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왕이 무엇을 받을 수 있을지 생각할 때, 진정한 왕은 무엇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한단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붉은 노을 아래, 사자 왕 무파사가 어린 아들 심바에게 건넨 이 한마디는 단순한 만화영화 대사를 넘어 리더십의 본질을 얘기합니다. 우리가《라이온 킹》의 이 장면을 오래도록 가슴에 품는 까닭은, 그 얘기가 왕좌를 차지하는 법이 아닌 ‘왕좌에 앉을 자격은 무엇인가’를 묻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을 성공이라 믿습니다. 승진을 하고, 조직의 책임자가 되고, 영향력이 커지면 더 많은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됩니다. 왕관은 화려한 장식품이 아니라, 머리에 얹는 순간부터 감당해야 할 ‘무게’이기 때문입니다. 자리가 높아질수록 받는 것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늘어납니다.
이 진리는 우리가 매주 찾는 산행길 위에서도 확인됩니다. 산에서는 가장 빨리 정상에 도달한 사람이 훌륭한 동호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험한 길을 먼저 살피는 사람, 뒤처진 회원의 호흡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걸음을 늦추는 사람, 그리고 마지막 회원까지 안전하게 품고 내려오는 사람이 진정한 산행의 리더입니다.
동양의 고전《도덕경》에서 노자는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존재조차 거의 느끼지 못하는 지도자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구성원 스스로 성과를 이루도록 돕는 리더, 산행이 끝난 뒤 자신의 수고보다 동료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먼저 얘기하는 회원이 바로 그런 노자식 리더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과 배려의 리더십은 결코 거창한 데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산행 날 아침, 회원들과 함께 나눠 먹으려고 집에서부터 정성스레 싸 온 알맞게 익은 김치와 노릇하게 구워 온 찌짐 한 장, 시원한 냉커피 한 잔, 깎아 온 과일과 빵 한 조각을 배낭에서 꺼내놓는 그 따뜻한 손길 속에 이미 진정한 리더십이 담겨 있습니다.
새벽 일찍 일어나 회원들의 입맛을 생각하며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 배낭은 조금 무거워질지언정 함께 나누는 기쁨을 선택하는 그 정성이야말로 덕산산악회의 분위기를 정겹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배려이자 섬김입니다.
좋은 리더는 숲속의 거대한 나무와 같습니다. 나무는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지만,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어김없이 넓은 그늘을 내어줍니다. 새들이 가지에 둥지를 틀고, 지친 등산객이 그 아래서 땀을 식혀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우리 덕산산악회에는 이런 나무 같은 회원들이 아주 많습니다. 오랜 산행경험을 자랑하기보다 초보회원에게 산길의 요령을 나눠주는 분, 자신의 체력을 과시하기보다 약한 회원의 보폭에 맞춰 걷는 분, 사진을 찍을 때도 슬그머니 뒷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을 빛내주는 분들입니다.
강한 조직은 회장의 목소리가 큰 조직이 아닙니다. 가장 뒤처진 회원조차 편안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입니다. 누군가는 코스를 기획하고, 누군가는 안전을 챙기며, 누군가는 맛있는 먹거리를 준비하고, 누군가는 뒤처진 이의 말벗이 되어줄 때, ‘우리’라는 이름의 건강한 공동체가 완성됩니다.
물론 섬김의 리더십이 무조건적인 희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진정한 리더는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는 사람입니다. 체력이 좋은 회원은 힘든 구간에서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베테랑 회원은 길목을 살피며, 오랜 선배는 새로 온 이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장점을 살려주는 것이 바로 공동체의 진짜 힘입니다.
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겸손’을 가르칩니다. 아무리 높은 봉우리라도 정상에 계속 머물 순 없으며, 결국에는 다시 발을 디뎠던 낮은 곳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오늘 앞장서서 남을 도왔던 회원도, 다음 산행에서는 누군가의 손길을 빌려야 할지 모릅니다.
덕산산악회에서 임원을 맡은 분들에게도, 오랜 시간 동호회를 지켜온 선배님들에게도 저마다의 ‘작은 왕관’이 얹혀 있습니다.
오늘 산행을 시작하며 우리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오늘 산악회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보다 먼저, “나는 오늘 회원들을 위해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
나의 시간 한 조각, 내가 경험한 산길의 노하우, 정성스레 준비해 온 따뜻한 먹거리, 힘들어하는 회원에게 건네는 “천천히 가도 괜찮다”는 다정한 한마디. 그 작은 내어줌이 차곡차곡 모여 우리가 함께 쓴 왕관은 비로소 ‘섬김의 증표’로 빛나고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의 마지막 모습은 화려한 왕좌가 아니라, 누군가 쉬어갈 수 있도록 기꺼이 비워둔 ‘시원한 그늘’입니다. 덕산산악회는 정상의 높이만을 겨루는 곳이 아니라, 서로의 걸음을 살피고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오래도록 함께 걷는 아름다운 숲이 될 것입니다.
산은 우리에게 정상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함께 오르는 법, 서로 기다리는 법, 그리고 정을 나누며 함께 내려오는 법을 가르쳐 줍니다. 무파사가 심바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그리고 우리가 매주 산에서 배우는 것처럼, 내일도 서로를 향해 다정한 손길을 내미는 즐겁고 행복한 산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저의부족함이 부끄러워서.. 좋은글 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네요. 앞으로는 더 반성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에 찔리는 것이 좀 있네요..
반성하며 노력하겠습니다.
Gooood. 배울 것이 많아. 전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