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말라!(마10:26-33)
갈등
1.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태복음 10장에 주님이 부르신 열두 제자들-사도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시몬)베드로, 베드로 동생 안드레,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난인 시몬, 그리고 가룟 유다입니다. 주님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었어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요. 이것이 제일 큰 목적이었습니다. 두 번째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제자들을 양성해서 그들이 주님이 하셔야 할 일들을 맡기셨어요.(대사명을 위임하심)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승천 후에 제자들이 대신해서 해야 할 일은 복음 전도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로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세계 온 땅에서 확장되게 하셨어요.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사명을 감당하도록,“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습니다.”(은사가 아니라 주님의 능력, 8절) 주님은 제자들에게 전도 실습을 시키셨어요.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 실습을 보내며, 돈이나 두 벌 옷이나, 신 등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어요.
2. 하나님께 공급해주시는 대로(그들이 만나는 사람을 통해서) 먹고 자라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은 열두 제자를 양성하는데 집중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이 없이도 스스로 전도하고-가르치고-치유하는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철저히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의 범위가 12 제자로부터-70인 제자-120문도-500여 형제까지였어요. 주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 같다고 하셨어요.(16절) 주님은 장차 제자들이 갈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17-18절,“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주님은 제자들에게 자기를 따르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소망을 주지 않으시고, 이렇게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될 것이라고 적나라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갈등 심화
3.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기를 따르는 길이 참 좋다고 미화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만날 세상이 어떠한지 그대로 말씀해주셨어요. 24-25절,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지 않느냐?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유대 종교인들이 주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입어서 일한다고 조롱함),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유대 종교인들이 너희를 어떻게 대하겠는지 미리 알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만날 세상을 이야기해주시면서, 그들을(제자들을 박해할 권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어려운 환경이 있다고 해서 복음 전도를 미루거나 멈추지 말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어요. 27절,“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 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언제 어디서든지 쉬지 않고 전파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4. 예수님은 제자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거침없이 복음을 전할 때, 너희 몸을 죽일 자도 있을 것을 예고하셨습니다.(28절) 죽음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주님은 제자들이 위축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라고 가르치셨어요. 주님은 제자들이 비겁하지 않도록 더 강하게 말씀하셨어요. 32-33절,“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완곡하게 제자들이 겪을 일을 말씀하시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또 제자들이 죽음으로 위협을 당해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고 시인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차 천국에서 나도 너희를 부인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어요. 주님과 같이 온유하고 완전한 인격을 갖추신 분이 이런 이야기를 좀 부드럽게 말씀하시지 않고 왜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을까요?
실마리
5.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부드럽게 완곡법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정면돌파하도록 정공법을 쓰셨습니다. 부드러운 것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때로는 정면 돌파하는 정공법이 유일한 길일 수 있어요. 주님은 자신이 가는 길도 우회하지 않으시고 정면 돌파의 길을 가셨어요. 주님은 십자가와 고난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공생애가 이어지면, 헬라인들까지 나서서 주님을 유대 종교인들의 위협에서 피신시키려고 했습니다.(요12:20 이하, 이대로 가다가는 예수가 죽임당한다) 주님이 피하자면 그들의 도움이 필요없는 분이십니다.(그는 하나님이시니, 공간을 넘어서 다니시기도-물 위도 걸으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고난을 피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셨듯이, 제자들도 주님과 같이 자기를 희생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들고 가면 환영하는 사람들보다 반대를 하든지 박해하는 경우가 더 많아요. 열두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던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종말이 올 때까지 그럴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살처럼 부드럽지 못합니다. 돌처럼 굳어있어요.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쾌락)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세상을 마음껏 누리지 못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순수하게 모두가 받아들이리라고 기대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현실이에요.
6. 신앙 박해가 개인적으로 이뤄지면 그 한도가 있습니다. 박해가 그리 심하지 않아요. 그저 내게 예수 이름을 말하지 말라고 저항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신앙 박해가 국가적으로 이뤄지면(공산주의나 타종교에 의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은 상황이 올 수 있어요. 우리의 몸까지 죽이거나 말할 수 없는 고문을 하거나, 막대한 손해를 입게 하는 경우입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까, 이란에서 10대 여성이 히잡을 안 쓰고 지하철을 탔다가 도덕 경찰에게 맞고 죽었다고. 주님은 이런 경우에도 28절,“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세상 권세는 우리의 몸만 죽일 수 있을 뿐이지만, 주님은 몸만 아니라 영혼도 지옥에서 멸하실 분입니다. 세상 권세와 예수님의 권세는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지 않으니,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주님은 참새 두 마리 이야기를 하셨어요. 참새 두 마리가 당시에 한 앗사리온에 팔렸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1/16데나리온이에요. 한 데나리온은 하루 남자 임금인데, 10만원이라고 보면 한 앗사리온은 6000여 원 정도됩니다.
7. 예수님은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미물도 지키시는데 그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지켜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신다(아신다). 너희는 참새보다 귀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해서 주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어요. 주님은 마지막으로 주의 이름을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이 문제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신앙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인인 것을 압니까?
사람들이 내가 그리스도인 것을 알고 나는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렇게 살라고 가르치셨어요.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요.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완곡법을 쓰지 않고 정공법을 쓰신 것은 제자들이 맞이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마음을 굳게 먹고 단단히 준비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것을 너무 잘 아시고 제자들을 가르치셨어요.
복음 제시
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편하게 살고자 하셨다면 얼마든지 누리셨습니다. 주님은 그렇게 누리는 삶을 아예 포기하시고, 오직 섬기는 삶을 택하셨어요. 이런 삶을 제자들이 보고 배우고 몸에 익히도록 하셨어요. 막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이 일-우리를 위해 대속물로 주려함-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님이 자기를 희생하셔야 우리가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고, 사탄의 권세를 이기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희생 외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다른 길이 없었어요. 주님은 이 험난한 길을 끝까지 가셨고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셨어요. 주님은 제자들도 주님을 본받아서 이렇게 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기대
9. 오늘은 종교개혁 506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이 날을 교회가 5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켜가야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훈련을 하면서 당시 교회 성도들이 자라가기를 촉구했습니다. 엡4:13,“우리가 다 하나님을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바울은 성도들이 온전한 사람이 되라. 온전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
즉 예수님과 같이 된다고 말했어요. 열두 사도들 이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과 같이 살아야 합니다. 주님과 같이 되어야 해요. 우리가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부단히 주님처럼 살도록 힘써야 해요. 그럼 주님을 점차 닮아갑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 진리를 바로 알고 분별해야 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시작은 1517년을 기준으로 약 150년 전 시작-14세기 중후반) 복음 진리가 그릇된 로마 카톨릭 교리를 바로 잡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10. 종교개혁가들은 복음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도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성경을 자국어인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로 순교(화형)를 당하였어요.(윌리암 틴데일, 존 위클리프-완역을 하지 못하고 죽음, 천주교에서는 죽은 그의 뼈를 불사름) 틴데일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성경번역을 멈추지 않았습니다.(독일에 피신하면서 루터를 만나기도 하고 1525년 완역) 이런 천주교의 박해는 라틴어 성경(불가타)만이 거룩한 것이라고. 감히 세속어로 성경 번역을 할 수 없다는 논리, 지금 우리가 들으면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지난 여름 우간다-독일 선교지 순회사역을 마치고 독일 에어푸르트의 마틴 루터 유적지를 돌아보았습니다.(현지 목사님의 안내로) 강력한 교황의 권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분투했던 루터의 발자취를 일부 보면서 제 마음이 숙연해졌습니다. 루터는 프리드리히 대제의 보호 아래(로마 제국의 힘이 약해지고 각 지역의 군주까지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있어, 순교는 면했습니다. 루터는 피신 생활을 하며 때로는 (인조)구레나룻을 하고 변장하여 바르트부르크 성에 피신하기도. 이곳에서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어요. 이곳도 가보았습니다.
11. 오늘 506주년 종교개혁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이 시간 다 일어나서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지 과제가 많아요. 복음의 본질 회복부터, 행함이 없는 믿음의 개선, 전도와 선교를 소홀히 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 등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는대로 기도하고요, 우리 교회가 신생교회인데 이 시대의 모델이 되는 교회로 자라가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