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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의 향기 스크랩 022_전북 순창군 팔덕면 강천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148 12.03.22 14:3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화창한 날씨인데 어제와 같이 아침결엔 안개가 많이 끼었지만 운전하는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이다. 오늘의 여행지는 강천산과 내장산 근교의 멋진 계곡들을 둘러보기로 하고 순창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른 시간에 순창에 도착해 항상 그냥 지나쳐 다니던 순창 전통 고추장 마을을 돌아보기로 하고 단지 내로 들어가보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문열은 곳이 몇군데 되질 않았다. 처마에 걸린 메주들보다도 더욱 머릿 속에 남는 것은 쇠 파이프가 안보이게 새끼로 쌓아올린 쥔의 마음과 또 그것들을 아끼며 사랑하는 순창사람들이 마음을 읽을 수가 있어 너무 즐거웠다는.....

[고추장 맛의 비밀은 메주에 있는 모양?..

[순창고추장 장독들....]

[고추장마을 황토집 벽에 매어 달린 장담그는 기구들...]

정말 지금은 많이 쓰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집은 아직도 어머니께서 손수 장을 담그기 때문에 위그림과 같은 모양의 소쿠리, 채반등 똑같이 생긴 것들이 너무도 정겨워 보인다. 커다란 장독을 뒤집어 놓고 짚을 태워 소독을 하고 장을 담그시던 그때가 문득 생각이 난다. 잠깐의 구경을 마치고 강천사 입구로 달려갔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차가 거의 없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보는 강천산의 모습이 벌써 단풍 구경온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강천산입구의 신선대...]

[단풍과 투구봉....]

[주차장 밑에 흩날리는 은행잎들....]

[불이 붙은 듯한 단풍잎들....]

매표소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바로 출발을 하였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처음 맞는 것이 다리이다. 밑으론 맑은 물이 흐르고 있으며 수량도 풍부해 기대가 된다. 지금은 좀 가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었는데....이렇게 이른 오전시간인데도 벌써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어 의하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짧은 산행거리일 것이라는 직감이...

[첫 번째 맞이하는 연꽃다리...]

[두 번째 다람쥐 다리...]

온통 불타 오르는 단풍들을 기웃거리며 잠깐 걸으면 또하나의 다리가 닥아 선다. 첫다리엔 연꽃이 올려저 있고 지금 다리위에는 다람쥐들이 반기듯이 서있다. 다리모양은 그저 평범한 돌다리에 속하지만 자그마한 배려로 인상에 남는 다람쥐 다리가 된 것이다. 이런 것들이 어떤 멋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며 고마워진다.

[다리옆의 병풍바위의 병풍폭포....물이 하나도 안떨어져...]

이번 여름에 친구들이 다녀온 사진에는 이 병풍폭포에 많은 수량이 엄청나게 쏟아지는 장면이 연출되었는데 아마도 이폭포는 번개폭포인 모양이다. 비가오면 나타나는......알아보니 이폭포는 인공폭포라고 하는데 그럼 물은 어떻게 올리는 건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요즘 이런 폭포는 곳곳에 많다. 정선, 포천, 진부등등....

[세 번째 다리 위에는 두꺼비들이...]

정말로 붉은 낙엽이 쌓인 골짜기에 그림같은 다리가 놓여있어 영화의 한 장면이 연출될 것같은 그런 곳이다. 맑은 계곡물이 보고 싶어 밑으로 내려가니 물 속에 낙엽이 뒹군다. 이또한 떠나가는 가을에 아쉬움을 남기는 한 작품같은 느낌이 든다. 빨간단풍, 노란단풍, 떡갈나무잎등...색색이...

[두꺼비 다리밑의 물속 낙엽들...]

[햇살이 안비추어도 이렇게 고운 색깔로...]

[강천사 오르는 계곡의 멋진 길이 1.5 키로 정도나....]

정말 강천사 계곡의 아름다움은 너무도 황홀하다 고나 할까? 그러면서도 또 군데군데 정말 입이 딱 벌어지는 광경이 연출되는 곳이 있다. 이곳도 그런 곳 중의 하나인데 약 1키로정도 기다란 단풍터널에 같이하는 계곡이 어울려 정말 발걸음이 안떨어지는 그런 곳들이 있다. 내가 시인이라면 계곡마루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여도 시상이 저절로 떠오를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이곳 단풍은 유난히...불붙었다고 표현할만한...]

[벌써 다 떨어지고 몇 안남은...]

[벽에다 서로들 써놓은 글씨들....그중에 답은 바보들...잘알고 있구먼...]

[부처바위와 계곡의 절교한 만남....]

[외국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강천사입구의 멋진 숲....]

중간쯤일까 지루한 줄 모르고 걸어 올라오는데 물줄기가 바뀐다. 지금까지는 좌측에 개울이 같이했는데 이곳 서부터는 우측에 개울이 지난다. 그리고 더욱 멋진 것은 햇살의 방향이 반대가 되니 이제부터는 계곡보다는 산 쪽이 환하게 비추인다. 그 계곡모퉁이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수북이 쌓인 낙엽들이 너무 탐스럽게 널려있어 정말 뒹굴고 싶은 심정이었다.

[숲가운데 이건 또 뭔겨...?.....]

[개울밑의 맑은 물과 그리고 가을....]

[가을을 오르는 길목?.....]

이곳에서 또 다리를 하나 건너니 멀리 강천사 일주문이 보인다. 모든 사찰들이 들어오는 길목과 일주문과의 방향이 잘 마추어져 있는 것 같은데 이곳은 길은 좁고 계곡은 넓어 더욱 멋진 경치가 연출이 되는 것 같다. 돌에 낀 이끼들이 말해주듯이 오랜 세월과 함께 흘러간 물들의 속삭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천연의 초록색을 자랑하는 이끼와 어우러지는 단풍색은 격식없이 너무도 예쁜 어울림이 아닐까?...

[강천사의 일주문 앞 개울...]

[일주문 앞 작은 폭?....]

[강천사 일주문...강천문!!]

강천사는 몇 명의 비구니가 지키는 자그마한 절이지만 내력은 깊어, 신라 진성여왕 1년(887)에 풍수지리로 이름을 떨친 도선국사가 창건했으며 고려 충숙왕 때는 불전 3개, 승방 12개, 암자 12개가 있었고 특히 수도승이 많았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명적암, 용대암, 연대암, 왕주암, 석지암 등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그 중 왕주암은 후백제를 전주에 세운 견훤이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신라 51대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풍수지리설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한 도선국사가 보광전, 첨성각 등 사찰을 창건하였으며 그 후 고려 27대 충숙왕 3년(1316년)에 덕현선사가 오층석탑을 세우고 중창하여 사찰이 크게 번창하였으나 임진왜란(1596년) 때에 사찰건물과 연대암 등 12암자가 소실되었다.

[강천사 입구 종무소옆의 단풍의 의미?...]

일주문을 지나 경내에 들어오니 자그마한 경천사가 빠알간 얼굴을 삐죽이 들어낸다. 화려하지도 않지만 섬세함을 잃지 않은 건축미가 단풍과 함께 잘 어울리는....이곳의 또 다른 점은 단풍은 절정을 이루었는데도 은행나무는 아직도 푸른빛이 도는 그런 상태이다. 혹간 샛노란 은행잎도 있지만....하루 이틀정도만 더 있으면 은행잎도 노랑색의 극치를 자랑할 것같이 반짝이며 흔들고 있다.

[세심당과 가운데건물은 염화실 그뒤로 대웅전이...]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경내에는 몇사람들 없어 고즈넉한 맛이 그냥 살아있는 그런 기분이었다. 멀리 열심히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한 포토맨도 보이고 아이들과 온 부모들과 연인들 ...자그마한 경내에 몇 안되는 사람들이 정말 가족들만 모여있는 그런 기분을 자아내게 한다. 염화실은 주지스님이 거처하며 종무소를 겸하고 있는데 2001년에 세웠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마루를 덧내었으며 덤벙주초 위에 각기둥을 세우고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편액은 ‘염화실’이고, 주련을 걸려 있지 않다. 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으며, 창호는 2분합씩 4쌍이 있다.

[대웅정 왼쪽 뜰의 은행잎군락..]

[이제막 쪼글 거리는 곶감의 모습?...]

이곳 저곳을 둘러보아도 범종각이나 천왕문, 이런 것들이 안보인다. 일주문이 있길래 신경도 못쓰고 경관에만 취해 올라왔는데 정말 문득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모든 것이 다 쇄뇌되면 느낌도 없는 것이라는... 그리고 또 강천사의 멋이라면 무릎높이도 않되는 낮은 담장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편안함을 주는 그런 담장...무엇도 꾸미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우선으로 닦은 그런 터전같았는데 이 강천사의 연력이 천년이 넘는다는 말에 또한번 다시 놀랬다.

[강천사 용화당...]

용화당은 1991년에 세웠으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원형 주초 위에 원형기둥을 세우고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이다. 편액은 ‘용화당’이고 단청은 되어 있지 않으며, 현재 서까래가 들려서 보수를 신청하였다고 한다.

[강천사 세심당엔 감을 말리고 있어...]

세심당은 1975년에 건립한 건물로서, 정면 3칸, 측면 3칸이고 풍판을 단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원형 주초 위에 원형 기둥을 받치고 주심포 형식을 하고 있다. 편액은 ‘세심당’이라 붙어 있으며, 주련은 걸려 있지 않고 단청이 칠해져 있다.

[대웅전의 풍경과 단풍....]

[대웅전 옆의 쑥부쟁이 군락....]

[강천사 뒷산에 서있는 자연석 관세음보살상...]

보살상은 사찰 정면 우측 산 자락에 자연적으로 서 있는 입상 관세음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사찰 특에서 옆면으로 보아야만 뚜렷한 관세음보살상이며 정면에서는 그저 평범하다. 관음상 앞 건너편 산자락에 동암(東庵)이라는 암자가 있어 옛 스님들이 관음상을 보고 관음기도를 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이 석불 관음상은 언제 되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구전에 의하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면 관음상으로 보이지 않으며 평범한 돌로 보이고, 선을 많이 베풀어 마음이 청정한 사람만이 관음상으로 나툰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가운데 철각에 쌓인 오층석탑의 이름은 다보탑이란다....]

강천사오층석탑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로서 1316년(충숙왕 3)에 덕현(德玄) 스님이 세운 것이다. 후보(候補)한 방형의 대석 위에 초층 탑신을 직접 세운 석탑으로, 탑신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다. 초층 탑신에는 우주가 모각되었고 그 위에는 왼쪽 부분이 심하게 파손된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옥개석은 상당히 높은 3단의 층급받침을 갖추고 있는데, 처마는 직각을 이루며 옥개석의 윗면에는 1단의 낮은 탑신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2층과 3층 탑신도 우주가 모각되었지만 초층 탑신에 비해 급격히 축약된 모습이다.

층급받침 역시 3단으로 구성되었지만 1층의 그것보다 더 높다. 옥개석 상부에는 1단의 탑신받침이 조출되어 있다. 4층 탑신석은 3층 탑신석에 비해 높고 우주가 모각되지 않았으므로 또 왼쪽 부분이 治石되지 않은 점에서 후보된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이 결실된 채 복발과 보륜이 1매석으로 구성되었다. 이 석탑은 현재 원형을 잃었지만 원래는 5층이었고, 탑신석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었으며, 옥개석에 높은 3단의 층급받침이 있고 또 초층에 비해 2층 이상이 급격히 축약하는 점 등에서 신라 일반형 석탑 양식을 기본으로 부분적으로 백제 석탑 양식을 반영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강천사의 대웅전과 석탑들...]

탑은 고려 충숙왕(1316년)때에 세운 것이며 탑 군데군데 6.25의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경내의 모든 건물은 6.25로 소실되고 대부분은 1961년에 지었다. 대웅전은 1961년에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 위에 팔작지붕으로 만든 목조건물이다. 원형주춧돌 위에 배흘림기둥을 하고 있으며 주심포형식으로 세웠다. 편액에는 ‘대웅전’이라 써 있으며, 주련은 3기가 걸려 있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고, 외부 벽화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창호는 교살창이며 중앙칸은 3분합이고 좌우의 협칸은 각각 2분합으로 되어 있다. 내부의 천장은 목조 구조가 들어나 보이는 연등천장이고 바닥은 우물마루이다. 닫집은 조성되어 있지 않고 수미단 위에 석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강천사 감로수터...]

[강천사 석등 조성연대가 확실치 않다고....]

[삼인대(三印臺) 비...]

정면 1칸의 비각으로 크기는 높이 157cm, 너비 80cm, 두께 23cm이다. 비각 안에는 높이 157㎝, 너비 80㎝, 두께 23㎝의 삼인대 비(碑)가 세워져 있다.이 비는 1744년(영조 20) 4월에 세운 것으로 홍여통(洪汝通), 윤행겸(尹行謙), 유춘항(遊春恒) 등 군의 선비들이 발기하여 대학자인 이재 (李縡:1680∼1746)가 비문을 짓고, 민우수(閔遇洙:1694∼1756)가 비문의 글씨를 썼으며 유척기(兪拓基:1691∼1767)가 전서(篆書)를 썼다.

[강천사 앞에서 삼인대 건너가는 다리...]

1506년(연산군 12), 중종반정이 성공한 후 중종반정을 주도하고 성공한 박원종 등 반정공신들은, 신수근(申守勤) 일파가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숙청하고, 이어 신수근의 딸 신씨를 폐비시키고 윤여필의 딸인 숙의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새 왕비 장경왕후는 왕후가 된 지 10년 만에 사망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당시 순창군수 김정(金淨), 담양부사 박상(朴祥), 무안현감 유옥(柳沃)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이곳 강천산 계곡에 모여서 과거 억울하게 폐위된 신씨를 복위시킴이 옳다고 믿어,

각자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하고 상소를 올리기로 결의하였다. 이때 이들이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놓고 맹세한 곳이 이곳이라 하여 삼인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삼인대에서 두갈래로 갈려지는 길이있다. 아니 이쪽에서 산행의 길을 선택하게 해준다. 위쪽으로 가면 올라가는 길은 조금 험하지만 서서히 오르는 길이고 밑의 길로 가면 평지의 길이지만 구름다리 밑으로 통과해 수직에 가까운 계단길을 올라야 하는 괴로움? 이있는 두가 지의 길을 택일해야 한다. 참고로 나 같은 경우는 윗길을 택한다.

[구름다리라는 의미보다 그냥 멋진 다리라 생각이...]

강천사 경내를 뒤로 하고 삼인대의 멋진 다리를 지나면 두갈래길로 벌어진다. 밑으로 가면 구름다리 밑으로 도착 위로가면 구름다리 위로 도착한다. 물론 어느 코스던 상관 없지만 그래도 밑으로 오르면 너무 가파른 산행에 너무 힘들었다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윗길을 권한다. 다리 앞에 도달하니 밑으로 천길 낭떨어지가 보인다. 이곳이 밑에서 올라오는 길이란다. 이 다리는 대둔산, 월풀산의 구름다리보다 먼저 제작된 것이라 한다. 새로 칠을 해놓아서 그런지 아직도 새 다리같은 느낌을 준다.

[출렁대지 않는 구름다리?... 멋진 관리덕이겠지요?...]

[구름다리 밑을 내려다본 그림인데 ... 너무 멋지죠?...]

다리 한 가운데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정말 번지 점프장에서 내려다보는 것보다 더욱 아찔한 것 같다. 계곡이 보이는 것하고 밑에 강이나 물이 보이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약 50미터 높이라는데 내가볼 때는 조금 더 높은 것 같은 느낌이다.

[육중한 기둥사이로 다리의 모습이...]

저쪽 건너편에서 위로 오르면 전망대가 나오고 그 위로 한시간정도 오르면 강천산 정상이라 하는데 너무 힘들 것같아 그냥 다시 돌아 건너와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이용해 다리밑으로 내려왔다. 이곳도 넓은 공원같은 분위기에 잠시라도 쉬기에 편하게 만들어져 있는 천헤의 장소이다.

[멀리 구름다리가...우리는 밑에...]

잠깐 돌아 내려오니 저 위로 까마득히 바위에 매달린 다리가 보인다. 언제 저 위에 있었나 하는 생각에 잠시 땀을 식혀본다. 이곳을 막지나는데 계곡 속에서 물소리가 세차게 난다. 아마도 작은 폭포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부지런히 달려 내려갔으나 물이 바위밑으로 흘러내려 바위에 부딪쳐 나는 소리가 컸던 것이다. 정말 현지경치가 멋진 곳이 있고 또 사진이 더 멋진 곳이 있는데 이곳은 현지경치도 멋지고 사진도 정말 멋진 그런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천사 구름다리 밑의 윗용소계곡의 아름다움...]

[만나기 쉽지 않은 거미의 모습에 그만 한컷...]

[영화의 한 장면같은 계곡의 멋에 그만....]

[저산이 바위가 아니라면 불에 타지나 않을까?...]

[강천사 담에 돌단풍이....]

강천사를 뒤로 하고 내장산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29번 도로를 이용하여 높이 오르면 내장사가 까마득히 보인다는 말에 그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조금 지나 강천산 맞은편 산으로 오르는 길이있어 오르니 드라이브 코스로는 딱 인데 너무도 높은 9부능선으로 산길이 나있어 계속 한시간여 450미터 능선을 헤메다 다시 29번 도로로 내려왔다. 정상부근에서 내려다보는 그런 재미가 만점인 그런 산복도로인 것 같다. 내장산이 가까워지자 차가 꽉 막힌다. 아마도 단풍행렬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고 산림박물관 앞에 장승축제가

열려 이쪽에 차가 들락거리느라 지체가 된 것이다. 조금더 내려가 까맣게 올라오는 차들을 내려다보며 내장사를 보는 것 보다는 빨리 차를 돌려 돌아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굳혔다. 너무 차량의 행렬이 길 게 뻗어있기에...이왕에 곡성으로 돌아가는 길에 담양을 들러 대나무 박물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항상 지나치며 생각이 있던 곳이기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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