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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예술의 매혹,〈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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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나서면 여러 얼굴들을 만난다. 벽보와 현수막이 넘쳐나는 선거철에는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얼굴 이미지로 지역 살림꾼을 선택해야 하는 이 시기에 얼굴을 화두로 내건 독특한 다큐를 스크린으로 만날 기회가 생겼다. 얼굴과 거기에 스며든 기억, 그것을 사진 이미지로 거리에 전시하며 시골마을을 떠도는 로드 다큐〈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Faces Places, 2017〉가 바로 그 작품이다. 노장 감독과 거리 예술가의 예술놀이 여행 현대영화의 물꼬를 튼 누벨바그 출신의 노장 감독 아녜스 바르다(Agnès Varda, 1928~ )와 거리 예술의 혁명가 JR이 함께 만든 이 작품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 참여하는 흑백 사진작업과정을 생중계하듯 보여준다. 이들은 트럭을 타고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마을을 다니며 그곳 사람들의 기억, 특히 빛바랜 사진을 보며 흘러나오는 과거 흔적을 거리 풍경으로 만들어내는 예술적 일상작업을 목격하게 된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inside out project)’라고 쓰인 카메라가 그려진 트럭은 즉석촬영과 대형출력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움직이는 ‘포토 아틀리에’다. 갈수록 시스템 변화가 격렬한 21세기 초, 세대차이 파장이 큰 대도시 중심에서 소외된 세상 한구석, 주로 노인들이 살아가는 마을은 기억을 담아내는 노스탤지어 전시장이기도 하다. 그 마을에서 오랜 세월 생업에 종사해온 사람들의 회고담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사진작업에서 (JR의 말처럼) “세상은 캔버스고, 거리는 곧 갤러리”다. 이들은 방방곡곡 누비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얼굴사진으로 마을 풍경을 즉각적으로 바꾸는 예술놀이 공동작업으로 일상에 즐거움을 선사한다. 철거를 앞둔 북부 탄광 마을에서는 사라진 직업이 돼버린 광부들의 과거사 기억이 사진 기록의 핵심이다. 하루에 갱목 150개를 세워야 하는 고달픈 노동, 그래도 가족 대대로 해온 광부로서의 일상적 기억은 여전히 자부심 속에 피어난다. 그 결실로 황폐해진 건물들은 복원된 광부시절 사진들로 포장된다. 특히 자닌 할머니는 광부의 딸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며 (남들은 이해 못해도) 최후의 저항자로 그 마을, 자신의 집에 남고 싶다는 속내를 토로한다. 오랜 삶의 희로애락이 주름진 연륜으로 드러나는 그녀의 흑백 얼굴사진, 그것으로 단장된 낡은 집은 멋진 박물관처럼 보인다. 집채만한 자신의 얼굴 이미지로 두른 집 풍경을 보며 자닌은 감동에 젖어 할 말을 찾지 못한다. 그런 그녀와 정겨운 포옹을 나누며 예술놀이로 친구가 되는 멋진 우연의 힘을 보여준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얼굴보기 로드 다큐 노르망디에 있는 ‘항구’란 뜻을 가진 ‘르 아브르’(Le Havre)’도 찾아간다. 바르다 감독은 이곳은 여행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지만, 이젠 한물간 지역이기에 이곳도 시골마을이라고 우기는 JR의 주장을 융통성 있게 수용한다. 남성노동 중심의 항구에서 바르다 감독은 “왜 여자들은 안 보이나요 ”라고 묻는다. 그들의 아내나 보조적 일로 가려진 여성들을 찾아낸 바르다 감독은 여성주체를 드러내는 영화를 만들어온 자신의 젠더 평등 기질을 발휘한다. 여성으로선 유일한 대형트럭 운전기사인 한 여성과 다른 두 여성은 얼굴중심이 아닌 전신사진 작업에 흔쾌히 참여한다. 바다를 마주한 공간에 곤돌라로 7층 높이 대형 컨테이너들을 쌓아 사진을 붙일 전시장 설치에 들어간다. 커다란 자신의 전신사진의 심장부위 빈 공간에 앉은 이들은 예술로 바뀐 시점을 이렇게 토로한다. “자유로움을 느껴요!” “지배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커지고 강해진 것 같아요!”라고.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힌 구순의 바르다 감독이 지팡이를 짚고 걸으며 손자 같은 거리 예술가 JR과 동행하는 예술놀이 여행. 그것은 차이의 공존으로 다양성의 미학을 전해준다. 시야가 침침해진 바르다 감독은 JR에게 장막 같은 선글라스를 벗어보라고 수차례 요구해도 그는 취향의 다양성론을 펼친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의 기질 차이를 인정하며 동행하는 로드 다큐로 즐겨보시길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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