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전공의대표자협의회에서 환자, 보호자께 드리는 글(2)
서울대 전공의 대표자 협의회에서 의약 분업을 둘러싼 의료 대란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글입니다. 원래는 대자보 형식으로 기획된 것이지만 현 사태 해결을 위한
공정한 토론 문화의 정착을 위해 열린 광장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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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수련의, 전공의 그리고 전임의
지난 '한국 의사들의 원죄'를 통해 지금까지의 한국사회 내에서
의사집단의 잘못에 대해 짚어보았습니다. 이번 글은 현 의사폐업사태의 중심에 위치한
수련의, 전공의, 그리고 전임의의 병원 내에서의 역할과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
그리고 이번 의약분업사태가 그들에게 가지는 의미에 대해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 들어가기에 앞서 (병원 근무체계의 특성)
- 통상 근무시간이 끝난 후 밤샘당직을 하더라도 다음날은 정상근무임.
예를 들어 응급수술 로 인해 밤을 꼬박 새더라도 곧바로 다음날 정상근무.
- 담당 환자의 상태가 나쁘거나 일이 늦게 끝날 경우 당직이 아니더라도 당직과 동일하게 일해야 함.
당연히 당직비는 없으며 곧바로 다음날 정상근무.
- 의사의 식사시간대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이른 출근시간과 바쁜 업무로 인해
아침,점심 은 대개 굶는 경우가 많음. 특히 외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수준임.
(간호사가 먹다 남 긴 계란말이를 먹으며 다음수술에 들어가는 외과 레지던트의
참담한 심정을 알기나 하십니까?)
1. 한 명의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 의과대학 예과과정 2년
- 의과대학 본과과정 4년 (유급 및 건강상의 문제로 상당수의 학생이 5년 이상 소요)
- 의사 국가고시 : 의사 국가고시 합격 이후 의사면허증과 면허번호가 주어짐.
(즉, 이때부터 의사로서의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음)
- 병원별 수련의 임용시험
- 수련의 (인턴 : Intern) 1년
- 병원별 전공의 임용시험
- 전공의 (레지던트 : Resident) 4년 (일부 과는 3년)
- 전문의 자격시험 (합격이후 각 과 전문의로서의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음)
-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 39개월 (여자는 제외)
- 전임의 (펠로우 : Fellow) 1-2년 (길게는 3년)
* 대개 레지던트 3,4년차에서 전임의 기간에 걸쳐 대학원 석사과정 이수
2. 서울대병원 수련의(인턴)의 생활 : 총원 163명
- 의사면허를 갓 달고 나온 새내기 의사로서 대개 수련병원에서 각 진료과를
1개월 단위로 돌면서 각종 수기 및 해당 진료과의 기본적인 업무를 익히게 된다.
- 기본 업무 :
1) 채혈(sampling) 및 정맥주사(iv)
2) 기본적인 상처 드레싱(dressing)
3) 관장(enema), 소변줄(foley) 및 콧줄(Levin tube) 꽂기
4) X-ray film을 비롯한 각종 검사결과 찾아오기
5) 기본적인 검사(CT 등)에 대한 환자 동의서 받기.
6) 수술장 환자 운반 및 수술보조(제 3조수 ; third assist - 쉽게 말해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수술기구로 수술상처를 벌려서 시야를 확보하는 일 )
7) 기타 잡일 : 밥시키기, 청소 등,
- 근무시간 :
1) 내과계 : 오전 7시 출근 -> 오후 8시 퇴근, 당직은 격일제.
2) 외과계 : 오전 6시 출근 -> 오후 10-11시 퇴근, 당직은 격일제 또는 매일.
- 이상에서 보듯, 명목상으로 수련의는 새내기 의사로서 병원의 업무를 배우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의사로서의 수련보다는 병원 내에서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가장 힘들고 귀찮고 더러운 일에 매몰되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환자 및 보호자가 이들의 업무에 대해 의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학생, 또는 아저씨라는 식으로 불리기도 한다.
3. 서울대병원 전공의(레지던트)의 생활 : 총원 532명
- 전공의(레지던트)는 수련병원의 내과, 일반외과, 안과 등 해당 전문과에
소속된 의사로 각 과의 전문적인 환자진료를 익히고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 기본 업무 :
1) 입원환자의 주치의 역할 : 입원환자에 대한 파악 및 차트기록, 오더작성,
수술기록표 작성을 하고 필요한 술기
(외과의 경우 수술 참여 ; 제 1,2조수(first,second assist),
내 과의 경우 주요 술기 : 중심정맥 확보, 복수/흉수/척수 천자 등) 를 시행한다.
2) 응급실 환자에 대한 진료 : 응급처치 및 수술 등.
3) 중환자실 환자에 대한 진료 : 24시간 (상근)주치의 역할
4) 교수님의 진료행위에 대한 보조 : 교수외래 참여 - 챠트 기록 등
수술 참여 - 제 1,2. 조수 역할.
5) 교수님의 연구활동 보조 : 환자의 연구용 자료 수집 및 기록 등.
6) 전공의 수련과정에 따른 업무 : 전문의 시험공부, 논문 작성 및 학회 참여.
- 근무시간 : 내과계 : 오전 7시 -> 오후 7-10시 (당직은 2-3일에 한번)
외과계 : 오전 6시 -> 오후 10시-새벽 2시
(당직은 주치의의 경우 격일 또는 매일, 주치의가 아닌 경우 2-4일에 한번)
4. 서울대병원 전임의(펠로우)의 생활 : 총원 208명
- 최근 3-4년 전부터 수련의사의 일부에게만 해당되던 전임의 과정이
대다수 의사에게 확대되기 시작했다. 기존 전문의 제도 외에, 전문분과(Subspeciality)에
대한 사회적, 의학적 요구가 증가됨에 따라 1-2년(길게는 3년)의 수련과정이
전문의자격을 딴 의사들에게조차 요구되게 된 것이다.
(예 : 호흡기 내과, 신장 내과, 순환기 내과 등)
- 기본업무 :
1) 전문분야에 대한 진료활동 : 개별 교수에 소속되어 진료 보조 및 수술 보조.
2) 전문분야에 대한 연구활동 : 임상 실험 및 논문 발표, 교수의 연구활동 보조 등
- 근무시간 : 전공의와 유사함
- 급여 (전임의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실들!!!)
1) 전체 전임의중 절반 가량이 월급이 없는 무급자임.
(유급 : 무급전임의의 비율 - 내과 17 : 26 / 일반외과 7 : 6)
이들 대부분이 30대 초 중반의 가장들로서 가족들로부터의 경제적 보조 및
외부병원 주말 응급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
2) 무급 전임의의 경우 직장의료보험혜택 없음 - 의사인 자신의 가족이 아파도 경제적으로 책임지지 못함.
5. 현 한국의료 상황에서 그들의 딜레마.
이상에서 현 한국의료상황의 수련의,전공의 그리고 전임의들의 사회, 경제적 위치를 살펴보았다.
위에서 언급된 대부분의 의사들이 주중 80-140시간의 살인적인 노동을 하고,
항상 의료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주말에 쉬는 일도 불가능한 상태이며
(1년에 4-5일 주어지는 휴가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사가 매일 출근해야 함)
당직비 10,000원짜리 밤샘 당직 후 다음날 곧바로 정상근무에 투입되는,
심지어 무급 전임의의 경우 월급과 의료보험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상당수의 여의사가 과도한 업무와 노동강도로 인해 유산을 하고도 제대로 된 휴가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며 생리휴가는 꿈도 못꾸는 현실이다.
왜 이들은 이러한 기막힌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환자진료에 임해왔다고 생각되는가?
바로 현재에 대한 체념과 혹시나 하는 미래에 대한 희망 때문이다.
지금까지 의약분업분쟁과정에서 수련을 마친 이후의 대다수 의사들의 삶이
(이미 상당한 경제력을 갖춘 기득권 의사를 제외) 과거의 그것과는 달리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와 공감대가 형성된 줄 믿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를 버티게 하는 것은 이미 다른 직장을 구하기엔 늦었다는 자포자기의 심정과
혹시나 미래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교과서적 원칙진료, 양심진료에 대한 희망이었다.
그러한 꿈들이 현재의 왜곡된 의료보험제도
(원칙을 지키고 의사로서의 양심에 합당한 진료를 하는 것이 병원적자의 원인이 되고,
보험금 부당청구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는 현실) 와 의료전달체계, 잘못된 의약분업정책으로
깨어지고 있다. 우리 수련의, 전공의 그리고 전임의가 요구하는 바는
전공의 기본급의 15% 인상이 아닌 바로 미래를 향한 우리의 고귀한 희망을 지켜달라는 절규인 것이다.
6. 2부를 마치며.
다소 장황한 글로 저희들의 답답한 현실을 토로해 보았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글들은 잘못된 의약분업, 의료보험수가 그리고 의료전달체계들이
어떻게 저희들의 희망을 짓밟고 있는지에 관해 다룰 예정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0년 8월 11일
국민과 함께 하는 서울대병원 전공의 대표자 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