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는?
온조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은 그 부친이 추모 혹은 주몽이라고 하였다. 마치 추모왕이 부여를 탈출해 고구려를 세운 것처럼, 온조는 고구려에서 태어나 성장한 후 고구려를 탈출하여 백제를 세웠던 것이다.
고구려에서 나온 백제
서울 송파구 석촌동 백제 고분군에는 한 변의 길이가 50미터가 넘는 거대한 돌로 만든 백제왕의 무덤이 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압록강 건너에 있는 고구려 장군총과도 매우 닮았다. 왜 백제의 무덤이 저 북쪽에 있는 고구려 무덤과 비슷할까?
백제를 건국한 온조와 그의 형 비류는 고구려 건국시조인 추모왕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기록에 따라서는 이들이 추모왕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우태란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이들은 고구려의 왕비가 된 소서노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왕자로 자라났다.
두 사람의 어머니인 소서노는 추모왕이 고구려를 세울 때 자신의 재산을 동원해서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추모왕은 소서노를 자신의 왕비로 맞이했고, 비류와 온조는 당연히 다음 왕위를 계승할 후계자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추모왕에게는 부여에서 도망 나올 때 함께 탈출하지 못한 가족이 있었다. 추모가 부여를 탈출할 때 남겨 두었던 부인인 예씨는 당시 임신한 상태였다. 예씨가 낳은 아들 유리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체 성장했다가,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자기가 추모왕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다. 유리가 성장할 때까지 예씨가 기다린 것은 추모왕이 자기 아들을 낳게 되면 자기가 내준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유리는 그 수수께끼를 풀고서 어머니와 함께 고구려로 와서 추모왕의 친 자식으로 인정받았다. 추모왕은 유리를 태자로 임명했고, 따라서 유리는 곧 2대 고구려왕이 될 수 있었다.
백제의 건국
비류와 온조는 이복형제인 유리에게 밀려 고구려왕이 되지 못하게 되었다. 이들이 고구려에 남아 있다는 것은 유리는 물론, 그들 자신들에게도 부담이었다. 결국 비류와 온조는 어머니인 소서노를 모시고, 10명의 신하들과 함께 그들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과 함께 데려갔다. 고구려를 탈출하여 남쪽으로 이동해 이들이 마침내 백제를 세우게 된 것이다.
온조왕은 백제에 세운 후, 아버지 추모왕을 섬기는 사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같은 조상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백제의 지배층이 된 사람들이 고구려에서 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무덤의 양식, 의복과 언어 등이 백제는 고구려와 같았다. 외국에서도 두 나라가 같은 뿌리를 가졌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뒷날 두 나라가 직접 국경을 맞대고 전쟁을 할 때에는 서로 같은 조상의 후예이기 때문에 누가 정통 후계자냐를 놓고 경쟁하게 된다. 따라서 두 나라의 전쟁은 더욱 더 치열하게 계속되기도 했다.
tip 추모왕이 낸 수수께끼를 풀어낸 유리명왕
부여를 떠나올 때 추모왕은 예씨부인에게 “일곱 고개와 일곱 골짜기의 돌 위에 선 소나무 위에 내가 물건을 감춰두었으니 그것을 얻은 자가 내 자식이다”고 하고 떠났다.
20년이 지난 후 유리는 어머니로부터 이 말을 듣고 온 산천을 뛰어다니며 소나무를 찾았다. 그런데 유리가 찾은 소나무는 자기 집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었다. 기둥의 주춧돌이 일곱 모가 난 칠각형이었고, 돌 위의 소나무가 곧 기둥임을 알아내었다. 그래서 유리는 그 기둥 위에 있는 구멍에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얻어 추모왕을 만나 아들로 인정받았다.
tip <칠각형 그리기>
1796년 독일의 천재 수학자 가우스는 2의 배수가 아닌 것 가운데 정확히 작도할 수 있는 것은 정(+1)각형이나 그것을 기초로 해서 그릴 수 있는 정다각형뿐이고 그 이외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낸 바 있다. 즉 3, 5, 17, 257, 65537각형 등을 제외한 7각, 9각형 등은 그릴 수 없는 것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런데 우리네 건축가들은 7각형 건물을 건축했고, 또 칠각형을 그려냈다.
다음 그림을 보자.
1999년 7월 31일 영국 윌트셔 지역 라운드웨이 힐의 밀밭에 나타난 미스터리 서클이다. 외계인의 작품이라고도 말하는 이것은 철저히 7각형의 도형을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7각 도형. 그러나 고구려 초기부터 7각 도형이 나오고 있다.
7각 도형을 그린 방법은 아래와 같다. 그릴 수 없다던 칠각형을 그린 고구려의 수학이 미스터리일까? 아니면 그릴 수 있는 칠각형을 그리지 못하는 서양 수학이 미스터리일까?
첫댓글 설마 주춧돌 바같 모양이 똑같은 길이의 7 개 직선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짧고 길며 조금 삐뚫은 직선 모양이 7 개 있는 돌이라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