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모차르트의 오페라《돈 조반니》에서 체를리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임선혜(왼쪽)./하르모니아 문디 제공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에서 전설의 호색한인 주인공 돈 조반니(돈 주앙) 곁에는 3명의 여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 여인 돈나 안나는 아버지를 숨지게 한 괴한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고 있습니다. 두 번째 여인 돈나 엘비라는 바람둥이 옛 애인의 마음을 돌리려는 순정과 질투심으로 가득합니다. 둘의 성격에는 일관성이 있지만, 반면 일면적이기도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여인이 시골 처녀 체를리나입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만난 탕아(蕩兒) 돈 조반니의 꼬임에 이중창 〈서로 손을 잡고〉를 부르며 넘어가는가 하면, 약혼자 마제토가 격분하면 반대로 아리아 〈때려줘요, 마제토〉를 노래하며 달랩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말 그대로 지조는 눈곱만큼도 찾기 어렵지만,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2006년 10월 독일 바덴바덴 극장에서 열린 오페라 《돈 조반니》 공연에서 소프라노 임선혜가 맡은 역이 바로 체를리나입니다. 처음 등장하는 1막 중반부터 마제토와 함께 창가에서 뛰어내리며 무대를 마음껏 휘젓습니다. 돈 조반니가 수작을 걸자 가볍고 낭랑하며 유려한 목소리 톤으로 "굴복해야 하나, 거절해야 하나"라며 어쩔 줄 모릅니다. 신발을 집어던지며 투정을 부리다가도 곧장 "때려줘요"라고 애교를 피우며 극중 인물에 생동감을 불어넣습니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임선혜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대본 작가(로렌초 다 폰테)와 작곡가(모차르트)가 만들어낸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은 가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연속 녹음하며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 거장'으로 떠오른 르네 야콥스(Jacobs)의 특급 열차에 임선혜가 탑승한 것은 2006년 음반 《티토 황제의 자비》에서 세르빌리아 역을 맡으면서부터입니다. 그 뒤 《돈 조반니》의 체를리나 역에 이어 올해 《이도메네오》에서는 공주 일리아 역을 맡았습니다. 차기작 《마술 피리》에서는 새잡이 파파게노의 깜찍한 여자 친구인 파파게나 역을 소화할 예정입니다.
임씨가 맡은 배역의 비중이나 등장인물의 신분은 공주(일리아)부터 농부의 딸(체를리나)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한 번 무대에 선 뒤 곧장 잊히고 마는 '깜짝 스타'가 아니라, 지휘자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면서 서서히 배역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프라노 임선혜는 지휘자 야콥스의 '페르소나(persona)'일지도 모릅니다. 모차르트 열차의 종착역까지 부디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