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다" 라고 쓰니 아예 머리를 박박 밀어버린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군요..^^;;
그건 아니고 그냥 한참 만에 머리를 자르려 갔던 게지요.
어떤 일이건 주기가 있게 마련...
제 경우 머리는 보통 3주 조금 지나면 깎는 편인데
이번엔 거의 한달이 더 지난 것 같으니 길긴 길었던 모양인데,
저는 잘 모르고 지난 시간이었지요.
며칠 전 문득 가까운 친구가 그러더군요.
"머리가 기네"
그래서 갔지요, 머리 깎으러.
단골, 이라고 말하니 그 또한 조금은 어색하군요.
하지만 올해 들어 가기 시작하면서
미용사--음, 실장이라고 부르는 그 친구, 헤어디자이너라고 해야할라나요^^;;--가 마음에 들어,
아, 오해 마시길, 이때 마음에 든다, 는 것은
머리를 제 마음에 들게 해 주어 그렇다는 것이지
뭐 사람에게 다른 마음이 있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여간 어쨌건 깎고 나면 그 미용사가 한 머리가 마음에 들어
계속 가고 있으니 단골은 단골인게지요.
아마 그 미용사 옮기게 되면 따라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샛길로 잠시 빠지면,
처음 그 곳에 갔을 때 이 친구, 머리를 하는데,
이게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아니 가위 소리도 안 들리고 뭐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고....
안 그래도 머리 만지면 구벅구벅 조는 습관이 있는 저는,
내내 기냥 자다 졸다 눈 떠 보니 끝났더라구요^^;;
게다가 감고 난 뒤의 머리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고...
그래서 나오면서 시큰둥한 표정으로 제대로 인사도 안 받도 나왔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가 마음에 드는 거예요^^*~
쫌 미안하더군요. 그래서 다음에 갔을 때 말했지요.
머리가 마음에 든다고, 처음엔 그렇지 않아서 시큰둥하게 나왔다고, 고맙다고.
좋아라 하더군요^^*~
여튼 그런 연유로 계속 가고 있고, 앞으로도 갈 것이니 단골이라 말해도 뭐 크게 틀린 말은 아니겠지요.
(아, 여기까지 썼는데, 짬뽕 먹을 시간이네요^^;; 먹고 다시 올립니다...ㅎㅎ.
그런데 이 머리 깎는 내용과 아래 시는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ㅎㅎ. 하여간 짬뽕 먹고 다시 옵니다^^*~)
아, 짬뽕, 얼큰합니다^^*~ 밥까지 말아 먹었습니다. 과식이군요^^;; 하여간, 이어서...ㅎ.
그리하여 머리를 깎으러 집을 나서는데,
바람, 정말 세게 불더군요.
집 앞 나무들의 잎이야 떨어진지 오래들이라 대부분 가지들이 앙상합니다만
그나마 아파트 벽에 가까이 선 나무, 가지에는 아직 잎들이 적잖이 남아있는 데도 있었는데
그 잎들 센 바람에 후루룩 떨어지는군요.
그 한쪽 켠 나무 아래 낙엽들이 수북하더군요.
보니 아마 어떤 분이 낙엽들을 쓸어 모아놓으신 모양입니다.
유난히 한 나무 아래 소복한 낙엽들을 지나는데
올 가을 단풍, 낙엽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해는 가물어서 그랬는지 낙엽들이 제 빛깔 내기도 전에 많이 시들었었는데
올해는 제대로 물든 풍성한 빛으로 가을 내내 환했었지요.
(옆집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지방에는 좀 달랐던 모양이더라고요.
단풍 구경을 다녀오셨는데 거긴 외려 단풍이 서울만큼 물기 머금은 생기 없더라고,
서울 단풍이 올해는 더 좋았다고....)
그랬던 단풍들이고 또 지난해보다는 그런 모습들 여기저기 많이 담아 우리 카페에도 올리고 한 생각이 나서
나무 아래 소복한 낙엽들을 좀 봤지요.
혹시 제대로 모습 성한 낙엽들 있으면 몇 남겨둘까 싶어서....
그런데 바람도 휑하고 함께 가다 혼자 그러고 있기도 뭣해서
그다지 오래 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깎으러 갔지요.
늘 그렇듯 손과 가위질의 느낌이 잘 없을 정도로 조근조근한 그 친구에게 머리를 깎고
다시 오면서 조금 전 그 나무 밑엘 다시 가 봤지요.
낙엽들이 소복한 가운데 아직 색이 다 바래지 않은 잎들도 있고
끝이 갈색으로 말라버린 잎들도 있고
더러는 생생한 모습 그대로 떨어진 잎들도 있고 그렇더군요.
몇 잎 가져올까 싶어 이리저리 낙엽들을 흩트리다
휑한 바람에 떠밀려 그냥 들어왔지요.
들어와 이리저리 몇몇 사이트들을 헤매다니는데 한 카페에서 이 시를 본 거지요.
구르몽의 <낙엽>
참, 어느 한시절 가을이면 귀에 아리도록 들리던 시였는데
어느 순간, 까맣게 잊혀진 것 같은 시.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소리가."
바닷바람 센 그 도시에 있던 찻집, <시몬>
그 집 입구 벽에 걸어 두기도 했던 이 시,
"발고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한구절 한구절 아껴읽던 시절이 휘리릭 지나가고,
아까 미장원 오가며 나무 아래 소복했던 낙엽들의 모습도 떠오르고,
지금은 앙상해졌을, 불과 한 두어주 전만해도 환하고 풍성했던 길도 떠오르고,
불꽃보다 더 빨갛게 타오르던 앞으로 가득하던 학교 운동장의 나무,
엊그제 보니 잎 다 떨구고 남은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맞이하던 모습도 떠오르고,
천변 갈색으로 변해버린 나무들의 마른 모습도 눈에 담기는 군요.
그래 그냥, 바람 무쟈게 부는 토요일 오후,
오랜만에 하늘 쨍하게 파란 토요일 오후,
무표정한 마음으로 카페 게시판 앞에 앉아
뭐 별다른 말을 할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두닥두닥 글을 올릴 생각을 했겠지요.
하여, [글쓰기]를 클릭했는데 뭐 딱히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터라
제목도 쓸 말이 없고, 내용도 쓸 내용이 없어서
그냥 툭 쓴 말이 "머리를 깎다"였지요.
그리고 나서는 이렇게 주절주절 토요일 오후의 한가한 시간을 짬뽕에 밥 말아먹은
볼록한 배를 하고 앉아 몽롱한 눈으로 화면을 보며 요생각 조생각 하며 토닥토닥한 것이겠지요^^*~
그러니 기실 머리 깎은 것과 아래 <낙엽>은 딱히 뭔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나름의 관계가 있기도 한 것 같지요?
뭐 대체로 삶이 그렇지 않을까요?
많은 일들이 필연적 관계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꼭 그런것 같지도 않고
또 막상 안 그런것 같다고 말하려니 또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것 같고....;;
어느 분이 그러셨지요, 혼자 잘 논다고^^;;
그러고 보니 오늘, 바람 불다가 하늘 파란 토요일 오후도
머리 깎고 와서 혼자 그렇게 잘 논 시간이었나 봅니다^^*~
잘 노는 마지막 놀이로 간만에 소리내어 시 한번 읽고 갑니다^^*~
어디는 오전에 함박눈이 왔다 하고 비도 왔다 하더군요.
여긴 파란 하늘에 맑은 햇살이 불러내는 겨울 토요일 오후입니다.
주말과 휴일 잘 보내세요~~
낙엽
구루몽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옆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옆 밟는 소리가.
낙옆 빛갈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옆은 버림받고 땅 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옆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옆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옆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옆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옆은 영혼처럼 운다.
낙옆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옆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옆이리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옆 밟는 소리가.
첫댓글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고등학교 시절 문학도 친구랑 참 많이 눈으로 핥았었지요...ㅋ
낙엽 밟으면 넘 행복하고 좋은데...낙엽은 영혼처럼 우는 군요...다음엔 살살 밟아야 겠어요~ㅎㅎ
참 많이 사랑했고 읊조리던 그 시 네요^^. 연상훈련이 잘 되어있는 탓인지 바람과 교수님의 모습, 그 실땅님까지... 낙엽과 이끼와 돌과 오솔길이 머릿속에 환히 그려져, 졸지 않고 남은 새벽시간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정말 혼자놀기 9단~이신 수다쟁이 교수님~!!ㅋㅋ다른글들과 달리 귀여우심...^^;:
고등학교 때 한참 좋아서 읽었던 시를 다시 보니 너무 반갑고 좋아요..~~ 늦가을에 딱 어울리는 그런 시..^^ 그리고..여교수님 은근 웃기세요.~~ㅋㅋ
친한 사람에게 듣는 정담 같아 좋습니다..,.ㅎㅎ~
부연설명이 더...^^
~*^^*~
기말공부에 엉덩이 땀띠나려 하는데 $#^^^$% 재밌게 읽고 피식 웃어봅니다.........시~~~~몬도 오랙만에 들어보네요...
교수님스러운 글~~ㅋㅋ
참으로 온라인상에서 접하기힘든 정겨움이 묻어나서 마치 옆집에서 차마시러온 동무가 말하는것같아 푸근한 느낌까지 드네요 교수님 멋장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