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 이재기
다락방 창으로 오후의 봄 햇살이 들어온다. 햇살은 회색 러그 위에 몸뚱이만 한 밝은 네모를 그려낸다. 식곤증에 머리가 무겁던 나는 햇살을 이불 삼아 러그 위에 눕는다. 따뜻하다. 스르르 잠이 든다. 잠결에 햇살이 움직여 얼굴을 간질인다. 햇살을 피해 조금 위로 움직인다. 그러기를 몇 번, 해는 서쪽으로 낮게 걸어가고 나는 동쪽으로 조금씩 도망간다. 삼십분쯤 다투다 잠이 깬다. 그래도 머리가 맑아진 게 봄 햇살의 에너지를 듬뿍 받았는가 보다. 잠이 참 맛있다.
낮잠은 나의 오랜 습관이다. 아침잠이 없어 늘 잠이 부족하다. 일찍 자면 되련만, 미적미적하다 대개 자정 무렵 잠자리에 든다. 나의 생체 시계는 놀랄 만큼 정확하다. 아침 여섯 시가 되기 전에 항상 눈이 떠진다. 늦게 자도 마찬가지다. 해가 빨리 뜨는 여름에는 덩달아 기상 시간도 빨라진다. 온도가 올라가면 몸도 노곤해지는 법. 봄이 되면 낮잠이 더 간절해진다. 보통 이십 분 정도 자고 길어도 삼십 분을 넘지 않는다. 잠이 부족해서 낮잠을 자지 않은 오후는 집중이 되지 않는다. 뭔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몸이, 뇌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 직장 다닐 때도 그랬다. 점심을 빨리 먹고는 의자에서 잠깐의 쪽잠을 즐겼다. 그래야만 오후 일을 말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일찍 일어났던 건 아니다. 잠이 많은 평범한 아이였다. 중학교 삼학년 학기 초였다. 학교에 가려면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한 시간 반쯤 가야했다. 담임 선생님은 여덟 시 반까지는 학교에 도착해서 자습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려면 일곱 시에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씻고 밥 먹다 보면 항상 아슬아슬했다. 어느 날, 좀 늦게 교실에 들어가니 지각생 다섯 명이 교단에 서 있었다. 나는 여섯 번째였다. 선생님은 지각생들을 한 명씩 면담하고는 매타작을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너 고등학교 어디 갈 거야?”
“공고 갈 건데요.”
“그래? 넌 늦게 와도 돼.”
인문계 고등학교를 희망했던 앞의 애들과 달리 나는 그냥 들어가라고 하셨다. 공부를 적당히 해도 웬만한 공고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매를 맞지 않은 기쁨보다는 친구들과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것. 관심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 장래가 다르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실업계 선택이 어떤 의미인지 일깨워 주신 것이다. 어린 마음에 그렇게 되기는 싫었다. 다음날부터 삼십 분 더 일찍 학교에 도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면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여섯 시 전에 일어나는 습관을 지닌 계기가 됐다.
사당 오락. ‘네 시간 자면 붙고 다섯 시간 자면 떨어진다.’며 입시생들을 독려하는 말이다. 빌 브라이슨은 그의 저서*에서 연구결과를 들어 ‘학생들의 등교 시간을 늦추면 출석률과 시험 성적이 오르고, 교통 사고율, 자해 비율, 우울증도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또 ‘수면 부족이 질병이나 알츠하이머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잠을 많이 자는 것, 늦게 일어나는 것을 죄악시하는 분위기다. 게으르다고 여긴다. 잠을 적게 자고 그 시간에 일하거나 자기 계발하는 것이 미덕이다. 성공의 요건으로 잠을 줄여 공부하거나 일하는 것을 꼽는다.
나도 그렇게 믿었다. 직장 다닐 때 일찍 일어나서 한 시간 먼저 출근하는 것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었다. 평생 그렇게 일했고 성실하다는 인정은 받았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책임은 더해졌고, 몸 사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십여 년 전, 회사 내에서 발생한 연이은 사건으로 사 개월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자며 일한 적이 있다. 자정 넘어 퇴근해서 잠깐 눈 붙이고는 아침 일곱 시까지 출근하는 식이었다. 잠 부족은 바로 몸의 고장으로 이어졌다. 노동이란 직장에 몸을 제공하고 대가로 급여를 받는 행위다. 직장 현실은 냉정하다. 내가 힘들 때, 다들 입으로는 고생한다고 걱정해 주지만, 속으로는 자기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그 일로 몸 관리와 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무리해서 일하지 않는 것을 새 규칙으로 추가했다.
퇴직한 지금도 여섯 시 전에 잠이 깬다. 아침운동을 한 시간 쯤하고 아침밥을 준비한다. 습관을 고치기 쉽지 않다. 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요즘, 스마트워치로 잠을 관리한다. 잠을 충분히 자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스마트위치를 차고 자면, 수면의 결과, 즉 수면 시간과 효율을 알려준다. 추가로 ‘수면 중 깸, 렘수면, 얕은 수면, 깊은 수면’으로 잠을 분류하고 그것이 표준 범위 내에 있는지 확인해 준다. 추세를 분석해 보면 나의 잠이 무엇이 문제인지 짐작할 수 있다. 내 잠의 질은 크게 나쁘지 않다. 다만 이번 주에도 이틀이나 다섯 시간 밖에 잠을 자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잠이 점점 더 줄어들 텐데 걱정이 든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은 참 잘 지은 것 같다. 건강에 중요한 인자다. 매일 꿀잠을 자는 사람은 행복하다. 잠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대통령도 서민도 모두 평등하다. 오히려 많이 가진 사람이 걱정도 많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출근할 곳이 없어진 지금, 가끔은 눈 뜬 상태로 침대에서 뒹굴뒹굴할 때도 있다. 여섯 시 이전에 일어나는 원칙이 조금씩 흔들린다. 다행이다. 이제 적당한 선에서 몸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오늘 낮잠은 정말 달았다. 어떤 피로 회복제보다 맛있고 효능도 좋았다. 밤잠도 이렇게 달콤하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꿈을 기대하며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 빌 브라이슨, ‘바디-우리 몸 안내서’, 김성겸 옮김, 천년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