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를 안 사는 건 나쁘다
- 최금진
로또가 얼마나 끔찍한 악몽인지
로또방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끝자리를 분석하거나 홀수 짝수를 조합하는 일은
여느 사무직과 다르지 않다
왜 사느냐,를 왜 로또를 사느냐,로 이해해도 무관하다
이 늦은 밤에 왜 또 여기로 왔는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질문을 쓰레기통에 구겨넣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찍는다
로또를 사지 않는 10%의 고소득층은 얼마나 좋을까
로또를 사지 않아도 천사가 지켜주니까
왜 사느냐,를 묻지 않아도 되니까
오십이 넘은 사내는 누가 볼까봐 손을 가리고 찍는다
술냄새에 절어 들어온 사내는 앉자마자 묵상을 한다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은 줄을 서지 않는 자들을 무섭게 흘겨본다
순서를 어기는 것은, 누군가 자신을 앞서가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우울한 일
집착은 때 묻지 않은 종이와 같아서
싸인펜을 쥐고 있으면 또 한번 막막해진다
예수님을 부르고, 조상님께 기도하고, 아이 생일을 떠올리며
답할 수 없는 질문에 답이라도 달듯
쩔쩔매며, 굽실거리며
두툼한 돈뭉치를 한번이라도
멱살처럼 움켜잡아보고 싶은 자들에게
왜 사는가, 왜 로또를 사는가, 묻지 말자
로또를 안 사는 사람들은 심각하게 죄질이 나쁘다
그게 비록 종잇조각에 불과할지라도
뭔가를 간절히 빌어본 적이 한번도 없기 때문이다
꼭 당첨되세요, 주인 남자의 빈말은 그 어떤 복지정책보다 낫고
코미디 프로는 복권 추첨 프로와 같은 시간에 나오며
주말이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로또방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절망을 배당받는다
주위를 흘끗거리며, 헛기침을 하며, 창밖 사람들을 노려보며
ㅡ 시집『황금을 찾아서』(창작과비평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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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얼마나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지요
처음 생긴 뒤로부터 매주마다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로또를 사고 당첨을 기다립니다
상위 10%의 부자들이라고 해서 로또를 사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콩나물값을 아끼려고 발품팔기를 마다하지 않는 주부들도 로또를 삽니다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도, 뒷방 백수들도 로또를 삽니다
여섯 숫자의 당첨 방식이 따로 있다고 폐지를 주장하지만,
그래도 로또는 명당이라 소문난 곳에서 더 팔립니다
기본소득 주장이 사회주의라 욕하면서도 로또 가게는 성업 중입니다^*^
행운을 믿지 않는 제 주변에도 당첨되면 그 복을 나눠주겠다는 호의도 있긴 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내가 아는 이들 중에 어느 누구라도 당첨이 됐다는 소식이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