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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8월 9일~10일에 망상해수욕장을 비롯한 동해시
지역(무릉계곡,천곡동굴)을 갔다 왔습니다.
망상해수욕장은 동해바다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국민관광지입니다.
두타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릉계곡은 신비로운 모습을
간직한 계곡으로 신선들이 놀다갔을 정도의 경치를
자랑하는
계곡이죠. 이 계곡의 특징은 맑고 깨끗한 계곡물과 넓직한
암반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이상적인 경관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곡동굴은 시내에 자리잡은 동굴로, 천곡동 지역을
개발하는 도중 우연히 발견된 석회암 동굴입니다.
이후부터는 모두 반말체를 사용하니 양지하기 바랍니다.
♠ 배경음악 : 박혜경의 '안녕'
* 8월 9일 토요일, 평소에 가보고 싶던 망상해수욕장에 가게 되었다.
오전에 업무를 끝낸 후, 집에 와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바로 청량리역으로 이동,
예약한 열차표를 구입하고, 피서를 떠나는 피서인파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열차시간을 기다린다.
13:50분에 개표를 받고 14시에 청량리역을 출발하여
강릉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에 탑승..
(청량리역에서 망상역까지 학생할인하여
13400원, * 토,일,공휴일 요금)
열차 내(內)는 막바지 피서를 가려는 사람들로 거의
시장바닥을 이루었다.
하나 같이 피서를 간다는 설레임에 빠져, 즐거운
표정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이나 애들이나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것이 바로 여행,답사를 떠나는 이유가 아닐련지..
14시가 되자 강릉 행 무궁화호 열차는 슬슬 청량리역을
출발하고.. (정확히 14:10분에 출발)
출발한 직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어느덧 영월역..
여기까지 3시간을 잔 셈이다.
영월을 지나서부터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하(山河)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사방이 온통 산으로 뒤덮힌 강원도의 내륙지역.. 곳곳에
보이는 계곡물, 옛 탄광산업의 전성기를 말해주는
탄광촌들, 심심하면 등장하는 터널들...
이것이 강원도를 지나는 영동선(영동선)과 태백선(太白線)의
주변 풍경이다.
카지노장으로 유명한 고한역을 지나서 우리나라에서 2번째로
긴 정암터널(4.5km)을 통과하니, 고원의 도시로
유명한 태백시로 진입..
태백시의 관문인 태백역에서 상당수의 승객들이 내리니,
시장바닥을 형성하던 열차 내부가 허전해지기 시작한다.
빈 좌석들도 많이 생기고..
환선굴로 유명한 신기역에 이를 무렵, 날은 어둑어둑...
동해역과 묵호역을 지나 20:18분에 망상역에
도착했다.
망상역에서 나를 포함한 승객 20여명이 내렸는데, 모두
망상해수욕장으로 놀러가는 애들이다.
망상역은 내 예상과는 달리 조그만 간이역이다.
이 역은 평상시에는 통일호 열차만 정차하며, 피서철에는
망상해수욕장으로 놀러가는 승객들을 위할 겸, 돈도
벌겸 해서 일부 무궁화호 열차가 망상역에 정차한다.
망상역에는 부근 역에서 파견된 역무원 2명이 여객업무를
맡고 있었는데, 좀 여유로운 모습이다.
동해역이나 묵호역보다는 승객들이 적으니..
역전(驛前)으로 나오니 피서객들을 모시러 온 민박집
차량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나는 그 차량들에게는 볼일이 없는 지라, 망상역을 나와서
미리 와 있는 일행들에게 전화를 하여 도착보고를 하니,
7번국도를 따라 망상으로 올라오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허걱~~
나는 망상역에서 내리면 바로 해수욕장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군, 한참 올라가야 된다.
직선거리는 진짜 얼마 안되는데,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니..
그래서 정동진 방면으로 2km정도 걸으니 그제서야 망상해수욕장 입구에 도착.. (21시)
입구에서 마중나온 일행 극적으로 만난후 같이 모임 연회?장소로
갔다.
연회?장소는 해수욕장 뒤쪽 민박촌에 자리잡은 이마트(이마트
할인점과 관련 없음)라는 가게 앞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그 곳에는 이미 일행 여러명이 저녁을 들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인사를 하고 바로
저녁식사에 돌입..
배가 고픈 관계로 부지런히 삼겹살과 밥, 야채, 과일, 감자
등을 먹었다.
삼겹살은 엄청나게 큰 구이판 위에 구워서 먹었는데, 맛있군..
거기에 야채등을 겻드려서 먹으니,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ㅋㅋ
역시 바닷가에서 먹어서 그런지 맛이 나는 것 같다.
삼겹살을 부지런히 먹고, 수박,감자,고구마등을 먹고 거기에
약간의 소주를 겻드리니 어느덧 시간이 0시가 되었다.
모임 장소 주변 풍경을 잠깐 언급해보면, 가게를 기준으로
서쪽과 남쪽에는 피서객들이 텐트를 치고 놀고 있었는데,
태반이 어린 것들이다. 술을 엄청나게 마시는 장면이 종종
목격되었다.
그리고 가게에는 술과 안주,라면,음료수등을 사러 민박객,야영객
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덕분에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0시가 지나자, 소화
좀 시킬겸 해서 해수욕장의 백사장을 거닐었다.
망상해수욕장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답게, 백사장(白沙場)의 길이와 폭도 대개 넓은
편이다.
이 해수욕장은 국민관광지 2호로
지정되었으며, 얕은 수심과 넓은 백사장으로 해마다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오는
관광지이다. 백사장의 폭은 약 200m 정도로 내가 가본
해수욕장 중에서 제일 넓은 편이다.
끝 없이 펼쳐진 백사장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주변 풍경을
살펴보는데, 모래밭에 설치된 텐트촌에는 술판을
벌이는
애들이 조용히 술을 마시고 있었고, 바닷가에는
바닷바람을 쐬러 온 사람들만 몇명 있을 뿐, 대체적으로
조용하다.
간만에 보는 동해(東海)바다, 언제봐도 좋다. 그리고
지인(知人)을 만난 듯 반갑다.
그런데 바다 멀리에 불빛이 보이는데, 이 불빛의 주인공은
바로 오징어잡이 어선이다.
오징어는 불빛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불빛을 바다에
비추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미련한 오징어들이
좋아라하고 빛을 따라와서 결국 사람들이 쳐놓은 어망에
걸려든다. 그런 다음 어판장으로 가게 되고, 그 다음
우리들의 즐거운 식사시간에 등장하여 우리들의 미각(味覺)을
즐겁게 해준다.
백사장을 거닐고 있자니, 바닷가 쪽에 왠 기분나쁘게 생긴
무엇인가가 높이 세워져 있다.
그 것은 바로 번지점프대... 높이는 약 30m라고 하는데,
어둑어둑한 밤에 바라보니 무슨 괴물이 양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 같다.
만약 돈키호테가 저 번지점프대를 봤다면 아마 창을 들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애궂은 풍차를 공격한 돈키호테가
저걸 공격안하겠는가? ㅋㅋㅋ
번지점프대는 망상해수욕장을
비롯하여, 춘천의 강촌유원지, 성남
분당신도시의 율동공원 등에 설치되어 있어,
절찬리에 운영 중인데, 점프대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대개
무서울 것이다. 그러나 뛰어내리면 그 기분은 아마
이루 말을 못할 정도로 짜릿하다고 하던데, 나는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언제 점프 한번 해봐야 될텐데..
백사장에서 바닷바람좀 맞다가 다시 연회장소로 와서 과자
등의 다과를 먹으면서 이야기좀 하다가 새벽 1시에
텐트 안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인 망상해수욕장
8월 10일 일요일 오전 7시, 잠에서 일어났다.
텐트촌과 백사장은 아침세수와 아침준비를 하려는
피서객들로 분주하다. 그리고 바다 위에 얼굴을 내민 태양의
따사로우면서 뜨거운 햇빛이 아침이 왔음을 알린다.
나는 부근 세면장에
가서 세수를 하고, 아침 9시에 망상해수욕장을 뒤로 한 채, 동해시내로
들어갔다.
망상에서 동해시내로 갈려면 어달동을 지나가야 되는데, 이
어달동은 횟집으로 유명한 바닷가 동네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바닷가에 자리잡은 모
식당에 들어갔다.
그 식당에서 동해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인 곰치국을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그런데로 먹을 만 하군..
곰치국은 동해바다에 살고 있는 '곰치'라는
물고기를 맛있게 끓여서 먹는 음식으로, 곰치란 이름은 곰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는 곰치국을 먹으면서 싣당 카운터 위에 걸린 현판을
보았는데, 그 현판에 적힌 한문이 나를 크게 감동시켰으니,
그 한문은 바로 -> '食卽生' 풀이하면
먹는 것은 곧 생활(식사는 바로 생활이다)이라는 뜻이다.
이 얼마나 좋은 내용인가..
사실 먹는 것 만큼 즐거운 일도 없는데,
ㅋㅋㅋ
곰치국을 먹고, 시내로 가는 도중, 묵호항에
잠깐 들렸다.
묵호항은 동해의 대표적인 항구로써, 이 곳에 공동어판장이
자리잡고 있는데, 금방 잡아온 싱싱한 수산물을 여기서
경매와 여타 매매를 통해 전국 각지로 보내진다.
그리고 금방 잡아온 수산물을 즉석에서 구입하여 먹을 수도
있는데, 가격은 시중보다 아주 저렴하다.
어판장 곳곳에는 즉석에서 회를 구입하여 먹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는군..
묵호항에는 수백 척의 선박들이 동해바다의 파도에 선체를
맡기며,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시로 배들이 들어오고, 볼일을 다 마친 선박들은
출항하고, 분주한 모습이다.
그런데 어판장 한쪽 구석에는 경매가 열리고 있었다.
경매는 비싼 가격을 적은 사람에게 물건을 파는 방법인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에 싱싱한 수산물을 진열해
놓고, 경매를 통해 상인들에게 하나 둘 팔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신기한 듯 경매 현장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상자에 놓여져 있던 경매용 수산물들은 그런 것에
관심 없는 듯,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다. 뭐 어차피 죽은
목숨들이니..
묵호항을 이렇게 둘러보고 무릉계곡으로 발길을 옮겼다.
원래는 반딧불님 가족과 같이 가기로 했으나, 연락이 안되는
관계로 우리끼리만 가게 된 것이다.
무릉계곡은 동해의 진산이나 다름없는 두타산 자락에
자리잡은 계곡인데, 묵호에서 동해터미널을 지나 삼척
방면
7번 국도로 계속 달리면 효가4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임계(정선,여량),삼화동 방면으로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들어가면 무릉계곡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효가4거리부터 무릉계곡 까지는 작년 수해(水害)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는데, 산 곳곳에는 작년 수해로
산사태가 나면서 맨살을 드러낸 부분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으며, 무릉계로 가는 도로도 원래는 4차선이었으나,
수해로 인해 2차선으로 줄었고, 두타산에서 동해바다로
흐르는 '전천'이라는 하천도 범람하여
둑이 파괴되어 다시
복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복구속도가 너무 느린 것 같던데,
다행히 올해는 별다른 물 피해가 없어서 다행이다.
역시 인간들은 자연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가련한
존재였던가.. 쩝..
삼화동을 지나 무릉계 주차장에 도착, 그런데 놀러온 수
천대의 차량들로 인해 주차할 곳이 없어서 몇바퀴를
헤맨
끝에 겨우 시내버스정류장 옆에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내렸다.
무릉계곡 주차장에서 매표소까지는 여느 관광지처럼
식당촌과 민박촌이 자리잡고 있다.
식당촌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관광객들로 가득하고..
수입 짭짤하겠군..
우리는 모 식당에서 얼린 생수를 한통 구입했는데, 무려 700원이나
하는군.
기존 물통보다 200원을 더 받는데, 그래도 없어서 못
팔정도이다.
식당촌을 지나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 그런데
동해시민들은 무조건 무료, 타지역 사람들은 무조건 입장료
징수. 허걱~~
* 무릉계곡 입장료는 어른은 1500원,
학생,군경은 1000원이다.
입장권을 구입하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입장권의
오른쪽 부분을 뜯어서 줘야 된다.
이는 여느 관광지의 입장권과 비슷...
초소를 지나면 무릉계 위에 걸린 나무 다리가 나오는데, 이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본격적인 두타산 등정 및
무릉계곡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진다.
* 두타산 자락에 자리잡은 무릉계곡(武陵溪谷)은
깨끗한 계곡물과 크고 넓직한 암반과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무릉계곡을 품 안에 안고 있는 이 두타산은 곳곳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폭포(용추폭포,쌍폭포,칠성폭포,
산성폭포)와 빼어난 풍경을 자랑하는 명승지(학소대,문간재,하늘문,선녀탕,옥류동)들,
그리고 자연이 빚어놓은
여러 형태의 바위(금강산바위,번개바위,베틀바위)등이
무릉계곡과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무릉계곡은 그 모습부터가 범상치가 않은데, 계곡 곳곳에
자리잡은 넓은 반석과 암반들, 그 암반 사이로 흘러내리는
깨끗한 계곡물, 그리고 그 암반 위에 새겨진 옛
사람들의 흔적들..
계곡 곳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폭포와 명승지들.. 가히
천하제일의 경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암반 위에 새겨진 수천자의 크고 작은 각자(刻字)들은
옛 사람들이 이곳에 놀러오면서, 새긴 것들인데,
새겨진 것들은 대체로 무릉계곡을 찬미(讚美)하는 시와 문구(文句)들...
옛부터 무릉계곡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던 모양이다.
무릉계곡은 일명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고도
하는데, 신선(神仙)들이 이 계곡의 빼어난 풍경을
흠모하며,
놀러왔을 정도로 아름다운 경관을 간직하고 있어서, 옛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붙여준 것이다.
◀ 넓은 암반들이 펼쳐진 무릉계곡
다리를 건너서 10분 정도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계곡
옆에 '금란정'이란 정자(亭子)가
세워져 있다.
정자 안에는 수십 명의 피서객들이 계곡을 바라보며 더위를
씻히고 있었다.
이 금란정은 일제시대 때 동해지역의 유생들이 금란계를
결성하면서 그 기념으로 이 정자를 세울려고 했는데,
쪽발이들의 방해로 인해, 정자를 세우지 못했다. 그러다가
해방 이후, 금란계원과 그 후손들이 1949년에 건립하였으며,
1956년에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 금란정은 팔작지붕 비슷한 형태로, 정면 3칸(혹은 4칸
같은데) 측면 2칸의 건물인데, 무릉계곡을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어 경관이 좋다.
그리고 정자 주변 계곡 암반에는 옛 사람들이 새겨놓은
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이 암반(반석)들이 옛 사람들의 일종의 낙서판이었다.
암반에 새겨진 한자들은 무슨 체로 쓰여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그만 크기의 각자부터, 사람 키 만한 각자까지
참 다양하다.
그들은 시원한 계곡의 발을 담구면서, 더위를 씻히고,
그늘에서 잠깐 달콤한 낮잠도 자고, 그리고 계곡을 찬미하는
시,문구를 짓기도 하고, 그런 내용을 바위에 새기고 등등.
완전 신선놀음을 했을 것이다.
정자 주변 계곡에는
가족단위로 놀러온 수만명의 사람들이 계곡 곳곳에 진을
치면서 놀고 있었다.
암반이 넓어서 자리잡기도 좋고, 계곡의 수심이 얕아서,
어린애들이 놀기도 좋고,
물장구 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한결같이 이런
표정들이다. ->
◀ 무릉계곡에
자리잡은 금란정
금란정을 지나
다리를 건너니 천년고찰 삼화사(三和寺)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절은 두타산을 대표하는
사찰로써,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그건
믿기가 어려우며, 그 이후 범일국사가 재건하여 절 이름을 '삼공암'이라
하였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쪽발이들에 의해
파괴되어 약사전(藥師殿)만 남아있다가, 현종 1년(1660)에
중건되었고, 순조 23년(1823)과 고종 43년(1906), 두 차례에
화재를 만난 이후 다시 중건하여 지금에 이른다.
현재 경내에는 3층석탑을 비롯한 보물급 문화재 2점이
있으며, 약 10동의 전각이 있다.
◀ 천년고찰 삼화사
전경
삼화사
경내로 들어설려면 천왕문(天王門)을 통과해야 되는데, 이
문에는 석가모니의 경호원인 4천왕상을 그린
4천왕도가 문 양쪽에 걸려 있다. 보통 천왕문에는 인상을
잔뜩 쓴 사천왕상이 서 있기 마련인데, 이 절의 천왕문
에는 상(像)대신에 그림(圖)이 걸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이 묘하다.
형상 대신 그림으로 대신 했으니, 참 의아스럽군..
그렇다고 그림에 그려진 4천왕의 모습이 초라하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마치 사천왕상을 보는듯, 그 모습이 위엄스럽고,
무섭다.
천왕문을 지나니 넓은 경내 뜰이 나온다.
뜰 가운데에는 보물 1277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인데, 상륜부에는 철주(鐵柱)가 우뚝 서 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 형태로 봤을 때, 통일 신라 시대인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1997년에 대웅전 앞에서
지금의 자리로 탑을 옮기면서 해체 복원을 했는데, 그 때
윗층 기단 내에서 소형탑 25기, 청동제 불대좌 조각 2점
, 철조각 6점, 문서 1매 등이 들어 있는 목함(木函)이
발견되어 화재가 된 적이 있었다.
이 탑은 여러 곳에 금이 가고, 약간 손상되었으나, 대체로 그
모습이 잘 남아 있으며, 삼화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
삼화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3층 석탑 (9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먀, 상륜부분에 철주가 세워져 있다.)
3층석탑을
둘러보고 대웅전 방향으로 뜰 왼쪽에 자리잡은 약수터로
갔다.
이 약수터는 2개의 석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동그란 모양의 석조가 있고, 왼쪽의 사각형 모양의
석조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약수터의 물은 원형(圓形) 석조(石槽)에 있는 용머리의
입에서 졸졸졸 나온다.
나는 용머리가 제공해준 물을 마시고, 왼쪽에 바로 붙어
있는 방형(方形)석조 앞으로 갔다.
석조 내에는 물이 가득히 담겨 있는데, 물 속에는 500원 짜리
동전을 비롯한 수 백개의 동전들이 잠수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물 속에 잠겨 있는 동전들을 유심히 바라봤는데(특히
500원 짜리 ㅋㅋ), 왠지 동전들이 불쌍해 보인다.
동전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이런 물 속에
파묻혀 있으니, 사람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해야 되듯이,
동전 역시 자신의 역할을 다 해야 우리나라의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다.
사람들이 심심풀이 겸 또는 소원을 빌기 위해 던진 동전들이
이렇게 물 속에서 영구히 주무시고 있으니,
이 얼마나 안따까운 일인가.. 그래서 나는 500원짜리를
중심으로 약간?의 동전들을 구제해 주었다. ㅋㅋㅋ
현재 이 동전들은 시중에
절찬리에 유통 되고 있을 것이다. 일부는 내 동전통 속에
있을 것이고. ㅋㅋㅋ
이렇게 동전 낚시를 끝내고, 청기와로 뒤덮힌
대웅전(大雄殿)으로 갔다.
이 전각은 삼화사의 금당(金堂)으로, 전각 내에는 보물
1292호로 지정된 철조노사나불좌상이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철로 만든 철불로써, 불단(佛壇) 위에 모셔져
있는데, 불상이 앉고 있는 대좌(臺座)가 돌이 아닌,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다. 쩝~~
불상의 머리 스타일은 꼽슬인 나발이며, 머리 꼭대기에
육계가 약간 튀어나왔다. 눈썹 사이에는 하얀 빛이 나는
백호가 있고, 얼굴은 약간 살이 있으며, 눈은 조그마하게 뜨고
있는데, 눈의 양쪽 길이가 좀 길다. 그리고 눈의
흰자가 그럴싸하게 표현되어 있군.. 입은 굳게 다물고
있으면서, 약간의 미소를 띄고 있으며, 입술은 약간 두껍다.
불상의 수인(手印)을
보면 왼손은 무릎 쪽으로
내려서 손바닥이 밖을 향하고 있고, 오른손은 마치 선서를
하는 듯,
올려져 있는데, 손바닥이 밖을 향하는 여원인을 하고
있다.
이 불상은 원래 여러 조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물론
원래는 하나로 합쳐져 있었으나,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인해,
불상이 파괴된 것이다. 그러다가 근래에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복원을 했는데, 복원을 하는 도중, 등판 부분에서
10행에 161자의 명문이 발견된 것이다. 이 명문을 통해, 이
불상의 정체가 '노사나불'임이 밝혀졌다.
이 불상은 신라 후기 불상으로써, 비록 시멘트 대좌에 앉아
있기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3층석탑과 같이 삼화사의
오랜역사를 말해주는 귀중한 보물이며, 불상의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 삼화사 대웅전
불단 위에 모셔진 철조노사나불좌상
(철불이라서 전신(全身)이 검으스레하다. 그렇지만 불상의
은근한 미소와 약간 밝아
보이는 표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안그러면
할 수 없고..)
청기와로 뒤덮힌 대웅전 내부를 둘러보고, 삼화사 경내를
나왔다.
삼화사 대웅전 오른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금동미륵입상이
세워져 있는데, 그냥 멀리서 보기만 했을 뿐,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별로 내키지가 않아서..
삼화사를 지나 5분 정도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로 가면 '관음암'이라는
암자와 하늘문이 나오고, 왼쪽 계곡길로 가면 용추폭포가
나오는데,
우리는 왼쪽 계곡 길로 진입..
갈림길을 지나 5분 정도 들어가니 '학소대'라
불리우는 폭포가 나온다.
이 학소대는 학과 관련된 명승지로써, 그만큼 경관이
수려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에는 대부분 학,선녀,신선과
관련된 명칭과 전설을 가지고 있는데,
이 학,선녀,신선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수려한 곳에만
나타나서 놀거나, 혹은 목욕을 하거나, 혹은 나타나서 춤을
추거나 그런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자신이 봐서 진짜 좋은
명승지에는 학,선녀,신선과 관련된 이름을 지어주고,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사람은 그 명승지에 어울릴만한
전설을 만들어서 부근 주민들과 놀러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그 전설을 유포시킨다.
무릉계곡도 그런 이유로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학소대 또한
그렇다.
학소대는
암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계곡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서 자연히 폭포를 형성하고 있다.
학소대 위에는 아까전 갈림길에서 관음암,하늘문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거기서 아래로 학소대를
바라보면
경관이 아주 일품이라고 한다.
한번 위에 올라가서 보고 싶은데, 시간 관계상.. 통과..
학소대를 지나 10분 정도 가면 계곡을 건너는 외나무다리가
나온다.
원래는 완전한 형태의 다리가 놓여져 있었으나, 작년 수해로
다리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런데 다리 복구 공사를 늦게 하는 바람에, 임시 방편으로
계곡 위에 외나무 다리를 만들어서 두타산 관광객들을
통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다리는 거의
완성되었는데, 아마 9월정도에 통행이 가능할 듯 싶다.
그 이전에는 이 외나무 다리를 이용바람.. ㅋㅋㅋ
다리를 건너니 왼쪽에 두타산성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그러나 두타산성은 다음에 가기로 하고, 무조건
계곡을 따라 직진..
쌍폭포 못미쳐에 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오는데, 그 다리
아래에 펼쳐진 계곡이 '선녀탕'이라고
그런다.
선녀탕은 워낙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이 계곡 역시 선녀와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듯
싶은데,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군...
아마도 천상(天上) 세계의 선녀(仙女)가 이곳에도 놀러온 듯
싶다.
그러나 지금은 피서를 즐기러 온 피서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녀탕을 지나 2분 정도 올라가니 두타산의 대표적인 폭포인
쌍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폭포는 양쪽 벼랑에서 2개의 폭포수가 계곡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데, 높이는 약 15~20m정도 된다.
폭포 아래에는 깊은 담(潭)이 형성되어 있으며, 물 빛이 대개
고와보인다.
예전에는 폭포와 담까지 접근이 가능했는데, 계속되는
추락사고와 익사사고로 인해 지금은 벼랑 주변에 안전줄을
설치하여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있다.
그 덕분에 폭포수와 담은 예전보다 더 깨끗해 졌을
것이다.
◀
양쪽에서 쏟아져 내리는 쌍폭포
(쌍폭포 위에 용추폭포가 있다)
쌍폭포에서
다시 2분 정도 올라가면 쌍폭포 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한
두타산의 대표급 폭포인 용추폭포가
나온다.
이 폭포는 2단 폭포(瀑布)로써, 윗폭포(상폭)과 아래폭포(하폭)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폭과 하폭사이에 담(潭)이
있고, 하폭 아래에도 담이 형성되어 있는데, 피서객들은
주로 하폭 주변에 진을 치고 놀고 있었다.
하폭은 쌍폭포와 비슷한 높이로 생각되는데, 수량이 적어서
그런지 별로 웅장한 멋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폭포수를 바라보니 더위가
나 무서워라 하고 도망을 친다.
하폭 아래의 담과 그 주변 계곡에는 수백명의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거나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담은 수심이
깊어서 그런지 들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냥 담 주변과
아랫 계곡에서만 놀고 있을 뿐..
그리고 담 한쪽에는 구명튜브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도
예전에 익사사고가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폭포와 담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한 나머지 물 속에 들어가서
결국 '이제가면 언제오나'가 된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
그런데 몇몇 어린것들이 담에 깊숙히 들어가서 놀고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저러다가 사고 당하면 어쩔려고..
우리는 담 부근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는데, 부근 계곡 한쪽 구석에 상폭으로 올라가는 철계단길이
있군.
그래서 한번 올라가보기로 했다.
하폭보다는 상폭이 더 멋있고, 아랫담보다는 윗담이 더
아름답다고 해서..
상폭으로 향하는 철계단길은 처음에는 약간 가파르다,
그러나 어느정도 올라오면 길은 완만해지는데,
철계단길 아래는 50~90도에 가파른 언덕이다. 그리고 벼랑도
있고,
그렇지만 하폭과 담이 훤히 다 보이는 등, 경관은 좋은 편..
철계단 길을 3분 정도 가니, 막다른 곳이 나오는데,
거기서 바로 앞에 용추폭포의 상폭(윗폭포)과 담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상폭과 담(潭)은 사람들의 진입이
통제되어 있어, 주변에 철책을 설치했는데, 이미
철책 한쪽 부분은 사람들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약간 넓게
벌어져 있었다. (뚱뚱한 사람은 통과하기 어려우므로,
넘어가기 바람 ㅋㅋㅋ
)
그리고 이미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담(潭)주변 암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거나 발을 담구고 있었다.
나도 그 철책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여 담으로 내려 갔다.
담 주변 암반은 마치 여자의 곱고 하얀 피부처럼
하얗다.
그리고 상폭에서 쏟아져 내린 물로 이루어진 담(潭)은
아래의 담보다 더 맑고 깨끗하다.
나는 담에 발을 담구고, 상폭과 그 주변 풍경을
살펴보았다.
역시 예사로운 풍경이 아니었다. 마치 신선이나 선녀들의
공간 같은... 아름답고 깨끗한 폭포와 주변 풍경들...
그리고 깨끗하고 시원한 담(潭)의 물..
담에 발을 담군지 약 10여분 뒤에 한때에 아줌마,아저씨들이
담 주변 암반으로 몰려든다.
그러더니 담으로 뛰어들어서 이리저리 헤엄을 치는군.. 어떤
아저씨는 하폭으로 내려가는 계류에 돌로 둑을 쌓고.
그 덕분에 하폭의 수량이 적어졌다.
조용하던 폭포와 담 주변이 이들로 인해 시끌벅적..
역시 못말리는군..
◀ 두타산의 대표적인 폭포인 용추폭포의 아랫쪽 폭포
담(潭)에서 어느 정도 머물다가 다시
하폭으로 내려갔다.
하폭부근 계곡과 담에서
발을 담구면서 피서를 즐기다가 1:20분 경에 하산..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촌의 모
식당에서 비빔밥과 도토리묵, 감자전을 먹었다.
음식은 그런데로 먹을 만 한데, 감자전과 도토리묵은 7월 27일,
월악산 덕주골에서 먹은 그 것보다는 약간 별로
같다.
점심을 먹고
주차장으로 내려와서, 다시 동해시내로 차를 돌렸다.
이번에 갈 곳은 천곡동에 자리잡은 천곡동굴..
이 동굴은 동해시청이 있는 천곡동 주택가 뒷산에 있는데,
보통 동굴 하면 깊은 산 속이나, 도시에 한참 떨어진
벽지에 있는 것으로 다들 알고 있는데, 이 천곡동굴은 그런
관념을 완전 깨버렸다.
완전 시내에 동굴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 동굴은 1991년에
천곡동 신시가지 기반조성공사를 하는 도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동굴의 길이는 1.4km로, 그 중 0.7km만 공개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시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이 동굴의 최대 특징 겸 매력이다.
동굴의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어린이는 700원인데,
동해시민은 특별히 50% 할인된다.
천곡동굴 위에는 2층 규모의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이
건물은 관리사무소, 자연학습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동굴로 들어서는 입구는 건물 1층에 있다.
그 입구를 통해 지하 궁전인 천곡동굴로
들어서게 된다.
동굴 내부는 수십만년 동안 자연이 심심풀이로 빚어놓은
석순과 종유석 들이 온갖 자태를 뽐내며 지나가는 관람객
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렇지만 영월의 고씨동굴이나
단양의 온달동굴,천동동굴 만큼 재미있고 아기자기한
맛은 없는 것 같다.
동굴에 들어설려면 반드시 안전모를 써야 된다. 물론 안써도
된다. 그렇지만, 통행로의 높이가 낮은 곳이 많이
있어서 머리부분이 부딪치기가 쉽다. 그래서 안전모를 써서
머리부분을 보호해야 된다.
나도 안전모를 쓰면서 동굴을 관람했는데, 여러번
머리부분이 동굴의 천정과 부딪쳤다. 다행히 안전모 덕분에
별 탈은 없다.
천곡동굴 내부의 모습은 아래 사진으로 대신 한다.
◀ 천곡동굴 내부 1
(땅바닥에 관람객들이 던진 동전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
천곡동굴 내부 2
◀
천곡동굴 내부 3
(석순이 저정도 자라는데 걸린 시간은 수십만년이다)
천곡동굴을 둘러보고, 감추사해안,송정동을 지나
동해역으로 갔다. (16시)
이제 이느덧 집에 갈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동해역전에서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동해역사(驛舍)로 들어갔다.
역사 내에는 피서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수백명의
사람들로 매우 혼잡하군..
나는 예약한 열차표를 구입하고, 승차시간까지 의자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이제 집에만 가면 되는구나...
16:45분이 되자 내가 탈 청량리 방면 무궁화호 530열차의
개표가 시작, 개표를 받구 타는 곳으로 나갔다.
16:52분이 되자 강릉역을 16시에 출발하여 청량리역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동해역내로 들어서고..
승객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열차에 오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
16:53분이 되자 열차는 동해역을 출발..
나는 여행의 피로로 인해 금방 잠이 들고...
6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열차는 서울 땅에 진입
지정시간보다 20분이 늦은 23:10분에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지연을 무려 20분씩이나..
1940년대 제국주의로 이리저리 설치던 이탈리아의 우두머리
무솔리니가 저런 꼴을 봤으면 과연 가만 있었을까?
청량리역(미주상가)
버스정류장에서 서울시내버스 19번(도봉산◀청량리,동대문▶면목6동)을
타고 집에 오니
어느덧 0시..
-> 이로써 1박 2일의
동해 지역 여행은 이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동해 현지에서 본인을 맞이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
* 이 여행
후기는 8월 11일에 쓰기 시작하여 8월 13일에 완성했으며,
본인의 컴퓨터 하드가 갑자기 날라가는
바람에 본인이 작성한 모든 문서(한글,엑셀,html,txt..),사진이
인정사정 없이 모조리 날라갔다. 에구 아까운 것..
그래서 8월 18일에 다시 쓰기 시작하여 8월 22일 새벽에
완성하였다.
* 참고 문헌 : '남한 명승 비경 79곳'(두타산 부분을
참조함)
.
* 아래의 열차표는 8월 9일 청량리에서 망상까지 타고 간
열차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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