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學’은 ‘실학’인가?
1708년 어느날 숙종의 경연 공부 책자를 둘러싸고 신하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다. 임수간은 『주자대전』의 발췌본 ‘절작통편(節酌通編)’이 제왕의 치평(治平)에 관한 정치학 서적으로는 알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대신 ‘역대명신주의(歷代名臣奏議)’를 발췌해서 진강하자고 제안했다. 이관명은 주희의 글 하나하나에 의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에 반대했다.
여기서 ‘역대명신주의’란 무엇일까? 숙종실록 번역본은 이를 ‘역대 명신의 주의’라고 풀이했다. 마치 ‘삼국사기’를 보고 ‘삼국의 사기’라고 풀이하는 격이다. 실제로 이는 명나라 성조 연간 편간된 『역대명신주의』를 가리킨다. 『육선공주의(陸宣公奏議)』(당나라, 육지(陸贄))나 『국조제신주의(國朝諸臣奏議)』(송나라, 조여우(趙汝愚))와 달리 중국의 역대 주의 문자를 선별했다.
『역대명신주의』의 유입은 조선 사회에 자국의 주의 문자를 돌아보도록 자극했다. 중종 때 최숙생은 명나라 유학자가 ‘역대주의’를 편찬했음을 들어 조선에서도 『동국명신주의(東國名臣奏議)』를 편찬할 것을 청했다. 정조 때 김종수는 ‘역대명신주의’를 요약해서 『역대명신주의요략』을 완성하고 다시 『국조명신주의요략(國朝名臣奏議要略)』 작업을 후속했다. 실록 번역본은 이 경우에도 관련 기사의 ‘역대(명신)주의’를 모두 풀어버렸다.
이것은 한문 해석의 한가지 어려움을 보여준다. 고유명사를 모르면 이렇게 되기 쉽다.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이니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겠다. 그런데 한문 읽기에서는 이보다 더 까다로운 유형의 문제가 있다. 이를테면 ‘實學’의 번역이 그것이다. 한문 문장에서 이를 만나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실학’이 딱히 고유명사는 아니니 ‘실’의 ‘학’을 기본 골격으로 삼아 적당히 윤색하면 좋을까.
필자는 조선후기 실학을 둘러싼 논란의 한 가지로 ‘실학’이 고유명사인가 보통명사인가 하는 문제가 있음을 안다. 오늘날 조선후기 실학자로 유명한 유형원이나 정약용의 학문이 과연 새 시대를 향한 새로운 학문으로 인식되어 당대에 실학이라는 고유명사를 얻었느냐 하면 그것은 그렇지가 않다. 20세기 국학 세계가 조선후기 실학이라는 학술 개념을 발명해서 이들에게 부과했을 따름이다.
여기서 논점은 이것이다. 학술 개념은 어짜피 사후적이다. 다만 그것의 외적 적합성과 내적 정합성을 따지면 된다. 필자의 관심사는 다른 데 있다. 근대의 실학은 개념어로 쓰이니까 ‘실학’이라고 써야 하겠지만 전근대의 실학은 개념어가 아니라면 ‘실’의 ‘학’이라고 풀어써야 하는 것 아닌가. 조선시대 한문 사료의 ‘實學’은 ‘실학’인가 아니면 ‘실’의 ‘학’인가.
이수광의 『지봉유설』(1614)에 보이는 다음 구절은 이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식년시 급제는 전혀 강경(講經)을 취하는데 그 뜻은 아주 좋다. 그러나 강경하는 사람은 응용[致用]할 수 있는 내용이 없고 더러 글도 짓지 못한다. 그래서 세속에서는 이들을 업신여겨 ‘실학급제(實學及第)’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실학급제’는 조익의 『포저집』에도 보인다. 그는 과거 시험에서 강경의 폐단을 통절히 인식했다. 사서삼경의 음과 토를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지만 보기 때문에 경문의 글자도 모르고 뜻도 모르는 사람이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리에 통하지 않는 사람을 세칭 ‘실학급제’라고 한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지봉유설』이나 『포저집』이나 동일한 사태를 전하고 있다. 『포저집』의 번역본은 ‘실학급제’의 ‘실학’을 ‘실속 있는 공부’라고 풀이했지만 강경을 위한 유교 경서 공부가 ‘실학’이다. 그 자체로 개념어이고 풀어서는 안 된다. 이이가 열여덟 살(1554)에 성혼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신이 작년부터 ‘실학’을 열독하기 시작했는데 경전에 아주 정통한 것으로 헛소문이 났다고 심정을 토로하는 대목이 있다. 다 같은 용법이다.
비록 과거 공부에 의해 굴절되기는 했지만 ‘실학’은 본래 ‘경학’이라는 뜻이었다. 일찍이 권근은 육경을 읽고 인륜을 실천하는 학문을 ‘유자(儒者)의 실학’이라 말했다. 이이의 『성학집요』 서문에는 진덕수의 『대학연의』가 경사(經史)의 구절을 채록했지만 결국 ‘실학’이 아니라 ‘기사(紀事)’의 책, 곧 경학이 아니라 사학 저술이라고 비평하는 대목이 있다. 또한 유계는 이이와 성혼, 이황과 기대승 사이의 성리설을 터득한 뒤에 ‘범실학(凡實學)’에 대해 대의를 달통했다고 한다.
이것은 경학으로서의 실학과 결합하는 다양한 맥락을 보여준다. 인륜의 실천, 사학과의 구별, 성리설의 터득 등이 그러하다. 조선후기에는 이밖에도 ‘실심(實心)’의 발견과 ‘실정(實政)’의 추구도 중요한 맥락으로 작용했으리라 생각되는데, 개념적으로 실학과 실심의 관계, 실학과 실정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밀한 독해가 필요하다.
아마도 실학의 개념사에서 더욱 흥미로운 논점은 근대의 실학이라 하겠다. 한국에서 근대 실학 개념은 전근대 실학과 다르다. 대체로 격치학과 실업학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 분과 학문을 가리킨다고 생각된다. 아울러 일본의 ‘실학당(實學黨)’, 중국의 ‘실학보(實學報)’, 한국의 ‘실학시대(實學時代)’ 등 신조어도 인상적이다.
근대 실학 개념의 배경에는 전근대 실학 개념이 있지 않을까. 전근대에 이미 실학이 개념어로 성립했기 때문에 근대의 개념 변화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근대 한문 사료의 ‘實學’은 풀지 말고 ‘실학’으로 보는 편이 온당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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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노관범(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