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일본서 울린 '경고음' 듣고도... 총체적 난맥상 드러낸 새만금 잼버리
이틀째도 온열환자 200명 넘게 나와
2015년 日대회서 부작용 예견됐지만
부실한 준비에 미숙한 운영... 무대책
1일 제25회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그늘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부안=김진영 기자
전북 부안군 새만금에서 진행 중인 제25회 세계스카우트 잼버리(4년마다 열리는 세계 청소년 야영 축제)의 운영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개막 이틀째인 2일에도 200명 넘는 ‘온열환자’가 속출했다. 8월 무더위와 간척지의 높은 습도 탓에 새만금이 후보지로 결정된 8년 전부터 예견된 우려였지만, 잼버리 조직위는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에 조직위는 정확한 대회 참가자 규모나 환자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정신력만 강조하는 등 총체적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
살인 무더위 속 생존게임… 예고된 참사
3일 조직위에 따르면, 전날에도 207명(오후 10시 기준)의 온열환자가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날 오후 8시부터 열린 개영식에선 100명 넘는 참가자가 어지럼증 등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고, 급기야 소방당국은 대응 2단계를 발령해 조직위 측에 행사 중단까지 요청해야 했다.
폭염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지만, 연일 수백 명의 온열환자가 쏟아지면서 조직위는 허술한 대응체계를 고스란히 노출했다. 시작부터 안일했다. 새만금이 세계잼버리 후보지로 결정된 건 2015년. 강원 고성과 경쟁 끝에 얻은 성과였다. 하지만 조직위는 환경적 불리함을 외면했다. 기회는 있었다. 같은 해 7월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열린 제23회 세계잼버리 상황은 새만금과 판박이였다.
간척지 키라라하마에서 개최된 일본 세계잼버리에서도 40도에 육박하는 기온과 80%를 넘는 습도로 열사병, 탈수, 화상 등을 호소하는 환자가 다수 발생했다. 참가자 3만3,628명 중 3,247명(10.4%)이 병원을 찾았을 정도로 상당한 곤란을 겪었다. 8월 폭염과 나무 한 그루 없는 간척지, 높은 습도와 벌레 문제 등 새만금이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 만했다.
3일 전북 순창군 고추장익는마을에서 영외 활동에 나선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원들이 체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순창=뉴스1
그러나 폭염에 대비해 조직위가 준비한 시설은 그늘막과 덩굴터널, 샤워장, 급수대 등 수분공급 시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이유로 시설 공사가 늦어져 덩굴터널은 개최 시점까지 완공되지 않아 임시 천막을 설치해야 했다. 사전 점검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또 4만 명 이상이 모여들었는데, 구비한 병상은 50개가 고작이라 밀려드는 온열환자를 수용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참가자도, 환자 수도 몰라... 운영도 미숙
엉성한 사전 준비도 문제지만, 운영 역시 낙제점에 가깝다. 조직위는 여태껏 정확한 참여 인원조차 집계하지 못했다. 전날 기준 세계잼버리 웰컴센터를 통해 등록한 참가자는 2만9,000여 명으로 최대 9,000명 정도가 등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조직위는 개영식에 4만 명, 잼버리 야영장 내 4만1,000여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심지어 얼마나 많은 환자가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환자 발생 현황을 측정하는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은 여전히 시험 가동 중이어서 전날 발생한 992명의 환자 가운데 207명이 폭염이 원인이 됐다는 것이 조직위가 갖고 있는 통계의 전부다.
현황 파악이 부실하다 보니 의료인력 확보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조직위는 추가 온열환자 발생에 대비해 의사 30명과 60명의 간호인력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 기준이 무엇인지 합리적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대회 중단하라"... 격앙된 지역사회
3일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세계잼버리 대회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안=김진영 기자
조직위가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아예 대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역사회 여론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가톨릭기후행동, 전북녹색연합 등 전북지역 13개 시민사회단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폭염은 정신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새만금 잼버리 대회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앞으로도 열흘간 선풍기 없이 대회를 진행해야 하는 만큼 텐트에서 야영하는 전 세계 청소년들은 물론 자원봉사자, 대회 관계자, 노동자들의 안전과 목숨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바에야, 차라리 행사를 중단하는 것이 후폭풍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라는 주장이다.
민노총전북본부도 성명을 통해 “정치적 이해관계로 급히 조성된 새만금 잼버리 부지는 대자연 속에서 우애를 나눈다는 스카우트 정신과 거리가 멀다”며 즉각적인 대회 중단을 요구했다.
각국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잼버리 조직위와 한국 정부에 우려를 전달하고 안전 대책 마련 및 재발 방지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은 이번 대회에 단일 국가 중 가장 많은 약 4,500명을 파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