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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의록
안 국 선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해와 달과 별이 오랜 세월의 빛을 잃지 않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과 바다와 산이 먼 옛날의 형상을 바꾸지 않는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않으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않을까.
우주는 의연히 백대(百代)에 걸쳐 한결 같거늘, 사람의 일은 어찌하여 고금(古今)이 다른 것인가? 지금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애달프고 불쌍하여 탄식하고 통곡할 만하다.
전인(全人; 결함 없이 완전한 사람)의 말씀을 듣든지 역사를 보든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天理)를 순종하여 하느님께 가까웠거늘, 지금 세상은 인문(人文; 인륜의 질서)이 결딴나서 도덕도, 의리도, 염치도, 절개도 없어져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른다. 온 세상이 다 악해졌으니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하여 악독하기로 유명한 도척(盜甁;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설적인 대도적) 같은 도적놈은 백주 대낮에 국도(國都)를 거리낌 없이 돌아다녀도 이상히 여기지 않고, 안자(顔子; 공자의 수제자로서 빈궁한 처지에도 높은 학덕을 성취한 인물)같이 착한 사람이 더러운 거리에서 거지들처럼 한 도시락밥을 먹고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견디지 못할 고생을 해도 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이가 없으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으니, 천리가 어긋나고 도덕이 없어져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독하여 금수(禽獸; 날짐승과 길짐승)만도 못한 이 세상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까?
나도 또한 인간의 한 사람이라, 우리 인류 사회가 이같이 악하게 됨을 근심하여 늘 성현의 글을 읽고 그 마음을 본받으려 하였다. 마침 한가롭고 여유로운 마음에 곤히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춘풍에 유흥(遊興; 홍취 있게 놂)을 금치 못하여 죽장망혜(竹杖芒鞋; 대지팡이와 짚신)로 청산을 찾아가 한 곳에 다다르게 되었다. 사면에 고운 꽃과 풀이 우거졌고 시냇물 소리는 종종하며 인적이 고요한데, 흰 구름 푸른 수풀 사이에 현판(糊反) 하나가 달려 있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금수회의소’라는 다섯 글자가 씌어 있고, 그 옆에 ‘인류를 논박할 일’ 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었다. 또 광고를 붙였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거든 의견을 말하고 방청을 하려거든 방청하되 각기 자유롭게 하라’ 는 것이었다.
그 곳에는 길짐승·날짐승·버러지·물고기·풀·나무·돌 등등 모든 물건이 다 모여 있었다. 혼자 마음속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릇 사람은 만물 중에 가장 귀하고 제일 신령하여 천지의 화육(化育; 천지 자연의 이치로 만물을 만들어 기름)을 도우며 하느님을 대신해 금수·초목까지도 다 맡아 다스리는 권능이 있지를 않은가. 또 사람이 만일 흉악한 일을 하면 천히 여겨 금수 같은 행위라 하며, 어리석고 하는 일이 없으면 초목같이 아무 생각도 없는 물건이라고 욕하지를 않는가. 그러면 금수·초목은 천하고 아무것도 모르며 사람은 귀하고 신령하거늘, 지금 세상은 바뀌어서 금수·초목이 도리어 사람의 무도(無道) 패덕함을 공격 하려 하는 것이 아닌가. 괴상하고 부끄럽고 절통(切痛)하여 열었던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개회취지(開會趣旨)
별안간 뒤에서 무엇이 와락 떠다밀며 재촉하는 것이었다.
“어서 들어갑시다. 시간 되었소.”
바삐 들어가는 기세에 나도 따라 들어가서 방청석에 앉아 보니, 각색 길짐승·날짐승·모든 버러지·물고기 들이 꾸역꾸역 들어와서 그 안에 빽빽하게 서고 앉아 있었다. 무인 물건은 형형색색이나 좌석은 정숙하고 질서가 정연한데, 곧 개회하려는지 방망이 소리가 똑똑 들렸다. 회장인 듯한 한 물건이 머리에는 금색이 찬란한 큰 관을 쓰고, 몸에는 오색이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모습으로 회장석에 올라섰다. 그러고는 허리를 구부려 절하더니 엄숙하고 단정하게 서서 여러 회원을 향해 말하였다.
“여러분, 내가 지금 여러분을 청하여 만고에 없던 일대 회의를 열고자 합니다. 한마디로 개회 취지를 말하려 하오니 재미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라오.
무릇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은 당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조화를 부려 만드셨습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저화주를 곧 하느님이라 하니, 하느님께서 세계를 만드시고 또 만물을 만들어 각색 물건이 세상에 생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만드신 목적은 그 영광을 나타내어 모든 생물로 하여금 인자한 은덕을 베풀어 영원한 행복을 받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목이든지 무슨 물건이든지 다 귀하고 천한 분별이 없는 즉,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다 할 이치가 있을 리 없습니다. 다 각각 천지의 기운을 타고 생겨나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이지요. 이들은 다 천지 본래의 이치만 쫓아서 하느님의 뜻대로 본분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제 몸의 행복을 누리고, 또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사람이라 하는 물건은 당초에 하느님이 만드실 때에 특별히 영혼과 도덕심을 넣어서 다른 물건과 다르게 하셨으나, 사람들은 더욱 하느님 의 뜻에 순종하여 천리(天理)를 지키고 착한 행실과 아름다운 일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이 하는 행위를 보니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하느님의 영광을 더럽게 하고 은혜를 배반하여 여러 가지 악한 일들이 많습니다.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여 벼슬만 하려하고, 제 나라가 다 망하든지 제 동포가 다 죽든지 거들떠보지 않는 역적놈도 있습니다.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나랏일을 결딴내는 소인 놈도 있으며,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자식은 부모를 효도로 섬기지 않으며, 형제간에 재물로 인하여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도 벌어집니다. 또 부부간에 음란한 생각으로 화목치 않는 사람이 많으니, 이 같은 인류에게 좋은 영혼과 제일 귀한 특권을 주어 무엇하겠습니까. 하느님을 섬기던 천사도 악한 행실을 하다가 떨어져서 마귀가 된 일이 있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이 없지요. 맨 처음 하느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영혼과 덕의심을 주셔서 만물 중에 제일 귀한 특권을 주셨으나, 저희들이 그 권리를 내버리고 그 성품을 잃어버리니 몸은 비록 사람의 형상이라도 만물 중에 가장 귀한 자격은 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금수라 초목이라 하여 사람보다 천하다 하나, 하느님이 정하신 법대로 행하여 기는 자는 기고, 나는 자는 날고, 굴에서 사는 자는 깃들이는 자를 해치지 않으며, 깃들인 자는 굴을 빼앗지 않고, 봄에 생겨서 가을에 죽으며, 여름에 나와서 겨울에 들어가니,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천지 이치대로 행하여 정도에 어김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금 여러분 금수·초목과 사람을 비교해 보던 사람이 도리어 낮고 천하며, 여러분이 도리어 귀하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이 이같이 제 자격을 잃고도 거만한 마음으로 오히려 만물 중 제가 가장 귀하다, 높다, 신령하다 하여 여러분을 멸시하니, 우리가 어찌 그 횡포를 참아낼 수 있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의 생각에 찬동하여 하느님께 아뢰고 본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결의할 안건은 세 가지입니다.
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하는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하는 일.
제삼,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인류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하는 일.
이 세 가지 문제를 토론하여 여러분과 사람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사람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는 이륙을 주기로 하느님께 아뢸 터이니, 여러분은 이 뜻을 받들어 이 회의에서 결의한 일을 진행하시기를 바랍니다.
회장이 개회 취지를 연설하고 회장석에 앉으니, 한 모퉁이에서 까마귀가 우렁찬 소리로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연단으로 올라갔다.
제일석 까마귀, 반포지효(反哺之孝)
프록코트를 입어서 전신이 새까맣고 똥그란 눈이 말똥말똥한데, 물 한 잔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했다.
“나는 까마귀올시다. 지금 인류에 대하여 마음에 품은 회포를 진술할 터인데, ‘반포의 효’ 라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말씀하겠소. 사람들은 만물 중에 제가 제일이라 하지마는, 그 행실을 살펴보면 다 천리(天理)에 어긋나 하나도 그 취할 것이 없소. 사람들의 옳지 못한 일을 모두 다 말하려면 너무 지루하겠기에 오늘은 불효함만을 가지고 말하겠소이다. 옛날 동양 성인들이 말씀하기를, 효도는 덕의 근본이라 하였소. 효도는 백 가지 행실의 근원이며, 효도로써 천하를 다스린다 하였고, 예수교 계명에도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 하였으니, 효도라 하는 것은 자식 된 자가 당연히 행해야 할 일이올시다.
우리 까마귀 족속은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 어버이에게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고, 하느님이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 대를 내려가도록 가법(家法)을 지켜 왔소. 그런 이유로 옛적에 백낙천(白樂天); 백거이(772~846). 자는 낙천 5세부터 시를 지었으며 15세가 지나자 모두가 놀랄만한 시재를 부였다고 함)이라 하는 분이 우리를 가리켜 새 중의 증자(曾子)라 하였고, ‘본초강목(本草綱目)’ 에는 자조(慈鳥)라 일컬었지요. 증자라 하는 양반은 부모에게 효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요, 자조라 하는 것은 사랑하는 새를 말하는 것이니, 우리는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라’ 는 하느님의 법을 한 치도 어기지 않은 것이오.
그런데,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보면 모두 효자 같으나, 실상하는 행실을 보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혹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며, 형제간에 재물로 다투어 부모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제 한 몸만 생각하여 부모가 주리더라도 돌보지를 않소. 여편네는 학식이라도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서 시부모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물건같이 대접하고, 심하면 원수같이 미워하기도 하지요. 그러니 인류 사회에 효도가 사라지는 것이 지금 세상보다 더 심한 때가 없었소. 사람들이 이렇듯 모든 행실의 근본이 되는 효도를 알지 못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게 무엇 있겠소? 우리는 효성이 있는 사람이면 감동하여 노래자(老莢子; 중국 춘추시대의 초나라 사람으로 중국 24효자의 한 사람)를 도와서 종일토록 그 부모를 즐 게 하여 주며, 증자의 갓 위에 모여서 효자의 아름다운 이름을 천추에 전하게 하였고, 또 효도만 극친할 뿐 아니라 ‘사기(史記)’ 에 빛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 대강 말씀하오리다. 우리가 떼를 지어 논밭으로 내려갈 때는 곡식을 해치는 버러지를 없애려고 가는 것인데, 사람들은 미련한 생각에 그 곡식을 파먹는 줄로 아는 것이오! 일천팔백칠십사년에 미국 조류학자 피이르라 하는 사람이 까마귀 이천이백오십팔 마리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오장을 해부한 뒤 말하기를 까마귀는 곡식을 해하지 않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를 잡아서 먹는다.’ 하였소. 따라서 우리가 곡식 밭에 가는 것은 곡식에 이로우면 이로웠지 해롭지 않은 게 분명하오. 또 우리가 밤중에 우는 것은 공연히 우는 것이 아니오. 그것은 나라의 법령이 아름답지 못하여 백성이 도탄에 빠지고 천하에 큰 병화가 일어날 징조가 있으면 우리가 울어서 사람들이 깨닫고 허물을 고쳐서 세상이 태평무사하기를 희망하고 권고하는 것이오. 강소성 (江蘇省) 한산사(寒山寺)에서 달은 넘어가고 서리 친 밤에 쇠북을 주둥이로 쪼아 소리를 내서 대망에게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를 갚았고, 한나라 효무제(孝武帝)가 아홉 살 되었을 때 왕망(王莽)의 난리에 부모를 잃고 혼자 달아나다 길을 잃자 우리들이 가서 인도하였으며, 연(燕) 태사 단이 진(秦)나라에 볼모로 잡혀 있을 때 우리가 머리를 희게 하여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소. 또 진문공(晉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려고 면상산(恥山)에 불을 놓자 우리가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 진나라 사람이 그 산에 ‘은연대’ 라 하는 집을 짓고 우리의 은덕을 기념하였소.
우리 까마귀의 사적(事蹟)이 이러하거늘, 사람들이 까마귀 우리 소리를 흉한 징조라 함은 저희들 마음대로 하는 말이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오. 사람의 일이 흉하든지 길하든지 우리가 울 일이 무엇이겠소? 그것은 사람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저희들이 좋지 않을 때 흉하게 듣고 하는 말일 뿐이오. 사람이 염병이니 괴질이니 앓아서 죽게 된 때에 우리가 어찌하여 그 근처에 가서 울면, 사람들은 저희가 약도 잘못 쓰고 위생도 잘못하여 죽는 줄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울어서 죽는 줄로만 알지요. 또 욕설을 할 때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 하니, 사람같이 어리석은 것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소. 요·순(堯舜) 적에도 봉황이 나왔고 왕망 때도 봉황이 나왔으니, 요·순 때의 봉황은 상서로운 것이요 왕망 때의 봉황은 흉조처럼 알았던 것이 아니겠소?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을 때에 들으면 흉조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라,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에게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까마귀는 흉한 일이 생길 때에 와서 우는 것이라 하여 듣기 싫어하니,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 책망하여 무엇 하겠소.
또 우리는 아침 일찍 집을 떠나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봉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아서 하느님 뜻을 받들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소. 헌데 사람들은 점심때까지 자빠져 잠을 자며, 한 번 집을 나가면 협잡질하기, 술 마시기, 계집의 집 뒤지기, 노름하기에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진지를 잡수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를 모르고 쏘다니니 어찌 우리 까마귀 속만 하리요. 사람은 일하지 않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리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을 아니, 결단코 우리는 사람들이 하는 행위는 하지 않소.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우리가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을 까닭이 없음을 살피시오.”
손뼉 소리에 까마귀가 연단을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여우가 아리땀고도 밉살스러운 소리로 회장을 부르면서 강똥강똥 연설단을 향하여 올라갔다. 그 어여쁜 태도는 남을 가히 호릴 만하고 갸웃거리는 모양은 본색이 드러났다.
제이석 여우, 호가호위(弧假虎威)
여우가 연단에 올라서서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것처럼 기침 한 번 캑 하더니 간사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하였다.
“나는 여우올시다. 점잖으신 여러분 모이신 데 감히 나와 연설하기가 방자한 듯하오나, 저 인류에게 대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호가호위라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하려 하오. 비록 학문은 없는 말이나 용서하고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옛적부터 우리 여우를 가리켜 요망한 것이라, 간사한 것이라 하여 요망하거나 간사한 자를 보면 여우같은 사람이라 해 왔지요. 이렇듯 우리가 더럽고 괴악(怪惡)한 이름을 듣고는 있으나 실제로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들이오. 지금 우리와 사람의 행위를 비교하여 보면 사람과 우리와 명칭을 바꾸는 것어 옳겠소.
사람들이 우리를 간교하다 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전국책(戰國策;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한 책사와 모사들의 문장을 기록한 책)’ 이라 하는 책에 기록된 것을 가지고 그런 것이오. 호랑이가 일백 짐승을 잡아먹으려 할 때 먼저 여우를 얻은지라, 여우가 호랑이더러 말하였소.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모든 짐승의 어른이 되게 하였으니, 지금 자네가 나의 말을 못 믿겠거든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모든 짐승이 나를 보면 다 두려워하느니라.’ 호랑이가 여우의 뒤를 따라가니, 과연 모든 짐승이 보고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지라 여우의 말을 정말로 알고 잡아먹지 못하였다는 것이오. 어는 저들이 여우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니,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잠시 빌린 것뿐인데, 사람들은 우리 여우더러 간사하니 교활하니 하는 것이오. 하지만 남이 나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호랑이가 아무리 산중 영웅이라 하지마는 우리에게 속은 것이 어리석을 뿐이니. 속인 우리야 무슨 잘못이 있으리오.
지금 세상 사람들은 당당한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려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으려 하며, 줏대 없이 타국 사람을 좇아 제 나라를 망하게 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할 것입니다. (손뼉 소리가 진동)
또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총을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소? 각국이 평화를 보전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서 도덕상으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병장기의 위엄으로 평화를 보전하려 하니 우리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죽음을 면한 것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오? 또 세상 사람들이 구미흐(九尾狐)를 요망하다 하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오. 옛 책을 보면 꼬리 아홉 있는 여우는 상서(祥瑞;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라 하였소. ‘잠학거류서’ 라는 책에는 ‘구미호가 도(道) 있으면 나타나고, 나올 적에는 글을 물어 상서를 주문에 지었다’ 하였고, 왕포 ‘사자강덕론’ 이라는 책에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구미호를 응하여 동편 오랑캐를 돌아오게 하였다 하였고, ‘산해경’ (山海經)이라는 책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구미호가 있어서 덕이 있으면 오느니라’ 하였으니, 이를 보더라도 우리 여우를 요망한 것이라 할 까닭이 없소. 단지 사람들이 무식하여 이런 것은 알지 못하고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요사스러운 여편네로 변한다, 옛적에 음란한 계집이 죽어서 여우로 태어났다 하니, 이런 거짓말이 어디 또 있으리오.
사람들은 음란하여 별일이 많지만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우리는 분수를 지켜서 다른 짐승과 교통하는 일이 없고, 우리뿐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러하시되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음란하기가 짝이 없소. 어떤 나라 계집은 개와 통간한 일도 있고, 말과 통간한 일도 있으니, 이런 일은 천하만국에 한두 사람뿐이겠지마는, 한 숟가락에 뜬 국으로 온 솥에 있는 국 맛을 알 것이오. 근래에 덕의가 끊어지고 인도(人道)가 없어져서 세상이 결딴난 일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되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짐승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오. 대갓집 규중 여자가 갈보로 놀아나서 이 사람 저 사람 호리기와 관청에서 기생 불러 놀음 놀기, 앞길이 만 리 같은 각 학도들이 기생집에 다니기, 제 혈육으로 난 자식을 돈 몇 폰에 갈보로 내어놓기, 이련 행위를 볼라치면 말하는 내 입이 다 더러워지오. 에이 더러워, 천지간에 더럽고 요망하구 간사한 것은 사람이요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그런데도 저희들끼리 간서한 사람을 보면 여우라 하니, 그렇다면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여우 아닌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소? 또 저희는 서로 여우같다 하여도 가만히 듣고 있지만, 만일 우리더러 사람 같다 하면 우리는 그 이름이 더러워서 받아들일 수가 없소. 내 소견 같으면 이후로는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말고 여우라 하고, 우리 여우를 사람이라 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압니다.”
제삼석 개구리, 정와어해(井蛙言吾海)
여우가 연설을 마치고 할금할금 돌아보며 제자리로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개구리가 회장을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와서 연단 위로 깡충 뛰어올라갔다. 눈은 톡 불거지고 배는 똥똥하고 키는 작달막한데, 눈을 깜작깜작하며 입을 벌죽벌죽하고 연설을 시작하였다.
“나의 성명은 말을 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다 아시리다. 나는 출입이라고는 미나리 논밖에 못 가 보아 세계 형편도 모르고, 또 맹꽁이를 이웃하여 살아 구학문의 맹자왈 공자왈은 대강 들었으나 신학문은 아는 것이 변변치 않으오. 그러나 지금 정와어해라 하는 문제로 인류 사회를 논란코자 합니다.
사람들은 거만한 마음이 많아서 저희가 천하에 제일이라고,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고 자칭하지만, 제 나랏일도 잘 모르면서 '큰소리 탕탕하고 주제넘은 말을 하는 게 우습디다. 그들은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하지요. 그러나 항상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우물이 좁은 줄만 알고 바다에는 가보지 못하여 바다가 큰지 작은지, 넓은지 좁은지, 긴지 짧은지, 깊은지 얕은지 알지 못하나 못 본 것을 아는 체는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좁은 소견으로 외국 형편도 모르고 천하대세도 살피지 못하면서, 공연히 떠들고 아는 체하고 나라는 다 망해 가건만 썩은 생각으로 갑갑한 말만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 나라 일도 다 알지 못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다른 나라 일을 다 아노라고 하니 가증스럽고 우습기만 하오. 몇 해 전 어느 나라 어떤 대신이 외국 대관을 만나서 말을 서로 주고받는데 외국 대관이 묻는 것이었소.
‘대감이 지금 내부대신으로 있으니 전국의 인구와 호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대신이 아무 대답도 못하자 외국 대관이 또 물었소.
‘대감이 전에 탁지대신(度支大臣; 탁지부는 대한 제국 때에 둔, 국가 전반의 재정(財
政)을 맡아보던 중앙 관청)을 지내었으니 전국의 결총(結總; 토지세 징수의 기준이 된 논밭 면적의 전체 수)과 국고의 세출·세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한데 대신이 또 아무 말도 없는지라 그 외국 대관이 탄식하는 것이었소.
‘대감이 이 나라의 정부 대신으로 이같이 모르니 귀국을 위하여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구려.’
또 작년에 어느 나라 내부에서 각 읍에 훈령하여 부동산을 조사해 보라 하였더니, 어떤 군수가 ‘이 고을에는 부동산이 없다’ 고 고하여 웃음거리가 되었다 하오. 이같이 제 나라 일도 크나 작으나 도무지 아는 것 없는 것들이 일본이 어떠하니, 아라사가 어떠하니, 구라파가 어떠하니, 아메리카가 어떠하니 제가 가장 잘 아는 듯이 지껄이니 기가 박히오. 무릇 천지의 이치는 무궁무진하여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 밖에 아는 이가 없소. 하여 ‘논어(論語)’ 에 말하기를 하느님께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하였는데, 그 주(註)에 ‘하느님은 곧 이치라’ 하였으니 하느님이 곧 이치요 만물의 주인인 것이오. 그런고로 하느님은 곧 조화주요 천지 만물의 대주제시니 천지 만물의 이치를 다 아시려니와, 사람은 다만 천지간의’ 한 물건인데 어찌 이치를 알 수 있으리오. 좀 아는 것이 있거든 그 아는 대로 세상에 유익하게 아름다운 사업을 영위할 것이거늘, 조금 남보다 먼저 알았다고 그 지식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 빼앗기와 남의 백성 학대하기와 군함·대포를 만들어서 악한 일에 종사하니, 그런 나라 사람들은 당초에 사람 되는 영혼을 주지 아니 하였더라면 도리어 좋을 뻔하였소.
또 더욱 도리에 어긋나는 일은 나의 지식이 남보다 조금 낫다고 하면 남을 가르쳐 준다면서 실상은 해롭게 하고, 남을 인도하여 준다 하고 제 욕심만 채우는 것이오. 어떤 사람은 제 나라 형편도 모르면서 타국 형편을 아노라며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해치며 백성을 위협하여 재물을 도둑질하오. 개화하였다 자칭하고 양복 입고, 단장 짚고, 궐련 물고, 시계 차고, 인력거나 자행거(자전거의 옛말) 타고, 제가 외국 사람인 체 하여 제 나라 동포를 압제하기도 하오. 혹은 외국 사람과 상종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아첨하며, 제 나라 일을 변변히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쳐 주기 잘하오. 또 월급 몇 푼이나 벼슬 한 자리 얻으려고 남의 나라 정탐꾼이 되어 애매한 사람 모함하기, 어리석은 사람 위협하기를 능사로 삼으니, 이런 사람들은 아는 것이 드리어 큰 병이 아니겠소?
우리 개구리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 논에 있으면 미나리 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바다에 있으면 바다에 있는 분수를 지키니, 그러면 우리는 사람보다 상등이 아니오리까. (손뼉 소리 짤각짤각)
또 무슨 동물이든지 자식이 아비 닮는 것은 하느님의 정하신 뜻이오. 우리 개구리는 대대로 자식이 아비 닮고 손자가 할아비를 닮되, 형용도 똑같고 성품도 똑같아서 추호도 틀리지 않거늘 사람의 자식은 제 아비 닮은 것이 별루 없소. 요 임금의 아들이 요 임금을 닮지 아니하고, 순 임금의 아들이 순 임금과 같지 아니하고, 하우 씨와 은왕 성탕(成湯)은 성인이로되, 그 자손 중에 포악하기로 유명한 걸(桀)·주(紂) 같은 이가 났고, 왕건(王建) 태조는 영웅이로되 왕우(王偶)·왕창(王昌)이 생겼으니, 이렇게 보면 개구리 자손은 개구리를 닮되 사람의 새끼는 사람을 닮지 않는 것이오. 그러한 즉 천지 자연의 이치를 지키는 것은 우리를 사람에게 비교할 것이 아니요, 만일 아비를 닮지 아니한 자식을 마귀의 자식이라 한다면 사람의 자식은 다 마귀의 자식이라 하겠소.
우리는 관가 땅에 있으면 관가를 위하여 울고, 개인 땅에 있으면 그 주인을 위하여 울거늘, 사람은 한 번만 벼슬자리에 오르면 붕당(朋黨)을 세워서 권리를 다투고 권문세가에 아첨하러 다니기 바쁘오. 그뿐 아니라 백성을 잡아다가 주리 틀고 돈 빼앗기, 무슨 일을 당하면 뒤로 부탁을 받고 뇌물 받기, 나랏돈 도적질하기와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기에 종사하니,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 하면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지반 다 감옥소 감이오. 또 우리들은 울 때에 울고, 길 때에 기고, 잠잘 때에 자는 것이 천지 이치에 합당하거늘, 불란서라는 나라 양반들이 우리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백성들을 불러 개구리를 다 잡으라 하다가 마침내 혁명당이 일어나서 난리가 되었으니, 사람같이 무도한 것이 세상에 또 있으리오. 당나라 때에 한 사람이 우리를 두고 글을 짓되, ‘개구리가 도의 맛을 아는 것 같아 연꽃 깊은 곳에서 운다.’ 하였으니, 우리의 도덕심 있는 것은 사람도 아는 것이라, 우리가 어찌 사람에게 굴복하리요. 동양 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안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라’ 하였으니, 사람들은 천박한 지식으로 남을 속이기를 능사로 알고 천하만사를 모두 아는 체하지만 우리는 거짓말은 하지 않으오. 사람이란 것은 하느님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악한 일만 많이 해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차후는 사람이라 하는 명칭을 주지 않는 것이 옳은 줄로 생각하오.”
넙죽넙죽 하는 말이 소진·장의(蘇秦張儀; 중국 전국 시대의 사람들로 말솜씨가 매우 좋았다고 함)가 오더라도 당치 못할 듯하였다. 말을 그치고 내려오니 또 한편에서 벌이 회장을 부르며 나는 듯이 연설단에 올라갔다.
제사석 벌, 구밀복검(口蜜腹劒)
허리는 잘록하고 체격은 조그마한데 두 어깨를 떡 벌리고 맑고 명랑한 소리로 머리를 까딱까딱하면서 연설하였다.
“나는 벌이올시다. 지금 구밀복검이라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두어 마디 말할 터 인데, 먼저 서양에서 들은 이야기를 잠깐 하오리다. 천지개벽할 때에 하느님 이 에덴동산에다 갖가지 초목과 짐승을 두고 사람을 만들어 거기서 살게 하시니, 그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라 하고 그 아내는 하와라 하였는데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의 조상이었소. 사람의 모양을 특별히 하느님과 같게 한 것은 곧 하느님의 아들임을 잊지 말고 그 마음을 본받아 지극히 착하게 되라고 한 것인데,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이외다. 우리 벌의 조상은 죄도 짓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각색 초목의 꽃으로 우리의 전답을 삼고 꿀을 농사하여 양식을 만들어 복락을 누리니, 조상 적부터 우리가 사람보다 나은 것이지요.
세상이 오래되어 갈수록 사람은 하느님과 더욱 멀어지고, 오늘날 와서는 거죽은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있으나 실상은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과 마귀라 할 수 있소.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어서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밥이 되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압제하여 남의 권리와 재산을 강제로 빼앗으며,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망하게 하니, 그 흉측하고 악독한 것을 무엇에 이르겠소? 사람들이 우리 벌을 독한 사람에게 비유하여 말하기를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 하나, 우리 입의 꿀은 남을 꾀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양식을 만드는 것이요, 우리 배의 칼은 남을 공연히 쏘거나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해치려 할 때 정당방위로 쓰는 칼이지요. 사람처럼 입으로는 꿀같이 말을 달게 하고 배에는 칼 같은 마음을 품은 우리가 아니오. 또 우리의 입은 항상 꿀만 있으되 사람의 입은 변화무쌍하여 꿀같이 단 때도 있고, 고추같이 매운 때도 있고, 칼같이 날카로운 때도 있고, 비상같이 독한 때도 있어서, 마주 대하였을 때에는 꿀을 들이붓는 것같이 달게 말하다가 돌아서면 흉보고, 욕하고, 노여워하고, 악담을 합니다. 또 좋아지낼 때에는 깨소금 항아리같이 고소하고 맛있게 행동하다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죽이려 드니 그런 악독한 것이 어디 또 있으리오. 에, 여러분, 여보시오, 그래, 우리 짐승 중에 사람들처럼 그렇게 악독한 것들이 있단 말이오? (손뼉 소리에 귀가 멍멍)
사람들이 서로 욕설하는 소리를 들으면 차마 귀로 들을 수 없을 만큼 별 흉악망측한 말이 많소. ‘빠가’, ‘갓뎀’ 같은 욕설은 아무것도 아니오. ‘네밀 붙을 놈’,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하는 제 입만 더럽히는 욕설을 제 마음 악한 줄도 모르고 함부로 하니 얼마나 흉악한 일이오. 에, 사람들은 도덕상 좋은 말은 별로 않고 못된 소리만 쓸데없이 지저귀니 그것들이 사람이라고? 그것들이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라고? 우리는 천지간의 미물이로되 그렇지는 않소. 또 우리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을 다하고, 장수를 뫼시되 군령이 분명하여, 다 각각 자기 일만 부지런히 하여 주리지 아니하지요. 그런데 어떤 나라 사람들은 제 임금을 죽이고 역적의 일을 하며, 게을러서 일도 하지 않고 공연히 쏘다니며 놀고먹기만 좋아하오. 술 먹고, 노름하고, 계집의 집이나 찾아다니고, 협잡이나 하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 집이 구차하고 나라가 가난하니, 사람으로 생겨나서 우리 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오? 서양의 어느 학자가 우리를 두고 노래를 지었는데 한번 들어 보시오.
아침 이슬 저녁 별에
이 꽃 저 꽃 찾아가서
부지런히 꿀을 물고
제 집으로 돌아와서
반은 먹고 반은 두어
겨울 양식 저축하여
무한 복락 누릴 때에
하느님의 은혜라고
빛난 날개 좋은 소리
아름답게 찬미 하네.
그래, 사람 중에 사람다운 것이 몇이나 있소? 우리는 사람들에게 시비들을 것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말하려면 끝이 없겠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그만둡니다.”
제오석 게, 무장공자(無腸公子)
벌이 연설을 마치고 미처 연단에 내려서기도 전에 또 한편에서 회장음 부르고 나오는 것이 있었다. 모양이 기괴하고 눈에 영채(映形; 환하게 빛나는 고운 빛깔)가 감도는데, 힘센 장수같이 두 팔을 쩍 벌리고 어깨를 추썩추썩 추켜올렸다 내렸다 하며 연설을 시작하였다.
“나는 게올시다. 지금 무장공자라 하는 문제로 연설할 터인데, 무장공자는 창자 없는 물건을 뜻하는 말이니 옛적에 포박자(抱朴子)라는 사람이 우리 게의 족속을 가리켜 무장공자라 한 것은 대단히 무례한 말이오. 그래, 우리는 창자가 없고 사람들은 창자가 있소. 그런데 시방 세상사는 사람 중에 옳은 창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사람의 창자는 참으로 썩었고 흐리고 더럽소. 의복은 비단 명주로 잘 입어서 외양은 좋아도 다 가죽만 사람이지 그 속에는 똥밖에 아무것도 없소. 좋은 칼로 배를 가르고 그 속을 보면,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오.
지금 어떤 나라 정부를 보면 깨끗한 창자라고는 아마 몇 개 없으리다. 신문에서 그렇게 나무라고, 사회에서 그렇게 시비하고, 백성이 그렇게 원망하고, 외국 사람이 그렇게 욕들을 하여도 모르는 체하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오? 그 정부에 옳은 마음먹고 벼슬하는 사람 누가 있소? 한 사람이라도 있거든 있다고 하시오. 오직 크게 마음먹고 일을 계획한다는 것이 임금 속일 생각, 백성 잡아먹을 생각, 나라 팔아 먹을 생각밖에 아무 생각이 없소. 이같이 썩고 더럽고 똥만 들어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는 창자라면 차라리 우리처럼 없는 것이 도리어 낫소.
또 욕을 보아도 성낼 줄도 모르고, 좋은 일을 보아도 기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소. 남의 압제를 받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분한 마음이 없고, 남에게 그렇게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노릇하기만 달게 여기며, 관리에 무례한 압박을 당하여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우리는 창자가 없어도 남이 나를 해치려 하면 죽더라도 가위로 집어 한 놈 물고 죽소. 어느 나라에서 외국 병정 하나가 지나가다 그 나라 부인을 건드려 젖통을 만지려 하는데, 그 부인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자 그 병정이 발로 차고 손으로 때리며 악행을 저지르는 것이었소. 그런데도 그 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만 하고 한 사람도 대들어 그 부인을 구해 주는 이가 없었소. 그 부인이 외국 사람에게 당하는 것을 자기와 상관없는 일로 알아서 그랬는지 겁이 나서 그랬는지 알 수 없으나, 결단코 남의 일이 아니라 제 동포가 당하는 일이니 저희가 당하는 것이나 매한가지 아니겠소? 그런데 그것을 보고 화낼 줄도 모르고 도리어 웃고 구경만 하니, 그 부인의 당한 욕을 내일 제 어미나 제 아내가 똑같이 당할 줄을 알지 못하는가? 이런 것들이 창자 있다고 사람이라 으스대니 허리가 아파 못 살겠소. 창자 없는 우리 게는 어찌하면 좋겠소? 나라에 경사가 있어도 기뻐할 줄 모르고 국기 하나 내어 꽂을 줄 모르니 그것이 창자 있는 것이오? 그런 창자는 부럽지 않소.
창자 없는 우리 게가 행한 사적을 좀 들어 보시오. 송나라 때 추호라는 사람이 채경에서 사로잡혀 소주로 귀양 갈 때 우리가 구원하였고, 산주구세라 하는 때에 한 처너가 죽게 된 것을 살려내느라고 큰 뱀을 우리 가위로 잘라 죽였으며, 산신과 싸워서 호인의 배를 구원하였고, 객사한 송장을 드러내어 음란한 계집의 죄를 발각하였으니, 우리가 행한 일은 다 옳고 아름다운 일이오. 우리는 사람같이 더러운 일은 하지 않소. 또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를 자세히 아는 즉,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아니 한다’ 는 속담이 있소. 우리는 암만 급하더라도 들어갈 구멍이라야 들어가지, 부당한 구멍에는 들어가지 않소. 사람들을 보면 부당한 데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소. 부모처자를 내버리고 중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여염(閭閻; 백성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 집 부인네들은 음란한 생각으로 불공을 드린다, 핑계하고 절간 초막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소. 명예 있는 신사라 자칭하고 쓸데없는 돈 내버리러 기생집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옳은 길 내버리고 그른 길로 들어가는 사람, 옳은 종교 싫다 하고 이단으로 들어가는 사람, 돌을 안고 못으로 들어가는 사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사람, 이루 다 말할 수도 없소. 들어갈 데와 못 들어갈 데를 분별치 못하고 못 들어갈 데를 들어가서 화를 당하고 해를 끼치니, 이런 사람들이 무슨 창자가 있냐며 우리의 창자 없는 것을 비웃소? 지금 사람들을 보면 그 창자가 다 썩어서 얼마 안 있어 모두 무장공자(無腸公子; 창자가 없는 동물. 곧 게)가 된 것이니, 이 다음에는 사람더러 무장공자라 불러야 옳겠소.”
제육석 파리, 영영지극(營營之極)
게가 입에서 거품이 부걱부걱 나오며 수용산출(水湧l山出; 풍부한 시상으로 시문을 짓는 재주가 뛰어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하던 말을 그치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니, 파리가 또 회장을 부르고 나는 듯이 연단에 올라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을 하였다.
“나는 파리올시다. 사람들이 우리 파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파리는 간사한 소인이라’ 하니,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제 흉은 모르고 남의 말만 잘하는 것들이오. 간사한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들은 우리가 아니라 사람들이오. ‘시전(詩傳)’ 이라는 책에 말하기를 ‘영영(營營; 시력이나 이익을 얻으려고 골똘함)한 푸른 파리가 횃대에 앉았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오. 또 옛글에 ‘방에 가득한 파리를 쫓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말도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사람 중의 간사한 소인을 가리켜 한 말이오. 우리는 결코 간사한 일은 하지 않소만 인간에는 참 소인이 많습디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여 임금을 속인 것이 비단 조고(중국 진나라의 음모에 능했던 환관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 망해 가는 나라 조정을 보면 온 정부가 다 조고 같은 간신이오. 또한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호령함이 또한 조조(曹操)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은 도덕이 떨어지고 효박(淆薄; 인정이나 풍속이 아주 각박함)한 풍기를 보면 온 세계가 다 조조 같은 소인이오. 이러하니 웃음 속에 칼이 있고 말 속에 총이 있어 친구라고 사귀다가 저 잘 되면 차 버리기, 동지라고 상종타가 남 죽이고 저 잘 되기, 빈천지교(貧賤之交; 빈천할 때 가깝게 사귄 벗) 저버리고 조강지처 내쫓기, 뜻있는 이를 고발하여 감옥소에 몰아넣고 저 잘되기를 희망하니, 그것도 사람인가? 쓸개에 가 붙고 간에 가 붙어 요리조리 알씬알씬하는 사람들 정말 밉기도 밉습디다.
또 우리는 먹을 것을 보면 혼자 먹는 법 없소. 여러 족속을 청하고 여러 친구를 불러서 화락한 마음으로 똑같이 먹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의 이해관계만 있으면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고, 일가 간에도 정이 없어지며, 심한 자는 혈육끼리도 서로 싸우기를 예사로 아니 참 기가 막히오.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고 구제하는 것은 하느님의 이치거늘, 사람들은 과연 저희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오? 저희들끼리 서로 빼앗고, 서로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흉보고, 서로 총을 쏘아 죽이고, 서로 칼로 찔러 죽이고, 서로 피를 빨아 마시고, 서로 살을 깎아 먹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소.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라 하지만, 우리는 똥을 눌 때 남이 다 보고 알도록 흰 데는 검게 누고 검은 데는 희게 누어서 남을 속일 생각은 하지 않소. 사람들은 똥보다 더 더러운 일을 많이 하지만 혹 남의 눈에 보일까,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겁을 내어 은밀히 하지만, 무소부지(無所不知; 모르는 것이 없음)하신 하느님은 먼저 알고 계시오.
옛적에 유형이라 하는 사람은 부채를 들고 참외에 앉은 우리를 쫓고, 왕사라 하는 사람은 칼을 빼어 먹을 먹는 우리를 쫓았는데, 사람들은 그렇게 쫓아도 우리가 도로 온다며 성내고 미워하니 저희가 쫓을 것은 쫓지 않고 쫓지 않을 것은 쫓는 줄을 모르오. 우리를 쫓으려 할 것이 아니라 불가불 쫓아야 할 것이 있으니, 사람들아 부채를 놓고 칼을 던지고 잠깐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당연히 쫓을 것은 너희 마음을 괴롭게 하는 마귀니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너희 마음속에 있는 물욕을 쫓아 버려라. 너희 머릿속에 있는 썩은 생각을 내쫓으라. 너희 조정에 있는 간신들을 쫓아 버려라. 너희 세상에 있는 소인들을 내쫓으라. 참외가 다 무엇이며, 먹 이 다 무엇이냐?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수십 억만 마리 파리가 일제히 손을 비비고 비나니, 우리를 미워하지 말고 너희를 해치는 여러 마귀를 쫓으라. 손으로만 빌어서 안 들으면 발로라도 빌겠다.”
파리는 의기양양하여 사람을 저희 똥만치도 못하게 나무라고, 겸하여 충고의 말로 권고하고 내려갔다.
제칠석 호랑이,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다음은 호랑이가 웅장한 소리로 회장을 부르니 산천이 울리었다. 연단에 올라서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좌중을 내려다보니 눈알이 등불 같고 위풍이 늠름한데, 주홍 같은 입을 멱 벌리고 어금니를 부지직 갈며 연설을 시작하자 좌중이 조용하였다.
“본인의 이름은 호랑이인데 별호는 산군이올시다. 여러분 중에도 혹 아시는 이가 있을 듯하오. 지금 ‘가정이 맹어호’ 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할 터인데, 이것은 여러분 아시는 것과 같이 옛적 유명한 성인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오.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뜻은 ‘까다로운 정사(政事)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함이니, 양자(楊子)라 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말로 ‘혹독한 관리는 날개 있고 뿔 있는 호랑이와 같다’ 고 하였소.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일 포악하고 무서운 것은 호랑이라 하였으니, 자고이래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되오? 도리어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당하며 살육을 당한 자가 몇 억만 먕인지 알 수 없소. 우리는 설사 포악한 일을 할지라도 깊은 산과 깊은 골과 깊은 수폴 속에서만 횡행할 뿐이요, 사람처럼 백주 대낮에 왕궁 국도에서는 하지 않소. 그러나 사람들은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죄 없는 백성을 감옥소에 몰아넣어서 돈 바치면 내어놓고 세 없으면 죽이지요. 또 임금은 아무리 인자하여 사전(赦典; 국가적인 경사가 있을 때 죄인을 용서하여 놓아주던 일)을 내리더라도 법관이 공평치 못하게 죄인을 조종하고, 돋을 받고 벼슬을 내어서 그 벼슬한 사람이 밑천을 뽑으려고 음흉한 수단으로 정사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못 견디게 하니, 사람들의 악독한 일을 호랑이에게, 비하면 몇 만 배가 될는지 알 수 없소.
또 우리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더라도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발톱과 이빨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천성의 행위를 행할 뿐이오. 그런데 사람들은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배워서 옳은 일에 쓰는 것은 별로 없고, 군함이니 대포니 총이니 탄환이니 화약이니 칼이니 활이니 하는 온갖 병기를 만들어서 재물을 무한히 내버리고 사람을 무수히 죽여서 남을 해하려고만 합니다. 그런고로 영국 문학박사 판스라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여 잔인한 까닭으로 수천만 명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처했도다’ 하였고, 옛날 진회왕이 초회왕을 청하여 초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려 할 때 신하 굴평이 간하되, ‘진나라는 호랑이 나라이라 가히 믿지 못할지니 가시지 마소서’ 하였으니, 호랑이의 나라가 어찌 진나라 하나뿐이리오. 오늘날 오대주(五大州)를 둘러보면 사람 사는 곳곳마다 욕심 없는 나라가 어디 있으며 포악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소? 또 어느 인간에 고상한 천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며 어느 세상에 진정한 인도를 의논하는 자가 있소? 나라마다 진나라요 사람마다 호랑이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포악무쌍한 것이라’ 하였으나 이것은 잘못된 말이오. 우리는 원래 천품이 은혜를 잘 갚고 의리를 깊이 아니, 글자 읽은 사람은 짐작할 듯하오. 옛적에 진나라 곽무자라 하는 사람이 호랑이 목구멍에 걸린 뼈를 빼내어 주었더니 사슴을 드려 은혜를 갚았고, 영윤 자문을 나서 몽택에 버렸더니 젖을 먹여 길렀으며, 양위의 효성에 감동하여 몸을 물리쳤소. 이런 일을 보면 우리가 은혜에 감동하고 의리를 아는 것 아니겠소? 사람들로 말하면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옛말에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된다 하여 지금까지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하는 문자를 쓰지마는, 되지 못한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것이 도리어 정말 후환이 되는 것이오. 호랑이 새끼를 길러서 덕을 모으는 사람은 있으되, 사람의 자식을 길러서 덕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소.
또 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하였는데, 지금 세상에 정말 명예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소? 인생 칠십 고래희(古來稀; 예로부터 매우 드묾)라, 한세상 살 기간이 얼마 안 되니 옳은 일만 해도 다 못 하고 죽을 것이오. 그럼에도 꿈결 같은 이 세상을 구차하게 살려 하고 못된 일을 할 생각만 시꺼멓게 있어서, 앞문으로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로 승냥이를 불러들이는 자도 있으니 어찌 불쌍타 하지 않겠소. 옛날 사람은 호랑이 가죽을 쓰고 도적질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껍질은 사람의 껍질을 쓰고 마음은 호랑이 마음을 가졌으니 더욱 험악하고 더욱 흉포하오. 하느님은 지극히 공평하고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는 하느님이시니, 이같이 험악하고 흉포한 것들에게 제일 귀하고 신령하다는 권리를 줄 까닭이 무엇이오? 사람으로 못된 일 하는 자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 좋은 줄로 생각합니다.”
제팔석 원앙, 쌍거쌍래(雙去雙來)
호랑이가 연설을 마치고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단정한 모습에 태도가 신중한 어여쁜 원앙새가 연단에 올라서서 구슬픈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나는 원앙이올시다. 여러분이 인류의 악행을 공격하는 것이 다 지당한 말씀이로되, 인류의 제일 괴악한 말이나 행동이 이상야릇하고 흉악한 일은 음란한 것이오.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한 남자에 한 여인을 내셨으니, 한 사나이와 한 여편네가 서로 저버리지 아니함은 천리에 정한 인륜입니다. 하여 사나이도 계집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고 여편네도 서방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거늘, 세상에는 계집을 많이 두고 호강하는 것이 좋은 줄 알고 처첩을 두셋씩 두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담은 오륙 명 두는 자도 있소. 혹은 장가 든 뒤에 그 아내를 돌아다보지 않고 두 번 세 번 장가드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사랑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도 있으니, 사나이가 두 계집을 두는 것은 천리에 어긋나는 일이오. 계집이 두 사나이를 두면 변고로 알고 사나이가 두 계집을 두는 것은 예사로 아니 어찌 그리 편벽되며, 사나이가 남의 계집 도적질함은 꾸짖지 않고 계집이 남의 사나이와 상관하면 큰 변인 줄 아니 어찌 그리 불공평하오?
하느님의 이치로 말하자면 사나이는 아내 한 사람만 두고 여편네는 남편 한 사람만 좇는 것이 당연지사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괴악하고 음란하여 길가의 한 가지 버들을 꺾기 위해 백년해로하려던 사람을 잊어버리고, 동산의 한 송이 꽃을 보기 위해 조강지처를 내쫓으며, 남편이 병들어 누웠는데 의원과 간통하는 일도 있고, 불공한다 거짓 핑계를 대고 중을 서방 삼는 일과 남편 죽어 사흘도 못 되어 새 서방을 찾는 일도 있으니, 사람들은 계집이나 사나이나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다만 음란한 생각뿐이라 할 수밖에 없소. 우리 원앙새는 천지간에 지극히 작은 물건이나 사람같이 더러운 행실은 하지 않소.
사람들도 우리 원앙새의 역사를 알고 이야기하는 말이 있소. 옛날에 한 사냥꾼이 원앙새 한 마리를 잡았더니 암원앙새가 수원앙새를 잃고 수절하여 과부로 있은 지 일 년 만에 또 그 사냥꾼의 화살에 맞은 것이었소. 사냥꾼이 원앙새를 잡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털을 뜯었더니 날개 아래 무엇이 있는데, 자세히 보니 지난해에 자기가 잡아온 수원앙새의 대가리였더란 말이오. 이것은 수원앙새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서 떨어졌을 때, 그 경황 중에도 암원앙새가 수원앙새의 대가리를 집어 가지고 숨어서 짝 잃은 한을 잊지 않았던 것이오. 그렇듯 서방의 대가리를 날개 밑에 끼고 슬피 세월을 보내다 또한 사냥꾼에게 잡히었으니, 그 사냥끈이 정절이 지극한 새라 하여 먹지 않고 정결한 땅에 장사를 지내 주었소. 그 후로부더 사냥꾼은 다시는 원앙새를 잡지 않았다 하니, 우리 원앙새는 짐승이로되 절개를 지킴이 이러하오.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추하고 비루(鄙陋)하고 음란하여 우리보다 귀하다 할 것이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행사를 대강 말할 터이니 잠깐 들어 보시오. 부인이 죽으면 불쌍히 여기는 남편이 몇이나 되겠소? 상처한 후에 사나이 수절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도 못하였소. 낱낱이 재취(再娶)를 하든지 첩을 얻든지 자식에게 못할 노릇 하고 집안에 화근을 일으켜 가정의 화목을 해치오. 계집으로 말하면 남편 죽은 후에 수절하는 사람은 많으나 속으로 서방질 다니며 상을 당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개가할 길 찾느라고 분주한 계집도 있고, 또 자식을 낳아서 개구멍이나 다리 밑에 내버리는 것도 있소. 심한 계집은 간통한 남자에게 혹하여 산 서방을 두고 도망질하거나 약을 먹여 죽이는 일까지 있으니, 사람의 별별 괴악한 일은 이루 다 말 할 수 없소. 세상에 제일 더럽고 괴악한 것은 사람이라, 다 말하려면 내 입이 더러워질 터이니 그만두겠소.”
원앙새가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니, 회장이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폐회
“여러분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다 옳으신 말씀이오. 대저 사람이라 하는 동물은 세상에 제일 귀하다 신령하다 하지마는, 사실을 말하자면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곺 제일 괴악하오. 그 행위를 들어 말하자면 한정이 없고, 또 시간이 다하였으니 그만 폐회하오.”
회의가 끝나자 그 안에 모였던 짐승이 일시에 나는 자는 날고, 기는 자는 기고, 뛰는 자는 뛰고, 우는 자는 울고, 짖는 자는 짖고, 춤추는 자는 춤추며 다 각각 돌아갔다.
슬프다! 여러 짐승의 연설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세상에 불쌍한 것은 바로 사람이 아닌가. 내가 어찌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가! 사람은 만물 중에 귀하기로 제일이요, 신령하기도 제일이요. 지혜도 제일이라 하여 동물 중에 제일 좋다하더니, 오늘날 보면 제일 악하고 제일 흉괴하고 제일 음란하고 제일 간사하고, 제일 더럽고 제일 어리석은 것은 사람이구나. 까마귀처럼 효도도 할 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를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다도 간사하고, 호랑이 보디도 포악하고,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 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창자 없는 것은 게보다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 보기가 부끄럽다. 여러 짐승이 연설할 때 나는 사람을 위해 변명 연설을 하리라 몇 번이나 생각하였으나 무슨 말로도 변명할 수가 없고, 반대를 하려 하였으나 능변을 가지고도 쓸데가 없었다. 사람이 떨어져서 짐승의 아래가 되고, 짐승이 도리어 사람보다 상등이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까? 예수 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시며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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