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7월 23일?? 무슨 날이지?
"38년 전 오늘 사랑의교회가 시작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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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평교회는 당시에 흔치않던 외국어의 이름을 딴 도로 ‘테헤란로’에 위치한 유스호스텔 옆 작은 상가건물에서 시작되었다. 이 장소는 접근성이라는 면에서는 더 이상 나쁠 수 없는 모든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도곡동에서 출발해 테헤란로로 가는 17번 버스가 30분에서 40분에 한 번 다녔던 당시의 교통상황에서 그 위치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한 마디로 교회 오고싶으면 택시를 타고 오거나 아니면 승용차를 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서울을 대표하는 금융의 중심로인 테헤란로지만 당시만 해도 테헤란로는 천천히 걸어서 길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한 도로였다. 테헤란로에서 눈에 띄는 건물은 테헤란로 안쪽에 위치한 반도유스호스텔과 길 건너편에 서있는 유일한 고층(?)건물인 한서병원 정도였다. 한서병원 뒤로는 당시 주변을 빵 굽는 냄새로 진동시키던 태극당이라는 큰빵집이 있었고 반도유스호스텔 뒤로는 태권도의 본부인 국기원이 있었다. 그 위치와 관련해서 옥한흠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장소는 이미 어느 큰 교회의 지원을 받은 젊은 목사가 교회를 한다고 문을 열었다가 한 달도 안되어 포기한 곳이었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는 그 목사에게 왜 떠나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에 교회를 하면 아무도 안 와요. 저 아래 있는 필리핀 대사관에 가서 선교나 하면 모를까’라고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강남은평교회가 시작하는 그 상가 주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직 제대로 착공도 하지 않은 한 건물이었다. 바로 충현교회였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 강남은평교회 근처에 오면 가장 먼저 보이는 글은 ‘충현교회 공사현장’이라는 안내표지였다. 1978년 들어 대규모의 충현교회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충현교회 공사현장이라는 안내표지를 본 사람들은 옥한흠에게 “여기서 목회가 되겠나?”라는 근심어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완강하게 개척을 반대하던 이기진이나 옥치상은 아마도 충현교회가 조만간 강남은평교회 바로 옆에 들어선다는 사실에 더 큰 우려를 했다. 이미 상당 기간 목회를 하고 있었던 이기진과 옥치상은 조카가 열심히 노력을 해서 교인들을 모아놓았는데 웅장한 충현교회가 마치 진공청소기와 같이 그 모든 교인들을 빨아들이는 악몽과 같은 상황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에게 옥한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충현교회는 충현교회고, 우리 교회는 우리 교회입니다.”
옥한흠이 그렇게 대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옥한흠에게 교회는 사람의 숫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교회는 건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옥한흠에게 교회는 한 사람, 한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옥한흠은 이미 그 진리를 성도교회 대학부에서 확인했고 유학 중의 목회에서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과거의 열정 뿐만이 아니라 제자훈련의 모든 성경적 근거와 이론으로도 완전히 무장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충현교회는 충현교회이고 우리교회는 우리교회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주변에 큰 교회가 들어오면 호들갑을 떠는 작은 교회 목사들과 옥한흠은 애초에 질적으로 달랐다. 주변의 큰 할인점이 곧 들어오는 것을 알면서 그 바로 옆에서 조그마한 마트를 시작하는 상인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옥한흠에게는 그가 평생 외친 한 영혼에 생명을 거는 그의 제자훈련 목회철학이 있었기 때문이 그것이 가능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새 옥한흠을 어떤 주변 환경에 관계없이 자신이 확신한 제자훈련 목회에만 굳건하게 뿌리박고 한눈 팔지 않으며 사역하는 진정한 목사로 키워놓았다.
그러나 창립예배에 자신이 설교한 옥한흠의 결정이야말로 가장 옥한흠다운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옥한흠은 “새로 시작하는 교회의 강단에서 선포하는 첫 메시지”야말로 “그 교회의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설교”로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교회의 앞으로 갈 방향을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설교를 교회와 아무 상관없는 남에게 맡기는 것을 옥한흠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설교 제목을 “왜 이 교회를?” 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마태복음 9장 35-38절을 본문으로 선택했다.
이 본문을 중심으로 선포한 설교에서 옥한흠은 강남은평교회의 모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처음부터 교회는 “전파하는(preaching) 교회, 가르치는(teaching) 교회, 그리고 치료하는(healing) 교회”로서 사명을 다해야 한다고 그는 설교했다.
“예수님이 모든 성과 촌을 두루 다니며 사역하신 것처럼 개척되는 교회도 어느 지역에 묶여서 일하기보다는 주님이 가라는 곳이면 어디나 갈 수 있는 교회, 즉 경계선 이 없는 목회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보여준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료하는 기능은 바로 우리 교회가 꾸준히 추구해야 할 기능입니다. 예수님이 세상 사람을 목자 잃은 양으로 보시고 가슴 아파하시며 그들을 위해 일할 일꾼을 찾으신 것처럼 우리 교회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소명자로서 평신도를 깨우는 일에 목회의 비전을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옥한흠은 평신도 개개인 뿐 아니라 나아가 한국교회를 깨우기 위한 본격적인 목회 사역을 시작했다. 옥한흠이 교회를 개척하며 품었던 비전은 모든 평신도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단지 ‘믿고 구원받았다는 확신’만으로는 성도의 신분이 제대로 파악되었다고 옥한흠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당시 ‘예수 믿고 천국가자’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파격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고 그 답변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옥한흠은 각각의 평신도에게 당신이 누군가라고 예수님이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을 예수의 제자로 분명하게 고백할 정도로 잠자던 신분의식이 분명히 깨어날 때에만 한 사람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뀐다고 확신했다.
그 날 그 현장에서 울려퍼졌던 옥한흠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옥한흠이 강남은평교회를 개척하며 품었던 그의 목회적 꿈과 소명을 잘 읽을 수 있다.
“주님, 여러 교회들 가운데 또 하나의 교회를 더하지 말게 하옵소서. 종교적 허세만 가득하고 정작 생명을 잉태치 못하는 불임의 교회를 또 하나 세우지 말게 하소서. 사람을 위한 직함들만 줄줄이 만들고 정작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람을 키우지 못하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교회를 만들지 말게 하소서. 내가 그리스도의 군사라는 명쾌한 자기 인식 없이 행사에 바쁜 사교 클럽으로 전락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스도 왕국을 전략적으로 이 땅에 구축하는 바른 교회가 되게 하시고 행정에 분주한 동사무소가 되지 않게 하소서.”
첫댓글 본인이 평생 외치시던 바와 달리 성도들 현금으로 종교적 허세만 가득하며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고 법조인맥을 통한 사람을 위한 직함들만 줄줄이 세우고 거짓학력과 논문표절로 무기력하고 아이티지진 구호지원도 공표하고 헌금걷고는 나 몰라라하는 무책임한 교회.
문화행사에 바쁜 사교클럽같은 교회.가짜 먹사안수증 만드는 행정에 분주한 동사무소 같은 현 사망의 교회를 보며 통곡하실것 같아 마음이 저립니다 평생 수고하셨습니다 단 한가지 아쉬운거라곤 그가 ㅅㄱㄲ이었단것을 미리 알았었더라면~~~
사랑의교회 창립38주년 을 축하합니다.
우려하던대로의 교회가 되어 거짓과 광포와 커넥션, 교회보다는 개인의 안녕 이나 지위가 엄청나게 중 요한 성 채가되어, 이 런 모습 안보시니 다행 이라고 생각합니다 곧고 인자하신목사님 이 천국에서 평 안하시기 바라며 교회가 교회되게 주의 손길이 이루어주시길~
잠깐, 센터는 38주년 얼마 전에 축하하지 않았습니까? 생일 당겨 먹은 이유가 있을 겁니다.
옥한흠 목사남의가정 에 큰 평 안이 큰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가호가 함께 하심을 감사드랍니다.^^
입관이 끝난 뒤에 와서 본인의 눈으로 시신을 확인해야 겠다면서, 관뚜껑을 다시 열게한 인간성을 지닌 자입니다.
시신을 확인하고 뒤돌아 설 때 아주 찰나이지만, 입가에 띄운 미소를 그만 들켜 버리고 만 자입니다.
그 모든 순간을 하나님은 다 보셨을 것이고, 결코 잊지 않으실 겁니다.
그리운 옥목사님!!
얼마나 감사한지요, 고마운지요
삶의 의미와 가치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가르쳐 주셔서 한없이 모자라고 무지한 저를
일깨워 은혜의 눈물을 흐르게 하셨습니다
내 일생에 가장 큰 축복 이라면 옥목사님을
만난것임을 고백합니다
창립기념일에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며
감회가 교차됩니다
오늘 만큼은 센타의 추물에 대해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네요
옥집사님^^우리가 언제나 함께 합니다
힘내시구요.. 우리가 옥목사님 제자랍니다
지금의 마당기도회는 옥목사님께서 성도들을 진정한 제자훈련으로 다듬어 놓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겁니다
항상 옥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동감합니다.
38년 전 옥한흠 목사님에 의해 세워졌던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의 본질은 SGMC 북쪽 건물 8층에 앉아 있는 자로 인해 땅에 떨어진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지난 4년 여 강남에 모여 사랑의교회와 제자훈련목회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 성도님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기에 언젠가 바벨탑은 반드시 무너지고 사랑의교회와 옥한흠 목사님의 명예는 반드시 회복될 것입니다.
아멘!
옥목사님의 창립예배 기도 내용을 읽으면서 한숨과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멘.
반드시 그리 될 줄 믿고..
아멘..^^ 마라나타.!!
아멘 ! 옥목사님께서 local church 에서 시작하신 제자훈련의 정신과 그 열매로 나타난 사랑의 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은 지켜져야 하고, 나아가 사랑의교회 사태를 당하여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 앞에 우리에게 남겨지고 주어진 사명이 제2의 종교개혁의 마음으로 계승발전 되어지길 기도합니다.
목사님께서 누구보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