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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인 ‘라로슈쿠코’공작이 펴낸 고전 작품『잠언집(箴言集· Maximes· 1665)』에 보면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자신이 저지르고 있는 모든 악행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다.” “제일 친한 친구들의 불행에서 우리는 우리를 불쾌하게 하지 않는 뭔가를 항상 발견한다.”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그의 책 『군주론』에서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은 쉽게 잊어버려도 물려받은 유산의 손실만큼은 결코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라며 인간은 이기심으로 꽉찬 존재인 것을 표현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희롱하고 못 박은 자들을 비난하지만 어쩌면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을 못박은 그들과 별 다르지 않게 무지하고 이기적인 인간입니다. 누군가의 실패와 좌절, 오해와 죽음의 순간에도 그 상황이 나와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지를 먼저 따지는 사악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도 예수님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전혀 생각하지는 않고 오직 그가 입은 옷 중 좋은 부분을 어떻게 차지할 것인지만 몰두하는 군인들은 다름 아닌 저와 여러분입니다. 이런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의 죄 값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는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저주를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에서는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단 번에 죄를 위해서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포처럼 ‘예수님은 십자가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셨다’고 사도 베드로는 설명합니다. 결국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십자가의 은혜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주시며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히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정말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은혜에 감격하시며 주님의 참 사랑에 기쁨이 충만한 은혜가 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첫째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봅니다.
마가복음 15장 24절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 옷을 나누어가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의 통치시기 정말 가혹한 형벌이었습니다. 사형제도중에도 정말 처참한 형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일 경우에는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십자가의 형벌은 주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사도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순교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베드로는 로마의 시민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구전된 내용을 보면 심지어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실 때 사람들로부터 온갖 조롱과 모욕을 당했습니다. 로마군인들은 예수님께 침을 뱉고 머리를 때리며 조롱하고 희롱하며 모욕하고 수치를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해골의 장소’라고 불리는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가졌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22편 18절의 말씀이 이뤄진 것입니다.
시편 22편 18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너무나 이기적이고 파렴치하며 정말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 어디까지 타락까지 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중 하나일 것입니다. 남이야 죽던 말든 상관없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부패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 처형당한 죄수의 물품은 처형 집행자들에게 주는 것은 전통적인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관례가 되었습니다. 모든 피조물의 이기심을 측정할 수 있다면 단연 인간이 불명예의 자리를 차지할 듯 싶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3절에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같이 읽으시겠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이 입는 옷은 다섯 깃으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머리에 쓰는 두건입니다. 둘째는 몸 밖에 걸치는 겉옷입니다. 셋째는 허리를 동이는 띠입니다. 넷째는 신발입니다. 그리고 다섯째는 몸 안에 입는 속옷입니다. 당시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군인들은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죄수에게 십자가를 지워서 형장으로 끌고 갈 때, 두 명의 군인들이 앞서 가면서 죄수를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군인들은 뒤에서 따라가며 죄수를 지켰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빌라도의 군인들도 네 명이 한 조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의 옷을 두건과 겉옷과 띠와 신발의 네 깃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아서 각각 한 깃씩 얻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예수님의 속옷이었습니다.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입는 내의처럼 목 부분과 양팔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그 안으로 몸을 집어넣어서 입으면 되는 옷이었습니다. 계속해서 24절 말씀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여기에 성경말씀이 이뤄졌다고 표현된 원래 말씀은 어디일까요? 시편 22편 18절 말씀입니다. 이 말씀도 한 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에 기록된 말씀대로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서로 나눠가졌고 예수님의 속옷을 제비뽑아서 가져갈 사람을 정하였습니다. 시편 기록자 다윗은 예수님 십자가희생 사건보다 천 년이전에 살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선견자였고 선지자였습니다. 다윗은 성령으로 감동되어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실 때 일어날 일들을 이미 천년 전에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빌라도의 군인들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응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남김없이 다 이루어져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의 감정을 감동시키거나 마음의 감정을 뭉클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감정을 만들어내기 위해 억지로 짜낸 내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어쩌면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광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그냥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사실만 기록한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장하시며 성령을 통해 우리를 감동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살았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느 문학작품에서 받는 것처럼 어떤 희열을 얻기만 바라거나 내가 가진 어떤 스트레스 해소만 기대한다든지 마음속 카타르시스만 느끼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느낌적인 감동이 아닌 하나님의 회복, 하나님의 감동으로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하나님앞에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그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속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때가 되시면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주신 예수님에 대해 감격하며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둘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제 삼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입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유대시간으로 삼시가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의 군인들에 의해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유대시간 제 삼시는 우리 시간으로 따지면 오전 아홉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현대 우리 시대의 시간으로 따지면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은 목요일 저녁식사후 그러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심야시간이었습니다. 불과 채 열 두 시간도 되기 전에 잡히시고 심문받고 판결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에 올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까지 일사천리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왜 이렇게 급하게 일을 진행했을까요? 금요일 오후 세 시가 되면 성전에서 유월절 희생제물로 드려지는 유월절 제사가 진행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희생제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과 같은 의미의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은 그 날 오후가 되기 전에 목숨을 드려서 인간의 죄를 해결하시는 계획속에서 하나님께서 시간을 만들어놓으신 것입니다. 전혀 그렇게 급격하게 진행될 일이 아니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 때에 맞춰 일을 진행하시려고 전례가 없는 절차를 통해 예수님을 아침 일찍 십자가에 못 박는 과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0절입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사흘 동안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의 계획과 배후에서의 간섭하는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모든 일이 이뤄지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금요일 오전에 일이 급속히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진행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섭리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뜻가운데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혀 죽으신 시간 제 삼시도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모든 것을 재빨리 진행하셨습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준비된 것도, 또한 군인들의 마음이 움직인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뜻, 우리의 의지, 우리의 지식, 우리의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속에서 우리의 걸음을 이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우리의 가는 걸음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합력하여 일들이 이뤄지는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셋째로, 예수님은 강도 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마가복음 15장 26,27절입니다.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지난 번 말씀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어떻게든 풀어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빌라도에게 더 우선순위는 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사람들의 인심을 잃지 않는 것이 더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원하는대로 해주는 것이 더 우선순위였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고 죄가 없고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반역자로 몰아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고 빌라도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은 예수님을 정죄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예수님의 죄패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의 내용을 간략하게 기술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19, 20절을 보면 유월절 여러 나라 각처에서 몰려든 유대인들이 볼 수 있도록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제사장들은 빌라도가 쓴 예수님의 죄패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9장 21절에 보면 그들은 죄패의 내용을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19장 22절에서 빌라도는 자기가 써야할 것을 다 썼다고 말하면서 거부했습니다. 이 부분을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요한복음 19장 19절부터 22절입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책임자로 저주받을 이름의 대표적인 사람이 되었으면서도 어떻게 끝까지 ‘나사렛 예수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끝까지 주장할 수 있었는 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뜻가운데 이 일이 가능했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로써 빌라도는 지금까지 자기를 괴롭혀 왔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빌라도의 감정으로 이뤄진 일처럼 보여지지만 이 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섭리로 간섭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어야 할 예수님의 죄 없으신 것을 빌라도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는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나사렛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밝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십자가의 형벌속에서 특별히 관심을 둘 사람이 또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 15장 27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겠습니다.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동시에 못 박힌 사람이 있었으니 강도 두 명이었습니다. 두 강도 중 하나는 우편에 또 하나는 좌편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가운데 있는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의 강도는 우리가 전에 살펴본 마가복음 15장 7절에 나오는 바라바가 민란중 살인을 저지르고 체포되었을 때 함께 체포된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원래 이 시간 예수님께서 못 박히게 된 십자가는 어쩌면 바라바가 못 박혀야 할 십자가였을 것입니다. 죽음이 확정된 바라바 대신에 갑자기 단 몇 시간의 상황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습니다. 살인자였고 사형수였던 바라바를 대신해서 죄가 없으신 예수님, 빌라도가 죄가 판단할 수 없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힌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천국에 들어가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23장 42,43절입니다.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한 강도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강도는 회개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이는 우리 앞에도 두 길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죄, 많은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으면 영생을 허락받고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하고 입으로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죄로 인해 죽을 영혼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구원받은 강도처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감격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 합니다.
저와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통해 저와 여러분은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여전히 로마군인들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얻어서 내 이익을 챙기려는 사람입니까? 여전히 어느 강도처럼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욕하며 예수님을 거부하며 세상의 죄를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어느 강도처럼 지금까지 죽을 죄를 지고 이미 죽음이 결정되어 죽음이 바로 앞에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은 구세주이시며 죄 없으신 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시기 위해 죽으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 가시는 그 길을 믿음으로 따르며 살아가려는 사람이 되시렵니까? 저와 여러분이 정말 어떤 인생의 사람이 되실 것인지 고민할 때 정말 이제는 구원얻고 천국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내 자존심, 내 의지, 내 노력을 내려놓고 정말 믿음의 결단을 하시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것에 감사하며 예수님 십자가로 인해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며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