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직전에 모두에게 있어서, 그 누구보다 예수님께 있어서 절체절명인 상황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그것도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면서 부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참 많은 것을 알려 주는데 이 세상은 참 험악하고,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우리 인생들은 심히 약하다는 것이며, 언제든지 악해 질 수 있고,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사악해질 수도 있는 것이며, 게다가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도 결코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고, 심지어 아무리 큰 은혜를 받고, 수없이 많은 역사들을 눈앞에서 경험하며, 뿐만 아니라 구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전도되고 가르침을 받으며 특별 훈련을 받았다는 것이 결코 오랜 시간 저절로 유지된다거나 모든 것에 있어서 초월일 수는 없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 주님의 사명과 약속들, 능력과 복들을 직접 받은 자라도 언제나 금강석 같이 강건할 수는 없는 것이며, 오히려 한 순간에 가장 연약해 지고, 시험에 들며, 비겁해 지고, 결코 작지 않은 악을 얼마든지 범할 수 있다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우리 인생들의 힘과 의로는 안 된다는 것이고, 그 누구든 하늘의 힘과 은혜가 없이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편 그렇게 최악의 모습, 인간으로서 가장 밑바닥까지 보였던 예수님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베드로는 뒤에 보면 구원이 돌이켜 지거나 계속해서 실패하거나, 또한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거나 불행으로 끝 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완전히 반대로 성령님의 불길 같은 역사를 경험하게 되었고, 한 번의 선포로 3000명이나 회심하고 세례에 참예케 했으며, 성전 미문에서는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이를 예수님 이름 한 번으로 그 자리에서 일으켰고, 중풍병 걸린 애니아를 고쳤으며, 죽은 다비다를 살렸고, 이방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서 그 가족과 친지들이 성령님의 불길 같은 역사들을 경험하는데 직접적인 도구로 쓰였으며,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에 있어서도 성령충만의 도구로서 동역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과 탐심을 드러나게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보호를 모두가 경험하게 했으며, 감옥에 갇혀 헤롯왕에 의해 순교 당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로 인해 풀려나는 역사도 그에 있어 기도했던 자들이 함께 경험케 했고, 예루살렘 교회 공동체가 그 속의 할례파로 인해 큰 시험과 분란을 겪으며 다툼과 분열의 위기 까지 있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고 오히려 더욱 하나되며 견고한 복음 가운데 세워지는데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볼 수 있으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고 믿음들을 견고케 했을 뿐 아니라 베드로 전, 후서를 통해 2000년 교회사에 있어서, 오늘 우리들에 이르기 까지 신앙의 도전과 영향력이 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전설에 의하면 로마에 까지 가서 끝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알려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베드로의 신앙과 모습에 있어 결정적인 차이는 ‘구원에 참예하고 안하고’가 아니었으며, 실상 두 상황 모두 예수님을 구주로 믿음으로 인해 구원에 참예했을 때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둘 다 모든 인생들 중 가장 앞서서 예수님을 따랐던 때였는데 그러한 베드로의 전과 후에 있어서의 차이는 다름 아니라 바로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사건 이후 베드로는 120명의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전심을 다해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불길 같은 역사들을 경험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이후 더욱 말씀의 열정에 사로잡히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자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며 복음을 외치는 베드로 그 자신까지도 잡아 가두거나 죽일 수 있는 자들 앞에서, 실제로 잡히어 큰 위기를 당하기도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어쨌든 그러한 위험한 사람들이 가득한 예루살렘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외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 후에도 계속해서 모든 것을 오직 말씀에 최우선을 두면서 기도하고 행하고 증거하면서 오직 말씀으로 살고 죽는 것을 볼 수 있고, 실제로 여러 가지 상황 상 끝까지 바로 그 말씀을 전하다가 순교까지 한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뜨겁게 말씀으로 살았던 베드로는 가장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불길 같이 임하시고, 하늘의 힘과 권능으로 역사하시기에 합당했고, 무엇보다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말씀을 보이시고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시며 말씀의 인생들이 될 수 있게 하신 예수님의 구원을 누리고 나누며 증거하고 생생하게 하는데 있어 합당했으며,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며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모든 하늘의 일들, 구원의 일들을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준비하시고 약속하시며, 예정하시고 진행하시며, 그 시간에 따라 말씀대로 하나하나 성취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했고, 근원적으로는 말씀 그 자체이시고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기뻐 역사하시기에 합당했으며, 그 한 가운데 있는 모든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들, 하나님 나라의 사건들을 그 자신부터 누리고 확산시켜 나아가기에 합당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인생들에 있어 그러한 말씀 외에, 사실 기도와 찬미도 말씀이 아니거나 잠시도 말씀과 별개일 수 없는 것이고, 경배나 경건이나 경외 등도 본질적으로 모두 말씀이고 말씀에서 시작되고 말씀이 전부이기에, 오직 말씀 외에 하나님의 역사들, 하늘의 힘과 은혜와 복들에 직결될 수 있는 다른 것이 없다고 볼 수 있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특히 살아 있는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날마다 순간마다 자신의 힘과 의가 아닌 오직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 십자가 붙잡으며, 그 이름 가운데 약속되시어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시공을 넘어 역사하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힘과 은혜를 의지하면서 죄와는 싸우고, 범한 죄는 즉시로 회개하며, 무엇보다 말씀을 더욱 읽고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고 증거하는 말씀의 신앙과 치열한 몸부림이 중요하고 긴급하며, 그러한 말씀의 열심이 직접적, 실제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갈수록 더 충만케 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와 복들을 더욱 풍성하고 생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실상 가장 대단한 믿음의 선배들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다윗, 진정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물리친 다윗과 그 후에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을 죽게 한 다윗에 있어서도 모든 차이는 본질적으로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냐는 것이고, 그의 삶의 자리, 그 온 가정과 나라에 있어서 그로 인한 결과는 마치 하늘과 땅의 차이와도 같았던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며, 성경에 있어서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허다한 하나님의 역사들에 있어서 그러한 신앙의 원리, 영적인 법칙, 하나님의 섭리는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을 가면 갈수록 더 많이 발견하게 되고,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다를 수 있는 게 아닌 것입니다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마가복음14:66~72)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1년 11월 1일(월)1/사진(조연진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