 십자가는 권력의 역전입니다.
6) “풍성한 생명” — 구원의 철학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생명은 단순한 생존이 아닙니다. 관계-자유-풍요-의미로 “존재의 충만함”입니다. 구원 = 죽어서 천국 가기가 아닌 구원 = 지금 삶의 질이 변하는 것입니다.
7) 다른 우리에 있는 양 — 경계의 확장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 이것은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을 말합니다. 교회는 경계가 아니라 <관계의 공동체>입니다. “아무도 내 목숨을 빼앗지 않는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니다. <자발적 선택>입니다. 예수의 죽음은 강요된 희생이 아니라 <사랑의 자유>입니다.
8) 왜 결국 분열이 일어나는가?
“사람들이 둘로 나뉘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항상 분열을 만듭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예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만나는 순간 사람은 반드시 선택해야 합니다.
* 통제 vs 자유
* 제도 vs 관계
* 권력 vs 사랑
요 10장은 목자 비유가 아닙니다. 권력과 구원의 본질에 대한 선언입니다. a. 세상 권력은 지배한다/이용한다/보호하지 않는다 b. 하나님 나라는 부른다/안다/목숨을 내놓는다
9) 목자의 음성은 왜 ‘즉시’가 아니라 ‘지연’ 속에서 들리는가?
a. 지연→ 의미는 즉시 완성되지 않고 시간 속에서 늦게 드러난다 b. 차연→ 의미는 차이 속에서만 드러난다. 즉, 의미는 즉시 주어지지 않고 시간 + 차이 속에서 나타난다. 이 개념을 요한복음 9–10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10) 요9–10장의 흐름 자체가 “지연”
맹인의 믿음 과정 단계적 변화 1. “그 사람”-2. “선지자”-3.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4. “주여 내가 믿나이다” 믿음은 즉시 완성되지 않습니다.이것이 바로 <지연>입니다. (빛을 본 순간 → 믿음 완성 no 빛을 본 후 → 시간 속에서 이해 ✔) 요한복음의 신앙은 항상 <시간의 신학>입니다.
11) 목자의 음성은 왜 “즉시” 알아듣지 못하는가?
“양은 그의 음성을 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제자들: 오해/의심/배신/ 도망 왜일까요? 음성 인식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양은 태어나자마자 목자를 알지 않습니다. 함께 <살며> 알게 됩니다. 이것이 신앙의 지연 구조입니다.
12) 차연 — 진짜 목자는 ‘거짓 목자’ 속에서 드러난다
요10장은 놀랍게도 예수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a. 먼저 등장하는 것: 절도/강도/삯꾼/거짓 목자 왜일까요? <차이> 속에서만 참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사랑은 ~하지 않는다”로 설명한 것처럼, 참 목자는 <거짓 목자와의 차이*>속에서 드러납니다.
13) 지연 + 차연 = 목자의 인식 구조
양이 목자를 알아가는 방식은 ① 처음에는 구별 못함-② 다른 음성을 경험함-③ 위험을 경험함-④ 진짜 음성을 배움 즉, 거짓 목자 경험 → 참 목자 인식 이것이 바로 <차연>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거짓을 지나며 진리를 배웁니다.
14) “나는 문이다” — 지연을 통과하는 유일한 통로
예수는 왜 자신을 “문”이라고 말할까요? 문은 특징이 있습니다. "문은 한 번에 통과되지 않는다-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즉 구원은 순간적 사건이 아닌 통과의 과정, 문은 “경험되는 통로”입니다.
15) 풍성한 생명은 왜 ‘시간’ 속에서만 가능할까?
“풍성한 생명” 풍성함은 즉시 주어질 수 없습니다. 풍성함의 조건은 관계/신뢰/경험/기억 모두 시간이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항상 속도보다는 성숙입니다.
16) 삯꾼과 선한 목자 — 차연의 절정
진짜 목자는 위기 속에서 드러납니다. 차연의 핵심은 "진리는 평상시가 아니라, 위기 속에서 드러난다." 십자가가 바로 그 순간입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을 빨리 알지 못할까?” 요한복음의 대답은 신앙은 지연 속에서 자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참 목자는 차이를 통해 드러납니다. 요10장의 목자 비유는 사실 <시간의 신학>입니다. 우리는 즉시 믿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 배우는 존재입니다. 나는 아직도 지연 속에 있는 양인가, 아니면 이미 음성을 알아가는 양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