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도 영화도 구름인것을
===================
권세를 쫓던 한 여인의 종말을
그린 드라마 ‘장녹수!‘.
익히 소설로나 드라마로 보고 듣고 했음에도 혼돈하는 또 한 여인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장희빈‘이다.
그런데 이 두 여인은 한 사람인가, 다른 사람인가? 헷갈린다.
근 2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음에도 헷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내 머리가 명석하지 못해서 일테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익혀볼까 한다.
먼저 두 여인을 헷갈리게 되는 이유로는,
성씨가 같은 ’장‘씨인데다가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왕의 후궁으로 정식 이름을 부르지 않고, 비나 빈, 희빈, 숙의, 숙용 등으로 블리워졌으며, 미모를 바탕으로 온갖 권세를 부리던 끝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생 스토리가 너무나 닮은 꼴의 두 여인이라는 점이다.
‘장녹수’(1470~1506, 36세)는 조선의 10대 왕 연산군의 후궁(숙용)이었고, ’장희빈‘(본명 장옥정: 1659~1701, 49세)은 16대 숙종의 후궁이다.
‘장녹수’는 노비로 태어나 어쩌다 연산군의 총애로 후궁이 되어 지나친 사욕을 탐했고, 장희빈은 부유층 양반의 딸로 태어나 궁궐에 입궁해 정치적 암투와 권모술수로 부침을 거듭한 여인이다.
조선실록은 두 여인 가운데
장녹수의 악행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숙용 장씨’로 기록된 장녹수는 궁궐에 들어오기 전 이미 다른 노비와 결혼해 아들까지 나왔으나, 얼굴이 동안이고 노래와 춤에
특출한 기생이었다.
연산은 이런 장녹수에게 반해서 그녀를 입궐시켜 많은 재물을 집으로 보내준 끝에 후궁으로 삼았다.
장녹수는 왕의 환심을 받고나자 친정식구들에게 높은 벼슬을 주는 것은 물론 나라의 상벌 업무를 전횡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나이가 어린 연산을 왕으로 대접하지 않고, 아이 다루듯 욕설과 조롱을 일상기도 했으며, 어쩌다 연선이 눈길을 주는 듯한 궁녀가 있으면 서슴치 않고
참형을 했다고 한다.
연산군 자신도 조선조 최악의 폭군이었지만, 장녹수 의 이러한 악행은 그들의 비극적인
최후를 자초했다.
두 사람이 다투어 폭정과 부패로 일관하는 동안 생업을 잃은 백성들의 원성은 하늘을 치솟았고, 당시 떠돌아다니다가 굶어죽은 백성들의 시체가 숭례문과 노량진 사이에는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전해진다.
1506년 마침내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은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를 가서 두 달만에 숨졌으며, 장녹수는 성난 군중 앞에 끌려나가 36세의 젊은 나이에 비통한 종말을 맞고 말았다.
연산은 왜 이 포악한 여인을 내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200년 뒤 장희빈은 왜 장녹수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했을까?
프랑스의 악녀 ‘마리 앙투아네트’
까지 갈 것도 없다.
역사는 어디까지나 인과응보의 법칙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드라마 ‘장녹수’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가는 세월 바람 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수많은 사연 담아 가는 곳이 어디 메냐 /부귀도 영화도 구름인양 간곳 없고 /어이타 녹수는
청산에 홀로 우는가.’
그렇더. 부귀도 영화도 한 순간 구름인양 흩어지는 것을 - - .
저네들만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 전미경 "장녹수"
https://youtu.be/bNFX_MbAjjI?si=pgrDWcirCe9bPc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