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3일. 무박으로 22차 산행을 하였다.
코스는 이화령 ㅡ 조봉 ㅡ 황학산 ㅡ 백화산 ㅡ 이만봉 ㅡ 지름티재 ㅡ 은티마을 까지로, 약 21km 거리였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하여 11시 반경에 마쳤다. 밧줄 구간이 또 있었다. 이번에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내려왔다. 19차 악휘봉 산행부터 속리, 대야산에 이르면서 남부 지방과는 확연히 다른 산세와 풍경에 매료되었다. 끝없이 펼쳐진 산봉우리를 바라보니, 고려 태조 왕건이 자신이 세운 나라의 영토를 확인하고자 말을 타고 둘러 보면서 "이 정도면 되었다.!" 라고 흡족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토록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잘 보존하여 반만 년 세월을 이어온 우리 후손에게 물려 주어야겠다는 한 생각에 머문다.
지난 8월 말경에, 회장님께서 백두대간을 걸어야 하는 이유 세가지와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산줄기로 거대한 뼈대이며, 이를 완주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자연과 역사에 몸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라고 알리셨다. 그렇다!!! 산행하는 길목 곳곳에 산재해 있는 역사의 흔적들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이 많다.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우리도 옛날의 민초처럼 역사의 한조각을 담당하며 만들어 가는 중이다.
힘이 없어 침략과 속박을 당한 아픈 역사가 있었다. 현재도 주변 강대국과 독도, 고대역사 등의 문제가 얽혀 있다. 민족의식을 더욱 고취하여야 할 싯점이 아닌가싶다. 마침, 산행일이 우리나라 생일인 개천절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격언이 있다. 이에, '역사' 주제 이야기로 산행기를 가름하고자 한다.
ㅡ우리나라 역사서 중, 실물이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사기'로써, 김부식 등이 1145년(고려 인종)에 편찬하였다. 당시 참고하였던 '백제본기' 등 삼국시대 고서들은 모두 불태워 없애 버렸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1281년(고려 충렬왕)에 편찬 하였으며, 고려 건국은 918년이다.
ㅡ일본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정사 '일본서기'는 681년에 시작하여 720년 경에 완성되었으며 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가 통일하고(676) 장보고가 청해진 설치 하던(728) 시기였다.
ㅡ중국은 기원전 109년에서 기원전 91년 사이로 추정되는 시기에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가 있다. 서술 범위는 전설상의 요(기원전 22세기)에서부터 전한 무제(기원전 2세기)까지이며, 100권의 방대한 자료이다. 사마천은 한나라 전성기인 기원전 145년에 출생했고 14년 동안 사기를 썼다.
고대 우리나라의 역사는 일본과 중국 역사서에 많이 언급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 연구를 했다. 중요한 몇가지를 밝히고자 하며, 중국 역사를 먼저 간략히 보자. ㅡ기원전 2700년 경 3명의 황제와 5명의 제후(삼황오제)부터 요 ㅡ순 ㅡ하(기원전 2070~1600)까지 신화시대이고,, 갑골문자가 발견되면서 실체가 규명된 은(상);기원전 1600~1100) ㅡ주(기원전 1046~256) ㅡ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0~221) ㅡ진(기원전 220) ㅡ한(기원전 206) ㅡ삼국시대(우리가 잘 아는~~)
1))치우천왕;;붉은악마 응원단의 심벌로 사용되고 있는 치우천왕은 고조선의 왕이다. 사기에 기록되기를 '황금갑옷과 황금투구를 쓰고 황금장식 말을 타고 달려 오면 적들은 도망가기 바빴다.'고 하였다. 진나라가 통일 전까지 여러 종족, 나라들이 전쟁하였다.
2))한자;;갑골문자는 한자의 조상이 되어 전서, 예서 등으로 발전하여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유일한 고대문자로써, 고조선 즉, 우리 민족의 뜻글자이다. (한글은 소리글자이다.) 하-은(상)나라와 연관이 있으며 동이족이 주요축을 형성했다.
3))공자;;기원전 551년 춘추시대 때, 가장 강력했던 노나라에서 출생했다. 사마천은 공자를 동이족이라 기록하고 있다. 노나라는 중국영토 동쪽 산둥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놀라지 마시라 '노자'도 동이족이다.
4))병마용갱;;농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발굴하니 엄청난 규모였으며,진시황과 연관지었다. 햇볕에 부식된다는 이유로 1984년에 발굴 중단하였다. 진짜 이유는 '온돌'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온돌은 우리 민족만의 고유 난방 방식이다. 발굴 책임자 왕모 교수가 몇 년 전 죽기 전에 "고조선 것이다." 라고 양심고백 하였고, 건축학자 진모 교수는 진시황 것이 아니라는 논문을 게재하였다. 또한 진시황도 아랍, 튀르크 인종일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5))백의민족;;삼국시대 이전부터 흰옷을 즐겨 입어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까지 하였다. 고구려 벽화 등에서 비단 채색된 화려한 옷을 입고 있슴을 본다. 신라인은 세계일류 신사라고 하였다.
6))단일민족;;우리와 같은 종족 계열은 말갈,, 여진,, 선비족이며, 형제지간은 흉노,, 몽골,, 거란,, 돌궐이다. 왜도 가야, 신라, 백제, 고구려, 발해 유민들이 각 지방에 정착하였고 백제가 일본을 통일하였다. 특히!! 흉노는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두 형제가 한 명은 유럽 쪽으로 가서 '훈족'이라는 '반지의 제왕' 영화 속 주인공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신라로 와서 왕이 되었다. 증거는,, 유럽 혹은 중동에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세계에서 단 2개 밖에 없는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된 단검이 경주박물관과 흘러 흘러 러시아 어느 박물관에 있다. 실크로드를 통해 왕래하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처용가의 '처용'은 아랍인이다.
7))사대주의;;조선시대 때, 명나라로부터 '조선' 국호를 승인 받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생겼다.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 냈으며, 고구려는 동아시아의 맹주였다. 고려는 몽고의 핍박을 받았어도 30여 년간 항쟁한 깡다구의 나라였기에, 원나라는 고려만큼은 신하의 나라가 아닌 형제의 나라로 대우했다.
8))백두산;;백두산의 원래 높이는 만 미터 이상으로 에베레스트 보다 높았다. 고려시대(946) 때, 초거대 분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때의 잔해물이 일본 북부지방 해저에 엄청난 양이 있다. 미국 해안까지 날아 갔다. 그후로 몇차례 분화가 더 있었다.
결론;; 사실 중국 한족이 중국 전체를 지배한 적은 6백 년 남짓이고, 타 종족이 수천 년 주인이었다. 한족 문화의 장점을 흡수하여 동화했을 뿐이었다. 중국의 비옥한 동쪽에서 황하문명을 일으킨 고조선,, 고조선의 영광을 재현하며 옛영토를 되찾고 수호한다는 건국이념으로 "다물"을 연호로 내세웠던 고구려는 바이칼 너머 시베리아(사백리 우리말이 변한것) 염호, 염수까지 영토를 넓혔다. 까마득한 옛시절의 화려함은 어쩔 수 없지만, 중국이 동북3성 규제 정책 등을 보면서 국사를 사회 과목에 포함 시켜버리는 작금의 정치인들의 의식에, 500~800 년 후, 독도는 일본것, 대한민국은 제2의 발해가 되지않을까 하는 걱정이 은근히 생긴다. 이상의 내용을 각자가 판단하겠지만, 관심을 가지면 보여지는 것이 있으리라 여기며 할말이 태산같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끝낸다.
우리를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게 만드는 '가을'의 마력에,, 산행을 택하신 회원님들과 함께한 시간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고 즐거웠습니다. 더욱 깊어질 가을이 가득한 소백산에서 만나기를 기대하고 고대하고 빠마하면서 이만 안녕.!!!!!
첫댓글 유도사, 형님, 오늘은 영낙없는 애국심이 작열하는 역사 강의를 듣는듯 합니다.
"아름다운 우리 금수강산 잘 보존해서 자자손손 물려주자." 완전 공감합니다.
이른새벽 설렘안고 로망의 희양산으로 고고싱싱. 지도에서 미리 살펴 본바로는 고도 차이가 별로 없어, 무난한 대간길이 될것 같다는 짐작은 했는데, 정말로 황학산까지는 비단길 같았네요. 일출을 못본 아쉬움은 있었지만,
부족하지 않은 새벽 여명과 지난 수주간 지나온 대간길, 희양산 암봉에서 바라본 속리산, 대야산 코스가 파노라마처럼 가을 풍경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고,
이런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온전히 느끼며, 걸어왔고, 앞으로 걸을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의 순간이였네요. 카메라가 없어, 아쉬움도 있었지만
자연과 산행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였네요. 이번코스는 설악산, 한라산 처럼 화려하지도, 산객들이 붐비지도 않았지만, 특별한
감정이 들더군요.
희양산접어들면서 대간의 허리가 얼마나 튼튼하게 자리잡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형님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산행 정보를 후기를 통해, 접할수 있음은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 입니다.
감사합니다.
소백산에서 뵙겠습니다.
오~산사랑제이,님.!
근래 몇 번의 산행은, 가을이기도 히지만 쾌청한 하늘아래 펼쳐진 가늠할 수 없는 산세!! 이러한 풍경에 우리나라는 정말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면서, 애국심이 더해집니다. 앞으로도 산행을 통해서 더욱 나를 사랑하고, 산을 아껴주고, 나라를 좋아하려 합니다.-애국심의 시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감사합니다. 소백에서 만납시다.
역사는 공통 감각이 숨겨있는 랑그라고 주장하는 여러 철인이 있지만 그 중 칸트는 반성을 통한 공통 감각이라고 말한다
역사를 서술해주셔서 다시 한번 더 되돌아보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그래도 가을에 떠나야 한다는 말씀이 더 멋집니다
아아
멜랑콜리하게 가을을 가슴에 안고 싶다. 마치 유부녀 로테를 사랑한 베르테르의 감성을 가지고서~~ㅋㅋ
오~무쏘꿈,님.!
역사는 있으되 문자가 없으면, 구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로만 남지요.- 님의 문자는 생각을 더하게 하는 숙제같은 것입니다.- 유도사는 가을만 되면 미치는 여러 감정이 생깁니다. 나는 아름다운 미스 롯데를 사랑하고 싶으오. 이 청량한 계절 동안만이라도요. 산행 함께할 그날까지 자알 계시요.
🍂🍁
유도사님, 후기글을 읽으니 그날의 산행이 다시 눈앞에 펼쳐집니다.
백두대간의 능선처럼,
우리의 낙동 20기의 인연도
오래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다음 소백산에서는
또 어떤 풍경과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기대됩니다.
소백산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왕서방,님.!
사과 맛있게 잘먹었습니다. 소백산도 이번 햇사과처럼, 싱싱하고 달콤함이 많을거 같아요. 또, 탁트인 시야에 가을이 풍성하게 가득할 것입니다. 걸으면서 가을 기운을 한껏 마셔서 온몸에 담아 올 생각입니다. 그럼 소백산에서 만나요. 감사합니다.
유도사님의 산행기가 궁금하고 공감하고 싶어서
참석 참석하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긴 대간길 만큼이나 빠져 읽게 됩니다
마침표는 항상 다음 대간길에서 만나요~♡
희망과 설렘 듬뿍입니다
다오리,님.!
늦게 배운 도둑질 밤 세는줄 모른다. 라는 속담처럼, 님의 산행은 막가파식으로 가니, 나는 함께 할 수가 없어요. 대단한 열정과 파워를 가졌어요. 유도사의 산행기가 좋아서 애쓰는 마음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소백산 신청하셨네요.! 그럼 그때 만나요. 바이~~
백화산이 기억에 남으며
이만봉 이름이 특히했던
삼만봉~
사만봉 찾아 삼말리~~없더이다~ㅋ
몽골부터
진시황/김 부식까지
역사공부좀 햇사옵니당~
오~~진이,님.!
오셨네요. 어딘가에 있을거예요. 이름없는 동네 뒷산이지만..ㅎ- 역사는 재미있어요. 방문 감사합니다. 님과 함께 산행 할 날을 기대하며~~ 안녕!!
유도사 님! 우리나라 뿐 아니라 우리 옆에서 으스대는 다른 나라 역사까지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조용히 누워있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힘줄이 불끈불끈 돋아 나는 것 같은 백두대간을 비롯한 우리네 산등성(이)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 산자락 골짜기마다 뭇 생명은 둥지를 틀고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들꽃은 아름다운 자태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밤처럼 익은 열매는 자손 번식을 위해 땅에 내려앉고, 다람쥐는 그 생명줄을 먹이로 그러모으고, 간직하고 단단한 껍질을 벗겨 배를 채웁니다.
커다란 우주가 우리 산하에 모여 있습니다.
생명, 삶, 우주 따위 거대한 담론을 어렴풋이 더듬어 보기도 합니다.
백두대간이 가진 매력입니다.
수고했습니다.
예.~한길,행님.!
백두대간-그 이름만으로도 가슴벅차오르는 뜨거움을 느낍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또, 함께 하는 회원님들을 존경합니다. 특히 몇 번째 걷는 행님과 몇몇 분은 정말 저의 롤모델입니다. 정말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산행기 잘 읽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진. 카메라가 무겁다고 하지않나요?-다음 산행에서 만나요. 행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