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한 15,5)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으며,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에 와 있는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에 관하여,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와 함께 하는 방식에 관하여 이야기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루카 17,20ㄴ)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어느 날 갑가지 생겨나는 놀라운 깜짝 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또 사람의 아들 역시 어느 특정한 곳에서 마술 쇼를 벌이듯 우리들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며 갑작스레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사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사람의 아들의 오심을 눈으로 보는 하나의 서커스, 아직 오지 않을 그래서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 그러나 언젠가는 벌어질 하나의 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예수님께 이처럼 그 날과 그 순간이 언제냐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그들의 어리석음에 대답하는 예수님의 다음의 말씀이 이를 잘 드러냅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ㄴ)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들 가운데에 와 있습니다. 또 그 나라의 도래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 인식되는 하나의 순간적 마침이 결코 아닙니다. 어느 순간, 번쩍하고 일어나 끝나버리는 그래서 나와는 무관한 하나의 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미 우리 삶 가운데에서 내 삶의 직접적 변화를 요구하는 실존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그 변화의 외침을 듣지 못하고 그 외침을 거부합니다. 이에 그들은 이미 와 있는 하느님의 나라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하느님 나라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예수님의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루카 17,25)
하느님 나라와 그 나라의 도래는 나의 삶과 무관한 그 무엇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의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기에 그 나라의 도래는 나에게 마치 번개가 번쩍 침으로써 빛이 하늘을 가르며 세상을 뒤흔드는 것처럼 다가오며, 그 같은 의미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내 존재의 결정적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빛이 비추면 어둠이 사라져 더 이상 캄캄한 어둠이 아닌 빛의 환함으로 온전히 변화되듯 하느님 나라의 도래는 내 존재에 빛을 비춤으로서 내 안의 모든 어둠이 사라지는 나의 완전한 변화, 다시 말해 어둠에 길들여져 있던 내 자신이 빛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내 삶의 가장 결정적 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변화되며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의 빛이며, 예수님은 이 빛으로 당신 아버지의 나라를 바라보시고 그 빛으로 우리에게 아버지의 나라, 하느님 나라를 알려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통해 삶의 결정적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 바로 그 모습을 오늘 독서의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인의 돈을 횡령하고 도망친 노예였던 오네시모스를 돌보아주며 그를 회심케한 후, 그의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바오로의 행동은 당시의 관습과 상식에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 모든 것을 하느님 나라의 진리, 곧 사랑의 마음으로 실천합니다. 바오로의 이 같은 행동, 바로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의 빛, 다마스커스에서 말에서 떨어지며 보았던 하느님의 빛이 그를 그렇게 변화시켰으며, 이 변화를 통해 바오로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났던 것입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나무가 주는 생명력으로 포도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듯이 우리가 하느님 안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하느님이 주시는 말씀의 생명력으로 반드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 그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복음이 전하듯 예수님은 아버지의 나라의 오심을 그리고 그 나라의 본질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그 앎은 지혜의 정신을 통함이며 그것은 아버지의 숨결을 느끼듯 아버지의 영광의 빛이 발산되는 가운데 그 빛의 밝음 아래서 아버지가 활동하시는 그 모든 것을 비추는 티 없는 거울을 통해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모습과 같이 아버지의 환한 빛 안에서 그리고 그 빛 아래서 그 분이 주시는 사람의 은총의 영역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와 함께 머물러 많은 열매를 맺듯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시기를 그를 통해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하느님 나라의 진리를 통해 여러분의 삶이 결정적 전환을 이루게 되기를 언제나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한 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