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k0h3dwTLh8?si=MRLa8maeLqkMT_A0
Elgar: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Enigma" op. 36 - Arturo Toscanini, direttore; BBC Symphony
변주라는 생각은 음악 예술 그자체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다. 그리고 주제와 변주의 형태는 르네상스 시대의 분열과 본질적 차이로부터 재즈의 대중적인 음악의 즉흥곡에 이르기까지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 초까지, 변주는 일반적으로 주제의 선율적이고 하모니적인 외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비록 바흐의 <골든베르그 변주곡>과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은 그러한 제한을 넘어서고 있지만, 변주는 필수적으로 장식적이고 종종 솔로 악기의 기교를 뽐내는 장(場)이었다. 그러나 19세기에는 그 형태가 상당히 더 느슨해지고 확장되어서 단독변주는 주제의 한 측면을 발전시키는 짧은 캐릭터 피스(character-piece)가 될 수 있었다. 이것은 관현악적 변주가 독립적인 경향을 갖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에드워드 엘가의 <오리지널 주제에 의한 변주곡 '수수께끼'>은 1899년에 거장 한스 리히터(Hans Richter)의 지휘아래 런던에서 초연되었고,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워세스터셔(Worcestershire와 헤포드셔(Herefordshire)에 국한되었던 그를 전국적 곧 나아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했다. 이 <수수께끼 변주곡>은 한개의 주제와 14개의 변주곡 그리고 초연 후에 길어진 확장된 피날레로 구성되어 있다. 이 작품은 작곡가로서의 그의 자화상과 그가 친구들과 교제할 수 있는 영역을 마련해 주었다.
주제는 자아성찰적이고 우울한 엘가 자신을 상징하며 주제의 첫 부분은 에드워드 엘가의 이름을 노래하고 있다. 이어서 그의 아내 엘리스의 사랑스런 자화상이 뒤따른다. 그리고 나서 그들(엘가와 엘리스)의 친구들의 흐릿한 사진이 등장한다. 피아니스트 휴 스튜어트 포웰(Hew Steuart Powell), 기인(奇人) 리차드 타운쉔드(Richard Townshend),목소리가 걸걸한 시골지방 유지였던 윌리엄 베이커, 웃음이 특이해서 진지한 대화를 더 풍성하게 했던 리차드 아놀드, 비올리스트 이자벨 핏튼(Isabel Fitton) - 그녀의 이름은 자신의 악기로 노래된다 - , 엘가의 반항적인 제자, 피아니스트 아더 트로이트 그리피스(Arthur Troyte Griffith), 그리고 19세기 양식의 우아한 집에서 살았던 위니프레드 노베리(Winifred Norbury). 심오한 아다지오는 엘가의 편집자인 A.J 야거(Jaeger)를 상징한다. 그의 이름은 독일어로 사냥꾼을 뜻해서 신화(창세기)에 등장하는 사냥꾼 니므롯(Nimrod)으로 변장돼 있다. 가벼운 구성의 인터메조는 모짜르트 신봉자였던 엘가의 젊은 친구 도라 페니(Dora Penny)를 상징하며, 그의 이름은 목관 악기에 의해 반복된다. 두개의 심오한 변주는 헤어포드(Herford) 성당의 오르간주자인 죠지 싱클레어(George Sinclair)와 와이(Wye)강에서 첨벙거리며 노는 그의 강아지 댄(Dan)과 첼리스트 바실 네빈슨(Basil Nevinson)을 각각 표현하고 있다. 로만자는 배의 엔진을 훙내내고 멘델스존의 <조용한 바다와 순조로운 항해>에서 인용함으로써 바다 여행을 떠나는 누군가를 암시하고 있다. 제목에 세개의 별표는 엘가의 말에 따르면 메리 리곤(Mary Lygon) 부인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뉴질랜드로 이민을 간 전 약혼녀 헬렌 위버(Helen Weaver)일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다. 피날레는 엘리스가 남편 엘가에게 썼던 애칭인 '에두아르드(Eduard)'의 축약형인 'Edu'를 따서 지었다. 이것은 엘가의 두번째 자화상인데 성숙한 예술가로서 자신감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https://youtu.be/GlVltLs_ttI?si=5hxgic8tRIMFuWFx
ELGAR ~ Symphony No. 2, Op. 63 - London Philharmonic, Georg Solti
춤추는 지휘봉 - 게오르그 솔티경(Sir Georg Solti)
게오르그 솔티는 1912년 부다페스트에서 출생한 헝가리계의 유태인이다. 그는 부다페스트 음악원에서 공부하였는데 도흐다니, 코다이, 바르톡, 바이너 등으로부터 피아노, 작곡, 지휘 등등 배웠다. 졸업 이후 1933년에서 39년까지 부다페스트 극장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짤스부르크에서 토스카니니의 부지휘자로 일하는 경험을 쌓기도 하였다. 나치 독일에 위협을 느낀 솔티는 곧 스위스로 망명하게 되는데, 당시 스위스에서 지휘자로서의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아직 무명이었고, 또 신인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피아노 공부를 시작한 솔티는제네바 음악 콩쿠르에서 1등으로 입상하면서 피아니스트로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이 덕분에 쿨렌캄프와 같은 당대의 솔로이스트의 연주회에 반주자로 활동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꿈, 그것은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다. 언제나 지휘자가 될 기회를 노리던 중 수많은 거장들이 거쳐간 뮌헨의 바바리안 국립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직이 그에게로 왔다. 음악감독으로서의 활동으로 그의 이름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1961년부터 10여년에 걸친 영국의 코벤트가든 왕립 오페라단의 음악감독 생활은 지휘자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하였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경(Sir)'의 직위를 하사 받았다. 이 후 22년간 시카고 심포니의 감독을 거치면서 비로소 세계 음악사에 거장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이름 솔티를 남기게 된다.
● 솔티의 스타일
'사마귀가 발작하는 듯한 지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지휘봉' 등의 솔티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다. 포티움에 선 솔티를 보면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주관과 소신대로 오케스트라를 휘두르는 스타일이라는 점을 발견한다. 영국의 그라모폰지와의 1987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휘자는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에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훌륭한 지휘자는 오케스트라를 통제하는데 있어서 거의 파시스트 독재군주와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관은 변하지 않는 음악 철학이기도 하다.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어떤 오케스트라를 지휘해도 솔티 특유의 울림이 표출된다. 다시 말해서 각 오케스트라의 나름대로의 특성은 살려주지만 절대로 오케스트라의 임의적인 음악 만들기를 허용하지 않는다. 비엔나 필 하모닉의 한 바이올린 주자가 "솔티의 목을 조르고 싶다." 고 말했다는 비화가 있는데 그만큼 오케스트라 위에 군림하는 카리스마적 인물인 것이다. 또한 솔티가 만들어 내는 음은 그 울림이 단조롭다. 그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고 예쁜소리만을 좋아하는 청중에게 다소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음표의 조합을 통한 조형미가 내면적 감정의 표출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솔티의 해석 성향에 있다고 해야겠다.
또 하나의 특성은 비정할 만큼 잔인한 정밀성이다. 오케스트라를 다루는데 있어 정신적인 동기부여 보다는 물리적 압박을 통해 질적 수준을 유지한다. 솔티는 해석에 있어서도 균형감과 평형감각으로 유명하다. 그는 각 파트의 악기 군에 독립성을 부여하여, 각각 한 목소리를 내게 하는 수법을 사용한다. 그러므로 그의 해석에서는 전체적인 하모니보다 대위법적인 구조나 조형미가 부각된다. 날카로운 대비감, 명료한 멜로디의 움직임이 돋보이며 세부적인 것 까지도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이다. 마치 악보를 실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명확하고 알기 쉬운 것이 '솔티음악'의 본질이다.
글출처: 웹사이트
https://youtu.be/cTJp9MWXsyU?si=4b9eo0guEjyvrUHq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op.36 "Enigma". Boston Symphony Orchestra. Eugene Ormandy