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다이어트 / 권명희
검은 몸이 반짝인다. 해안으로 들어서는 물길이 다가서다 밀려나고 밀려나다 다가서기를 반복한다. 해와 바람과 파도가 서로 끌어안고 뒹굴던 몽돌을 바다가 삼켰다.
몽돌이 흔적 없이 사라진 곳에 부유물이 모여든다. 나풀거리며 물 위에서 춤추는 스티로폼 조각들, 누군가의 갈증을 해소해 준 페트병, 양면으로 코팅되어 안전하다는 장갑은 어느 노동자의 손에서 떠나왔을까. 그들 모두가 은밀한 해변으로 모여들어 떠돌고 있다.
부유물은 해변에 안착하려 애쓰고 있는 걸까. 내려앉지도 떠나지도 못하고 바람에 일렁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고 있는 망자의 모습이 아닌가. 시간이 갈수록 쌓여가던 부유물이 해안으로 밀려든다. 잠깐 사이에 쓰레기장으로 변해버린 해변은 사람을 밀어낸다. 수가 많으면 힘이 되는 이치인 게다.
손녀의 울음보가 터졌다. 유치원 등원 준비에 바쁜 할머니에게 다섯 살 공주가 어려운 단어를 밀어냈다. “할머니 애플 다이어트 했어요?” “무슨 애플 다이어트?”, “사과?” “아니 할머니 애플 다이어트 했냐고!” 애플 다이어트? 사과 먹겠다고? 몇 번 오가던 대화에 답답증이 터진 공주가 엄마랑 통화하겠다고 울음보가 터졌다. 제 어미도 방금 출근해서 바쁠 시간이라 전화하기도 망설여졌다. 그래서 두 살 위 공주에게 애플 다이어트가 뭐냐고 통역을 요청했다.
난감해하던 일곱 살짜리 손녀 입에서 더욱 난감한 답이 나왔다. “할머니 애플 다이어트는 지구를 살려야 하는 일이에요.” 어린 손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애플 다이어트와 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상관관계에 대해 알아들을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었다. 제 어미와 단 두 마디에 문제는 해결되고 밝은 얼굴이 되어 양말을 신었다.
종일 궁금증에 갸웃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손녀의 언어가 점점 많아지지만 이렇게 궁금증이 일어나지 않았다. 빵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모으며 그 많은 이름을 외는 것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아는 사람 이름조차 뜸을 들여야 입을 통해 나오는데 수십 개의 비슷비슷한 이름을 척척 대며 모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애플 다이어트를 알아듣지 못해서 사랑하는 손녀를 아침부터 울려 버린 무능에 자괴감이 들었다. 퇴근한 며느리에게 애플 다이어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에’너지와 ‘플’라스틱의 합성어란다. 에, 플 다이어트로 지구를 살리자며 행동으로 실천하여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자는 운동이란다. 그 어린 공주에게 에너지 절약과 플라스틱사용 금지 교육을 하는 현실에서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하니 며느리 말만 들어야 했다.
에, 플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며 아침부터 목 놓아 울어대던 손녀의 모습을 보며 지구도 손녀처럼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막에서 홍수로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화산이 터져 불바다가 되기도 한다. 폭설에 꽁꽁 얼어버린 도시는 괴기스럽기까지 했다
영화 아바타가 많은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인간의 이기심이 어디까지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아바타는 1~2편으로 나누어 상영되었는데 1편에서는 환경 오염이 심각해 마지막 남은 행성을 정복하기 위해 아바타를 만들었다. 나비족과 같은 외형의 아바타를 만들어 홈 트리를 공격한다.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원 채굴에 나선 지구인의 고도화된 기술의 악용으로 무차별 공격을 일삼는다.
2편에서는 숲의 나라 홈 트리에서조차 살 수 없게 된 제이크는 물의 나라로 도망친다. 그곳 부족과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집요하게 추격한다. 산호가 아름다운 해양 생물을 파괴하고 살생을 일삼으며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고등 생명체인 ‘쿨튼’의 등장으로 침략자를 물리친다.
우리가 환경 침략자다. 생선 한 토막 싸기 위해서 세 겹 네 겹씩 비닐봉지를 사용하고, 짜장면 한 그릇 시키면 버려야 하는 플라스틱이 먹는 양의 몇 배는 된다. 작은 병 하나 보호하려고 과대포장 되어 나오는 현실은 어떠한가. 물 한 모금 마시고 버려지는 종이컵, 한번 쓰고 버려지는 마스크는 산을 이루리라. 몇 걸음이라도 덜 걸으려 기를 쓰고 목적지 가까이 까지 자동차를 몰지 않는가.
저 어린 손녀가 지구를 살리겠다고 계단을 걷고, 물병을 들고 다닌다. 분리수거 한다며 페트병을 들고 나선다. 지구가 아프다고 울음보를 터트리는 손녀의 아픔을 어찌 달래면 좋은가 말이다.
수가 많으면 힘이 되는 이치를 느끼지 않았던가. 쓰레기가 많아지면 쓰레기 더미가 되고 쓰레기 더미가 많아지면 사람이 밀려난다. 밀려난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까.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어놓았다.
내 사랑하는 손녀의 울음이 떠나지 않고 귓전에 머물렀다. 에, 플 다이어트를 알아듣지 못하는 할머니가 야속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아픔을 알려주느라 울어 대는 것만 같다. 손녀를 위해서는 무엇이건 다 해줄 것 같던 마음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집을 나서며 과일 몇 조각 담을 비닐을 뜯으려다 서랍을 닫았다. 통 하나를 꺼내 애플을 담으며 쑥스럽게 웃어본다. 에, 플 다이어트를 해야지. 비닐이 없던 시절에도 살아낸 지혜를 배워야지. 시장 가방 안에 물병을 넣어 집을 나선다. 삼십 여분 정도의 거리를 걸어간다. 유난히 파란 하늘에 손녀 얼굴 같은 햇볕이 방긋 웃는다. 아가야 울지마라. 지구야 미안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