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합동조사 전북도 약속했지만, 무주군 입회 요구로 지지부진
대책위 “인권침해 심각성 전혀 모르는 무주군 입회 도움 안 돼”
대책위 “권익옹호기관 신뢰 못 해, 다른 전문기관 참여한 민관합동조사 필요”
기자회견 이후 예정됐던 면담에 무주군청 관계자가 응하지 않았고, 경찰이 무주군청에 진입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막아서 한 시간가량 대치했다. 대치 도중 황인홍 무주군수가 나왔다.사진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
황인홍 무주군수를 향해 ‘민관합동조사’를 촉구하는 참가자. 사진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
거주 장애인 학대 사건이 벌어진 무주 하은의집. 학대 사실이 알려진 지 1년이 가까이 됐지만, 무주군이 민관합동조사에 응하지 않아 진실규명은 답보 상태다.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24일부터 민관합동조사를 촉구하며 2박 3일 행진을 벌였다. 24일 오전 10시 전북도청 앞에서 시작된 행진은, 26일 오후 2시 무주군청에서 마무리됐다. 무주군청에 결집한 대책위는 ‘하은의집 민관합동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이후 예정됐던 면담에 무주군청 관계자가 응하지 않자, 경찰은 이에 항의하며 무주군청에 진입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막아서면서 한 시간가량 대치했다. 결국 5시 반경 면담이 성사됐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대책위는 하은의집 시설폐쇄를 위한 투쟁을 예고했다.
기자회견 이후 예정됐던 면담에 무주군청 관계자가 응하지 않았고, 경찰이 무주군청에 진입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을 막아서 한 시간가량 대치했다. 사진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
- 인권감수성 없는 무주군, 민관합동조사 입회 요구… 대책위 “안 된다”
무주 하은의집은 29명의 장애인(남성 17명, 여성 12명)이 거주하고 있는 지적장애인거주시설이다. 지난해 7월 전주MBC 보도로 거주인 학대 정황이 포착됐다. 이후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경찰 조사가 이뤄졌고, 종사자 7명이 검찰에 기소됐다.
전북도는 이미 지난해 12월 민관합동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서기선 전북도 장애인복지과 과장은 “무주군과 대책위 등 장애인단체와 함께 민관합동조사에 관해 여러 차례 면담을 열었다. 중개하려고 노력했지만 상호간 협의를 이루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대책위는 당초 합의한 민관합동조사 계획에 무주군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주군은 민관합동조사에 공무원 1명 입회, 또는 녹취, CCTV 등을 설치해 조사를 참관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대책위는 인권침해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 공무원이 조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28일 전주MBC는 무주의 한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정황이 담긴 SNS 내용을 보도했다. 사진 전주MBC 영상보도 캡처 편집
대책위는 “지난 5월 7일 전북도·무주군·대책위의 면담에서도 무주군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하은의집 거주인이 당한 인권침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삼청교육대 보낸다는 말은 흔히 지금도 쓰는 단어다. 난 지금도 많이 쓴다’, ‘삼청교육대는 무주에서는 지금도 종종 쓰더라. 지역의 특성이 있는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언론에 보도된 종사자 대화 중 ‘삼청교육대’ 관련 발언을 비꼰 것이다”라고 분노했다.
또한, 무주군은 ‘어차피 보호자가 시설에서 나오는 것을 거부하고 나와 봤자 24시간 활동보조인이 안 되면 시설이랑 다를 게 없는데 왜 나오려고 하냐. 시설도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먹고 싶은 거 다 먹을 수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대책위는 전했다.
- 대책위 “권익옹호기관 신뢰 못 해, 다른 전문기관 참여한 민관합동조사 필요”
대책위가 민관합동조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지난 2019년 발생한 전북 장수 벧엘장애인의집 사건 당시 지자체와 전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아래 권익옹호기관)의 대처 때문이다.
장수 벧엘장애인의집은 거주인 학대와 강제노동 사실이 밝혀져 시설폐쇄가 예정돼 있었다. 거주인들은 탈시설 욕구 조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는 사이 자립생활체험을 하던 4명의 피해 거주인이 강제 전원조치를 당하게 됐다. 강제 전원조치를 주도한 곳은 다름 아닌 장수군, 권익옹호기관, 전북발달장애인지원센터였다. 이들 기관은 2시간 만에 형식적인 조사를 거쳐 피해자 전원 조치 결론을 내렸다.
‘무주 하은의집 민관합동조사!’ 깃발. 사진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
대책위는 이번 하은의집 사건 조사에서도 권익옹호기관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통해 폭행과 학대 정황이 종사자의 대화로 드러났음에도, 권익옹호기관은 초기에 ‘피해사실이 과하지 않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김현탁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장수 벧엘의집 사건과 초기 하은의집 사건 조사에서 보듯 권익옹호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 무주군은 대책위가 ‘시설폐쇄만을 목적으로 한다’라며 공무원 입회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렇다고 전문성도 없고, 장애인 권익을 옹호하지도 않는 권익옹호기관에만 조사를 맡길 수도 없다”라고 토로했다.
또한, 경찰 조사만으로 피해 사실이 제대로 밝혀지기 어렵다는 점도 지적했다. 김 집행위원장은 “현재 피해가 알려진 지 수 개월이 지나 시설에서 거주인을 회유하거나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시점에서 중증장애인과 의사소통이 익숙지 않은 경찰의 형식적인 질문으로 거주인의 피해 사실이 밝혀지기 힘들다”라며 “장수 벧엘장애인의집 사건 조사에 참여했던 한국심리연구소 등 다른 전문기관이 참여한 민관합동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5시 반경 면담이 성사됐지만 입장차만 확인했다. 대책위는 시설폐쇄 투쟁을 예고했다. 사진 무주하은의집전국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