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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16≫
◆평신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선택된 백성으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 성세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백성으로서 사명을 완수하는 신자를 말한다. 교계제도에 참가하는 성직자 계급과는 구별되고(교회법 207조), 신앙고백, 미사참례, 영성체, 교회교리의 옹호, 교회의 유지, 합법적인 교회 당국에 대한 존경과 복종(교회법 208-221조)의 의무가 있다. 평신도는 구원을 위해 교회에서 마련한 하느님의 말씀, 성사, 대사, 축복 등을 받을 수 있고, 교회에서 베푸는 매장, 기도자들에게 기억되는 일, 전례에의 참여 및 교회에 대해 스스로의 의견을 밝힐 권리 등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평신도를 ‘듣고 따르는 교회’(ecclesia discens et oboediens)라 하여 평신도의 수동성이 강조됐으나,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었다. 즉 평신도가 성직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직자가 신의 백성인 평신도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정신에 따라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1964),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963),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1965) 등을 통해 공의회는 평신도의 특수사명을 인정하고 평신도를 통해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평신도는 사회의 누룩으로서 세상에서 주 예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 되어야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표지여야 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고, 사회질서를 개선하여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 한편 평신도는 신학생, 성직지원자, 교회에 봉사하기 위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성직복을 착용해서는 안된다.
◆평신도사도직◆
평신도가 부여받은 사도직. “교회 창립의 목적은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그리스도 왕국을 전세계에 펴고 모든 사람을 구원에 참여케 하며, 또한 그들을 통해 전세계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는 일이다. 이 목적을 위한 신비체(神秘體)의 활동을 모두 사도직이라 부른다”(평신도교령 2항). 평신도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재와 책임이 세상의 생활 내지 구조에 들어가 있음으로써 결정되는 사람이며(K. Rahner), 세속에 살면서 세속 일에 파묻혀 있는 것이 평신도의 특징이므로 평신도는 마치 누룩과 같이 되어 세속 안에서 사도직을 수행하도록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즉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王職)에 참여하며, 모든 일, 기도, 가정생활 등을 영적(靈的) 제물로 봉헌하고 인간 성화에 힘쓰며, 일상생활 가운데 복음의 힘이 빛나도록 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고 현세 질서에 복음정신을 침투시켜 현세 질서를 완성하며 겸손과 인내로써 형제들을 그리스도왕에게로 인도한다.
평신도가 이 사도직 수행의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 근거는 성세성사로 신비체의 지체가 되어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한 사실에 있다. 따라서 사도직의 기본 자격은 교계(敎階)에 의하여 주어진 위임(mandatum)이 아닌 것이다. 영적 생활에 성실하여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일상생활에서 더욱 깊고 생생하게 하는 데에 평신도 사도직의 결실이 달려 있다. 평신도 사도직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이 그러하듯이 인간 구원과 현세 질서의 개선을 목표로 삼고 있다.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파하며 현세 질서에 복음정신을 침투시켜 현 질서가 하느님께 향하도록 한다. 이 사명은 신자요 시민인 평신도가 교회와 세속 안에서, 영적 질서와 현세 질서 안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 두 질서 안에서 수행하는 사도직의 분야는 다양하다. 평신도 교령은 교회의 여러 단체들, 가정, 청소년들, 사회환경, 국가질서와 국제질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평신도는 개인적으로나 단체에 가입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다. 개인 사도직은 교회의 자유가 심히 제한된 지역이나 소수의 가톨릭 신자가 분산되어 있는 지역에 특히 기대된다. 이런 지역이 아니라면 조직적 사도직이 바람직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며 하느님께서 신자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한 몸에 결합되기를(1베드 12:12) 원하실 뿐 아니라 사도직 자체가 현실적으로 공동생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사도직 수행 단체는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발기하여 운영해 나가기도 하고 교회의 권위자가 영적 목적을 지향하는 사업 중에서 특정한 것을 선택하여 특별히 추진시키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이건 모든 사도직은 전교회의 사도직에 결합되어야 한다. 주교들과 일치하며 여러 사도직 단체 상호간에도 협력해야 한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하여 1965년 11월 제정 반포된 <평신도사도직에 관한 교령>(Apostolicam Actuositatem)의 정신에 따라 1968년 7월 창립총회와 함께 발족된 평신도들의 협의체. ‘회개와 쇄신’의 정신으로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평신도들의 교회 참여에 대한 진보된 견해를 표명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유홍렬(柳洪烈) 등의 한국대표 외 103개국의 평신도 대표들은 1967년 10월 로마에서 제3차 세계 평신도대회를 개최하였다. 한국에 있어서는 1967년 6월 처음으로 대구 대교구(大邱大敎區)에서 ‘대구대교구액션단체협의회’가 발족되어 서정길(徐廷吉) 대주교의 인준과 함께 김영환(金永煥) 신부의 지도를 받았다. 그 뒤 1968년 5월 한국 주교회의(韓國主敎會議) 임시총회에서는 전국 평신도기구의 설치에 관하여 그 사무실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C.C.K.) 내에 둘 것과 그 외 기타 사항은 책임주교인 황민성(黃旼性) 주교에 일임한다는 원칙적인 의결을 보았다.
이에 1968년 7월 대전 주교좌성당(主敎座聖堂)에서 전국 11개 교구가 6개 전국단체의 성직자 및 평신도 대표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신도사도직중앙협의회’ 창립총회를 갖고, 총재 및 회장을 비롯한 각 임원을 선출하였다. 미처 협의회의 체제가 정비되기도 전인 1968년 10월 24위 복자에 대한 시복식이 로마에서 거행됨에 따라 이를 경축하기 위한 위원회가 곧 발족되어, 1968년 10월 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순교자 유물전시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를 무난히 치르게 되었다. 1968년 10월 14일 한국 주교회의 정기 총회에서는 평신도사도직 중앙협의회를 인준하는 한편 협의회에 건의한 한국 평신도사도직의 날 제정 등 몇 개 사항들을 의결하였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인식 부족으로 사목위원회 · 액션단체협의회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사도직협의회의 원의(原意)와는 달라지게 되어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함께 국내적으로는 한국 정의평화위원회(韓國正義平和委員會)의 결성(1970. 8), 소데팍스(SODEPAX) 한국위원회의 결성(1971. 2)을 보았고, 국제적으로는 아시아 그리스도교개발회의 및 아시아지역 평신도 사도직운동회의 참석(1970. 7)을 비롯하여 세계평신도사무국에서 ‘교회 내에서의 대화’를 주제로 한 심포지움에 참석(1971. 3)하기도 하였다. 평신도사도직의 날 행사와 평신도들의 강론 등을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과 아울러 시성시복촉진준비위원회 발족 및 협의회가 조직되지 못한 교구의 지원을 1972년 이후 적극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에 있어서 전반적으로 평신도사도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중앙협의회와 교구협의회 또는 전국단체 간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1978년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전국기구를 폐기키로 한 때도 있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협의회는 꾸준한 활동을 전개 하였다. 각 교구마다 그 명칭과 기능 등이 일원화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침서에 따라 개편 보강토록 하였고, 1974년말에는 현재 위치한 꾸르실료회관에 독자적인 협의회 사무실을 마련하여 협의회의 활동을 지원토록 하였다. 또한 1977년에는 5인 소위원회(五人小委員會)를 구성하여 평신도 사도직운동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특히 1977년 이후부터는 도시와 농촌간의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도시에 소재한 본당과 농촌사회 속에 소재한 본당과의 자매결연을 적극 추진하였고, 신자 재교육 및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79년 8월 이후 부전기적으로 신앙대학(信仰大學)을 운영하였다. 1981년부터는 이향신자(離鄕信者) 사목위원회의 농촌본당자문위원회를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서 운영하기로 결의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신자들의 의식 계발이 그 어떤 활동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는 견지에서 피정 및 연수회를 통한 신자 재교육문제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함과 아울러 그 활동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현재 한국 내 14개 교구에 교구별 평신도사도직 협의회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복사◆
미사, 성체강복식, 혼인성사, 성체성사 등을 거행할 때 집전하는 사제를 도와 의식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사람으로 보미사 라고도 불렀다. 원래 이 일은 하급 제 3급에 속하는 시종직(侍從職, acolythus)을 받은 자가 담당하였으나 이 성품이 폐지된 이후는 평신도인 복사가 이 일을 하게 되었다. 9세기부터 시종직의 일을 복사가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인츠(Mainz) 공의회는 “모든 성직자는 미사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서 서간경과 독서를 하거나, 미사 응답송을 부를 성직자나 소년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므로 복사는 성소(聖召)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기보다는 업무 때문에 생겨난 직책을 담당하는 자라고 보는 편이 좋다. 복사의 선출은 본당 단위로 이뤄지며, 총명하고 신앙심 깊은 10-11세의 소년이 그 대상이 된다. 복사는 중백의(中白衣, Surplice)를 입는다. 우리 나라의 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사의 역할은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사를 보조하는 역할 이외에도 프랑스 선교사의 한국어 교사, 길 안내자, 번역가, 하인의 역할까지 모두 복사가 담당하였고, 아예 선교사와 함께 숙식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성인 황석두(黃錫斗, 루가) 같은 이가 초대교회 복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회정의◆
가톨릭 교회는 그 본질상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 5:13-16)이다. 교회는 교회 자체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회의 어두운 곳에 빛을 던지고 썩어 가는 양심을 일깨워주기 위하여 존재한다. 특히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마태 25:31-40)이 가톨릭 교회의 가장 큰 존재이유이다. 따라서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는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의 슬픔과 번뇌인 것이다(사목헌장 1).
그러나 과거의 교회는 성속이원론(成俗二元論)이 지배하여 세상이나 사회를 외면하고 교회만이 완전사회이며 선(善)을 독점한다고 생각하여 왔다. 따라서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豫言職)은 망각되고 인간의 자유, 인간의 권리, 인간의 해방 등에 대해서 외면하였으며, 때때로 사회문제에 대한 참여를 단죄(斷罪)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는커녕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체제와 공존하기도 하였다. 교회는 이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수행하는 도구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현실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지도 못하였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한 노동자의 빈곤에 대해서 오직 침묵을 지킴으로써 교회는 약한 자의 편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레오 13세가 <레룸 노바룸>(Rerum novarum, 1891)을 발표함으로써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요한 23세의 말대로 이 회칙은 '경제사회 대헌장'이었다. 그 후 비오 11세의 회칙 <콰드라제시모 안노>(Quadragesimo anno, 1931)는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을 재천명하고 인간의 평등성에 의하여 계급간의 관계가 균형잡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요한 23세는 <어머니와 교사>(Mater et magistra, 1961)와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1963)를 통하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정의를 뚜렷하게 재정립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교회는 볼 수 있는 단체요 영적 공동체로서 전인류와 함께 길을 걸으며 세계와 같은 운명을 겪고 있다"(사목헌장 40)고 천명하면서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운동을 높이 평가하였다.(사목헌장 41).
바오로 6세에 이르러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조되었다. <민족들의 발전 촉진에 관한 회칙>(1967(에서 세계인류 공동체는 서로 협력하여 빈부의 격차를 없애고 서로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고, 레룸 노바룸 반포 80주년(1971년)을 맞이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위해서 교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 모든 회칙들은 교회는 현실에서 도피하지 말고 역사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해야 하며 사회의 양심이 됨으로써 이 지상에서 하느님나라의 가치를 선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더구나 이 세상의 모든 사회문제는 바로 인간윤리의 문제이며 인간윤리의 문제는 바로 교회문제이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문제를 외면한다는 것은 교회의 책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러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의 교회는 많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여 사회의 누룩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교황청 정의 평화위원회와 각국의 정의 평화위원회의 활동이 대표적이다. 가톨릭 교회가 지향하는 정의는 모든 인간이 동등한 품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목적에 따라 행복한 생활을 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가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은 중요한 생활필수품을 공정히 분배받아야 하며, 각자의 정당한 포부가 이루어지고 진리를 탐구할 수 있어야 하며, 인종 · 종교 · 연령 · 언어 · 계급 · 성의 차별 없이 인격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어떠한 체제의 객체(客體)가 아니라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압제적 제도, 불의에 가득찬 사회를 정력적으로 비판하여 그 시정을 주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보고 침묵만을 지키면 교회가 부정과 불의를 저지른 자와 공범자(共犯者)로 취급당하게 된다. 부정과 불의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권력 · 부의 특권화다. 따라서 교회는 권력을 장악한 자와 부를 누리는 자가 권력과 부의 노예화에서 해방되도록 각성시켜야 하며, 이 세상에서 야기되는 압박과 착취의 상황을 진보와 희망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교회는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불의의 상황들을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하는 복음화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한다. 특히 교회는 인류 구원은 영신적 구원만이 아니라 현세적 구원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명심하여 인간의 구원이 요구한다면 불의를 규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교회와 인권 57).
교회의 사회참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인권의 문제다. 인간의 인권이 소중하다는 것은 성서와 모든 교회문헌의 핵심사상이다. 특히 가난한 자의 인권을 수호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의무다. 그러기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경우 교회는 주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언직을 수행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인권옹호의 고무자였다는 점에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며 성직의 책임이다. 또 인권이 없는 곳에는 평화도 없다. 따라서 교회는 인권의 수호자라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인간의 기본권, 영혼의 구원에 필요할 때 교회는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사목헌장 76).
물론 교회가 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의 사랑·봉사·희생을 바라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교세의 양적 증가에 힘쓰는 한편 사랑의 사도로서의 영성을 깊이 자각해야 할 것이다.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교회적인 방법으로 수행되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배타적이거나 독선적이어서는 안 되고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의 능동적 참여가 요구된다. 평신도야말로 복음의 증거자로서 세상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가시적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인권문제에 있어서 인간의 권리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에 대해서도 의식화시켜야 한다. 특히 인권문제에 있어서 교회 내의 인권존중이 선결되어야 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교회의 사회운동은 자연법과 복음의 한계 내에서 보편성과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폭력은 그리스도교인적인 것도 아니요 복음적인 것도 아니다. 따라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비폭력과 피동은 다르기 때문에 단순한 평화주의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특정한 사회문제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어떠한 특정한 사회체제를 주장하거나 배격해서도 안 된다. 결국 교회는 정의와 공동선에 일치하는 체제는 그것을 찬양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격할 의무가 있다. 교회의 사회문제에 대한 예언직은 교회의 많은 사명 중의 하나이지 전부는 아니다.
한국 교회는 1960년대 이후 사회정의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전개하여 왔다. 1960년대에 이르러 노동청년회와 농민회가 조직되어 노동자의 권익과 농민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70년대에 이르러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가 조직되고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조직되어 부정과 불의 및 인권의 침해에 대해서 항의해 왔다. 또 한국 천주교 주교단은 강화도 심도직물 사건 때 성명서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교적인 사회정의의 원리를 가르칠 권리와 의무가 있다. 노사협조만이 승공(勝共)의 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평등하다. 노동자는 결사의 자유와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것은 바로 <레룸 노바룸>의 정신이 한국적으로 표현된 것으로 한국 천주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하여 그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기 시작한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 후 1975년 2월 28일 주교단은 지학순(池學淳) 주교사건을 계기로 메시지를 발표하여 부정부패 · 사회부조리 · 인권유린에 대한 교회의 예언직 수행을 재천명하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도 1977년 3월 28일의 성명서를 통해서 교회는 인권과 관련하여 정치질서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릴 권리가 있다는 것, 김지하(金芝河)를 석방할 것, 성직자에 대한 연금과 감시 연행을 중지할 것 등을 정부당국에 요구하였다. 1978년 7월 11일 및 7월 25일에도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사회정의의 구현, 민주정치의 회복을 주장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동년 8월과 9월에는 오원춘(吳元春) 사건을 계기로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편 한국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1974년 11월 6일 언론의 자유, 학원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1975년 3월 21일에는 동아일보사건에 즈음하여 언론의 자유를 선언하고 한일외교정상화에 대한 태도를 밝혔으며 구속된 양심범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그 후 1977년 4월 18일에도 시국선언을 발표하여 정치권력의 본질은 공동선의 추구에 있다는 것, 유신헌법과 긴급조치를 철폐할 것, 3.1구국선언은 신앙고백이라는 것을 천명하였다.
이상으로 가톨릭 교회가 사회정의, 인권, 특히 가난하고 버림받은 자를 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고 직접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고립되어서는 안 되며 모든 선의의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오늘날 이 사회에는 많은 종파가 있고 무종교자도 있다. 따라서 그들 중에서 하느님나라의 건설을 위해서 협력할 수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의식하고 같이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은 정의구현과 인권수호가 가톨릭 교회의 독점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정의를 구현하려고 할 때 불의를 자행한 사람과의 대화도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가톨릭 교회가 가난한 자만이 아니라 가진 자도 구원해야 하는 보편적 사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가톨릭 교회의 사회참여나 사회운동은 그리스도 교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과 일치의 소명에 충실히 응답함으로써만이 그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예언직과 활동은 언제나 교회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결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계층이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대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 정의 (韓庸熙)
◆사목회의◆
교구장의 자문에 응하여 사활동에 관련된 사항을 연구·검토하는 기관으로 '사목평의회' 또는 '사목협의회'라고도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사목회의의 구성을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교황 바오로 6세는 자발교령 을 통하여 사목회의에 관한 준칙을 발표하였고, 교황청 성직자성성은 1973년 <사목협의회에 관한 회람장>을 발표하였으며 이러한 원칙은 교회법에 수렴되어 있다. 교회법(511-514조)은 "교구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로 조직"되고 '교구장이 의장'이며 '교구장의 인준을 받을 경우에 그 의결사항이 법적인 효력을 갖는' 사목회의에 대한 규정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사목회의는 교구단위 뿐만 아니라 본당단위, 지구단위로도 설치될 수 있으며 지역의 주교회의를 보좌하기 위한 실무기관으로서 관구단위, 전국단위로 구성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인 1984년 '전국사목회의'(pastoral council in Korea)를 개최하였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회장◆
교우집단의 지도자로서 신부를 보좌하고 교우들과 신부 사이에 중재역할을 하며 신부 유고시 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회장에는 크게 본당회장(本堂會長)과 공소회장(公所會長)이 있고 이밖에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전교회장(傳敎會長)과 여회장(女會長)이 있는데, 그 직무와 권한은 약간씩 다르다. 본당회장의 직무는 사무 보조, 예비자 교육, 병자 방문, 냉담자 권면, 신부 유고시 유아세례 · 대세 · 혼인의 성사집행 등이고, 공소 회장의 직무는 예비자 교육, 춘추 판공(判功)준비, 공소재산관리, 공소 예절 주관, 공소에서의 유아세례 · 대세 · 종부 · 혼인의 성사집행 등이며, 전교회장은 전교활동이, 여회장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 직무이다. 그리고 회장은 직무수행에 필요한 신덕(信德), 지덕(智德), 열심, 순명, 진실, 지식 등의 덕행을 의무적으로 닦아야하며 회장 피정을 통하여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회장에 대한 임명 및 해임권은 본당신부와 교구장에게 있고, 회장 선출방법은 본당 신부와 교구장이 직접 적임자를 선출하거나 혹은 교우들의 추천이나 투표를 통해 적임자를 선출하는데, 회장에 임명된 사람은 본당신부와 교구장이 서명날인한 임명장을 받는다.
이러한 회장제도는 한국 천주교회 고유의 제도로 한국 천주교회의 특수한 상황, 즉 박해 때문에 생겨났다. 교회 창설 이후 박해를 피해 산간벽지로 숨어든 교우들이 독특한 교회공동체인 공소(公所)를 이루게 되면서 신부들이 적은 숫자로 수많은 공소를 관리할 수 없게 되자 신부들을 대리할 수 있는 평신도가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 당국에서는 지도급 평신도를 뽑아 교육시키고 그들에게 합법적인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신부를 보좌하게 하고 신부가 없는 지역에서는 신부를 대신하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생겨난 회장제도는 박해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체계화되었고, 신교(信敎)의 자유가 보장된 후로는 더욱더 체계화되어 1923년 회장들의 지도서 ≪회장직분≫의 간행을 계기로 한국 교회에 정착되었다. 회장제도의 변천 및 정착화를 역대 한국 교회지도서를 통해 살펴보면, 1857년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에서 최초로 회장의 직무가 어린이 세례, 혼인에의 입회, 영해회 운영 등으로 명기된 이래 1880년대의 ≪회장규조≫(會長規條)에서는 회장의 위치가 밝혀지고, 1887년의 ≪한국교회지도서≫(Coutumier de La Mission de Coree, 서울 1887)에서는 회장의 중재자적 역할이 뚜렷이 나타나며, 1913년 ≪회장필지≫에서는 회장의 교회사무에 대한 직무가 추가되었고, 이어 1923년 ≪회장직분≫에서는 거의 완전한 체제의 회장제도가 나타난다. 1954년 간행되어 1964년까지 사용된 ≪가톨릭지도서≫의 회장에 대한 내용도 1923년 ≪회장직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그 뒤 회장제도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한국에 도입된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사목협의회 등의 제도와 조화를 이루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도회◆
한국 천주교회 초기에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야고보) 신부에 의해 세워진 평신도들의 교리연구 및 전교단체. 명회(明會)로도 불렸다. 1795년 최초의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는데 성공한 주 신부는 오래 전부터 북경(北京)에 세워져 있는 그와 비슷한 회의 본을 떠서 ‘천주교 교리를 가르치는 회’라는 뜻의 이 회를 조직하고 회장으로는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을 임명하였다. 명도회원들은 우선 자신들이 천주교에 대해 깊은 지식을 얻도록 노력하고 다음으로는 그것을 교우와 외교인들에게 전파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주었다. 주 신부는 이 회를 위하여 개최되는 장소, 사회자의 임명, 남녀가 유별될 것 등을 규정해 주었으며 회는 점차 전국으로 보급되어 굉장한 성과를 거두었다.
내용이 엄격한 ‘명도회규’(明道會規)도 주 신부가 직접 만들어 시행케 했는데, 그 ‘회규’ 자체는 오늘날 전해진 것이 없다. 주 신부에 의하여 임명된 명도회의 사회자는 회원들에게 매월 그 달의 주보성인(主保聖人)이 지정되어 있는 회원권을 나누어주었다. 명도회에 가입하는 절차이기도 한 이러한 회원권 제도를 당시의 신자들은 보명(報名)이라고 불렀는데, 보명이란 열심한 신자를 신부에게 알리면 신부가 교회의 성인 이름을 따라 지어 보내고 연말에 가서 신자의 부지런함 여부와 전교한 성과 등을 신부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또한 이에 관해 다른 기록은 “먼저 이름자를 보고하고 신공(神功)을 하는데, 신공을 부지런히 한 사람은 입회가 허락되고 부지런히 하지 않은 사람은 제명된다”고 말하고 있다. 당시 교회의 지도급 인사였고 명도회의 핵심 멤버이기도 했던 황사영(黃嗣永, 알렉시오)에 의하면 명도회의 집회 장소로는 육회(六會), 즉 여섯 군데가 있었는데, 그 중 다섯 곳은 홍필주(洪弼周), 홍익만(洪翼萬), 김여행(金勵行), 현계흠(玄啓欽), 황사영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첨례(瞻禮)[축일] 때마다 신도들과 같이 육회에 참석하여 포교에 힘썼으며 육회는 각각 3, 4명 내지 5, 6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황사영에 따르면 그가 맡았던 모임은 자신을 필두로 남송로(南松老), 최태산(崔太山), 손인원(孫仁遠), 조신행(趙愼行), 이재신(李在新) 등 6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었으며 그중 조신행과 이재신은 양반, 손인원은 중인이었다고 한다.
지방에서의 명도회 활동은 자료의 부족으로 분명치 않으나 서울에서만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음이 확실한데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는 이에 관해 “회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도 이에 감화되어 모두 전교를 일삼았으므로 경신년(庚申年, 1800년) 가을과 겨울에 걸쳐 하루하루 입교자가 불어나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명도회는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주신부와 정회장 등 간부가 모조리 순교하는 바람에 자연 그 활동이 침체될 수밖에 없었으나 1827년의 순교자 이경언(李景彦)이 명도회원들에게 보낸 서한 등으로 미루어 그 후에도 이 조직이 꾸준히 존속된 것은 확실하다.
한편 현재 각 교구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도회’ 또는 ‘명도원’ 같은 단체는 이름만 같을 뿐, 이 명도회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공소예절◆
1988년 6월 ‘사제 부재 시 주일 전례’, 곧 공소 예절에 관한 지침서가 발간되었다. 이 지침서는 주일에 도저히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없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요청한 주교들의 질의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 지침서에는 주일에 미사를 거행할 수 없는 때에 거행할 수 있는 주일 전례에 본질적 요소들이 명기되어 있다. 지침서는 신도들에게 이웃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여할 것을 권하면서도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 신도들이 해야 할 전례를 지적한다.
미사를 드릴 수 없는 경우 말씀 전례를 거행하고 가능하다면 신도들에게 영성체를 해 준다. 그러나 전날 저녁에 미사가 있었다면 이런 전례를 거행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해당 주일에 적어도 한 대의 미사가 있을 때에도 이 전례를 거행하지 않는다. 사제 부재 시 주일 전례를 거행하는 목적은 신도들에게 성체성사에 대한 더 큰 열망을 불러일으키고 성체성사 거행을 더 잘 준비하게 하려는 데 있다. 신도들은 더 많은 사제 성소를 주시도록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교구장은 사제 부재 시 주일 전례를 거행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그와 같은 전례는 모두 사목자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사제 부재 시에 전례를 거행해야 한다면, 사전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신도들을 충분히 교육시켜 전례가 올바로 이루어지고 충분히 평가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주일 전례는 부제나 올바로 교육을 받은 평신도가 주례할 수 있다.
시간전례에서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의 경우 시간경에 미사에 나오는 독서를 삽입하고 끝 부분에서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주교회의는 공소 예절에 대한 현행 예식과 본문을 다음과 같은 구조로 규정하였다.
① 시작 예식. ② 말씀 전례. ③ 찬미 기도(감사). ④ 영성체 예식. ⑤ 마침 예식.
말씀 전례를 위해서는 미사 전례 성서를 사용한다. 찬미 기도는 보편 지향 기도, 시편, 찬미가 또는 호칭 기도로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른 대안으로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기 전, 모든 교우가 무릎을 꿇고 찬미가나 호칭 기도 또는 시편을 노래하거나 낭송하는 동안 성체를 제대 위에 모시는 것이다. 감사송과 감사 기도는 주례자의 기도이기 때문에 공소예절에서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영성체 예식은 미사 밖의 영성체를 위한 「로마 예식서」에 나오는 형식문을 따른다. 영성체가 없다고 하더라도 항상 주님의 기도를 노래하거나 낭송한다. 파견 전에 공지 사항이 있는 것이 보통이다.
출처 : [전례사전]
◆수호성인◆
하느님 앞에서 변호인이자 특수한 장소나 지역, 수도 가족 또는 법인의 보호자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인들 또는 복자들을 가리킨다. 수호성인들은 어떤 성당이나 기관 또는 공동체의 주보성인(Titular Saint)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주보성인이 수호성인의 칭호를 갖는 경우도 더러 있다.
수호성인의 선택
국가부터 작은 본당 사목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소, 수도 가족, 법인, 기관, 동우회, 동아리와 같은 교회 모임이나 평신도 모임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칭호, 천사들, 성인들, 복자들(특별한 관면을 얻어야 함)을 수호성인으로 선택할 수 있다. 수호성인은 한 분만 선택해야 한다. 이전부터 이차적인 수호성인이 있었다면 그 수호성인은 계속해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장소의 수호성인은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선택한다. 그들은 수호성인의 보호를 받는다. 수도 가족과 법인의 수호성인은 책임을 맡은 사람이나 그 단체의 회원들이 선택하며 이때 자문을 받거나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인준과 확인
수호성인을 선택하면 지역 교회 관할권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수호성인이 국제적 성격을 띠었으면 성좌가 이를 인준한다. 지역 관할권자는 경신성사성에 서면으로 신청하여 인준을 받아야 한다. 신청 서류에는 절차에 관한 보고와 그 수호성인 선택을 인준한 지역 관할권자의 증거가 포함된다.
전례 거행
장소의 수호성인, 곧 도시나 군, 법인, 동우회, 기관 또는 동아리의 수호성인만을 대축일의 등급으로 경축할 수 있으며 보편 전례력에서 다른 모든 축일들, 성탄 시기와 연중 시기 주일들보다 우선한다. 교구, 관구, 지구, 국가 또는 더 큰 지역의 수호성인은 축일의 등급이며 고유한 전례력을 가지고 있는 수도회에서도 거행된다. 이전의 이차적인 수호성인은 의무 기념일 등급으로 거행될 수 있다. 다른 수호성인들은 공경하지 않는다. 수도 가족들은 그들의 수호성인, 주보성인 또는 성인 등급의 창설자를 대축일로 거행할 수 있다. 그들은 특별한 이유가 있으면 이 성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또 다른 대축일로 지낼 수 있다. 수도회 관구의 수호성인은 축일의 등급이다.
개인을 위한 수호성인
세례성사 때 부모가 자녀들을 위해 선택해 주는 성인의 이름은 세속명과 구별되는 그리스도교 이름, 곧 세례명이다. 성인은 그 어린이를 위해 하느님께 특별히 중개하는 분으로 여겨진다. 어른이 되어 견진성사를 받을 때나 수련자가 수도 생활을 시작하면서 새 이름을 선택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세례명 참조).
직업의 수호성인
교회는 공식으로 특별한 성인들을 회사나 전문직의 수호성인으로 지정하였다. 성인들을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것은 그들의 삶에서 있었던 사건이나 어떤 특성 때문이다. 성체대회를 위한 성 파스칼 베일론, 도서관 직원들을 위한 성 예로니모, 항공 여행자들과 조종사들을 위한 꾸뻬르띠노의 성 요셉, 지진을 위한 성 에미지우스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출처 : [전례사전]
◆병자 영성체◆
임박한 죽음의 위험이 없다 하더라도 가톨릭인들은 의무적으로 영성체를 해야 하므로 병자들, 수감자들 그리고 교회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이들은 적어도 이따금씩 영성체를 청해야 한다. 교회에는 부제와 평신도에게 이 일을 맡겨 온 오랜 역사가 있다. 사목적 배려가 허락된다면 영성체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를 받게 해야 한다.
사제나 부제는 자신의 직무대로 성토요일(노자성체만 영해 줄 수 있다) 외에는 언제 어느 때라도 병자에게 영성체를 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제나 부제가 병자에게 성체를 모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성체 봉사자가 병자에게 영성체를 하게 하되 특별한 예식을 거행해야 한다. 만약 병자가 빵의 형태로 성체를 모실 수 없다면 포도주의 형태로 성혈을 모시게 할 수 있다. 환자, 연로한 이들, 앓고 있거나 연로한 사제 그리고 이들을 간호하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한 시간 전부터 단단한 음식과 음료수(물 제외)를 먹지 말아야 하는 공심재를 지킬 의무가 없다. 한 시간의 공심재를 정확히 지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병자를 간호하는 가족도 이 의무에서 제외된다.
출처 : [전례사전]
◆해설자◆
해설자의 역할을 맡은 성직자나 평신도는 참으로 전례 행사에 참여한다. 그들은 정확하고 질서 정연하게, 또 참된 전례 정신으로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올바로 교육받아야 한다. 철저히 준비한 해설자는 강론대나 독서대가 아니라 사람들 앞의 적절한 곳에 서서 깨끗하고 간결한 양식으로 신도들에게 설명하고 안내하여 예식을 소개하며 사람들에게 예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전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예식에 더욱 친밀할수록 회중에게 적극적 · 의식적으로 전례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해설자의 존재는 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신도들에게 적절히 응답하도록 이끄는 해설자의 책임은 여전히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해설자가 참석한 모든 이의 적극적 역할을 적절히 분배하여 신도들이 참된 전례 회중이 되도록 이끄는 일이다. 해설자는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기 위해 몸과 마음으로 일치된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해설자는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데 능란하고 무엇이든 통교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전례에 대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배후에서 조절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출처 : [전례사전]
◆반 모임◆
1. 의의 : 반 모임은 신자들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함께 모여 공동으로 기도하고 서로 친교를 나누며 봉사하는 본당 내의 작은 지역(班) 공동체를 말한다. 이 모임은 대개 10~15세대로 구성되어 있다.
살아 있는 세포가 혈액 순환으로 영양분을 섭취하여 생명의 신진 대사를 계속하듯, 그리스도의 몸인 본당 공동체도 반 모임이라는 여러 개의 세포가 서로 친교를 나누고 봉사함으로써 성장하게 된다.
2. 효과 : 이는 공동체 의식의 계발, 소속감의 증대, 신앙의 성장, 전교 활동의 활성화 등에 크게 영향을 준다.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발굴과 육성에 도움을 주며, 사랑의 실천과 성령 은사를 나누게 되고, 본당 사목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상호간에 정보 교환은 물론, 사목자의 사목 행정에 관한 지시 및 전달 사항의 내용과 반 모임에서의 건의 사항 등이 원활히 교류됨으로써 큰 성과를 가져오게 된다.
3. 진행 : 진행은 대체로 시작 성가, 기도, 새 신자 및 예비 신자 소개, 성서 봉독과 공동 연구 및 말씀 나누기, 토의 및 건의 사항, 다음 모임의 주제나 장소 및 날짜 선정, 그리고 마침 기도나 성가 및 간단히 친교의 시간으로 진행된다.
이 모임의 인도는 보통 반장이 하나, 사전에 별도로 교육을 받은 인도자가 있으면 매우 좋다. 왜냐하면 반장은 반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기 때문이다.
4. 반장의 임무 : 반장은 반 모임 회원의 파악 및 참석 독려, 방문 친교의 기회 마련, 애경사에 대한 관심, 반 모임과 본당 공동체와의 중개 역할이나 반 공동체의 문서 관리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공동체가 형제애를 갖도록 이끌고, 신자나 예비 신자뿐만 아니라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는다.
◆디아코니아◆
이는 그리스어로 ‘봉사’를 뜻한다. 또한 부제나 사제처럼 교회를 위해 특별히 서품된 자나, 수도자, 가난한 자, 환자에게 봉사하고 가르치는 평신도가 교회 안에서 봉사함을 가리킨다. 오늘날 부제를 디아코누스(Diaconus)라고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출처 : [용어사전]
◆소공동체◆
그리스도교적인 작은 공동체.
1956년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활성화하려고 브라질의 로시 주교가 창안했다. 억압과 빈곤, 사제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성직자와 본당 조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의 역량을 사목 활동과 복음화에 도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소공동체의 ‘소’(小)는 ‘소규모’와 ‘작은(가난한) 이들’을 의미한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는 소공동체를 ‘기초 교회 공동체’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해석했다(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 『 천주교 용어집』, 2000, 20쪽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