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姜泳)
[생원시]광해군(光海君)5년(1613)계축(癸丑)증광시(增廣試)[생원]2등(二等)
1위(6/100)
강린(姜繗) 자수(子修) 1568 ~ ? 진주(晉州) 병과(丙科) 12위
강영(姜泳) 양원(養元) 1574 ~ ? 진주(晉州) 2등(二等) 1위
[인물요약]
UCI G002+AKS-KHF_12AC15C601FFFFB1574X0
자 양원(養元)
생년 갑술(甲戌) 1574년(선조 7)
합격연령 40세
본관 진주(晉州)
거주지 영광(靈光)
[관련정보]
[이력사항]
선발인원 100명
전력 유학(幼學)
부모구존 엄시하(嚴侍下)
[가족사항]
[부]
성명 : 강극검(姜克儉)
품계 : 선략장군(宣略將軍)
관직 : 충의위(忠義衛)
[안항(鴈行)]
형(兄) : 강해(姜海)[進]
형(兄) : 강준(姜濬)
형(兄) : 강환(姜渙)[進]
형(兄) : 강항(姜沆)[進]
[출전]
《계축증광사마방목(癸丑增廣司馬榜目)》(고려대학교[만송B8A1 1613])
2005-11-30 《계축증광사마방목(癸丑增廣司馬榜目)》(고려대학교)을 저본으로 최초 등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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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49권, 22년(1798 무오/청가경(嘉慶) 3년) 10월 12일(임인) 3번째기사
영남에 거주하는 고가의 후예를 찾아 그들을 관직에 임명토록 하다
상이 일찍이 영남의 도신(道臣)에게 고가(故家)의 후예를 찾아서 보고토록 명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관찰사 이의강(李義綱)이 9인을 천거하니, 조문검(曺文檢)·장시복(張時復)·정렬(鄭烈)을 제수하여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서게 하였다.【유학(幼學) 정렬은 성주(星州)에 사는데 고(故) 유신(儒臣) 정구(鄭逑)의 7세손이다. 조용완(曺龍玩)은 진주(晋州)에 사는데 고 유신 조식(曺植)의 7세손이다. 조문검은 금산(金山)에 사는데 고 유신 조위(曺偉)의 8세손이다. 진사 장시복은 인동(仁同)에 사는데 고 유신 장현광(張顯光)의 8세손이다. 유학 김진동(金鎭東)은 안동(安東)에 사는데 부제학 김우굉(金宇宏)의 7세손이다. 생원 강영(姜泳)은 순흥(順興)에 사는데 응교 강덕서(姜德瑞)의 6세손이다. 유학 이정모(李廷模)는 영천(永川)에 사는데 참의 이형상(李衡祥)의 현손이다. 유학 박광구(朴光久)는 대구(大邱)에 사는데 충정공(忠正公) 박팽년(朴彭年)의 12세손이다. 한량(閑良) 이제년(李齊年)은 성주(星州)에 사는데 효령대군(孝寧大君)의 12세손이다】
하교하였다.
“고 유신 정구·조위·장현광의 자손에 대해서는 이번 정사(政事)에서 낙점(落點)했다마는, 고 유신 조식의 후손인 조용완만은 유독 참여되지 못하였으니 맨 처음엔 참하관(參下官)6799) 자리를 하나 마련하여 벼슬길을 틔워주고 점차 승진시켜 궐원(闕員)이 생기는 대로 의망(擬望)해 들이도록 하라. 유학 박광구는 고 충신 박팽년의 후손으로서 나이가 62세이고 유학 김진동은 나이가 72세라서 직책을 제수해 주어도 제대로 출사(出仕)할 만한 근력이 있을지 모르겠기에 망통(望筒)6800)에 수위(首位)로 의망되었어도 우선 낙점을 넘기고 말았는데, 이 두 사람에 대해서는 감역관(監役官)과 교관(敎官) 자리를 더 설치하여 단망(單望)으로 임명토록 하고, 해도(該道)에 문의하여 올라올 수 있다고 하면 역마(驛馬)를 지급해서 올려 보내게 하라. 한량 이제년은 효령 대군의 12세손인데 병조로 하여금 우선 내금위(內禁衛)에 임명하게 한 뒤 영을 기다리도록 하라.”
註6799]참하관(參下官): 7품 이하 품계의 관직.
○上, 嘗命嶺南道臣, 搜訪故家世裔以聞, 至是, 觀察使李義綱, 薦九人, 曹文檢、張時復、鄭烈, 除初仕。【幼學鄭烈居星州, 故儒臣逑七世孫。 曹龍玩居晋州, 故儒臣植七世孫。 曺文檢居金山, 故儒臣偉八世孫。 進士張時復居仁同, 故儒臣顯光八世孫。 幼學金鎭東居安東, 副提學宇宏七世孫。 生員姜泳居順興, 應敎德瑞六世孫。 幼學李廷模居永川, 參議衡祥玄孫。 幼學朴光久居大邱忠正公彭年十二世孫。 閑良李齊年居星州孝寧大君十二世孫。】敎曰: “故儒臣鄭述、曺偉、張顯光子孫, 今政雖點下, 而故儒臣曺植後孫曺龍玩, 獨未與焉, 首仕參下一窠, 陞付作闕擬入。 幼學朴光久, 以故忠臣彭年之後孫, 年爲六十二, 幼學金鎭東, 年爲七十二, 雖除職, 其筋力之能爲强仕未可知, 望筒首擬, 姑越點, 此二人者, 監役敎官加設單付, 問于該道, 如可上來, 則給舖馬上送。 閑良李齊年, 孝寧大君十二世孫, 令兵曹, 先付內禁衛, 使之待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