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 세상에 묶어 두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내게 유일하게 감동을
주는 것은 하늘이 선물하는 계절의 변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요시다 겐코,<도연초>
스마트 폰에 저장해둔 그림들을 하나하나 넘겨 보다보니 채 반도 넘기지 않았는데 양평 보룡1리 한터마을에 도착했다. 요즘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잘 차려진 상찬이요 몸에 잘 어울리는 쥬얼리다. 파란 하늘에 요술처럼 떠 있는 구름, 부는 듯 안 부는 듯 스치는 바람, 투명한 햇살은 낡은 지붕마저 값진 주단으로 둔갑시켜놓는 요즘이고 보면, 참 보배로운 계절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나게 한다. 그 보배로운 계절에 이곳 보룡리(寶龍里)에 왔으니 금상첨화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사용하라 만들어놓은 사자성어 인성 싶다.
보룡(寶龍)이라 함은 보배로운 용을 말함이 아니던가. 이 동네 한터마을은 일찍이 무안박씨 선조가 은둔해 살던 으뜸마을로서 무안 박씨의 집종에 얽힌 황룡 청룡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고려 말 공민왕 때 간의대부에 오른 무안박씨 송림공의 6대손 박원겸의 신도비와 아름드리 600여년의 수명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노거수들이 줄을 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늘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 느티나무 그늘을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면서도 난 결국엔 저 느티나무를 그릴 것이란 당김을 인정하고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휘적휘적 둘러보았다. 맨드라미가 자유분방하게 피어있는 한 농가 앞마당이 탐이 난다. 순간 이걸 그려야겠다! 선언을 하고서 가방을 가지러 와선 난 역시 느티나무 그늘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래서 첫인상인가? 그도 아니면 박씨 후손들의 인력에 굴복한 탓이던가?
개천가에 거의 눕듯이 휘어져 자란 느티나무를 주인공으로, 가을이 떨어져 내린 길가와 냇가를 조연으로, 그리고 저만치 한 뼘만큼 보이는 누런 논과 야산 그리고 하늘을 엑스트라로 삼았다. 개천가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덤으로 그림 속에 녹아 들어갔으리라.
중국집에서 짬뽕 한 그릇 먹겠다고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점심식사 후 서둘러 큰 붓으로 속도감 있게 물감을 먹인 후 좀 여유가 생겼다 싶을 즈음, 갑자기 두고 온 맨드라미가 궁금해졌다. 아! 오후의 광선에 번쩍이는 저 황금 논을 보라! 이걸 그리지 않고 무얼 했던가! 맨드라미 앞에 와 섰다. 아! 난 이걸 그리지 않고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시간을 보니 1시간 반 가량이 남았다. 빠른 걸음으로 되돌아 와 짐을 쌌다. 철렁거리며 맨드라미가 피어있는 농가 정원으로 옮겨 와 판을 벌였다. 정신없이 붓질을 하였다. 욕심이다. 이 가을이 날 이렇게 미치게 하고, 이렇게 나를 놀부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마시다 만 물을 아쉬워하듯 중간에 붓을 접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단풍철 차량이 몰려 도로는 엄청 막혔다. 무료함과 지루함을 원치 않는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열정이 좁은 차안에 팽팽하게 퍼져나갔다. 결국엔 광란의 춤사위까지 등장했다. 화우들은 덩달아 어깨춤이 절로 났다. 막히는 길이었기에 더욱 즐거울 수 있었던 귀갓길이었다. 오랜만에 일요화가회의 DNA가 되살아난 날이었다.
2013. 10. 13.
오전 햇살에... 그 논과.
저 홀로 피어난 맨드라미.
저 만치 가고있는 동춘형.
무언가를 들고오는 동춘형.
이걸 먹느라고 30분 이상을 기다렸다.
여기 이 '이과두주'에 얽힌 사연을 아시는 분은 댓글을 올리시라!
이남순 화백 화판에 올라선 잠자리는 그림속 나무를 실제 나무인듯 착각하고 한참을 거기 머물다 갔다.
잠자리와 대화하며 그림에 열중중인 남순씨! 참 착한 여자!
이 분! 가을타는 남자!
오후 햇살에... 그 논.
백일홍도 그 백일을 다 보내고,
용이 떠난 보룡리는 한가하였다.
버려진 우산. 번개표 형광등. 왜 이걸 보며 슬퍼하고 있는걸까?
고개숙인 맨드라미
두드려 맞기를 기다리는 참깨? 들깨?
맨드라미 사랑!!! 이 분들은 가을 햇볕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다만 맨드라미 사랑
첫댓글 홍합탕과 이과두주라..ㅎㅎ 좀짠게 흠이었지만 짜장면 짬뽕을 맛있게 먹고 스케치장소에 있자니 유재성부회장님이 손수 쟁반에 홍합탕과 고량주를 바쳐가지고 왔습니다.수백년된 고목속에서 마시는 홍합탕에 고량주라..환상적이었지요. 한병이 금방 동나자 다시 또 한병사와 따라주기위해 몸을 숙이는 순간 품속에서 이과두주 한병이 툭 떨어졌다.어! 이건뭐야? 왜 이과두주한병을 몰래 꼬불치고 있었지? 의심을 품은 회원들이 유부회장을 집요하게 심문하였으나..묵묵부답..물론 이과두주는 압수되어 쟁반에 올려지고..
품어가 누구에게 주려하였느뇨? 이실직고 하렸다!!! ㅋㅋ
하여튼 기가 막히게도 숙이는 순간 품에서 톡 하고 떨어진 이과두주는 참으로 볼만하였습니다!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술이 왜 제 주머니에 있었던건지... ㅎㅎㅎ
그 굴러 떨어진 술병 때문에 제 속내가 땅에 떨어져 구른 듯 했습니다...
덕분에 신나게 웃었네요...ㅋㅋ
가을에 취해 화우분들이 행복하셨내요~~~
유고문님께서 떡과 좋은 술도 찬조하셨다고 들었어요.^^*
양주 고량주 독주에 취화선인가요 ~ ?
휘갈기는 붓따라 맨드리미 까지 맨드너라 불나셨겠습니다
왔다리 갔다리 하는 저칭구꺼정 뭐하러 죄다 땡겨 넣느라구
애꿎은 카메라가 쥔 잘못만나 복통 터지겠습니다 그려 ~~~ ㅎ ㅎ
우와, 그런 재밌는 사연이 있었군요. 스케치는 못갔지만 안봐도 비디오네요. ㅎ ㅎ ㅎ ㅎ
그래도 아쉬운 건 그 작품 사진이 없다는거...
가을 들판 풍경도 보고 화우님들과 이야기도 참 재밌네요.
ㅎㅎ너무 재미있어서 ~~ 유재성부회장님 왜그러셨어요??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와 배꼽빠지겠어요~~심부름하기 싫어서 꼬불쳐 놓으신듯~~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