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일 없이 적극적으로-(3)배독의 포인트 ☞음성으로듣기☜
덕승동자(德僧童子)의 고사(故事)는 통상 「공양은 돈이나 물품의 많고 적음, 세속적 가치보다도 거기에 담긴 진심이 중요하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본초에서도 그 의미를 근거로 한 것에 더하여 「석존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말법의 법화경 행자에게 공양하는 것이 공덕이 더 뛰어나다」라고, 대비(對比)의 예증(例證)으로 예를 드시고 있습니다.
게다가 구체적으로,
(1) 덕승동자(德僧童子)는 법승인렬(法勝人劣)의 부처, 즉 법보다 못한 부처에게 공양했지만 도키미츠(時光)님은 법〔법화경〕에 공양하셨다.
(2) 덕승동자(德僧童子)는 실제로는 먹지 못하는 흙 떡을 공양했지만 도키미츠(時光)님은 먹을 수 있는 토란, 곶감 등을 공양했다.
(3) 덕승동자(德僧童子)는 평상시의 공양이었지만 도키미츠(時光)님은 나라가 기근(飢饉)일 때 공양하셨다.라는 세 가지 점에서 승렬(勝劣)을 들며 도키미츠(時光)님이 하신 공양의 공덕이 심대(甚大)하다고 단언하시고 있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본초에서 대성인님에 대한 갖가지 음식 공양을 「법화경에의 공양」이라 말씀하시고 있는 것은 대성인님이야말로 구원(久遠)의 본불(本佛)이며 대성인 즉 묘법(妙法), 묘법 즉 대성인이라고 명시(明示)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도키미츠(時光)님의 공양의 공덕이 얼마나 광대한지 실로 무량(無量)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연합회 신도가 일체가 되어 대한민국의 올바른 광선유포를 향한 신심 수행과 올바른 공양 정신에 입각하여 대한민국의 본산을 건립하고, 나아가 각 지방 회관을 새롭게 건립하는 의의(意義)와 공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큰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또 대성인님은 본초에서 「물과 같은 신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은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도다. 그러므로 성불은 수지(受持)하는데 있으며」(신편어서 p.775)라는 대성인님 말씀처럼 성불하기 위한 수행의 요체(要諦)가 신심을 지속하는 데 있으므로 물과 같은 신심이야말로 우리가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신앙 자세입니다.
물론 「물과 같은 신심」이라 했지만 결코 머물러 있는 물, 고여있는 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대성인님이 본서(本書)에서는 「어떠한 때라도 항상 퇴(退)하지 않고」라 말씀하시고, 『어강문서(御講聞書)』에도 「물과 같은 행자(行者)라고 함은 물은 주야(晝夜) 불퇴(不退)로 흐르는 것이며 조금도 멈추는 일이 없니라. 그와 같이 법화경을 믿는 것을 물과 같은 행자라고 하느니라.」(신편어서 p.1856)라 어지남(御指南)하신 대로, 어디까지나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물의 의미입니다. 신심으로 말하자면 적극적으로 항상 계속 전진하는 신심 자세뿐입니다.
바꿔말하면, 대성인님이 「월월(月月) 일일(日日) 강성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신편어서 p.1397)라 말씀하신 것처럼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라는 스스로의 성장과 향상, 그리고 무엇보다 광선유포를 목표로 하여 의욕적으로 불도수행을 거듭해 가는 신심 자세인 것입니다.
총본산 제67대 어법주 닛켄(日顯) 상인 예하님의 본불 삼대 서원의 말씀 앞에 “「선(善)에서든 악(惡)에서든」이라 말씀하시고 있는데 이는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어떠한 이익이 있어도 절대로 퇴전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떠한 대난(大難)이 일어나도 절대로 퇴전해서는 안 된다.」라는 어지남입니다. 우리는 그 길을 통하여 비로소 미래영겁에 걸친 찬연(燦然)한 성불의 경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대백법 546호)라는 어지남을 생명에 새겨 항상 전진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하튼 실제로 도키미츠(時光)님은 본초의 어지남대로 공양의 고귀함을 알고 「물과 같은 신심」의 자세를 굳게 지켜 대성인님 입멸 후 오노승(五老僧)이 비법(非法)의 무리가 된 와중에도 제2조 닛코(日興) 상인에게 외호(外護)의 정성을 다하였고, 대석사 개창(開創)의 대단나(大檀那)가 된 것입니다.
도키미츠님의 신심은 정말로 우리의 거울입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